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93화 (593/605)

비밀열쇠

2024년 2월 7일 10:30 (미국시각 6일 15:30),

미국 하와이주 오아후 힐튼 하와이안 빌리지 와이키키 비치 리조트(정상 회담장).

스칼릿 캐머런 전략보좌관으로부터 뭔가의 얘기를 들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상체를 앞으로 당기고는 의미심장한 말을 건넸다.

“좋습니다. 피해보상금은 포기하죠. 대신, 러시아의 동시베리아의 영토에 있는 자원을 공동개발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네? 동시베리아요?”

“피해보상금보단 그쪽이 나을 듯하군요. 뭐 공동개발을 하면 그만큼 초기 투자비용도 절약되지 않겠습니다.”

“하하, 그렇게 되면 자원 개발에 따른 이익도 절만으로 나뉘지 않습니까? 수용 불가입니다. 그리고 한가지 짚고 넘어갈 부분이 있는데요. 자꾸만 뭔가를 원하시는데요. 마지막으로 말씀드리지만, 이 자리는 우리 대한민국이 미국에 뭔가를 지급할 것에 대해 조율하는 회담이 아닙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일본의 ‘자주 국가’ 선포라는 이름 아래 예전 동맹국이었던 대한민국 함대에 불법적인 공격을 가해 큰 피해를 주고 더 나아가 유럽을 지켜야 할 나토군을 전장에 끌어드린 미국이 우리 대한민국에 도리어 사죄하고 피해보상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만, 아닙니까? 하지만 저는 그런 걸 굳이 따지려 하지 않았습니다. 평화적 공존만 바랄 뿐입니다.”

“음, 그럼 단지 양 국가 간 발생할 전쟁을 중지하자 그 얘기뿐이라는 거지요?”

“네, 맞습니다.”

“음, 먼저 회담 제안을 하셔서 뭔가 용단하여 우리 미국에 그에 맞는 보상을 할 줄 알고 회담 제안을 승인했지만, 그게 아니라면 더는 시간 낭비할 거 없이 이만 끝내도록 합시다.”

이처럼 정상회담이 시작된 지 1시간 30분이 지났지만, 서로 간의 첨예한 의견대립으로 인해 정상회담은 시간만 소모할 뿐이었다. 급기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 파장을 선언했다.

이때, 강경희 장관이 가지고 있던 스마트 폰에서 진동이 울렸다. 이에 회담이 방해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탁자 밑으로 내려 화면을 확인했다.

짧은 문자 하나가 도착했다.

‘생존자 1명 확인! 나머지는 모두 사망! 각종 자료 획득 완료!’

회담을 파장시킨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려 할 때, 강경희 장관은 추은희 대통령에게 확인된 문자 내용을 알렸다.

“잠깐 앉으시죠. 아주 중요한 얘기를 못 했는데 말입니다.”

“뭐요? 1시간 넘도록 앉아있었는데 아직도 중요한 얘기가 남았습니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불편하다는 듯 선 자세로 말했다.

“음, 트럼프 대통령껜 매우 중요한 얘기이니 저와 단둘이 얘기를 하시지요. 저 역시 영어가 되니 통역사도 필요 없습니다.”

“대체 뭔데 그러는 겁니까?”

“뭐, 대통령께서 괜찮다면 그냥 말할까요?”

순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는지 전략보좌관은 물론 옆에 있던 통역 담당도 나가라는 손짓을 하며 자리에 앉았다. 이에 대한민국 측도 강경희 장관과 통역 담당이 자리에서 물러났다.

큰 회담장에 둘만 남은 상황, 추은희 대통령은 미국 정부에서 금기라 할 수 있는 한 단어를 입에 올렸다.

“USSC 건에 대해서 말입니다.”

“USSC요? 그게 뭡니까?”

“네? 몰라서 제가 되묻는 건가요?”

“네, 그렇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뻔뻔스럽게 거짓말을 유창하게 해댔다.

“음, 처음부터 그렇게 발뺌을 하시니, 조금은 당황스럽군요.”

“대체 무슨 얘기입니까? USSC가 뭡니까?”

“그래요. 당연히 트럼프 대통령께서는 모르신다고 하는 게 낫겠죠. 하지만, 우리는 USSC과 관련한 많은 증거자료를 갖고 있습니다.”

“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원, 증거자료니 뭐니, 나와 상관없는 얘기를 하는 겁니까?”

“그럼, 이 자료들을 미국 언론에 제공해도 되겠습니까?”

순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눈빛이 흔들렸다. 하지만 이내 이성을 찾고는 강하게 반박했다.

“하하하, 그게 뭔진 모르겠지만, 언론이든 뭐든 제공하세요. 미국만큼 자유로운 언론은 없습니다. 제공하세요. 저도 그게 뭔지 매우 궁금하군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끝까지 모르쇠로 일관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허허, 더는 시간 낭비입니다. 이만 끝냅시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회담장을 빠져나갔다.

