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77화 (577/605)

최후의 발악

2024년 2월 03일 12:20, (러시아시각 06:20),

한편 그 시각 러시아 모스크바 벙커 스테이트 R-21(상황실).

비상통로로 나갈 수 없게 되었다는 보고를 한 산자르 투르수노프 대장은 총참모부 지휘관들과 참모들이 보는 가운데 한참 동안 푸틴 대통령에게 온갖 욕설을 얻어먹은 후 지금은 상황실에서 총참모부 참모들과 현재 상황을 타개할 대책 회의를 하고 있었다.

“비상통로가 막힌 이상, 현재 지상으로 나갈 방법은 없습니다. 또한, 지상 부대와의 통신 연결은 언제가 될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각 군 지휘관과 총참모부 참모들이 참석한 가운데 총참작전관 샤브카트 무라야노프 중장이 서두를 열었다.

“정말, 비상통로는 나갈 수 없다는 건가?”

육군 총사령관인 마라트 비크마에프 대장이 물었다.

“네, 조금 전, 두 번째 정찰병을 통해 최종적으로 확인했습니다. 하지만, 완전한 붕괴가 아니라 복구를 하게 되면 며칠은 걸릴 것으로 판단 됩니다.”

“음, 완전한 붕괴가 아니라 다행이군. 하지만 그때까지 이곳에 갇혀 있어야 한다는 거군”

“네, 그렇습니다. 지상의 부대와 통신이 연결되고 지원군을 요청할 때까지 4-1구역까지 침투한 한국군을 막아내야 합니다.”

이에 언짢은 표정을 짓고 있던 공군 총사령관인 아지즈 이브라히모프 대장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거야 당연한 얘기지, 문제는 통신이 언제 복구되느냐가 아닌가? 지금 모스크바에 10만의 지상군이 있지만, 군 수뇌부가 이곳에 있다는 건 모르네. 그런 상황에서 통신 연결이 안 되면 절대 지원 올 부대가 없다는 거야!”

“그렇지! 무엇보다 통신복구가 우선이지! 이곳에 갇혀 있을 순 없잖아!”

우주항공군 총사령관인 우루그벡 바카예프 상장마저 불편한 말을 내뱉었다.

사실, 각군 지휘관인 총사령관들은 저번 블라디미르 베샤스트니흐 대장이 좌천되고 새파랗던 산자르 투르수노프가 대장 직급과 동시에 총참모장에 오른 것에 대해 상당한 불만을 품고 있었고 이에 대해 지금까지 은근 비협조적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총사령관들로부터 해결을 위한 좋은 의견들을 들을 순 없었다.

“현재, 통신 연결을 위해 한창 복구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잠깐, 내가 말하겠네.”

총참모장 산자르 투르수노프 대장이 총참작전관의 말을 끊었다.

“여기 계신 선배님들, 다들 저에 대한 불만을 품고 있는 거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최악의 상황입니다. 만약 이곳이 뚫린다면 한러전은 이것으로 끝입니다. 염려하는 통신복구는 곧 제기될 것입니다. 그러니 지원군이 도착할 때까지 총사령관님들도 최대한 협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음, 그럼 우리가 어떻게 도우면 되겠나?”

산자르 투르수노프 대장의 정중한 태도에 살짝 마음이 풀린 마라트 비크마에프 대장이 물었다.

“네, 지금부터 계급을 막론하고 이곳에 있는 모든 군인은 개인화기로 무장을 하고 방어 임무를 해야겠습니다.”

“우리도 말인가?”

“네, 부탁드립니다.”

한편, 그 시각 대통령 집무실

철컥! 철컥

보좌관이 가져온 AK-74MR 돌격소총을 받아든 푸틴 대통령은 노련하게 노리쇠를 당겼다. 스페츠나츠 출신답게 개인화기를 다루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았다.

방탄조끼에 달린 탄 집에서 탄창 하나를 꺼내 들어 결합하고는 다시 한번 노리쇠를 당긴 푸틴 대통령은 AK-74MR 돌격소총을 어깨에 거치고는 일어섰다. 이때 방탄모만 눌러쓰고 흙빛이 되어버린 루슬란 피메노프 총비서관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대통령님께서 굳이 교전까지 벌이지 않아도 되지 않겠습니까?”

이에 한쪽 눈으로 흘긴 푸틴 대통령은 한심하다는 듯 말했다.

“지금 이 판국에 한 명이라도 도움이 돼야지 않겠소? 당신도 어서 소총 소지하고 날 따르시오.”

“아! 대통령님!”

푸틴 대통령은 방탄모를 쓰고는 앞장서 상황실 밖 차폐문 쪽으로 향했다. 이에 루슬란 피메노프 총비서관도 어절 수없이 보좌관에게 받은 AK-74MR 돌격소총을 들고는 뒤따랐다.

차폐문 뒤쪽에는 무장한 경호원을 비롯해 보안실 직원들이 1차 진을 치고 있었고 그 뒤로 총참모부 장성들과 참모들이 각자 개인화기로 무장을 한 채로 대기하고 있었다.

