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86화 (586/605)

낙동강 오리알

2024년 2월 3일 16:45 (러시아시각 10:45),

러시아 로스토프스카야 오블래스트 주 보코브스카야 남동단 18km 지점.

퇴각 명령이 떨어진 후 퇴각 확보 방어 임무에 들어간 제9스트라이커여단 소속 33전차대대는 짙은 흙먼지를 흩날리며 횡대 대형을 이루며 기동 중이었다.

그리고 하늘에는 33전차대대가 날린 정찰 드론이 날아다녔다.

쯍쯍쯍쯍쯍쯍쯍쯍~ 쯍쯍쯍쯍쯍쯍쯍쯍~

순간 지상에서 수많은 빛줄기가 하늘을 향해 뻗어 나갔다. 그러자 고도 4km에서 비행하던 정찰 드론들이 요격을 당하며 추풍낙엽 떨어지듯 추락했다.

쿠르르릉! 쿠르르릉!

그리고 희뿌연 흙먼지를 날리며 수많은 전차와 장갑차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피스부대 소속 제7기계화보병여단이었다. 볼가강 따라 북진하던 제7기계화보병여단은 러시아군이 전격 퇴각하는 시점에 75기계화보병대대를 제외한 나머지 여단 전력 전체가 볼고그라드에서 최고 속도로 기동하여 미국 나토군 포위 섬멸 작전에 투입되었다.

현재 이곳에서 교전을 벌이고 있는 부대 중 가장 낮은 전투력을 보유한 여단이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국군 내에서 전투력이 낮을 뿐, 제9스트라이커여단과 비교했을 때 절대로 낮은 전투력은 아니었다.

검은빛으로 도색 한 C-2A1 흑표 전차들이 기다란 포신에서 가공할 포격을 가하며 전진 기동으로 물밑 듯이 다가오자 제9스트라이커여단 소속 33전차대대의 M2A3 브래들리 II 전차 44대는 즉시 연막탄 발사기에서 연막탄을 발사하고는 대응사격에 들어갔다.

양측 전차 간 화려한 불꽃 쇼가 펼쳐졌다. M2A3 브래들리 II 전차에서 발사한 APFSDS(날개안정분리철갑탄)’, 일명 날탄의 열화우라늄 탄자가 지상과 수평을 이루며 순식간에 C-2A1 흑표 전차 사이사이로 파고들었다.

콰앙! 쾅앙!

몇 대의 C-2A1 흑표 전차가 피격되었는지 검붉은 화염이 일어났다. 하지만, 일부일 뿐 나머지 C-2A1 흑표 전차들은 열화우라늄 탄자를 튕겨냈다. C-2A1 흑호 전차의 정면장갑은 하이드리늄 합금으로 제작되어 방호력이 자그마치 2,000mm나 되었다.

2,000mm 방호력을 갖춘 전차는 세계 통틀어 대한민국 전차가 유일했다. 앞서 피격된 C-2A1 흑표 전차는 재수 없게도 포탑 양측에 장착된 대공미사일 발사관이나 하단 캐터필러에 피격된 상황이었다. 극히 희박한 확률에 당하고 만 것이었다.

한편, C-2A1 흑표 전차의 55구경 120mm 활강포에서 쏟아진 플라즈마탄은 어느 부위를 맞추든 피격되는 즉시 M2A3 브래들리 II 전차를 산산조각을 냈다.

쿠앙! 콰앙! 콰앙아아앙!

거대한 폭발과 함께 여러 대의 M2A3 브래들리 II 전차들이 불길에 휩싸이며 기동을 멈췄다. 어떤 승조원은 불붙은 채로 포탑에서 빠져나와 땅바닥에서 나뒹굴기까지 했으나 불길은 순식간에 온몸을 감쌌자 몇 번의 경련을 일으키고는 움직임을 멈췄다.

이처럼, 4세급으로 분류된 양국 간의 전차전은 수적으로도 우세한 제00여단에게 기울어지고 있었으나, 아군의 퇴로 확보를 위해 차출된 33전차대대는 물러서지 않았다.

각종 화염과 연막탄 연기가 시야를 가리는 가운데 C-2A1 흑호 전차들은 거침없이 탐지된 표적물을 향해 플라즈마탄을 줄기차게 퍼부었다.

- 우측에 적 전차중대 출현! 어서 대응해!

순식간에 1개 전차중대를 격파한 제00여단의 전차대대는 대대통신망으로 흘러나오는 명령에 일제히 포신을 오른쪽으로 회전했다.

제7기계화보병여단 소속 79전차대대에서도 앞서가던 5중대 중대장이자 511호 전차장이 헤드셋 통신기에 대고 소리쳤다.

“방향 돌려! 어서!”

전차장과 포수, 그리고 조종수는 삼위일체가 되었다. 전차장의 명령에 포수는 1버 표적으로 설정된 적 전차를 향해 포신을 돌렸고 조종수 역시 조금이라도 시간을 줄이고자 차제를 선회시켰다.

짧은 시간 1번 표적물에 조준점이 맞춰지자 포수는 생각할 거 없이 그대로 발사 버튼을 눌렀다.

