소설리스트

600화 (600/605)

탄핵

최대한 방송 심의에 위촉되지 않은 선에서 모자이크 처리로 영상을 내보냈지만, 시청자가 받아들이기에는 실로 충격적인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죄없이 죽은 가족의 복수를 위해 목숨을 걸고 폭로의 인터뷰 자리에 선 로버트 피어리는 붉게 충혈된 눈으로 카메라를 뚫어지게 응시하며 들고 온 가방에서 두께가 제법 나가는 문서 하나를 꺼내 들었다. 그러자 카메라는 줌 샷으로 문서를 확대해 보여줬다.

TV 화면 꽉 차게 보이는 문서에는 USSC 회원이라는 타이틀 아래 미국의 정치계부터 경제계, 그리고 고위 장성 등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사회 각계계층의 유명 인사의 명단이 적혀 있었다. 하나같이 미국을 움직이는 기득권 구성원들이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충격적인 것은 맨 윗단에 미국 대통령인 도널드 트럼프의 이름이 떡하니 자리 잡고 있었다.

로버트 피어리는 문서 한 장 한 장을 넘기며 부가 설명을 해갔다.

“이 문서에 이름이 적인 사람들은 USSC의 마지막 의장이자 앞서 자살 영상의 주인공인 빅토리아가 수년간 의장직을 수행하면서 관여된 사람들로 총 98,200명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

수십 페이지에 달하는 문서를 끝까지 넘긴 로버트 피어리는 책상 위에 올려놓으며 충격적인 발언을 이어갔다.

“하지만 이것은 새 발의 피에 불과합니다. USSC가 지난 70여 년간 배후에서 미국을 좌지우지할 수 있었던 건 상상도 못 할 수많은 사람이 돈의 노예가 되어 그들의 꼭두각시 행세를 했기 때문입니다. 추가 명단은 향후 CNN을 통해 공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때 엘리스 로건 앵커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한 채 긴급 질문을 던졌다.

“정말 저 문서가 USSC와 관여된 사람들입니까?”

“네, 그렇습니다. 제가 지하벙커에서 구출 받기 전, 빅토리아 의장의 전용 노트북에서 가져온 자료를 출력한 문서입니다.”

“아! 정말, 믿기지 않는군요. 문제는 정말 첫 페이지 상단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이름도 있는데요. USSC와 관여되었다는 정황의 증거가 있습니까?”

“네, 당연히 있습니다. 처음 제가 드렸던 USB에 트럼프 대통령은 물론 명단에 오른 사람들이 USSC와 관여된 내용이 상세하게 들어있습니다. 앵커분께서 궁금하시니 하나의 예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작심한 듯 로버트 피어리는 카메라를 응시하며 말을 이어갔다.

“3년 전, 동북아 전쟁 발발 당시 미국은 끝내 일본과 손을 잡고는 참전했습니다. 하지만 다들 아시는 대로 참전한 태평양함대는 이렇다 할 전과도 내지 못하고 수많은 사상자를 남기고 허무하게 패전했지요. 이후 한국으로부터 우리 미국 본토가 공격받는 초유의 사태까지 벌어졌습니다. 하지만 이후 어떻게 되었나요?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국 간의 의견충돌에서 벌어진 군사적 충돌이라며 당시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을 늘어놓으며 분노한 국민을 외면하며 급히 평화종전을 하였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의문형으로 말을 마친 로버트 피어리는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리고는 잠시 시간을 보내고는 다시금 입을 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USSC의 하수인이었지만, 한편으론 미국 대통령의 권력을 독점하고 싶은 욕망을 품고 있었습니다. 마침, 미 본토가 공격받을 당시 한국 특수부대에 의해 USSC 안가도 공격을 받아 의장을 비롯한 위원들은 지하벙커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구출은커녕, 더는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없도록 USSC 안가가 자리 잡고 있던 곳을 막아버렸습니다. 그리고 USSC와 관여된 모든 흔적을 지우는 작업에 착수하고자 USSC와 과연 된 수많은 정치인과 군 장성들을 회유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모든 사실을 알고 있는 한국 정부의 압박에 굴복하여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음에도 급히 평화종전으로 마무리했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짧게 말씀드린다면 이번 미한전 발발 역시 USSC의 흔적을 지우는 작업의 연장선이라 보시면 됩니다.”

그랬다. 태평양함대의 패전과 미국 본토가 공격받는 사태가 벌어지면서 대한민국에 대한 자국민의 분노는 그 어느 때보다 하늘을 찌를 듯 높았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도려 평화종전을 선언하며 급히 마무리하고 말았다. 3자 입장에서도 이해할 수 없는 처사였으나 오늘 로버트 피어리의 한마디에 그 수수께끼는 풀리고 말았다.

