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숙인 불곰
요란한 총성 속에서도 외치는 대대장의 목소리에 대원들은 이를 악물며 앞으로 나아갔다.
가장 앞서던 대원 하나가 몸을 날렸다. 그리고는 바닥을 몇 바퀴 구른 후 이내 자세를 잡고는 레이저 라이플을 주 통로 천장을 겨누고는 방아쇠를 당겼다.
쯍!쯍!쯍!쯍!쯍!쯍!
시원한 발사음과 함께 일직선으로 날아간 레이저 빔은 그대로 천장을 훑으며 지나갔다. 이에 투명 덮개 속에서 붉은빛을 비추던 비상 조명이 박살 나며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웬만한 충격이나 총격에도 버틸 수 있는 특수방탄재질 투명 덮개는 레이저 빔에는 여지없었다.
순간, 제4-1구역에서 제4-2구역으로 연결된 주 통로는 완전히 암흑이 되고 말았다.
재치있는 대원의 활약에 지금부터 교전은 77대대 대원들에게 유리하게 돌아갔다. 대원 하나하나가 SG-TAR 실드글라스(TAR(Tactical Augmented Reality)를 통해 대낮처럼 볼 수 있지만, 러시아 측은 정규군이 아닌 대통령 경호원들과 보안실 직원들에겐 야간 투시경이 없었다.
일부 소총에 장착된 플래시 라이트를 이용해 전방 상황을 보려 했지만, 그것은 자신 위치만 노출하는 꼴밖에 되지 않았다.
몇몇 경호원과 보안실 직원들이 플래시 라이트를 켜자마자 쏟아지는 레이저 빔에 격한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쓰려졌다.
이에 경호원과 보안실 직원들이 다급히 상황실 쪽으로 퇴각했다.
“잘했어야! 그대로 밀어 붙이라우!”
다시 한번 대대장의 명령이 떨어지자, 대원들의 몸놀림이 빨라졌다. 상황실 쪽에 있던 군 수뇌부 장성과 참모진들이 제압사격을 가해왔지만, 어둠 속에서 민첩하게 움직이는 대원들을 맞추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간혹, 보통탄 외에 예광탄이 빛줄기가 주 통로를 스치며 대원들 사이사이 스치며 날아갔다.
어느덧 77대대 대원들은 상황실 앞까지 진입하는 데 성공, 러시아 측은 상황실 내 각종 콘솔 장비와 여러 시설물을 엄폐 삼아 마지막 저항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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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2월 03일 13:00 (러시아시각 07:00),
러시아 로스토프스카야 오블래스트 바야츠 동단 12km 평야.
볼고그라트스카야 오블래스트에서 양국 간의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지는 가운데, 로스토프스카야 오블래스트에 기동에 들어갔던 서부군구 제6군과 미국 나토군은 기동 기만전술을 써가며 로스토프스카야 오블래스트로 깊숙이 남진한 후 지금은 왼쪽으로 크게 우회하며 빠르게 동진 중이었다.
지난 1월 26일 있었던 작전회의에서 양민춘 중장이 예상했던 대로 서부군구 제6군과 미국 나토군은 그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다만, 미국 나토군이 제3해병기동사단(화룡)의 배후로 기동하는 반면, 서부군구 제6군은 계속해서 남진하여 역 대각선으로 전선을 구축하고 있는 나머지 피스부대 제11해병기동여단(광룡)과 제35기계화보병여단 그리고 제7기계화보병여단의 배후 쪽으로 기동하는 것이 조금 다를 뿐이었다. 아무래도 제6군을 통해 볼고그라트스카야 오블래스트로 진공 한 피스부대 전체를 포위섬멸 작전을 구상하는 듯했다.
어쨌든 양민춘 중장이 이들이 진공로를 예상했던 만큼 그에 대한 대비책은 완벽하게 수립한 상황이었다.
