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발악
2024년 2월 03일 12:20, (러시아시각 12:20),
러시아 자바이칼 지방 시시키노 북서단 23km 지점.
구릉지 설원 위, 반파된 상태로 장작불 타듯 검붉은 화염에 휩싸여 검은 연기를 내뿜은 처참한 몰골의 코알리치야-SV 자주포 주위로 C-3A1 백호 전차 4대가 나란히 늘어선 가운데 포탑 양측에 달린 2연장 발사관과 전차장용 12mm 레이저 머신건은 40도 각도로 하늘을 향한 채 대기하고 있었다.
몇 분 전, 대대로부터 현재 위치 고수하며 대공방어에 집중하라는 명령이 내려온 상태였다.
그리고 하늘에서는 대한민국 공군 소속의 수많은 전투기가 육안으로도 확인될 정도의 낮은 고도로 사방에서 날아다니고 있었다. 방금도 CF/A-25P 흑주작 전폭기 2기가 1전차소대가 머무는 상공 위를 스치며 북단 상공으로 날아갔다.
“워! 대체 이곳에 얼마나 뜬 거야?”
염훈기 하사는 이미 사라져 버린 북단 상공을 조준경으로 돌려보며 혀를 내둘렀다.
- 벌써 20여 기는 지나간 듯합니다. 대체 뭔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대공방어 임무 시 딱히 할 일은 없는 김일수 상병이 심심했는지 염훈기 하사의 말에 대꾸했다.
“그러게 말이다. 갑자기 모든 작전 중지하고 대공방어에 집중하라니······. 아무래도 아까 전 자주포에서 탐지된 방사능 때문에 그런 듯하다. 안 그렇습니까? 전차장님!”
염훈기 하사의 불음에도 들리지 않은 지 김영주 중사는 대공 레이더 화면만 바라봤다.
“전차장님!”
“뭐? 왜 불러!”
“뭘 그리 생각하십니까?”
“생각은 마! 대공 레이더 화면에 집중하고 있는 거지!”
“에잇! 아니듯 합니다.”
“아니긴 뭐가 아니냐 마!”
“혹시, 아까 영관급 장교에게 욕한 거 때문에 걱정돼서 그러는 거 아닙니까? 크크”
“시끄럽다.”
“맞네! 맞아! 크크크 아! 울 전차장님 큰일 났다. 이거 하극상 아닌가?”
“죽을래?”
이때 남동단 상공에서 헬기 특유의 로터 음이 울리는가 싶더니 산릉선 너머로 헬기로 보이는 항공기 3기가 삼각편대 대형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이야! 이젠 헬기까지 떴네?”
염훈기 하사가 조준경 배열을 확대하자 양쪽 측면에서 날고 있는 헬기는 육군 항공단의 자랑거리인 FAH-91SP 송골매 공격헬기라는 것을 알아챘지만, 가운데에서 날고 있는 헬기는 처음 보는 것이었다.
“가운데 헬기는 뭐지?”
생김새가 마치 미국의 치누크처럼 생겼지만, 대형 로터는 하나뿐이었다.
“뭐긴 뭐냐? 화생방정찰 헬기구먼,”
“워! 역시 전차장님은 모르는 게 없어!”
갑자기 나타난 헬기를 주제로 잡담을 늘어놓는 가운데 헬기 3대는 어느새 근접 거리까지 도달했고 공중 엄호를 수행하는 FAH-91SP 송골매 공격헬기들이 50m 상공에서 호버링을 하며 주변 일대를 경계하는 사이 김영주 중사가 말한 화생방정찰 헬기만이 고도를 낮추며 착륙을 시도했다.
두두두두두두두두~
굉음에 가까운 로터 음을 내는 화생방정찰 헬기가 천천히 내려오자 세찬 바람이 불어 재끼면서 눈들이 휘날려 날아갔다.
“어라? 재들이 왜 여기에 착륙하지?”
신기한 표정으로 조준경을 통해 보고 있던 염훈기 하사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말하자 김영주 중사는 한심하다는 듯한 시선을 보이며 말했다.
“자식아! 방사능이 탐지되었으니 그거 조사하려고 왔겠지!”
“아! 그런 겁니까?”
“넌 짬밥을 뒤로 먹었냐?”
“헐!”
무사히 설원에 착륙한 화생방정찰 헬기의 육중한 로터가 서서히 회전 속도가 줄어들자 흩날리던 눈바람도 잦아졌다.
스스스윽!
헬기 양쪽 문이 열리고 마치 우주복 같은 복장을 한 군인들이 각종 장비를 가지고 내렸다. 이들은 곧장 검붉은 연기를 내뿜고 있는 반파된 코알리치야-SV 자주포 잔해 쪽으로 다가갔다.
이들은 먼저 등에 메고 있던 특수액체를 뿌려 불길을 잡았고, 다른 한 명은 지뢰탐지기 같은 장비를 이용해 방사능 탐지를 했다.
