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82화 (582/605)

고개숙인 불곰

2024년 2월 03일 14:00 (러시아시각 08:00),

러시아 모스크바 벙커 스테이트 R-21(대통령 집무실).

대충 치워진 상황실 바닥 위로 수십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나란히 누워있었다. 조금 전, 음파탄에 정신을 잃고 쓰러진 정부 고위관료들과 총참모부 지휘관들이었다. 그리고 대통령 집무실에는 푸틴 대통령만 따로 격리해 침대에 눕혀놨다.

활짝 열린 집무실 출입문 밖에는 대원 2명이 대기했고 안에서는 김민길 중령이 책상 의자에 걸터앉아 쉬고 있었다.

잠시 후 77대대 대원들의 인원점검을 마치고 집무실에 모습을 드러낸 92중대장은 거친 숨을 내쉬며 잔뜩 화난 표정이었다.

“대대장 동지! 대가리들 몇 명 빼고 다 죽여버리는 게 어떻겠습네까? 이 간나새끼래 잡는다고 우리 동무들 희생이 너무 커시야요.”

침대에 누워있는 푸틴 이마에 CS2 레이저 라이프 빔구를 들이대고 당장에라도 방아쇠를 당길 듯 무섭게 노려보며 일갈했다.

“거! 쓸 때 기 없는 소리 하디말라우! 위에서 알면 큰일나야. 것보다. 인원 점검한 거나 보고 하라우!”

대대장의 말에 92중대장은 빔구를 거두고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인원점검에 관해 보고했다.

“희생이 정말 컸습네다. 총원 200명 중 전사자 87명, 중상자 34명, 경상자 55명 입네다.”

“뭐네? 멀쩡한 인간이 24명밖에 안 되는거네?”

전사자가 많은 만큼 대대 지휘관급인 장교들의 희생도 컸다. 유일하게 대대장과 92중대장만이 별다른 상처를 입지 않았을 뿐 91중대장은 중경상을 입었고 나머지 지휘관들은 모두 전사한 상황, 그만큼 이번 전투에서 지휘관들이 솔선수범으로 교전에 임했다는 결과였다.

“그렇습네다.”

“이거이 임무완수한다고 너무 무리하게 진행했구만 기래!”

최고 지휘관으로서 이러한 희생이 자신의 책임이라 생각한 김민길 중령은 어금니를 힘껏 깨물고는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

이때, 집무실 한쪽 편에서 사단본부와 통신연결을 시도하던 김민재 하사가 소리쳤다.

“대대장님! 사단본부와 연결됐습네다.”

이에 김민길 중령은 바닥에 내려놓은 헬멧을 바로 쓰고는 터키온-Xas 통신기의 마이크를 입 앞으로 당겨 고정하며 말했다.

“내 통신기랑 연결했네?”

“네, 그렇습네다. 지금 말하시면 됩네다.”

알았다는 표시로 김민재 하사에게 엄지척을 한 김민길 중령은 헛기침을 한번 하고는 말하기 시작했다.

“충성! 제215공수육전여단 77대대 대대장! 중령! 김민길입네다.”

- 그래 어떻게 됐네?

공수육전사단 중 유일하게 북주 출신인 박영남 사단장은 현재 상황이 궁금했는지 단독집적으로 물었다.

“사단장 동지! 임무래 완수했습네다. 푸틴 아새끼래 신원 확보했습네다.”

- 정말이네? 생포네?

순간, 까무러치듯 놀라는 사단장의 음성이 통신망을 타고 날아왔다. 대대 병력만으로 성공할 줄은 생각지 못한 듯했다.

“네, 그렇습네다. 신원 인식정보로 확인한바 확실합네다.”

- 김민길 대대장! 정말 수고했어야! 내래 본대 끌고 가고 있으니끼니 조금만 기다리라우. 그리고 러시아 놈들이래 그쪽으로 몰려가고 있어야! 최대한 일찍 도착해서 지원 할테니끼니 그때까지 푸틴이 확실하게 잡아놓으라우. 다시 한번 말하디만, 정말 수고했어야.

“알갔습네다. 사단장 동지!”

- 알갔어! 조금만 기다리우

“네, 잠시 뒤에 뵙겠습네다. 충성!”

통신을 마친 김민길 중령은 고개를 돌려 옆에 서 있는 92중대장을 바라봤다.

“사단장 동지께서 매우 흡족하시는구만 기래! 그리고 말이디. 지금 이쪽으로 러시아 놈들이 몰려오고 있다고 하니끼니 지하로 내려오는 통로에 대원들 배치하라우. 경상자 중에서도 거동이 가능한 대원들도 죄다 투입시키라우”

“알갔습네다.”

대답과 동시에 절도있는 거수경례를 한 92중대장이 집무실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얼마 후 침대에 누워있던 푸틴 대통령이 옅은 신음을 내뱉는 것이 정신이 돌아오는 듯했다.