먼저 서부군구 제6군과 미국 나토군이 펼치는 기동 기만전술에 일부러 속아주며 배후 공간을 열어줬고 전방 제1근위전차군과의 교전에만 집중하는 거처럼 보이게 했다. 이후 미국 나토군이 제3해병기동사단(화룡)의 배후로 긴급 우회하는 시점을 기해 제3해병기동사단(화룡)의 제10기갑여단은 전장에서 이탈한 후 북서단으로 신속하게 이동한 후 다시금 왼쪽으로 우회하여 마치 꼬리물기 전술을 보여주듯 미국 나토군의 측후방 공격 준비에 나섰다.
또한, 제1근위전차군의 선봉 예하부대는 제11기갑여단이 전방위적으로 전담하고 제12기계화여단은 서서히 후방 일대로 퇴각하여 배후공격을 감행하려는 미국 나토군을 상대하고자 했다. 즉, 배후공격을 감행하려는 미국 나토군을 도리어 측후방과 전면에서 포위하여 역공을 펼칠 예정이었다. 마치 사냥꾼의 뒤를 노리는 맹수에게 일부러 길을 터주고, 주변 일대에 덫을 논는 형국이었다.
이러한 대비 전략을 수립할 수 있었던 건, 산악지대와 수많은 강줄기가 뻗어 나간 지리적 제약이 상당한 전장의 한복판에서도 신속하고 은밀히 이동할 수 있는 호버시스템이 장착한 장비를 운용하는 제3해병기동사단(화룡)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쿠르르릉! 쿠르르릉!
바야츠로부터 동단 12km 떨어진 광활한 평야, 엄청난 엔진음과 함께 희뿌연 흙먼지가 날리고 있었다.
이들의 정체는 보카스카이야 방향으로 기동하는 미국 나토군 선봉 부대인 제6기갑사단으로 살짝 얼어붙은 농경지를 캐터필러로 짓이겨지며 기다란 자국을 남겼다.
그리고 하늘에서는 각종 예하부대에서 날린 정찰 드론은 물론 사단본부에서 운용 중인 RQ-4 글로벌호크 무인정찰기도 최대 고도에서 비행하며 전방 상황을 정찰하고 있었다.
미국 나토군 중에서도 가장 막강한 화력을 보유한 제6기갑사단이 운용하는 장비는 M4 워독 전차와 M5 후사르 장갑차, 그리고 대공방어를 담당한 M3 토네이도 장갑차와 포병전력인 M-2001 크루세이더, 그리고 사단 직할 소속의 AH-66 코만치 스텔스 공격헬기 등 최신예 장비들로 편제되어 있었다. 이외에도 각종 최신장비가 그들의 기동을 간접적으로 지원하고 있었다.
이처럼 제6기갑사단이 선봉 역할을 맡아 기동하는 가운데 후방에는 M3A3 브래들리II 장갑차를 운용하는 2개 기동보병사단이 따르고 있었고 양쪽 측면과 후방에는 각각 1개 스트라이커여단 엄호하며 기동 중이었다.
4개 사단급 규모가 한 무리를 이루고 기동하는 장면은 장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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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2월 03일 13:00 (러시아시각 07:00),
러시아 로스토프스카야 오블래스트 볼수엔스카야 동단 11km 돈강.
콰콰콰콰콰!
일자 횡대 대형을 이룬 제10기갑여단 소속의 무인전차인 C-4 가이온 전차 36대는 마치 비행하듯 수면으로부터 1m 높이로 뜬 상태로 수면을 박차며 도하 중이었다. C-4 가이온 전차들이 스치며 지나갈 때마다 수면은 요동쳤다.
눈 깜짝할 사이에 C-4 가이온 전차 36대가 도하를 완료한 후 뒤이어 C-3A2 백호 전차와 C-27P-M 기린 해병전투장갑차가 뒤를 따랐다.
어젯밤까지만 해도 제1근위전차군 예하부대 중 하나인 321전차사단과 치열한 교전을 벌였던 제10기갑여단은 미국 나토군을 상대하기 위해 제11기갑여단에 전장을 인계한 후 지금은 왼쪽으로 크게 우회 중이었다.
동진 중인 미국 나토군과의 거리는 불과 70km로 앞으로 한두 시간 후면 직접적 교전 거리까지 좁혀질 것으로 보였다.
“사단본부로부터 연락입니다.”
