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대결
2024년 2월 8일 20:30 (현지시각 21:30),
동주 평화자치도 은돌 제도 동단 516km 필리핀 해.
항모전단마다 50km 거리를 두고 평화도를 향해 항해하는 미 해군 함대는 몇 시간 후 벌어진 대규모 해상전을 대비해 전투태세로 전환한 채 10노트 속도로 항해하고 있었다.
이번 함대군의 총사령관직을 맡은 대서양함대 사령관 조시 챈들러 제독은 대서양함대 기함이자 다목적상륙함인 아메리카급 함교에서 별빛에 반짝이는 머나먼 수평선을 바라봤다.
어제 있었던 미한 간 정상회담이 틀어지면서 펜타곤 합동참모본부에서는 작전 해상에 진입하는 즉시 교전을 시작하라는 명령이 하달된 상황이었다.
이제 대한민국과의 전쟁은 불가피한 상황으로 전개된 현재, 조만간 발생할 수많은 희생자를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워지는지 조시 챈들러 제독은 마냥 수평선만 바라봤다.
“앞으로 5시간 후면 작전 해상에 진입한다고 합니다.”
선두에서 항해하는 함대로부터 보고가 올라오자 대서양함대 주임작전관이자 함대군 주임작전관을 역임하는 스튜어트 그린 소장이 방해되지 않게 조용히 말했다.
“음, 5시간 후라, 각 함대에 연락해서 제군들 돌아가며 잠깐씩이라도 휴식을 취하게 하라고 전하게.”
“네? 전투태세 상황인데도 말입니까?”
스튜어트 그린 소장이 살짝 놀라며 반문하자 조시 챈들러 제독은 그저 수평선만 바라보며 말했다.
“전쟁도 충분히 휴식이 있어야 제대로 싸울 수 있다네”
“아! 알겠습니다.”
잠시 후 스튜어트 그린 소장을 통해 각 함대에 조시 챈들러 제독의 명령이 하달되자 각 함대 사령관들은 전투태세 상황임에도 될 수 있으면 많은 수의 승조원들에게 휴식 명령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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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2월 8일 21:00,
동주 평화자치도 은돌 제도 북서단 55km 남한국해.
신성용 합참의장의 명령으로 은돌 제도 북서단 해상에 대한민국 해군 전력이 모두 집결한 상황, 제7기동전단과 잠수함들은 은돌 제도 남서단 쪽에 자리 잡고 있었고 나머지 해군 전력은 모두 북서단 해상에서 서로 간 간격을 두고 대기 중이었다.
어젯밤에 이곳 해상에 도착한 대한민국 해군 중에 다목적상륙함 1척은 은돌도 항에 접안 하여 18대의 이동식 발사차량이 하역했다.
이들은 해군 남해함대 소속의 제33지대함대대로 SSM-700S 해성B 미사일을 운용하며 총 4연장 발사관 2개를 장착한 K-222 궤도형 발사차량이었다.
대대급이었지만 화력 면에서는 SSM-700S 해성B 미사일이 총 144발을 장착했고 자동장전시스템에 의해 차량 한 대당 5분도 안 되어 8발을 신속하게 재무장할 수 있었다.
동북아 전쟁이 끝난 후 확장된 해상영역의 섬들이 많아지면서, 언제든 작전구역에 신속하게 지대함 화력을 전개할 개념으로 2022년 각 함대에 직할로 각각 3개 지대함대대가 창설되었다.
이로써 은돌도에는 각 3개 포대가 적당한 거리를 두고 동단 상공을 바라보고 전개를 마친 상태였다.
“겨울 날씨치고는 따뜻하군”
차리석함(CG-1105)의 함교 왼쪽 난간에 나온 해군작전 사령관인 박수일 중장은 시원한 바닷바람이 얼굴을 스치자 바다 비린내를 음미하며 중얼거렸다.
“오랜만에 나오셔서 기분이 좋은 신 듯합니다.”
차리석함(CG-1105)의 서길수 함장이 말을 걸었다.
“그렇지, 역시 바다 사나이는 바다에 나와야 제격이지, 맨날 책상에만 앉아있으면 삶에 재미가 없다네.”
이번 미 해군과의 해상전을 앞두고 박수일 중장은 합동참모본부에 현장에서 직접 지휘하겠다고 통보했다. 실제 해군전력을 전체를 지휘하는 지휘관이 전장에 나간다고 하니 합동참모본부 내에서 해군참모총장을 비롯해 여러 참모가 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박수일 중장은 끝내 고집을 피워 차리석함(CG-1105)에 승선하고 말았다.
이에 해군작전사령부에서는 부작전사령관인 양재석 소장이 지휘권을 위임받았다.
