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79화 (579/605)

고개숙인 불곰

2024년 2월 03일 12:45 (러시아시각 06:45),

러시아 모스크바 벙커 스테이트 R-21(제4-1구역).

폭탄 담당 대원들이 가져온 모든 C-4 폭탄을 모아 차폐문에 장착한 후 후폭풍 안전지대까지 물러나 대기하고 있었다.

“몇 개나 달았네?”

부상당한 91중대장을 추스르고 차폐문 쪽으로 다가온 김민길 중령이 물었다.

“18개입네다.”

92중대장의 말에 살짝 김민길 중령이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그것밖에 안 되네?”

“지상에 있는 대원들꺼까지 죄다 가져온겁네다.”

“그렇다면 어절 수 없디! 시작하라우!”

“알갔습네다.”

대대장의 명령이 떨어지자 92중대장은 폭파 담당 대원에서 손짓했다.

“폭파합네다. 셋, 둘, 하나”

딸각!

폭파담당 대원이 무선 격발기의 버튼을 눌렀다.

쿠아아아앙!

지향성 C-4 폭탄 18개가 동시에 폭발하자 거대한 후폭풍이 휘몰아쳤다.

“돌격하라우”

대대장의 명령에 대원들은 휘몰아치는 먼지를 가로지르며 차폐문 쪽으로 뛰었다.

그때, 가장 앞서서 달리던 대원 하나가 소리쳤다.

“뭐네? 대대장 동지! 철문이 멀쩡합네다.”

“뭔 소리네?”

돌격하던 대원들이 차폐문 앞에서 멀뚱멀뚱하니 서 있는 가운데 대대장이 달려왔다.

“엿 됐구나야!”

부분부분 찢겨나긴 했지만, 차페문은 굳건히 그들을 막고 있었다.

“어쨉네까? 대대장 동지!”

생각지도 못한 암담한 상황이 전개되자 92중대장이 대대장에게 다가와 말했다.

“생각 좀 해봐야갔어!”

한쪽 벽면에 기댄 김민길 중령은 땀과 먼지로 뒤범벅이 된 이마를 손으로 훔치고는 고민에 들어갔다.

그 시각 반대편 상황은 이랬다.

방위군 대부분이 전멸한 상황에서 이제 푸틴 대통령을 보호해줄 병력은 대통령 경호원 100명과 보안실 직원, 그리고 개인화기로 무장한 총참모부 장성들과 참모들 뿐이었다.

조금 전, 거대한 폭발과 함께 차폐문이 들썩였다. 그리고 상황실을 비롯해 지하벙커 전체가 흔들리기까지 했다.

천장에서 흙먼지가 떨어지고 조명들이 일제히 깜빡였다.

“대통령님!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 차폐문은 핵포탄 공격에도 버틸 수 있도록 제작된 특수철강으로 만든 철문입니다.”

어느새 대통령 옆으로 다가온 보안실 책임관인 아지즈벡 카파제 대령이 천장에서 떨어지는 흙먼지를 손으로 가리며 말했다.

자기 딴에는 대통령을 안심시키고자 한 말이었으나 되돌아온 건 푸틴 대통령의 노려보는 눈빛이었다.

★ ★ ★

2024년 2월 03일 12:50,

남주 서울특별시 용산구 B2 벙커(국군 합동지휘통제소 상황실).

부랴티야와 자바이칼 지방에 대한 지상 정밀정찰 및 지상 타격 작전이 계속해서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20분 전, 1전차소대가 피격시킨 자주포에서 방사능 수치 및 여러 가지 조사를 마친 제7기동군단 직할 제17화생방대 방사능 조사팀으로부터 보고서가 도착했다.

조사한 내용에 따르면 파괴된 러시아 자주포 잔해에서 핵포탄으로 추정되는 잔해들을 발견, 즉 김영주 중사 말대로 러시아군이 부랴티야와 자바이칼 지방에서 실제로 자주포를 이용한 전술핵 공격을 감행하려 했다는 직접적 증거를 확보하게 된 셈이었다.

이에 신성용 합참의장은 최악의 순간으로 치달을 수 있는 러시아의 핵포탄 도발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게 해준 김영주 중사를 비롯해 1전차소대 전원에게 각종 무공훈장을 수여할 수 있도록 대통령에게 추대한 이유였다.

마지막으로 러시아군 자주포 포대를 격멸한 후 20여 분이 지나도록 추가적인 러시아 자주포를 발견하지 못한 상황에서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다 판단한 신성용 합참의장은 즉시 모스크바에서 푸틴 대통령을 잡기 위해 스테이트 R-21쪽으로 관심을 돌렸다.