폭발과 함께 거대한 화염에 불탔었지만, 아직도 방사능이 탐지되었는지 이들의 장비에서 탐지 경고음이 울려댔다.
이들은 이렇게 한동안 잔해 하나하나를 세심하게 조사한 후 서둘러 헬기에 탑승하고는 날아갔다.
한편 전차 안에서 신기한 눈빛으로 지켜보고 있던 212호 전차 내부에서 대대통신망을 개방하라는 알림음이 울렸다.
이때 대대 통신망을 개방하라는 알림음이 울렸다.
뚜우! 뚜우! 뚜우! 뚜우!
김영주 중사가 즉시 대대 통신망 버튼을 클릭하자 대대 작전과장의 목소리가 흘러나왔고 현재 상황에 대해 자세히 내용을 전파했다.
20여 분 전, 김영주 중사가 비상코드를 이용해 합동참모본부에 핫라인 군용통신으로 전달한 내용 덕분에 코알리치야-SV 자주포가 피격되기 전, 발사된 152mm 포탄은 남동단 62km 떨어진 제5기갑사단(열쇠)의 예하 방공포대에서 극적으로 요격에 성공했다는 기분 좋은 소식을 전해왔다.
그리고 합동참모본부에서는 방사능 탐지와 러시아 자주포가 포대 단위가 아닌 자주포 3대가 개별적으로 움직였다는 것을 분석한 결과 추가 핵포탄 도발 위험성이 높다고 판단, 이에 전개 중인 모든 전투부대에 1급 대공방어 비상령을 전파하고 대대 단위로 넓게 전개하라는 명령을 하달되었으며, 가용한 모든 공군 전투기를 출격시켜 현재 자바이칼 지방을 비롯한 부랴티야 지역에 대한 지상 수색작전이 펼쳐지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로써 이곳 상공에 공군 전투기들이 갑작스럽게 출현한 이유를 알 수 있게 되었고 작전과장의 마지막 말에 1전차소대 승조원들은 일순간 만세를 부를 정도의 기쁨을 만끽하게 되었다. 특히나 김영주 중사는 입이 귀에 달릴 정도로 함박웃음을 보이며 좋아 죽으려고 했다.
1전차소대 승조원 전원에게 화랑무공훈장을, 그리고 김영주 중사는 무공훈장 중 가장 높은 태극무공훈장을 수여할 수 있도록 합참의장께서 대통령께 추천했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만약 김영주 중사에게 태극무공훈장이 수여된다면 26전차대대에서 두 번째로 태극무공훈장 수여자가 탄생하는 뜻깊은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첫 번째로 태극무공훈장을 받은 자는 아이러니 하게도 김영주 중사의 선임이자 전 전차장이었던 지금은 전역한 오영택 상사였다.
★ ★ ★
2024년 2월 03일 12:35, (러시아시각 06:35),
남주 서울특별시 용산구 B2 벙커(국군 합동지휘통제소 상황실).
핵포탄 추가 도발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합동참모본부는 가용한 모든 수단을 동원했다.
현재 한반도보다 두 배에 달하는 자바이칼 지방과 부랴티야에는 7개 전투비행단에서 출격한 300여 기의 전투기가 비행 중이며 항공우주군의 정찰위성단 소속 CS-SS 아폴론 정찰위성 8기와 해외정찰국 소속 CS-SS 아폴론 정찰위성 10기가 동원되어 한반도 두 배에 달하는 지역을 정밀정찰 중이었다.
상황실 중앙 스크린 화면에는 확대된 두 지역이 디지털 지도가 보였고 공군 전투기를 나타내는 전술기호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항적에 따른 선이 어지럽게 그어지고 있었다.
그리도 2번과 3번 스크린에도 정찰위성단과 해위정찰국 소속의 아폴론 위성에서 촬영된 지상 영상이 분할된 화면으로 꽉 차게 보였다.
“2번 스크린 2 다시 4번 화면 봐주시기 바랍니다.”
오퍼레이터의 보고에 상황실에 있던 모든 군인의 시선이 2번 스크린으로 쏠렸다.
“4번 스크린으로 이동시켜”
“네, 알겠습니다.”
상황실의 명령에 방금 보고한 오퍼레이터는 짧은 대답과 함께 콘솔을 조작하여 4번 스크린으로 이동시켰다.
“좀 더 확대해봐!”
“네, 알겠습니다.”
위치 북위 51°21'38.56" 동경 110°42'17.09, 치타로부터 남서단 202km 떨어진 작은 골짜기에 하얀 위장막 사이로 기다란 포신을 확인했다.
지상 정밀정찰을 시작한 지 20여 분만에 찾은 첫 번째 수상한 물체였다.