정상회담에서 있어선 안 될 결례였다. 보통 회담 안건에 있어서 불만스럽다고 해도 서로 간 악수를 끝으로 회담을 정리하는 게 기본 예의였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회담장을 빠져나가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뒷모습을 보면서 추은희 대통령은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를 보였다.

‘USSC건과 관련해 3년간 대책을 준비했다는 뜻이군, 하지만 우리가 증거자료는 물론 산증인을 확보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당신의 표정이 매우 궁금하군요.’

이왕 정상회담을 통해 미국과의 전쟁을 막고자 했지만, 그것이 궁극적인 최후의 목적은 아니었다. 정상회담을 제안한 여러 가지 이유 중 한 가지 목적을 소기 달성했으니 처음 추은희 대통령은 그것만으로도 만족했다.

정상회담이 끝나고 간단한 기자 회견이 있는 추은희 대통령과는 다르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 회견을 갑자기 취소하고는 그대로 의전 차량에 몸을 싣고는 호놀룰루 국제공항으로 향했다.

스칼릿 캐머런 전략보좌관이 기자 회견을 해야 한다며 급구 말렸지만, USSC 건으로 마음이 불편했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순간 판단이 흐려져 전략보좌관의 조언을 무시해버렸다.

★ ★ ★

2024년 2월 7일 12:30 (미국시각 6일 17:30),

미국 하와이주 오아후 힐튼 하와이안 빌리지 와이키키 비치 리조트(기자회견장).

세계 각국에서 온 수많은 기자가 몰려온 가운데 추은희 대통령만이 회견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단상에 선 추은희 대통령은 카메라 셔터를 남발하는 기자들을 보며 무겁게 입을 열었다.

“오늘 기자 회견은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하려 했으나, 부득이한 사정으로 인해 저 혼자만 하게 되었습니다. 저 역시 안타깝게 생각하며 기자 회견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기자 회견에 앞서 간단히 설명을 마친 추은희 대통령은 기자들의 질문을 받기 시작했다.

“이번 정상회담 제안은 한국으로 알고 있습니다. 무슨 주제로 이번 양국 정상회담을 제안했습니까”

청와대 대변인이 지목한 백인 여성 기자가 본질적인 질문을 했다.

“네, 다들 알고 계시겠지만, 현재 대한민국과 미국의 관계는 그 어느 때보다 좋지 않습니다. 저번 함대 간 교전도 그렇고 러시아 남부에서의 미국 나토군과의 교전도 그렇고 말입니다. 그리고 현재 태평양에는 양 국가의 대규모 함대가 일촉즉발(一觸卽發)의 상태로 대치 중인 상태입니다. 저는 자칫 최악의 사태인 양 국가 간의 전면전을 사전에 평화적으로 해결하고자 이렇게 정상회담을 제안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정상회담은 잘 되었습니까?”

추은희 대통령은 살짝 고개를 떨구고 시간을 보낸 후 천천히 고개를 들고는 힘없이 말했다.

“아니요. 죄송합니다. 트럼프 대통령과는 아쉽게도 좋은 결과를 내지 못했습니다.”

기자회견장에 모인 기자들은 모르겠지만, 청와대 관계자들은 오스카 여배우 주연상급의 연기력에 마속으로 탄성을 질렀다.

“왜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았습니까?”

백인 여자 기자는 계속해서 추가 질문을 던졌다.

“네, 저는 대승적인 평화를 위해 서로 간 한 걸음씩 양보하여 전쟁을 막고자 하였지만, 트럼프 대통령께서는 계속해서 피해보상금과 시베리아에 대한 공동개발을 요구했습니다. 세계 평화는 한쪽의 일방적인 양보가 아니라 두 국가 모두 양보를 해야만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끝내 트럼프 대통령은 저의 뜻을 저버렸습니다.”

순간, 기자들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이에 청와대 대변인 끼어들었다.

“그럼 첫 질문은 이 정도로 마무리하겠습니다.”

순간 수많은 기자가 질문하고자 손을 들었다.

“네, 뒤쪽 파란색 셔츠를 입은 남성 기자님!”

청와대 대변인이 이번에 남성 동양 기자를 가리켰다.

“네, 대만 TVBS 진소뢰 기자입니다.”

“네, 질문 하세요.”

“감사합니다. 질문하겠습니다. 3년 전부터 한국은 중국은 물론 일본과 전쟁을 했고 2023년에는 또다시 신중국과 그리고 러시아와 전쟁을 하였습니다. 짧은 기간 이와 같은 전쟁을 함으로써 세계 경제는 대공황 사태까지 빠지게 되었습니다. 항간에는 한국이 팽창주의에 빠져 전쟁을 통해 마구잡이로 영토확장을 하고 있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습니다. 이번 미국과의 전쟁 역시 위와 같은 팽창주의 일환입니까?”

다소 불편한 질문을 던진 진소뢰 기자였다. 이에 추은희 대통령이 옅은 미소를 보이며 답변을 시작했다.

“대만 진소뢰 기자님이라고 했죠?”

“네, 그렇습니다.”