퍼어엉!

시원한 발사음과 함께 플라즈마탄이 날아갔다.

쿠앙!

1번 표적물로 설정된 M2A3 브래들리 II 전차의 포탑이 공중으로 치솟았고 거대한 화염이 뜯겨나간 포탑 자리에서 분출했다.

앞서 자신들의 열화우라늄 탄자가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한다고 생각했는지 M2A3 브래들리 II 전차들은 포탑 양측에 장착된 2연장 발사관에서 TOW-III 대전차미사일이 연달아 발사됐다.

광학추적기 유도방식의 127mm 대전차고폭탄(HEAT) 탄두를 장착한 TOW-III 대전차미사일은 하얀 연기를 뿌리며 목표로 한 흑표 전차의 포탑 상부를 노렸다.

하지만, 능동파괴체계(KAPS) 시스템을 장착한 C-2A1 흑표 전차들은 즉시 날아오는 TOW-III 대전차미사일을 향해 요격탄을 날려 공중에서 폭파했다. 100% 요격률을 보이는 순간이었다.

이처럼, 같은 C-2A1 흑표 전차와 M2A3 브래들리 II 전차는 같은 4세대급이었지만, 막상 실전에서 붙어보니 비교 대상이 아니었다. 결과적으로 C-2A1 전차는 미국의 M2A3 브래들리 II 전차를 압도적으로 제압해 나갔다. 그리고 20여 분 후, 아군의 퇴로 확보를 위해 목숨을 걸고 최후 방어선을 지키려던 33전차대대는 전멸하고 말았다.

★ ★ ★

2024년 2월 3일 17:15 (러시아시각 11:15),

러시아 로스토프스카야 오블래스트 주 보코브스카야 북단 4km 지점.

보코브스카야 남동단과 남단에서 새롭게 출현한 한국군에 대응하고자 제9스크라이커여단은 남단으로 제10스트라이커여단과 제32기동보병사단에서 차출한 2개 기동보병연대가 다급히 전방 전장에서 이탈해 남동단 농경지로 기동하던 상황에서 펜타곤 합동참모본부로부터 퇴각 명령이 떨어지자 퇴각로 확보를 위한 퇴각 확보 임무를 수행할 부대만 남기고 나머지 모든 부대는 즉시 퇴각 준비에 들어간 상황이었다.

하지만, 포위된 상황에서 퇴각 시에는 미국 나토군은 적잖은 피해를 감수해야만 했다. 현재, 유일한 퇴로인 보코브스카야가 막고 있는 형국이라 위로든 아래로든 우회해야만 하는 상황, 이에 필 하인스 중장은 여러 사단을 나눠 위아래로 동시에 우회시킬지 아니면 한쪽으로 모든 부대를 집결시켜 우회해야 할지 고민이 아닐 수 없었다.

결론은 위쪽으로 모든 부대를 집결시켜 우회하는 쪽으로 결정했다. 아래쪽으로 우회할 시 3개 방향에서 집중적인 공격을 받을 수 반면, 위쪽은 북단과 동단 쪽으로만 공격을 받기 때문이었고 나눠서 우회할 시 각개격파로 피해가 더 클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이에 최후 방어 임무를 수행하는 부대를 제외한 나머지 모든 부대는 보코브스카야 북단 퇴각로로 몰려들고 있었다.

현재 미국 나토군은 1시간이 넘도록 치열한 교전을 벌인 결과 30% 이상의 피해를 본 상태였고 최후 방어 임무를 수행하는 부대까지 잃는다면 50%로 내려갈 수치였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50% 전력만이라도 보존하여 퇴각하는 길이 최선이었다.

러시아군이 사전 계획대로만 움직였다면, 미국 나토군이 이러한 피해를 입으며 졸지에 퇴각하는 상황은 연출되지 않았을 것이다.

어쨌든 아군의 희생으로 나머지 부대가 퇴각하는 상황인 만큼 저마다 야지에서 낼 수 있는 최대 속도로 기동력을 발휘했다.

그리고 얼마 후 보코브스카야 북단 4km 농경지 위에는 미국 나토군 소속의 수많은 부대가 뒤엉킨 채로 서단으로 퇴각 중이었다.

간혹, 한국군 포병부대에서 발사한 대규모 포탄이 날아왔다.

쿠앙! 콰아앙! 콰아앙!

기동하던 일부 대공부대에서 기동을 멈추고 날아오는 포탄 요격에 들어가긴 했지만, 쏟아지는 포탄 수는 상상을 초월할 만큼 많았다. 또한, 사전에 미국 나토군 소속의 포병부대가 전멸하여 대포병사격도 할 수 없는 상황이라, 한국군 포병부대는 마음 놓고 포격을 가해 미국 나토군을 짓밟았다. 한마디로 퇴각하는 북단 지역은 아비규환이었다.

사실, 한국군 포격은 시작에 불과했다.

보코브스카야 상공에는 백범김구함(CV-001)에서 출격한 CUF-22P 피닉스 20기가 유유히 비행하며 대규모 폭격 기회를 잡고 있었다.