77대대를 지원하기 위해 CUF/A-22NP 피닉스 무인전투기까지 동원 시킨 합동참모본부는 추가적인 보고가 없어, 현재 상황을 파악하느라 분주했다.

특전사령부로부터 마지막으로 올라온 보고에 의하면 무인전투기의 공중화력 지원 덕에 77대대 나머진 병력이 지하벙커 침투를 시작했다고 하였다.

현재 아폴론 6호 정찰위성으로부터 촬영되어 보이는 스테이트 R-21 출입구 건물 주변은 깨끗이 정리된 상황이었다. 무인전투기들의 정확한 지상공격에 여러 건물은 반쯤 무너져 있거나 지독한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곳곳이 불이 나 불타고 있었다.

그리고 도로와 거리에는 수많은 시신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되어 널려 있었다.

한편, 현지시각 3시부터 모스크바 전역은 전쟁터를 광불케 했다. ‘불곰 포획’ 작전의 핵심임무를 수행하는 4개 공수육전사단을 제외한 나머지 4개 공수육전사단은 시내에 주둔 중인 모스크바 수도방위사령부 소속의 방위군과 4시간째 치열한 교전을 펼치고 있었고 공수특전여단은 주요 군 시설은 물론 관공서 등 주요 시설에 대한 폭파 임무에 집중하고 있었다.

문제는 수도방위사령부 소속의 방위군 여러 부대가 스테이트 R-21 출입구 건물 쪽으로 이동하는 것이 확인됐다. 규모로 보자면 연대급 이상의 병력이었고 다소 장갑차도 확인되었다.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현재 21공수육전사단 전체가 77대대를 지원하기 그쪽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해작사에 연락해 다시 한번 무인전투기 출격하라고 전하게”

“네, 알겠습니다.”

현재 지하벙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이번 한러전을 종결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은 신성용 합참의장은 다시 한번 무인전투기 출격 명령을 내렸다.

현재 제12항모전단 소속의 항공모함 백범김구함(CV-001)에서는 모스크바 못지않은 치열한 교전을 벌이고 있는 러시아 남부전선에 모든 무인전투기 전력을 투입하고 있었다.

★ ★ ★

2024년 2월 03일 12:55 (러시아시각 06:55),

러시아 모스크바 벙커 스테이트 R-21(제4-1구역).

짧은 시간 고심에 고심하던 김민길 중령은 한가지 기발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현재 77대대 대원들은 전사한 대원들이 입고 있는 보호 슈트를 죄다 모아왔다. 그리고는 찢겨 나간 차페문 틈에 쑤셔 넣듯 집어넣었다.

“총 몇 벌이네?”

“대략 50여 벌 됩니다.”

즉, 77대대 대원중 함정에 빠진 대원을 제외하더라도 전사한 대원이 50명이 넘는다는 얘기였다.

“부족하지 않캈어?”

“이것도 가져가라우!”

김민길 중령은 전투복을 벗고는 이내 보호 슈트마저 벗기 시작했다.

“대대장 동지! 위험합네다.”

91중대장이 다급히 보호 슈트를 벗고있는 김민길 중령을 제지했다.

“비키라우! 이거 못 뚫으면 보호 슈트 입고는 있는 자체가 아무 쓸모가 없어야!”

“그래도 위험합네다. 제가 벗겠습네다.”

92중대장이 서둘러 자신의 보호 슈트를 벗으려 하자 옆에 있던 대원들도 너 나 할 것 없이 허겁지겁 벗기 시작했다.

“뭣들하네? 입으라우”

김민길 중령이 인상을 쓰며 소리를 지르자 대원 중 하나가 웃으며 말했다.

“대대장 동지! 대대장 동지 말대로 저 빌어먹을 철문을 뚫지 못하면 이깟 보호 슈트 입고 있는 자체가 쓸모없다 하지 않았습네까? 그래서 우리도 벗는겁네다.”

93중대 3소대장 오혁길 중위였다. 현재 93중대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장교였다.

“간나새끼들 말 드럽게 안 듣는구만 기래!”

잠시 후 30여 벌의 보호 슈트가 모여져 차폐문에 추가로 끼워 넣었다.

“기런데 대대장 동지! 정말 저걸로 철문을 녹일 수 있겠습네까?”

“네는 교육받을 때 잠만 잤네? 보호 슈트 폐기 시 최대 5,100도의 고열이 발생한다고 했어야. 그 정도 열기면 충분히 저 철문쯤이야 녹일 수 있지 않캈네? 더군다나 80여 벌이 넘지 않네?”

기발한 생각이었다.

“모두 연결했습네다”

찢겨 나간 차폐문 틈에 마구잡이로 쑤셔 넣은 보호 슈트 사이로 수십 개의 선이 하나의 컨트롤 X-K02 단말기와 연결되어있었다.