“네, 답변드리겠습니다. 일단 진소뢰 기자께서는 근거 없는 가짜 뉴스에 빠져 우리 대한민국을 정말 팽창주의에 빠진 국가로 일반화하여 질문하셨군요?”

“그런 의미가 아니었습니다.”

“네, 그래요. 알겠습니다. 계속 답변드리죠. 3년 전 중국과의 전쟁은 다들 아시다시피 남북통일을 방해하기 위해 중국은 당시 심양 군구 소속의 30만에 달하는 군대를 두만강과 압록강으로 진공 하는 사전에 파악하여 방어를 위한 공격을 가한 것입니다. 그리고 중국과의 전쟁을 통해 대만이 정상 국가가 되는 혜택을 받지 않았습니까? 저 같으면 우리 대한민국이 고마워서 그런 질문은 안 못할 거 같은데요?”

“대통령님 말씀대로 한국 덕에 비록 우리 대만이 정상 국가가 된 기회였다는 거 잘 알고 있으나, 기자는 오직 진실만을 추구하는 직업입니다.”

“말 잘하셨습니다. 오직 진실만을 추구하는 직업이 기자라는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그런데 기자님 질문에는 오직 진실만을 추구하는 정신이 없는 거 같습니다. 기자님의 질문 속에는 매우 한쪽으로 편향된 부분이 있습니다. 진실을 추구하고자 한다면 질문부터 거짓 없는 사실을 근거로 질문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추은희 대통령의 현란한 입담에 진소뢰 기자는 더는 말을 잇지 못하고 마이크를 내려놨다.

사실 추은희 대통령은 오만가지 욕설을 기자에게 내뱉고 싶었다. 얼마 전 대만 정부가 미국과 짜고 미국의 정찰위성을 ITU에 등록시킨 상황에서 말도 안 되는 질문을 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속으로 꾹 참았다. 대만 정부야 언제든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 손 하나 까닥이면 무너뜨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럼 다음 기자 질문을 받도록 하겠습니다.”

★ ★ ★

2024년 2월 7일 12:00 (미국시각 6일 23:00),

미국 워싱턴 D.C 외곽(USSC 지하벙커).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비쩍 마른 체형에 얼굴은 60대로 보이는 한 사내가 잔뜩 겁먹은 표정을 지으며 이자성 과장 일행에 둘러싸여 있었다.

육체적으로도 비정상적으로 보이지만, 1시간가량 옆에서 지켜본 결과 정신적으로 상당한 문제를 가진 듯했다.

아마도 수년간 시체가 널브러진 이곳에서 혼자만 살아가는 것이 맨정신으로는 버틸 수 없었을 것이다.

일단, 신은하 팀장이 가져온 약을 투여하여 진정시킨 상태였다. 그리고 어느 정도 진정이 된 상태로 정신을 차리면 지하벙커를 빠져나올 계획이었다.

“과장님! 자료 모두 내려받았습니다.”

나태진 팀장이 조그마한 USB 흔들어 보이며 말했다.

“모두다?”

“네, 일부 시스템이 손상되어 깨진 파일 빼고는 여기 USB에 모두 담았고요. 깨진 파일도 김 팀장이 현재 복구작업을 통해 내려받을 예정입니다.”

“얼마나 걸릴까?”

“30여 분이면 될 거 같습니다.”

이자성 과장의 말을 들었는지 김선호 팀장이 연신 노트북의 키보드를 두드리며 대꾸했다.

“그래! 최대한 서둘러줘!”

“알겠습니다.”

잠시 후 USSC 지하벙커 전체를 한 번 더 둘러본 박기웅 팀장과 오진석 대리가 돌아왔다.

“어때?”

“생존자는 더는 없습니다. 그래 수고했어. 잠시 쉬어!”

“네,”

“신 팀장!”

“네, 과장님!”

“시신들 사진 죄다 찍고 DNA 검사할 표본도 모두 확보했지?”

“네, 배낭에다 다 챙겼습니다.”

“좋아! 이제 저놈만 정신 차리면 뜨자고”

“그런데 저놈 신분이 뭔지 알아냈습니까?”

반쯤 풀린 눈으로 해롱거리며 누워있는 백인 남성에 가까이 간 오진석 대리가 물었다.

“이름 로버트 피어리, 이곳 USSC의 보안 실장, 현재 기준 나이 47,”

이자성 과장은 소지품으로 가지고 있던 신분증을 보이며 말했다.

“오! 보안 실장이었군요. 그럼 이놈 이곳에 관해 잘 알겠는데요?”

“그렇겠지! USSC 위원이 아니라 좀 아쉽기는 하지만, 그리 나쁘지 않아!”

이때 박기웅 팀장이 추가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로버트라는 놈 빼고 죄다 자살을 했을까요?”

“아 저도 박 팀장님 말대로 그게 궁금합니다.”

“그야 모르지! 앞으로 이놈 좀 족치면 나오지 않겠어?”

이자성 과장은 로버트 피어리 실장을 눈으로 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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