일부 장성들은 푸틴 대통령이 나타나자 깜짝 놀라며 급히 거수경례했다.

“대통령님!”

“신경 쓸 거 없어! 다들 주어진 임무에 충실하게!”

최악의 상황에 치닫자 푸틴 대통령은 예전의 카리스마가 늘씬 풍기는 그때로 돌아간 듯했다. 이때 앞에 있던 산자르 투르수노프 대장이 허겁지겁 뛰어왔다.

“현재 반대편 상황은 어떤가?”

“방위군 410대대가 교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한국놈들이 완강하긴 하지만 조만간 제압할 수 있다는 대대장의 보고입니다.”

“정말인가?”

“네, 방금 보고를 받았습니다.”

★ ★ ★

2024년 2월 03일 12:20, (러시아시각 06:20),

러시아 모스크바 벙커 스테이트 R-21(제4-1구역).

40여 분간 치열한 교전이 벌어진 제4-1구역에는 코를 찌를듯한 화약 냄새와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300명에 달하는 러시아 방위군과의 수적 불리함은 둘째치고 좁다란 엘리베이터를 통해 진입해야만 하는 장소적 불리함이 더해지면서 그전, 제3구역에서의 교전 상황보다 훨씬 악조건 속에 교전을 벌여왔다. 이로 인해 현재 91중대 3소대와 화기소대 20명 중 3명 전사에 9명이 부상을 입고 엄폐물에 의지한 채 힘겹게 교전을 지속해왔다.

한편 300명에 달하던 방위군 410대대 역시 80%가 전사하거나 치명상을 입고 교전 전력에서 제외되었고 지금은 50여 명만이 간헐적인 총격을 가해오고 있었다.

신속한 침투를 위해 경무장 상태였던 91중대 3소대와 화기소대는 대량살상 무기라 할 수 있는 각종 화약류 무기는 이미 소진한 상태로 50여 명이 진을 치고 있는 널따란 통로를 돌파하기에는 무리였다.

“중대장 동지! 어쨉니까?”

낮은 포복으로 중대장 곁으로 다가온 3소대장이 물었다.

“생각 중이야!”

“중대장 동지! 화기소대가 이악하게(악착스럽게) 화력지원을 해주면 우리 소대가 불피코(기필코) 차폐문까지 돌파를 하갔습네다.”

비장한 어투로 말하는 3소대장의 말에 중대장은 잠시 고민을 했으나 이내 고개를 희저으며 말했다.

“안 되야! 너무 위험하디!”

“중대장 동지! 믿어주시라요. 요렇게 가마히 있다가는 죽도 밥도 안됩네다.”

이때, 반대편에서 웅장한 기계음이 울리며 거대한 차폐문이 올라갔다. 그리고는 무장한 병력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저것들 뭐네?”

쏟아져 나온 병력들은 엄폐물을 찾아 이리저리 움직였다.

“간나새끼들! 다 뒤지라우!”

뒤쪽에 있던 화기소대장이 CS6A 레이저 머신건에서 붉은빛의 레이저 빔이 열린 차폐문에서 쏟아져 나오는 병력을 향해 퍼부었다.

쯍쯍쯍쯍쯍쯍쯍쯍~ 쯍쯍쯍쯍쯍쯍쯍쯍~

크억! 크어아악!

옥수수 쓰러지듯 보안실 직원들과 경호원들이 쓰러졌다. 하지만, 이내 반격의 총탄이 날아왔다.

타앙! 타타타타타탕! 타타타탕!

크아악!

흥분한 상태로 일어서서 CS6A 레이저 머신건으로 빛줄기를 뿌리던 화기소대장이 여러 발의 총탄을 맞고는 뒤로 벌렁덩 넘어졌다.

“우리도 쏘라우!”

다시 한번 양측간의 치열한 교전이 진행되었다.

“화기소대장! 괜찮네?”

전방을 향해 레이저 빔을 날리던 중대장이 고개를 돌리며 소리쳤다. 이에 바닥에 쓰러진 화기소대장이 한손을 들고는 흔들며 말했다.

“내래, 이 정도로 죽디 않습네다. 괜찮습네다.”

“간나 새끼! 함부로 나대디 말라우! 알았네?”

“헤헤, 알갔습네다.”

팅! 팅! 또르르르르~!

전방으로부터 뭔가가 날아왔다. 그리고는 중대장이 엄폐한 쪽으로 바닥에서 몇 번 구르고는 멈췄다.

“손, 손폭탄이야! 피하라우!”

쿠앙! 콰앙! 콰아아아앙!

동시에 10여 개의 수류탄이 폭발했다.

시꺼먼 먼지구름이 주변 일대를 휩쓴 상태에서 여기저기에서 앓는 소리가 들려왔다.

근거리에서 폭발한 수류탄의 폭발에 파편은 전투복과 보호슈트 덕에 막아냈지만, 충격파에 정신이 몽롱해졌다. 그것도 10여 개가 동시에 폭발한 상태라 그 충격파는 상당했다.