이에 김민길 중령은 번쩍이는 눈빛을 발산하며 꿈틀거리는 푸틴 대통령을 노려봤다.

“간나 새끼래~! 이제야 깨어나는구만 기래!”

★ ★ ★

2024년 2월 03일 14:10,

남주 서울특별시 용산구 B2 벙커(국군 합동지휘통제소 상황실).

“정말인가?”

- 그렇습니다. 신원 인식정보로 판별한 결과 푸틴이 확실하다는 보고입니다. 현재 음파탄에 기절한 상태이지만, 생명에 지장이 없다고 합니다.

특수전사령관 강정현 대장은 방금 제21공수육전사단 박영남 소장으로부터 보고받은 내용을 설명해 나갔다.

“그렇디! 공육사래 일 한번 크게 낼 줄 알았어야!”

같은 북주 출신인 윤기윤 합참차장이 박장대소를 하자 웃음소리가 상황실을 울렸다.

“하하! 그러게 말입니다. 한러전을 조기에 끝낼 수 있는 큰 전공을 올렸습니다.”

신성용 합참의장도 기분 좋은 소식에 얼굴에서 오랜만에 미소를 보였다.

“이제부터는 푸틴의 신원확보가 우선이디요. 그쪽으로 더 많은 지원을 보내야디 않겠습네까?”

“네, 그래야겠지요.”

윤기윤 합참의장에 말에 신성용 합참의장이 큰 공감을 한다는 듯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말했다.

“현재 모스크바에 전개된 모든 특수전부대를 현재 케이트 건물로 이동하라는 명령을 내릴까요?”

양민춘 중장이 말에 신성용 합참의장은 고민할 거 없이 재가했다. 이에 양민춘 중장과 강정현 대장이 동시에 대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지금 당장 각 예하부대에 연락을 취하겠습니다.”

“그리고 12항모전단 연락해서 모스크바에 더 많은 무인전투기를 출격하라고 하게”

“알겠습니다.”

★ ★ ★

2024년 2월 03일 14:20 (러시아시각 08:20),

러시아 모스크바 벙커 스테이트 R-21(대통령 집무실).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린 푸틴 대통령은 맞은편에 앉아있는 김민길 중령을 노려보고 있었다.

“내래 얼굴 빵구가 나겠구만 기래 크크크”

그런 푸틴 대통령의 눈빛을 보며 김민길 중령은 도리어 비웃음을 보였다.

“어이! 푸틴! 당신은 이제 대한민국의 포로가 되었어야! 그러니 그런 눈빛 치우라우! 돌아가는 상황을 모르갔어?”

한참을 비웃던 김민길 중령은 어느새 무서운 표정을 지은 얼구로 푸틴 대통령의 얼굴에 바짝 다가갔다.

“내래! 생각 같아선 당장에라도 심문하고 싶은데 말이야. 지금 사단장께서 오고계서리 그냥 놔두는 기야! 그러니 두 눈 뽑아버리기 전에 찌그러져 있으라우 알갔네?”

김민길 중령의 말은 고스란히 컨트롤 X-K02 단말기의 통역기능에 의해 전달되었다. 하지만, 마지막 자존심인지 푸틴 대통령의 눈빛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아니 더욱 더 날카로운 눈빛으로 김민길 중령을 노려봤다.

“간나새끼래! 꼬래 대통령이라고 자존심은 죽디 않는가보는구만 기래”

혀를 차며 일어선 김민길 중령은 밖에 있는 대원을 불렀다.

“밖에 누구 없네?”

“불르셨습네까?”

집무실 출입문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대원 중 하나가 고개를 내밀고 물었다.

“이 간나새끼래! 정신 차렸으니끼니 확실히 감시하고 있으라우! 혹, 허튼짓하면 다리 하나쯤은 불구로 만들어 버리라우!”

“알갔습네다.”

집무실로 들어온 대원은 CS2 레이저 라이플을 푸틴 대통령에게 겨누었다. 잠시 후 집무실을 빠져나온 김민길 중령은 지상으로 통하는 제4-1구역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현재 스테이트 R-21으로 연결된 게이트 건물에서는 제21공수육전사단과 모스크바 방위사령부 소속의 방위군과 치열한 교전이 한창 중이었다. 하지만 합동참모본부에서 지시에 출격한 CUF/A-22NP 피닉스 무인전투기가 한차례 지상을 훑고 지나가자 수적으로 밀어붙이던 방위군들의 피해가 속출했다.

그리고 30여 분이 지난 후, 77대대가 진입했던 그 통로로 박영남 사단장과 사단 참모진, 그리고 호위 병력이 내려왔다.

“충성! 77대대 대대장 중령 박영남 입네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벌어진 철문 틈 사이로 박영남 소장이 모습을 보이자 대기하고 있던 김님길 중령과 대원들이 동시에 경례를 올렸다.

“그래! 수고했어!”

가볍게 답 경례를 한 박영남 소장은 김민길 중령을 힘입게 포옹했다.

