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92화 (592/605)

비밀열쇠

2024년 2월 7일 09:00 (미국시각 6일 14:00),

미국 하와이주 오아후 힐튼 하와이안 빌리지 와이키키 비치 리조트(정상 회담장).

세계의 모든 언론매체가 주목한 가운데 널찍한 방 안에 사각 탁자를 사이에 두고 추은희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마주 앉아있었다.

요한 분위기가 흘렀다. 1년 전 싱가포르에서 있었던 G7 정상회의 때 만난 이후로 두 정상이 얼굴을 맞대고 이렇게 앉아있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리고 두 대통령 좌우에는 보좌 역할을 할 정부 인사와 통역 담당자가 앉아있었다.

추은희 대통령 옆에는 강경희 외교부 장관이 앉아있었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옆에는 스칼릿 캐머런 전략보좌관이 앉아있었다.

“그동안 잘 계셨나요?”

추은희 대통령이 먼저 살갑게 인사를 건넸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특유의 표정을 지으며 간단하게 대답할 뿐, 상대방에 대한 안부 인사를 묻지 않았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 남부에서의 나토군 희생에 대해 앙심이 남아있었다.

“어쨌든 이렇게 정상회담 제안에 응해줘 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할 게 있습니까? 그리고 응했다기보다는 저 역시 할 말이 있어서 말입니다.”

“그래요. 오늘 서로 간 허심탄회하게 얘기를 했으면 합니다.”

시종일관 여유가 있는 추은희 대통령이 탁자 위에 놓인 찻잔을 들어 살짝 입을 추기고는 본론을 꺼내 들었다.

“현재 양국의 해군이 평화도 제도 넘어 태평양에서 대치 중입니다. 사실 저는 미국과 전쟁을 바라지 않습니다. 이번 정상회담을 제안한 이유 역시 그러한 취지였고요. 트럼프 대통령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불편한 심기를 그대로 보여주며 반문했다.

“전쟁을 바라지 않는다구요? 그래서 우리 나토군을 그렇게 만들었습니까?”

“나토군요? 아! 러시아 남부에서 발생한 교전을 말씀하시는군요.”

“네, 그렇습니다.”

“트럼프 대통령님! 그 나토군의 희생은 매우 유감입니다. 하지만, 러시아와의 전쟁 중에 미국 나토군이 불법적으로 끼어든 것이 아닙니까? 불법적인 참전으로 발생한 교전에 왈가불가하는 건 아니라고 봅니다.”

추은희 대통령은 회담에서는 당당하게 나아갔다.

“유감이라고요? 불법 참전이라고요?”

“네, 그렇습니다.

“아니지요. 그건 어디까지나 일본의 ‘자주 국가’ 선포에 따른 동맹 간의 참전이며 러시아와는 정식적으로 군 협정을 맺은 것입니다.”

“아! 그런가요? 내부적으로 그런 일이 있었군요. 그렇다면 전혀 문제 될 게 없군요. 미국 나토군이 정상적인 전쟁에서 피해를 보았으니까요. 안 그렇습니까?”

“뭐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두 눈을 부라리며 추은희 대통령을 노려봤다. 하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추은희 대통령은 말을 이어갔다.

“전쟁에서 발생한 자국군의 피해를 상대국에 뭔가 책임을 전가하는 그런 의도를 저는 이해할 수가 없군요. 전쟁 중에 상대방을 생각해서 전쟁해야 한다는 얘기는 아니지 않습니까? 아닌가요?”

“그런 뜻이 아니잖습니까? 우리 미국과 전쟁을 원치 않는다면서 앞서 나토군을 그리 만들고 할 소리가 아니라는 겁니다.”

“알겠습니다. 이해했습니다. 방금도 말했지만, 그 부분에 대해선 유감이라 말씀드렸습니다.”

“허허, 유감이란 말로 해결될 일이 아닙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방법을 알려주시지요.”

두 대통령 간의 팽팽한 대화가 오가면서 회담장의 분위기는 서서히 타올랐다.

“나토군이 피해보상은 물론 저번 해전에서 우리 태평양함대가 피해 본 것까지 확실한 보상을 하시오.”

“피해보상이라······. 그래요. 일단 궁금해서 그러는데 얼마를 원하시는 겁니까?”

생각지도 않게 추은희 대통령이 한 발짝 물러서는 느낌을 보이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과할 정도의 금액을 불렀다.

“500억 달러입니다.”

“500억 달러요? 음, 한국 돈으로 500조 원 정도 되는군요. 뭐 대승적으로 생각한다면 충분히 지급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국민이 용납하지 않을 거 같아 그건 수용하기 힘들군요.”

추은희 대통령은 500억 달러 정도는 충분히 지급할 능력이 있다는 것을 은연중 내비치면서도 국민이라는 핑계로 딱 잘라 거절했다.

“뭐요? 지금 말장난하시는 겁니까?