자신의 방탄모를 두드리며 정신을 차리려는 중대장은 지면을 통해 발자국 진동을 느꼈다. 이에 몽롱한 상태에서도 다시금 CS2 레이저 라이플을 들고는 전방을 향해 레이저 빔을 날렸다.

쯍쯍쯍쯍쯍쯍쯍쯍~ 쯍쯍쯍쯍쯍쯍쯍쯍~

이때 하얀 연기를 뿜으며 뭔가가 실드글라스를 통해 날아오는 것이 보였다.

쿠아아아앙!

거대한 폭발에 중대장은 지푸라기 날아가듯 공중에 붕 뜬 채로 콘크리트 벽면과 부딪치고는 바닥에 대굴대굴 굴렀다.

“씨, 씨발, 여기까지네?”

입에서 검붉은 피를 한차례 쏟아낸 중대장은 힘겹게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머릿속에서는 일어나야 한다고 외쳤지만, 몸은 그대로였다. 이에 주변을 살펴봤다. 힘겹게 고개를 돌린 중대장의 눈에는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중대원들이 서글프게 보였고 조금 전까지 손을 흔들며 괜찮다고 화기소대장의 시신은 크게 훼손되어 살점들이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방금 날아온 로켓탄이 화기소대장이 있던 곳에서 폭발한 듯했다.

“종, 간나새끼들!”

엎어진 채 악에 받친 고함을 치는 중대장! 이때 누군가가 다급히 다가와 중대장을 질질 끌며 뒤쪽 엄페물 쪽으로 끌고 갔다.

3소대장이었다.

“중대장 동지! 걱정마시라요. 내래 있디 않습네까?”

한손으로 중대장을 끌며 다른 한 손으로 CS2 레이저 라이플을 쥐고 쏟아대는 3소대장의 얼굴 반이 붉은 피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그냥 두고 저 간나새끼들이나 해치우라우!”

“그럴수야 없디요. 여기서 구경하시라요.”

안전한 엄폐물 뒤로 중대장을 끌고 온 3소대장은 얼굴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옷소매를 아무렇게나 닦고는 환한 중대장을 향해 엄지척을 하고는 앞으로 튀어나갔다.

“잘 보시라요. 중대장 동지!”

상처를 입었음에도 바닥을 구르고 몸을 날리며 쏟아지는 총탄을 피해 앞으로 달려나가는 3소대장은 자살특공대나 다름없었다.

“안돼야! 3소대장! 숨으라우!”

타타탕! 타타탕! 타탕! 타타탕!

일제히 쏟아지는 총탄이 마치 소나기 떨어지듯 유일하게 살아남아 교전을 벌이는 3소대원들을 향해 뿌려졌다.

크억! 커억!

대원 하나가 눈 쪽에 총탄을 맞고 뒤로 벌러덩 쓰러졌다.

슈우우우우웅! 슈우우우우웅!

다시 한번 하얀 연기 꼬리를 늘어뜨리고 날아오는 로켓탄이 폭발하자 널따란 통로에 폭발음이 진동하며 희뿌연 연기가 뭉게구름 피어오르듯 솟아오르면 덮쳤다.

그리고는 더는 총성은 울리지 않았다. 당연히 레이저 라이플 빔성도 들리지 않았다.

다다다닥! 다다다닥!

붉은 조명 아래 희뿌옇게 피어오른 연기 사이로 러시아 군인들이 다가오는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3소대장이래! 살아있네?”

하지만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끝났네? 이거이 대대장 동지 얼굴 볼 면목이 없게 되어버렸구만 기래!”

콘크리트 벽면에 살짝 기대어 앉은 중대장은 죽기 전에 담배 한 개비라도 피고 죽고 싶었는지 방탄조끼 파지에서 담뱃갑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떨리는 손으로 담배 한 개를 피를 꺼내 입에 문 그때 차가운 느낌의 뭔가가 그의 이마에 닿았다. 러시아 군인 하나가 총구를 그의 이마에 갖다 대고 시퍼런 눈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흐흐! 거 아새끼래! 담배 한 개비는 피고 죽게 해 달라우! 그 정도는 해줄 수 있갔디?”

러시아 군인은 알아듣지 못할 러시아어로 한바탕 지껄이고는 방아쇠에 걸친 검지에 힘을 주어 당기려는 그때 건너편 엘리베이터 사이로 붉은 빛줄기가 날아와 정확히 러시아 군인의 방탄모를 뚫어버리고 지나갔다.

쮸웅!

퍼억!

러시아 군인의 머리가 한번 휘청하더니 이내 힘없이 바닥에 꼬꾸라졌다.

“뭐네?”

레이저 빛줄기가 날아온 엘리베이터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벌어진 철문 구멍 사이로 77대대 다른 중대원들이 빛줄기를 뿌리며 튀어나오고 있었다.

“헤헤! 이제야 왔구만 기래!”

실드 글라스를 통해 희미하게나마 확인한 중대장은 어울리지 않은 미소를 머금고는 입에 문 담배에 불을 붙이려고 했지만, 몸에서 힘이 빠지는지 라이터들 들었던 오른손은 축 처졌고 상체는 벽에서 천천히 미끄러지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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