“아닙니다. 임무에 충실했을 뿐입네다.”

“겸손할 필요 없어야! 지금 합참은 축제 분위기야. 무슨 말인지 알갔어?”

포옹을 푼 박영남 소장은 김민길 중령의 어깨를 몇 번이고 두드려줬다.

“하하, 감사합니다. 안내 하겠습네다.”

“그래, 푸틴 낯짝 한번 보러 가자우!”

김민길 중령의 안내에 따라 나머지 사단 참모진들이 줄줄이 뒤따라갔다.

★ ★ ★

2024년 2월 03일 13:00 (러시아시각 09:00),

러시아 모스크바 벙커 스테이트 R-21(대통령 집무실).

40여 분이 지났지만 김민길 중령이 나갔던 그대로 집무실에는 푸틴 대통령이 앉아있었고 그 앞에는 CS2 레이저 라이플을 겨눈 대원이 미동도 없이 서 있었다.

“충성!”

김민길 중령과 박영남 소장이 집무실로 들어오자 감시하고 있던 대원이 다급히 총구를 코앞까지 끌어당겨 일직선을 세우고는 경례를 했다.

“수고하는 구만!”

간단히 맞경례를 해준 박영남 소장의 시선은 이내 의자에 앉아있는 푸틴 대통령에게 향했다. 그리고는 다가가 앞에 놓여있는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는 쓰고 있던 헬멧을 벗어 책상 위에 올렸다.

“방갑습네다. 내래 제21공수육전사단 사단장 박영남이라고 합네다.”

간단히 자신을 소개한 박영남 소장은 노려보기만 하는 푸틴 대통령을 지긋이 바라보며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현재 푸틴 대통령께서는 대한민국 국군의 정식 포로입네다. 무슨 말인디 알갔습네까?”

하지만 푸틴 대통령은 시종일관 묵묵 답답이였다.

“뭐, 별로 말하고 싶디 않는 거 같은데, 바로 본론으로 넘어가디요. 정식으로 항복을 선언하디요. 우리에게 포로 신세가 된 이상, 더는 뭘 할 것도 없디 않습네까?”

이에 푸틴 대통령은 째려보던 눈빛을 슬쩍 감추고는 고개를 숙였다. 뭔가 내적으로 깊은 고민을 하는 듯했다.

“푸틴 대통령님! 군 수뇌부도 죄다 우리 손에 있디 않습네가? 이런 상황에서 더 이상의 교전은 불필요한 희생만 강요될 뿐이디요. 여기서 단호한 결단을 내리는 게 러시아의 미래를 위해서도 낫디 않겠습네까?”

푸틴 대통령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이를 눈치챈 박영남 소장은 살짝 미끼를 뿌렸다.

“대통령께서 단호히 항복 선언을 하신다면 그에 맞는 대우는 해드릴 수 있다는 게 대한민국 정부의 의사입네다. 현재 대통령직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할 것입네다. 어떻습네까?”

“정말입니까?”

그동안 굳게 입을 다물고 있던 푸틴 대통령의 첫마디였다.

“당연하디요. 우리 대통령께서 그 부분에서는 꼭 보장해준다고 하셨습네다.”

푸틴 대통령은 다시금 고민에 들어갔는지 아무 말이 없었다. 이에 집무실은 적막감이 흘렀다. 그리고 박영남 소장도 더는 보채지 잠시 기다려줬다.

몇 분이 흐르고 푸틴 대통령은 뭔가를 결심했는지 출입구 쪽을 보며 말했다.

“총참모장을 불러주시오.”

“알겠습네다. 밖에 총참모장이라는 자를 데리고 오라우!”

“알갔습네다.”

잠시 후 초췌한 모습을 한 산자르 투르수노프 대장이 양손이 묶긴 채로 출입구에 모습을 드러냈다.

“대통령님 괜찮으십니까?”

푸틴 대통령을 본 산자르 투르수노프 대장 놀란 눈으로 안부를 물었다.

“괜, 괜찮네. 이리 오게!”

산자르 투르수노프 대장은 양옆으로 각종 레이저 라이플을 쥐고 경계석인 눈빛을 보는 대원들을 지나쳐 푸틴 대통령 앞에 섰다.

“총참모장!”

“네, 대통령님!”

“전군에 알리게. 지금부터 한국군에게 정식으로 항복한다고 말이야.”

“네? 항복입니까?”

“그래, 이렇게 된 이상, 우리가 뭘 더 할 수 있는가?”

이에 산자르 투르수노프 대장은 푸틴 대통령에게 더욱 다가가 귓속말로 뭔가를 전하려 하자 옆에 있던 대원 하나가 즉시 빔구를 겨누며 제지했다.

“물러서!”

흠칫 놀란 산자르 투르수노프 대장이 뒤로 물러섰다.

“총참모장! 지시한 대로 하게! 더는 가망이 없다네.”

푸념 섞인 푸틴 대통령의 말에 산자르 투르수노프 대장도 더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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