이렇듯 특종 폭로 방송이 어느덧 20여 분이 흐르면서 USSC의 진실이 속속들이 밝혀지자 CNN 시청률은 폭등했고 홈페이지는 접속자 폭주로 서버가 다운되기까지 했다. 그리고 전화문의가 빗발치면서 CNN 방송국은 아닌 밤중에 홍두깨란 듯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었다. 이처럼 미국 전역은 물론 인용 송출로 CNN 방송을 시청하던 세계 모든 사람이 대혼란에 빠진 상황에서 로비에서 감시하고 있던 박기웅 팀장이 무음성 통신으로 보고가 올라왔다.

- 과장님! 로비에 CIA 애들 떴습니다.

스튜디오 밖에서 요원들과 함께 로버트 피어리의 인터뷰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이자성 과장이 마찬가지 무음성 통신으로 되물었다.

“얼마나?”

- 대략 20명 넘습니다.

“그래? 알았어! 박 팀장은 부하들과 함께 사전 계획했던 대로 철수해!”

이러한 상황을 예상했던 이자성 과장은 나름의 탈출 계획을 수립한 상태였다.

- 네, 알겠습니다. 철수합니다.

10여 분 전, 전화상으로 방송중지 요청을 한 팀 그린 수석보좌관은 CNN 보도국장이 거절 의사를 밝히자 자 즉시 CIA 국장에게 협조 요청을 한 상태였다.

통신을 마친 이자성 과장은 방송 관계자를 뿌리치고 스튜디오 안으로 들어왔다.

“피어리 씨! 그만 가야 할 시간입니다.”

이에 로버트 피어리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앨리스 로건 앵커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하며 물었다.

“아직 인터뷰가 끝나지 않았는데요?”

이에 이자성 과장은 손목시계로 시간 체크를 하며 대답했다.

“로건 앵커님! 지금 방송국 로비에 CIA 놈들이 들이닥쳤습니다. 피어리 씨 신변 보호를 위해 이만 끝내야겠습니다. 우리가 드린 USB 잘 보관했다가 알아서 후속 방송해주시기 바랍니다. 만약 USB를 빼앗겨도 괜찮습니다. 그건 복사본이니 추후 다시 보내드릴 수 있습니다.”

“아! 알겠습니다.”

“그럼, 이만! 가시죠. 피어리 씨!”

“네,”

방송 중 돌발상황이 일어났지만, 엘리스 로건 앵커는 프로답게 갑작스럽게 인터뷰가 종료된 것에 대해 시청자에게 사과의 인사과 함께 USSC 건은 향후 추가 방송을 재편성하겠다는 설명이 이어지는 그때 로비에서부터 보안요원의 제지를 뿌리치고 5층 스튜디오에 도달한 CIA 요원들은 막무가내로 방송을 중지시켰다. 그리고는 불법적으로 압수수색과 함께 로버트 피어리에 대한 추적에 들어갔다.

하지만 로버트 피어리를 비롯한 이자성 과장과 나머지 요원들은 방송국 빌딩 옥상에서 대기하고 있던 CMV-100 스카이버스에 몸을 싣고 타고 이미 빠져나간 후였다.

한편, 미국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장황한 증거를 앞세운 핵폭탄급의 USSC 스캔들이 터진 직후 약속이라도 한 듯 대한민국 국방부에서는 미국 시민은 물론 전 세계 모든 사람이 경악할 만한 내용을 발표했다.

그동안 공식 발표를 미루었던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2시간 전, 필리핀 해에서 벌어졌던 대한민국과 미국 간의 대규모 해상전 결과에 대한 공식 발표였다.

국방부의 발표 내용을 보자면 4개 함대로 이뤄진 미 해군의 7개 항모전단은 교전 발발 30분 만에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보았다는 것과 현재까지 집계된 미 해군의 피해 현황은 항공모함 5척을 포함해 120여 척의 각종 수상함이 침몰하거나 반파 이상의 큰 피해를 보았고 대략적인 집계로 보자면 미 해군의 승조원 사상자만 무려 28만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는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더불어 이러한 공식 발표를 뒷받침하고자 국방부에서는 각종 정찰전력으로 괴멸에 가까운 피해를 본 미 해군을 촬영한 영상을 여실히 보여줬다.

10여 분간의 영상에서는 참혹할 정도로 파괴되어 침몰해가는 항공모함을 비롯해 구축함들이 각종 미사일 공격을 받고 침몰하거나 검붉은 화염에 휩싸인 채 어두운 바다를 비추는 장면이 대부분이었다.

그야말로 자정을 넘긴 미국은 USSC 스캔들에 이어 미 해군의 패전 소식에 그야말로 미국을 넘어 전 세계를 충격의 도가니로 몰아갔다.