“시작하라우!”

대대장의 명령이 떨어지자, 러시아 군인 시신의 팔에 컨트롤 X-K02 단말기를 장착하고는 바로 실행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는 죽을 힘을 다해 뒤쪽으로 뛰었다.

잠시 후 컨트롤 X-K02 단말기에 전원이 들어왔고 여러 가지 센서에 의해 죽은 러시아 군인의 신체정보를 파악했다. 그리고 순간 경보음이 울리고는 컨트롤 X-K02 단말기가 폭발했다. 그러자 차폐문에 끼어있던 보호 슈트는 순간적으로 뻘겋게 달아오르더니 이내 초고열이 발생하며 하얀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지지지지지지지~

피어오른 하얀 연기가 가득한 가운데 용광로에서 들릴법한 소음이 전해왔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 가득했던 하얀 연기가 서서히 흩어져 날아갔다. 그리고 C-4 폭탄에도 끄떡없던 차폐문은 검붉게 달궈진 채 녹아내리고 있었다.

“성공입네다.”

91중대장이 주먹을 불끈쥐며 말했다. 하지만, 녹아버린 차폐문의 열기가 식을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상황, 반대편에서도 먼저 뚤린 공간으로 총탄을 퍼벗었다.

타타타타타탕! 타타타탕! 타탕! 타타타타앙!

“보호 슈트가 없는 대원들은 조심하라우!”

대대장의 일갈과 함께 77대대 대원들도 반격을 시작했다. 반쯤 녹아내린 차폐문을 두고 양측은 화력을 쏟아냈다.

일단, 보호 슈트를 입은 대원들이 앞줄에서 레이저 라이플을 쏘아대고 뒤쪽에서 나머지 대원들이 지원 사격을 가했다.

슈우우우웅~ 슈우우우웅~

쿠앙! 콰아앙!

날아온 수류탄이 작렬하자 파편이 사방으로 비상했다. 일부 대원들이 파편을 뒤집어쓰고 바닥에 나뒹굴었지만, 큰 부상은 입지 않은 상태, 이에 흥분한 화기소대 대원 하나가 CS6A 레이저 머신건을 사정없이 뿌렸다.

쯍쯍쯍쯍쯍쯍쯍쯍~ 쯍쯍쯍쯍쯍쯍쯍쯍~ 쯍쯍쯍쯍쯍쯍쯍쯍~

차폐문 넘어 반대편에서 비명소리가 울려퍼졌다.

“대대장 동지! 내래 선두로 달려가겠시야요.”

“관두라우! 보호 슈트도 없이 뭘 달리네?”

“기딴거 신경 쓰면서 지금까지 싸우디 않았디요.”

김민길 대대장의 만류에도 앞으로 뛰어나간 92중대장, 그 뒤로 92중대 대원들이 뒤따랐다.

벌겋게 닳아 오라 반쯤 녹아내린 차페문을 향해 힘차게 뛰었다. 그리고 쏟아지는 총탄 사례를 피하고자 바닥에 착지하면서 몇 바퀴를 굴렀고 이제 자세를 잡고 빛줄기를 뿌렸다.

크억! 윽! 아아악!

쏟아지는 빛줄기에 검은 양복을 입은 대통령 경호원들이 옥수수 쓰러지듯 꼬꾸라졌고 일부 92중대 대원들도 여러 발의 총탄을 받고 쓰러졌다. 보호 슈트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방탄능력이 있는 방탄조끼와 전투복 때문에 관통상은 당하진 않았지만, 근거리에서 맞는 7.62mm의 위력은 상당했다.

쿠앙! 콰앙!

다시 한번 날아오는 수류탄이 폭발했다. 짙은 화약 냄새와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그리고 고통에 절규하는 비명도 끊이지 않고 울려댔다. 한마디로 아비규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한편 책상을 엄폐 삼아 숨어있던 푸틴 대통령도 AK-74MR 돌격소총으로 사격을 가해왔다.

일국의 대통령이 소총을 들고 교전을 벌이는 상황이 현재 러시아에 있어서 최악의 위기상황이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줬다.

어느덧 77대대 대원 전체가 차폐문을 넘어 상황실 근접 거리까지 도달했다. 기둥과 기둥 사이 그리고 각종 구조물을 엄폐 삼아 교전을 벌이고 있는 양국 군인들의 거리는 불과 100여 미터도 되지 않았다.

“조금만 더 힘내라우!”

목숨을 불사르며 교전을 벌이는 대대 대원들에게 힘을 북돋아 주기 위해 김민길 중령이 있는 힘껏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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