C-29P-M 기린 지휘장갑차에 탑승하여 각종 정찰전력으로 전방 상황을 모니터링하고 있던 오동식 준장은 여단 작전과장이 내민 통신수화기를 받았다.
“충성! 여단장 오동식입니다.”
- 충성! 수고하네. 사단 작전관이네
“네, 말씀하십시오.”
- 그래, 아폴론 정찰위성이 확인 한 바로는 미국 나토군 포병부대가 바야츠 동단 12km 지점에서 긴급 방열 중인 것을 확인했다. 혹, 적 포병부대로부터의 포격위험이 있을 수 있다는 판단이야. 좌표 확인하게
잠시 후 사단 작전관으로부터 암호화된 코드로 좌표가 날아왔다. 이에 직접 콘솔을 조작해 코드를 입력하자 현재 아폴론 위성으로부터 확인된 미국 나토군의 포병부대 위치가 좌표로 표기되었다.
“음, 좌표 확인했습니다. 현재 우리 부대로부터 69km 떨어진 곳이군요. 혹, 우리부대를 목표로 긴급 방열한 것으로 보십니까?”
- 그건, 아니네, 아마도 12기보여와의 교전 시 지원사격을 가하기 위한 것으로 보이네. 12기보여에서도 대포병 사격을 위한 준비는 마친 상태이나 자네 부대 역시 적 포병부대로부터 사거리 안이니 산개 기동으로 전개하는 게 좋을 거 같아 연락했네.
“네, 알겠습니다. 작전관님!”
- 그래, 향후 교전 시 무운을 비네
“알겠습니다. 충성!”
- 충성, 수고하게
통신을 마친 오동식 준장은 즉시 콘솔을 조작해 현재 기동하는 방향의 디지털 지도 곳곳을 살폈다. 이에 작전과장이 물었다.
“여단장님! 산개 기동명령을 내리겠습니까?”
“잠시 기다려보게”
디지털 지도 곳곳을 꼼꼼히 살린 오동식 준장은 여러 곳에 확인 점을 표기했다.
“작전관!”
“네, 여단장님!”
“각 대대에 연락하여 현재 확인점 확인하고 지금부터 산개 기동으로 전환하라고 전하게”
“알겠습니다.”
가장 선두에서 기동하는 무인전차대대는 사단 작전관이 보내온 좌표 방향으로 기동 진공로를 변경했고 나머지 두 대대는 좌우로 갈라진 후 왼쪽 측방에서 기동하는 미국 나토군의 스트라이커여단 중 하나인 로버츠 스트라이커여단을 목표로 이동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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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2월 03일 13:20 (러시아시각 07:20),
러시아 모스크바 벙커 스테이트 R-21(제4-2구역).
교전이 시작된 지 20여 분이 지난 상황, 상황실을 울려댔던 총성은 어느새 잦아들었고 상황실 콘솔 장비들은 죄다 박살이 나, 크고 작은 불이 일어났고 벽면 걸려있던 여러 스크린 화면들 역시 수많은 구멍 자국이 난 채로 꺼져 있었다.
그리고 바닥 곳곳에는 끈적끈적한 액체가 흥건할 정도로 피바다가 되어 코를 찌르는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그만큼 수많은 시신이 쓰러져 있었다. 그리고 살아남은 사람들도 고통을 호소하는 신음과 절규 섞인 비명을 내지르고 있었다. 이러한 비명은 양측 모두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만큼 이곳에서 얼마나 치열한 교전이 벌어졌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간혹, 총성이 다시 울리기도 했지만, 그럴 때마다 쏟아지는 레이저 빔에 총성은 금세 멈춰버렸다. 결과적으로 상황실은 77대대 대원들이 접수했다고 바도 무방했다.
어둠 속에서 77대대 대원들은 상황실 곳곳을 돌아다니며 조금이라도 꿈틀거리거나 신음을 내는 러시아 군인들에게 가차 없이 레이저 빛줄기를 뿌렸다. 이렇게 수색 아닌 수색작전이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상황실 조명이 일제히 켜졌다.
파팟! 팟팟! 팟!