미 해군과의 해상전이 끝난 지 12시간이 넘도록 공식 발표를 미룬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한편, 백악관과 펜타곤은 자국 해군의 패전 발표에 따른 백악관과 정부에 쏟아질 비난을 최소화하는 것과 동시에 국민적 분노를 최대한 대한민국에 향하도록 할 여론몰이 사전 계획은 예상치 못한 USSC 스캔들이 터짐으로써 유명무실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수십만에 달하는 사상자가 발생한 자국 해군의 패전 소식을 의도를 가지고 12시간이 지나도록 은폐하려 했다는 의혹까지 받게 될 백악관과 펜타곤 그리고 USSC와 관여된 수많은 사람은 완전히 공황상태에 빠져버렸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조차 현재 자신에게 불어닥친 재앙을 어디서부터 손을 봐야 할지 감도 잡지 못할 지정이었다. 일단은 CIA 공권력을 투입하여 CNN 방송국에 대한 전격 압수수색과 인터뷰 방송을 중지시켜 급한 불은 껐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일 뿐 원론적인 해결책은 아니었다. 더군다나 미국에서 공권력을 동원해 방송 자체를 중지시킨다는 것은 중대한 불법행위였고 권력남용이었다.

하지만, 급한 대로 불법적인 공권력을 투입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들에게 있어서 USSC 스캔들은 역린 중의 역린이었기 때문이었다.

★ ★ ★

2024년 2월 10일 00:00 (미국시각 9일 09:00),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 앞.

마치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일들이 현실로 불어닥친 미국, 아침이 밝자 이곳 백악관 앞 광장에는 약속이라도 한 듯 수많은 인파가 몰려들고 있었다. 남녀노소 구분 없이 몰려든 수많은 시민은 저마다 다양한 피켓을 들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일부 시민들은 당장에라도 백악관으로 달려갈 듯한 기세를 보이며 백악관 앞은 긴장감이 고조되었다.

“트럼프 아웃! 트럼프 아웃!”

50대 흑인으로 보이는 남성이 방송국 카메라를 보며 절규 섞인 목소리로 외쳤다. 그는 3년 전, 동북아 전쟁의 연장선인 한미전에 참전하여 전사한 해군 승조원의 유족이었다. 자기 아들이 국가가 아닌 고작 USSC라는 비선조직의 지시하에 전쟁에 참여하여 전사했다는 사실에 분노하여 지금 방송 카메라 앞에서 울분을 터뜨리며 외치고 있었다.

현재 이곳 백악관 앞에 몰려든 시민 중 반 이상은 50대 흑인과 같이 불필요한 전쟁에서 전사한 유족과 이번 필리핀 해 해상전에서 연락이 되지 않은 가족들까지 동참하게 되면서 시위대 규모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커졌다.

그리고 오후가 되자 백악관 앞에서 시작된 시민들의 시위는 미국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50개 주 320여 개의 크고 작은 도시에서 대규모 시위로 확산하는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은 현 상황을 수습하고자 악수라 볼 수 있는 계엄령 선포 카드를 꺼내고자 했다.

하지만, 이것 역시 쉬운 문제는 아니었다. 백악관 내 USSC와 상관없는 일부 수석들과 보좌관들의 극심한 반대가 이어져 신속하게 진행하려던 계엄령 선포는 늦어졌고 이때를 기회 삼아 스칼릿 캐머런 전략보좌관이 계엄령 선포와 관련한 내용을 언론에 먼저 터뜨리고 말았다.

스칼릿 캐머런 전략보좌관은 한동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깊은 신임을 받았지만, 그녀는 정의이라는 이름 아래 국가와 국민에 충성하지 권력에 충성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이처럼 스칼릿 캐머런 전략보좌관에 의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계엄령 선포를 준비 중이라는 보도가 미국 전역으로 알려지게 되면서 시위대의 분노는 극에 달했고 공무원은 물론 경찰과 군인들까지 시위대에 가담하는 사태까지 벌어지고 말았다.

아닌 말로 미국 전역은 그야말로 국가 위기상황에 직면하고 말았다. 이에 마땅한 대책수단이 없다고 판단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국가비상사태보다도 초법적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국가비상계엄령 카드를 끝내 고수하여 USSC 연관된 장성 중 하나인 현 육군참모총장인 존 맥브라이드 대장을 계엄사령관으로 임명하여 강행하려 했으나 생각지도 못하게 미 의회의 문제로 인해 막히고 말았다.

금일 새벽 캘리포니아 주에서 선출된 상원의원 딘 랄라스가 자택에서 피살되는 사건이 보도되면서 USSC와 관여된 수많은 상하원의원이 돌연 잠적하거나 자취를 감추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로 인해 미 의회는 파국 되어 비상계엄령을 심의조차 할 수 상황이 되었다.

* 국가비상사태는 대통령의 권한 아래 선포가 가능했지만, 3년 전인 2021년에 새롭게 정제된 국가비상계엄령은 하원 의회에서 재적 인원 과반수 발의 및 상원 의회에서 2/3 이상이 찬성해야만 선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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