“말장난이라니요. 무슨 그럼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국민이 주인이지 않습니까? 저야 국민의 하수인이고요. 국민이 반대하는 부분을 일 갓 하수인 마음대로 지급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뭐 돈은 남아돌지만요.”

미국 대통령을 상대로 대놓고 비꼬는듯한 말을 한 사람은 추은희 대통령이 유일했다. 그동안 기축통화 국가로 세계를 자기 마음대로 휘어잡았던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기분이 상당히 상한 표정을 지었다.

“훗! 돈 자랑하시려고 회담 제안을 한 듯합니다.”

“돈 자랑이라니요. 절대 아닙니다. 그렇게 느껴 셨다면 유감입니다. 저는 처음에 말했듯 미국과 평화를 원하지 전쟁을 바라지 않습니다.”

이때 스칼릿 캐머런 전략보좌관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살짝 몸을 기울더니 귓속말로 뭔가를 전했다.

★ ★ ★

2024년 2월 7일 10:00 (미국시각 6일 21:00),

미국 워싱턴 D.C 외곽 건물 (USSC 별장 터가 있던 곳).

비상 통로를 통해 침투에 들어간 지 1시간이 넘어가는 시점, 중간중간, 닫혀있는 철문을 가져온 PP7-XAM 폭탄(고농도 플라스마탄)으로 해결해 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차폐문 앞까지 이자성 과장 일행은 도달했다.

“와우! 이건 우리 폭탄으로 어림없겠습니다.”

실드 글라스의 인버터 비전 모드로도 안쪽이 투과되지 않아, 차폐문 두께가 만만치 않다고 생각했는지 오진석 대리가 여기저기를 살피며 말했다.

“그냥 가져온 거 죄다 터뜨리면 어때요?”

뭘 그리 어렵게 생각하냐는 듯한 뉘앙스로 신은하 팀장이 말하자 박기웅 팀장이 검지를 세워 좌우로 흔들어 보였다.

“안돼! 자칫 붕괴하면 우리 모두 끽이야”

“맞아! 박 팀장 말대로 위험할 수 있어! 그래도 방법은 그것밖에 없으니 일단 적은 양으로 폭파하고 그담엔 오 대리가 가져온 플라즈마 초절단기로 어떻게 해봐야지!”

“그럼 몇 개나 터뜨릴까요?”

“5개!”

“네, 알겠습니다.”

잠시 후 차폐문에 PP7-XAM 폭탄(고농도 플라스마탄) 5개를 설치하고 멀찌감치 떨어졌다.

“폭파합니다.”

박기웅 팀장이 무선 격발기의 단추를 눌렀다.

“콰아아앙!”

차폐문 중앙에 설치된 PP7-XAM 폭탄(고농도 플라스마탄)이 동시에 폭발했다.

시꺼먼 먼지구름이 한차례 이들을 덮치며 피어올랐다.

“어때? 뚫렸나?”

“아! 쪼개지긴 했는데 완전히 구멍 나진 않았습니다.”

가장 먼저 차폐문으로 달려간 오진석 대리가 보고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 먼지가 가라앉을 때쯤 실드 글라스를 통해 이자성 과장은 차폐문 상태를 확인했다.

지향성 포탄에 의해 차폐문 중앙은 마치 뭔가에 맞은 듯 반대편 방향으로 찢겨나갔으나 완전히 뚫리진 않았다.

“그냥 한 번 더 터뜨릴까요?”

박기웅 팀장이 배낭에서 PP7-XAM 폭탄(고농도 플라스마탄)을 꺼내 들며 말했다.

“아냐! 플라즈마 초절단기로 뚫어보자!”

“아! 시간도 걸리는데 그냥 한 번 더 터뜨리죠.”

박기웅 대리가 PP7-XAM 폭탄(고농도 플라스마탄) 하나를 꺼내 흔들며 말했다.

“시끄럽고 오 대리 작업 준비해!”

“네, 아! 이젠 용접공까지 되어버렸어 하하!”

메고 있던 배낭을 바닥에 내려놓은 오진석 대리는 뭔가를 꺼내 들고는 조립해 나갔다.

“서둘러!”

“네, 알겠습니다.”

사전에 연습했는지 오진석 대리는 능숙 능란하게 플라즈마 초절단기를 조립했다. 그리고는 다시금 본체를 등에 메고는 기다란 용접봉을 양손으로 잡았다. 그리고는 용접봉 끝에 있는 조작기의 뭔가를 당기자 용접봉 끝에서 강력한 플라즈마 열기가 뿜어져 나왔다.

슈와아아아아!

형용 형색의 불꽃에 주변 일대가 환해졌다.

“자! 시작합니다.”

오진석 대리는 찢겨나간 차폐문 가장자리에 용접봉을 갖다 대고는 다이얼 버튼을 오른쪽으로 돌렸다. 그러자 더욱 강력한 플라즈마 열기가 뿜어져 나오며 차폐문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와우! 우리 오 용접공 전직해도 되겠는데? 요새 조선소 호황이라는데 이번 기회에 전직해라!”