치열한 교전으로 인해 천장에 달린 조명들이 대부분 박살 나긴 했지만, 일부 멀쩡한 조명들이 켜지며 상황실을 밝혔다. 아마도 77대대 대원 중 하나가 배낭에 가져온 플라즈마 배터리로 상황실 전원과 연결한 듯했다.
조명이 켜진 상황실은 끔찍했다.
“손 들라우!”
“이리 나오라우 간나새끼야!”
쭈웅! 쭈웅!
여기저기 숨어있던 러시아 군인과 관료들을 향해 대원들이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슬금슬금 손을 들고 기어 나왔다.
“저쪽으로 죄다 모으라우!”
92중대장이 명령을 내리자 대원들은 상황실 한쪽 편으로 투항하는 러시아인들을 밀어붙였다.
“푸틴은 없네?”
왼쪽 팔에 관통상을 당해 하얀 붕대를 징징 감은 김민길 중령이 CS2 레이저 라이플을 어깨에 걸치고는 92중대장에게 물었다.
“없는 거 같습네다.”
“이 쥐새끼래! 대체 어디 간거네? 샅샅이 뒤지라우!”
“알갔습네다.”
상황실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되자 대원들은 상황실과 연결된 여러 통로를 통해 다시 한번 수색에 들어갔다.
이곳 지하벙커는 상황실 말고도 수많은 방이 존재했다. 2인1조로 대원들이 수색에 들어가자, 김민길 중령은 투항한 러시아인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가서 유심히 살폈다. 고위관료나 장성으로 보이는 자들은 없었다. 이에 컨트롤 X-K02 단말기를 조작해 러시아 통역 기능을 실행한 후 말했다.
“니, 뭐하는 인간이네?”
김민길 중령이 제복을 보고 장성으로 보이는 사내에게 말했다. 하지만 지목된 장교는 일부러 못 들은 척했다. 이에 허리춤에서 CS5 레이저 피스톨을 꺼내고는 빔구를 장교의 이마에 갖다 댔다.
“내래, 두 번 다시 말하디 안캈어! 니 뭐하는 인간이네? 관등성명 대라우!”
순간 움찔한 장성은 양손을 올리고는 부르르 떨었다.
“셋, 둘, 하,”
“말, 말하겠습니다. 저는 이곳 보안실 부책임자 중령 이슬롬 데니소프입니다.”
“오! 보안실 부책임자라 했네? 내래 제대로 골랐어야.”
“살, 살려주세요.”
이슬롬 데니소프는 양손을 합장하고는 애원했다.
“걱정하디 말라우! 내가 묻는 말에 대답하면 살려주갔어! 알갔네?”
“알, 알겠습니다.”
“푸틴이 지금 푸틴이 어디로 도망갔네?”
“그, 그건, 한창 교전이 치열할 때 이동하셔서 저도 어디,
쭈웅!
빔구에서 빠져나온 레이저 빔은 그대로 이슬로 데니소프의 허벅지를 관통했다.
“으아아악!”
순간, 비명을 지르며 허벅지를 감싸고 이슬롬 데니소프는 바닥에 나뒹굴었다. 그러자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대원 하나가 급히 달려들어 이슬롬 데니소프에게 권총처럼 생긴 주사기를 꼽고는 뭔가를 주입했다. 진통제였다.
“으윽!
순간 고통이 줄어들자 바닥에 축 처진 이슬롬 데니소프에게 바짝 다가가 얼굴을 들이댄 김민길 중령은 무서운 얼굴을 하며 말했다.
“정말 마디막이야. 푸틴이 어딨네?”
“으! 윽!”
이슬롬 데니소프는 반쯤 정신이 몽롱한 상태로 상황실 한쪽 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세이프 룸으로 갔습니다.”
“세이프 룸? 그렇쿠만, 진작 말했으면 이렇게까지 하디 않았을 거 아니네?”
이슬롬 데니소프의 어깨를 툭툭치고 일어선 김민길 중령은 대원들에게 손짓했다. 그러자 일제히 CS2 레이저 라이플을 치켜들고 세이프 룸으로 연결된 출입문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