이렇게 한동안 비린내가 섞인 바닷바람을 쐰 박수일 중장은 각 함대 지휘관 회의시간이 다가오자 아쉬움 마음을 뒤로한 채 함교로 들어갔다.
그리고 차리석함(CG-1105) 후미 헬기격납고 헬기장에는 각 함대 지휘관을 태운 여러 대의 해상헬기들의 저마다 차례를 기다리며 호버링 중이었다.
잠시 후 차리석함(CG-1105)의 작전회의실에는 50여 명에 달하는 각 함대 지휘관들과 함장들이 기다란 탁자를 중심으로 2열로 앉아있었다.
그리고 벽면 사방에 설치된 스크린에도 직접 참석하지 못한 참모진들과 작전사령부와도 화상통신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제군들! 미 해군과의 직접적 군사적 충돌은 길어야 4시간 후네, 다들 사전에 수립된 작전 안을 숙지 해겠지만, 이번 ‘거친 파도’ 작전은 속전속결이 관건이네. 즉 타이밍이지, 이점, 다시 한번 머릿속에 상기들 하고 해전에 임해주기 바라네”
본격적인 작전회의에 앞서 서두를 시작한 박수일 중장은 약간은 상기된 표정으로 앉아있는 지휘관들 보며 힘 있는 목소리로 다독였다.
“자! 그럼 시작하지!”
이번 작전 브리핑을 맡게 된 제1함대 함대장 안형우 소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전술스크린 옆으로 걸어갔다.
“그럼, 지금부터 ‘거친 파도’ 작전 안의 최종 점검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곧은 자세로 똑바로 선 안형우 소장은 절도있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앞서 작전 사령관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이번 ‘거친 파도’ 작전은 속전속결이 관건입니다. 현재 미 해군의 항해속도를 분석한 결과 우리 해군과 거리 350km까지 도달할 추정 시간은 앞으로 4시간으로 보고 있습니다. 대통령께서 미 해군에 대한 선공도 승인한 상황이니, 공격명령은 언제든 하달될 것이라는 점, 지휘관들은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작전명 ‘거친 파도’는 해군은 물론 공군과 항공우주군이 모두 참여하는 합동 작전명이었다.
이에 ‘거친 파도’ 작전은 총 5단계로 진행된다. 하지만 5단계까지 진행되는 시간은 고작 30분으로 속전속결이란 단어가 계속해서 강조된 이유였다.
1단계 : 현재 은돌 제도로 항해 중인 미 해군 함대군이 350km 이내로 진입하던가 아니면 해군 항공전력을 투사하는 시점에 항공우주군 소속의 삼족오 우주 전투기들은 목표물 타격에 들어간다.
며칠 전 일본 내각으로부터 전달받은 정보를 토대로 항공우주군은 영국과 캐나다, 그리고 대만 명의로 등록되어 민간 위성으로 위장해 운용되고 있는 미국의 군사위성 X-400 프로마테우스 정찰위성 4기는 물론 기존 X-350 아틀라스 정찰위성 16기 모두 위치를 파악한 상태였다. 이에 2개 우주전투비행단 소속의 삼족오 우주전투기 32기는 대기권 밖에서 공격명령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며 은밀히 비행 중이었다.
즉 미 해군의 눈과 귀 역할을 하는 정찰위성을 사전에 모두 요격한다.
2단계 : CS-AD 제우스 전략요격위성 4기는 미 해군 함대군을 향해 무장하고 있던 C-SE 에피루스-II 미사일 32기 모두를 쏟아부을 계획이다.
미 해군 함대군의 상공 일대를 거대한 전자 펄스막 지대로 만들어 각종 첨단 전자기기를 완전히 골동품으로 만들겠다는 뜻이었다.
즉 미 해군의 공격 수단인 미사일 공격 자체를 하지 못하도록 손과 발을 완전히 묶어 벌리겠다는 의도였다.
3단계 : 미 해군 함대 전력을 완전히 무력화한 상황에서 미 해군 항공전력을 상대하기 위해 평화도에서는 흑주작 전투기와 다목적상륙함의 적주작 함재기 그리고 봉황 공격기를 출격시켜 공중전에 돌입한다.
4단계 : 은돌도에 전개한 33지대함대대의 미사일 공격과 해군 모든 함정에서 가용한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눈과 귀 그리고 손발이 묶인 미 해군전력을 완전히 초토화한다. 남서단 해상에서 항해하던 제12항모전단 소속의 호큘라 순양함과 호큘라 잠수함도 대함미사일과 각종 어뢰로 후방에서 기습공격에 가담한다.