햐얀 위장막 사이로 살짝 내민 포신의 방향은 방위각 1-6-0으로 그쪽에는 수도 기갑사단(맹호)과 제77기계화보병사단(극진)이 울란우데를 점령하기 위해 기동하고 있는 방향이었다.
“이거이 틀림없습네다. 이 간내 새끼들이 전술핵 카드를 꺼내 든 것이 확실합네다.”
윤기윤 합참차장이 한쪽 눈썹을 치켜세우며 일갈하자, 신성용 합참의장도 수긍하는 듯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 북서부전선에 전개한 러시아군 중 대부분은 항복한 상태였고 나머진 부랴티야 동단으로 퇴각한 상황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하얀 위장막 속에서 방열한 상태로 모든 포신이 한 방향으로 지향하고 있다는 것은 낙오한 부대로 볼 수 없었다.
“합참의장님 공격 명령을 내릴까요?”
양민춘 중장이 묻자 신성용 합참의장은 손짓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잠시 후 신성용 합참의장의 공격 명령은 공군작전사령부를 걸쳐 현재 가장 가까운 상공에서 날고 있는 CF/A-25 흑주작 전폭기 편대에 하달됐다.
잠시 후 엄청난 속도로 날아온 S-AGM-100 아나콘다 한발이 정확히 표적으로 삼았던 목표물에 적중했다.
콰앙아아!
거대한 폭발 위력에 휘말린 자주포들이 연달아 폭발했다. 스크린 화면을 통해 검붉은 화염 속에서 자주포 잔해들이 이글거리며 타고 있는 모습이 생생하게 전해졌다. 그리고 이것을 시작으로 부랴티야와 자바이칼 지방에서 러시아군으로 보이는 여러 자주포를 확인 및 괴멸시켰다.
이로써 푸틴 대통령의 명령하에 산자르 투르수노프 대장이 추진했던 전술핵 공격은 이렇게 허무하게 실행하지도 못하고 실패하고 말았다.
어떻게 보면 핵포탄 공격을 가장 먼저 의심하고 비상코드를 이용해 합동참모본부에 알린 김영주 중사의 판단이 자칫 수많은 희생자를 날 수 있는 핵포탄 공격을 막아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 ★ ★
2024년 2월 03일 12:40 (러시아시각 06:40),
러시아 모스크바 벙커 스테이트 R-21(제4-1구역).
잠시 소강상태로 흘러가고 있는 제4-1구역, 91중대가 전멸하기 직전, 77대대 나머지 중대가 지원을 오게 되면서 교전 상황은 다시금 러시아 방위군에게 불리하게 돌아갔고 지금은 차폐문을 닫고 퇴각한 상황이었다.
“괜찮네?”
만신창이가 되어 바닥에 쓰러져 있던 94중대장을 한쪽 편으로 데리고 가 의무담당 대원이 치료하는 가운데 김민길 대대장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내래, 이런 거로 죽디 않습네다.”
“그렇디! 이런 거로 우리 91중대장이 죽으면 말이 안 되디!”
“그런데 우리 중대원들은 어찌 되었습네까?”
“그런 건 걱정하디 말고 네나 걱정하라우! 지금 대원들이 챙기고 있으니끼니”
“중대장이 부하들 걱정 안 하면 누가 합네까? 얼마나 살았습네까?”
91중대장의 물음에 김민길 중령은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있다가 슬쩍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다행히 다 살았어야! 그러니 잡생각 하디말고 편히 쉬고 있으라우!”
“그, 그렇디요. 함정에 빠진 다른 소대는 어찌 되었습네까?”
“지금 아들이 구출 중이야! 조금 있으면 데리고 올 테니끼니 너무 걱정하디 말라우”
“알갔습네다.”
사실 대대장의 말은 모두 거짓이었다. 제4-1구역에서 싸웠던 3소대와 화기소대 대원중 살아남은 대원은 91중대장을 포함해 9명이었다. 그리고 함정통로에 갇혔던 1소대와 2소대 그리고 5소대 대원들은 끝내 사린가스에 모두 질식사하고 말았다. 가지고 있던 방독면 필터가 구조받을 시간까지 버티지 못하고 말았다.
“대대장님 준비 다됬습네다.”
91중대장만큼 몰골이 만신창이 된 92중대장이 다가와 보고했다.
“그러네?”
“부상병들 책임질 몇 명 빼고 모두 준비했습네다.”
“좋아! 가자우! 끝을 내야디 않캈어?”
일어난 대대장은 누워있는 91중대장을 보며 말했다.
“여기서 기다리고 있으라우! 날래가서 푸틴 모가지 비틀고 오갔어! 알갔네?”
“알갔습네다. 조심히 갔다 오시라요.”
91중대장의 대답을 뒤로하고 김민길 대대장은 차폐문 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이제 푸틴 대통령이 있는 상황실과 77대대 사이에는 차폐문 딱 하나만이 남아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