“아! 농담도 그런 농담하지 마십쇼.”

“하하하하”

순간 비상 통로는 웃음바다가 되었다.

20여 분 후, 오진석 팀장의 얼굴에서 흙먼지가 섞인 땀방울이 비 오듯 쏟아지는 가운데 차폐문의 찢겨 나간 부분에 시뻘겋게 새겨진 금이 동그랗게 그어졌다.

“끝났습니다.”

옷소매로 이마를 훔친 오진석 대리가 용접봉을 뒤로 빼며 말했다. 그러자 옆에서 보고 있던 이자성 과장이 동그랗게 금 간 중간을 오른 주먹으로 풀 스윙을 했다.

파팍!

강력한 이자성 과장의 주먹 한 방에 차폐문 일부가 금 간 형태로 정확히 날아갔다.

“와우! 대단합니다.”

영화에서나 볼법한 장면이 눈앞에서 펼쳐지자 다들 놀란 눈으로 이자성 과장을 쳐다봤다.

“터미네이터다!”

플라즈마 초절단기를 분리하던 오진석 대리가 손뼉까지 치며 야단법석을 떨었다.

“시끄럽고! 이번엔 박 팀장이 앞장서고 지금부터 조심해! 생존자들로부터 공격받을 수 있으니까 말이야!”

“옛설!”

이자성 과장의 말에 요원 5명은 허리춤 홀스터에서 각자 CS5 레이저 피스톨을 꺼내 들었다.

“이동해!”

한명 한명 조심스럽게 뚫린 차폐문을 통과한 후 조명 하나 켜지지 않은 안쪽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앞으로 나아갔다.

“뭐지? 왜 이렇게 조용해! 조명도 모두 꺼져있고 말이야.”

정보분석팀이었던 나태진 팀장이 너무나 조용하자 속삭이듯 중얼거렸다.

“그렇게 말입니다. 쌔 한 게 섬뜩하기까지 하다.”

같은 정보분석팀 출신인 김선호 팀장이 귀신이라도 나올까 봐 그런지 잔뜩 몸을 움츠리고는 걸어나갔다.

“쉿! 조용 지금부터 무음성 통신으로 말한다. 설정해!”

얼마의 시간이 지나고 조명이 켜진 널따란 구역에 들어선 이자성 과장 일행은 충격적인 장면을 보고 말았다.

상황실처럼 생긴 이곳 바닥에는 시신들이 여기저기 너부러져 있었다. 그리고 그 시신들은 오래되었는지 부패가 심각했다. 이에 코를 찌를듯한 악취가 풍겼고 구더기들이 꿈틀거렸다. 어떤 시신은 뼈만 앙상하게 남은 시신도 있었다.

“뭐야! 대체 뭔 일이지? 서로 싸웠나?”

머리가 띵할 정도의 악취에 코를 감싼 박기웅 팀장은 어디서 구했는지 기다란 물건으로 시신 곳곳을 눌러보며 살폈다.

“싸우긴, 다들 자살한 거 같다”

“자살요? 그럼 여기 사람들이 단체로? 워!”

“이거 참! 생존자 한 명도 없는 거 아닙니까? 그럼 허탕인데······.”

이자성 과장의 말에 박기웅 팀장은 허탈한 표정을 지으며 다른 시신을 살펴봤다.

“나 팀장과 김 팀장은 시스템 접속해서 얻을 수 있는 자료 다 내려받아!”

“네, 알겠습니다.”

“박 팀장과 오 대리는 다른 곳도 확인해!”

“네,”

지시를 받은 요원들이 각자 할 일을 위해 움직였다.

“신 팀장은 영상 촬영 시작하고”

“알겠습니다.”

“시신 하나하나 빼놓지 말고 죄다 촬영해!”

“네, 그럴게요.”

대답과 동시에 신은하 팀장은 배낭에서 조그마한 카메라를 꺼내고는 바닥에 쓰러져 있는 시신들은 물론 주변 일대를 하나도 빼놓지 않고 촬영에 들어갔다.

한편, 상황실을 빠져나와 복도 양쪽으로 연결된 방들을 하나하나 열어가며 확인하던 박기웅 팀장은 순간, 어두컴컴한 복도 끝자락에서 여러 색상으로 보이는 발광채를 발견하고는 냅다 뛰었다.

“거기! 누구야?”

하지만, 발광채는 대답 없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거기서!”

- 과장님! 생존자 한 명 발견! 현재 북쪽 통로로 도망가고 있습니다.

“무조건 잡아!”

- 네, 잡아서 데리고 가겠습니다.

- 팀장님! 그쪽으로 저도 달려가고 있습니다.

무음성 통신을 듣고 있던 오진석 대리가 통신 대화에 끼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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