5단계 : 압도한 성능으로 공중전에서 미 해군 항공전력을 군 함대군 상공으로 날아가 마지막 공대함 미사일 공격을 가하며, 마지막으로 모든 초계전력을 이용해 바다에서 항주하는 미 해군 잠수함을 모조리 찾아내어 격퇴한다.
작전명은 ‘거친 파도’는 조금은 가벼워 보일 수 있는 이름이었지만, 실제 추진되는 5단계 작전의 화력은 엄청날 정도로 무시무시할 정도였다. 만약 작전 안대로 5단계까지 문제없이 진행된다면 미 해군 역사에 유례가 없을 정도의 큰 타격을 입어 재기불능에 빠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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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2월 8일 22:00,
남주 서울특별시 용산구 국립중앙의료센터(특수동 특실).
3년 동안 USSC 지바벙커에 갇힌 사람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생존자 로버트 피어리는 이자성 과장과 함께 비밀리에 대한민국 국립중앙의료센터로 이송되어 정신적 충격에서 벗어나는 심리치료를 받고 있었다.
“어때요? 오늘 중으로 입 좀 털 수 있겠습니까?”
특수동 한쪽에 마련된 특실 병상에 누워있는 로버트 피어리를 반투명 유리 너머로 지켜보던 박기웅 팀장이 옆에 있던 의사에게 물었다.
“네? 털다니요?”
“심문해도 되는지 물어본 겁니다.”
“아~ 네! 음, 많이 안정돼서 가능할 거 같습니다. 대신, 심문형식보다는 대화하는 형식으로 일단 시작하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음, 그래요? 뭐 의사 선생님께서 그리 말씀하시니 그래야겠네요.”
“그럼 준비할 테니 잠시 후에 들어오세요.”
“네, 알겠습니다.”
잠시 후 로버트 피어리를 마주 앉은 박기웅 팀장은 최대한 상냥한 표정을 지으며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국정원 소속의 박기웅이라고 합니다.”
어설픈 영어로 자신을 소개한 박기웅 팀장은 신분증을 건넸다. 이에 로버트 피어리는 약간 경계하는듯한 눈빛으로 신분증을 보더니 이내 시선을 회피했다.
“경계할 거 없습니다. 우리는 피어리 씨를 해치려는 게 아닙니다.”
하지만, 로버트 피어리는 듣는 척도 안 했다.
“피어리 씨 혹시 담배 피우십니까?”
순간, 로버트 피어리가 반응했다. 이에 담뱃갑에서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내밀었다. 그러자 번개 같은 손놀림으로 담배를 빼앗더니 이내 입에 물었다.
띠잉! 찌지직!
담뱃불을 붙여주자 로버트 피어리는 깊게 빨아 들더니 이내 구역질을 해가며 헛기침을 해댔다.
3년 만에 피는 담배가 매우 독한 듯했다. 이에 박기웅 팀장은 잠시 기다려 주자 로버트 피어리는 필터 끝까지 담배를 피우고는 건넨 종이 겁에 비벼껐다.
“피어리 씨! 피어리 씨가 우리 정부에 협조만 한다면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와드릴 것입니다.”
“그 말을 어떻게 믿습니까? 3년 전에 우리를 지하벙커에 갇히게 한 장본인들의 말을 말입니다.”
“네, 맞습니다. 믿기 힘들겠죠. 하지만, 지금 누가 피어리 씨를 그곳에서 구출했습니까?”
“구출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가요?”
“구출할 마음이 있다면 3년이 지난 후에 하진 않았겠지요.”
“좋습니다. 인정할 건 인정하겠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렇게 구출하지 않았습니까? 당신의 조국인 미국 정부는 알면서도 버려뒀는데 말입니다. 아니지요. 방치가 아니라, 영원히 USSC와 관련한 증거를 없애려고 별장이 있던 곳도 완전히 바꿔놨더군요.”
이에 로버트 피어리는 복잡한 심경에 고뇌에 찬 표정을 지었고 입술은 미세하게 파르르 떨었다.
“피어리 씨, 아마도 당신이 살아있다는 것을 트럼프가 알게 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양념형식으로 살짝 협박성 멘트를 날리는 박기웅 팀장, 이에 로버트 피어리의 반응이 즉각 나왔다.
“어, 어떻게 됩니까?”
“아마도 어떻게든 피어리 씨 입을 막으려고 별수단을 다 동원하지 않겠습니까? 조국에 버림받은 신세인데 그냥, 대한민국 국민이 되어 새로운 삶을 사시지요. 당신의 가족들 역시 모두 안전하게 대한민국으로 데리고 오겠습니다.”
순간 박기웅 팀장의 눈에는 로버트 피어리가 상당한 심적 갈등을 보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