현재 CUF-22P 피닉스의 내부 무장실에 무장된 무기는 미국 나토군의 포병전력을 초토화 시켰던 C-SDB-10(플라즈마 응집탄)이 장착되어 있었다.

사실 기갑군이나 보병에게 치명적인 공중투하 폭탄은 범위제압용인 C-PSB(플라스마 확산탄)이 제격이었으나, 그간 남부전선 일대에 전량을 쏟아버린 탓에 현재는 탄 재고량이 바닥난 상태라 집중제압용인 C-SDB-10(플라즈마 응집탄)을 무장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미국 나토군이 좁은 지역에 최대한 모여들길 고도 20km 상공에서도 느긋이 비행하던 CUF-22P 피닉스 20기는 하나둘 서서히 고도를 낮추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후 폭탄 투하 고도까지 하강하자 CUF-22P 피닉스 20기는 동시에 내부무장실의 페어링을 개방하고는 C-SDB-10(플라즈마 응집탄)을 투하했다.

총 160개에 달하는 C-SDB-10(플라즈마 응집탄)이 자체유도방식에 따라 조금씩 낙하 방향을 바꿔가며 정확히 탄착지점에 착탄 했다.

쿠앙!

한 발당 축구장 넓이 지역을 초토화 시킬 수 있는 C-SDB-10(플라즈마 응집탄)이 동시다발적으로 160개가 떨어지자, 보코브스카야 북단 평야는 마치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 지축이 흔들리며 갈라졌고 거대한 충격파가 연달아 사방으로 방출했다. 그리고 백여 개의 붉은 화염 버섯구름이 피어올랐다.

거대한 충격파에 보코브스카야 북단 외곽에 있던 저층 건물들은 갈라지거나 붕괴했고 창문이란 창문들은 모조리 깨져나갔다.

동시에 폭발한 C-SDB-10(플라즈마 응집탄)의 파괴력은 웬만한 핵폭탄 이상이었다.

거대한 화마가 지나가고 몇 분이 지난 후 보코브스카야 북단은 생지옥이었다. 퀴퀴한 화약 냄새는 물론 액체화된 지형이 꿈틀 거리며 마치 용암과 같았다. 그리고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하게 박살 난 전차와 각종 장갑차 그리고 뼈대만 앙상하게 남은 차량이 곳곳에서 화염이 휩싸인 채로 불탔다.

폭음지로부터 벗어난 지역 역시 다를바 없었다. 직접적 폭풍화마에서는 벗어나긴 했지만, 엄청난 양의 파편과 충격파를 뒤집어쓰고는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파편에 벌집이 된 장갑차와 전차들이 불타거나 뒤집힌 채로 농경지 곳곳에 눈에 띄었고 시꺼멓게 탄 시신들이 사방에 널려 있었다. CUF-22P 피닉스 20기로 하여금 단 한 번에 진행된 폭격에 미국 나토군은 70% 이상의 전력을 잃고 말았다.

이렇게 큰 피해를 본 가장 큰 이유는 좁은 지역 안에 많은 미국 나토군이 집결한 채로 기동했기 때문이었다.

그 시각, 보코브스카야 동단 외곽의 건물에 임시 사령부를 차리고 지휘하던 필 하인스 중장과 참모들은 사령부 본부 병력과 함께 시내 중심지를 가로질러 퇴각하던 중이었다.

하지만 북단에서 대규모 폭발음이 연달아 울리자, 지휘장갑차를 타고 가던 필 하인스 중장은 순간, 불길함 예감이 들었다.

“대체 뭐지? 저 폭발음은?”

진지이라도 날 듯 건물이 흔들리고 타고 가던 지휘장갑차도 휘청거리자 손잡이를 잡고 있던 필 하인스 중장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아! 뭔가 잘못된 거 같습니다. 그쪽은 우리 나토군이 퇴각하는 지역입니다.”

“당장 알아보게!”

“네, 알겠습니다.”

대답과 동시에 지휘장갑차의 통신장교에게 현재 북단 지역에서 퇴각하는 예하부대에 연락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잠시 후 통신 콘솔을 조작해 통신 시도를 하던 통신장교가 어두운 표정을 지으며 마크 고든 소장에게 말했다.

“각 사단 본부와 연결이 되지 않습니다.”

“정말인가?”

“네, 신호는 가는데, 상대방 쪽에서 응답이 없습니다.”

신호가 간다는 말은 전파방해는 아니라는 얘기였다.

“그럼 각 사단 예하부대 모두 연락해봐!”

“네, 알겠습니다.”

몇 분 후, 한 부대와 통신이 연결되었다. 제31기동보병사단 소속의 32기동보병연대였다. 하지만, 연결된 최고 지휘관은 연대장이 아닌, 대위 계급의 정훈장교였다. 운 좋게 살아남은 정훈장교의 말에 의하면 조금 전, 대규모 폭격에 32기동보병연대 전체가 괴멸에 가까운 피해를 보았다는 내용과 타 부대 역시 비슷한 피해를 보았을 거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전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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