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발악
2024년 2월 03일 11:55, (러시아시각 05:55),
한편 그 시각 러시아 모스크바 벙커 스테이트 R-21(상황실).
생각보다 빠르게 이동할 준비를 마친 푸틴 대통령을 비롯해 고위 관료들과 각 군 지휘관과 참모들이 상황실 한쪽에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인원만 대략 300여 명이었고 대통령 경호원이 100명이 조금 넘었다.
“준비는 다 했는데 안갑니까?”
대통령 총비서관이 총참모장에게 다가가 조르듯 말했다.
“아직 지상 상황을 확인하러 간 정찰병들이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잠시만 더 기다려 주시기 바랍니다.”
“허허! 여태 확인도 안 했다는 겁니까? 대통령께서 기다리지 않습니까?”
대통령의 심기를 걱정해서 그런 건인지 아니면 자신이 초조해서 그런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다소 무례한 말투로 말하는 총비서관의 말에 총참모장은 살짝 감정이 상했는지 살짝 인상을 쓰며 대답했다.
“어쨌거나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보챈다고 달라질 거 없습니다.”“뭐요?”
평시에는 대통령의 총비서관인 루슬란 피메노프의 파워가 셀지 모르나 전시상황에서는 총참모장인 산자르 투르수노프 대장의 파워도 못지않았다.
이렇듯 총참모장과 총비서관관의 보이지 않은 힘겨루기가 오가는 사이, 지상 상황을 확인하러 갔던 호위군 소속의 정찰병들이 돌아왔다.
하지만,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시꺼먼 먼지라도 뒤집어썼는지 얼굴은 물론 깨끗했던 군복이 새까맣게 흙먼지가 묻어있었다.
정찰 병력 중에 가장 선임인 상위 계급장의 장교가 앞으로 나와 헐떡이는 숨을 내쉬며 보고했다.
“현재 지상은 지옥입니다. 처음 저희가 지상으로 올라갔을 당시에는 방어군 병력이 출입구 건물 주변을 포위하고 진입 중이었으나, 어느 순간 하늘에서 한국 전투기가 여러 기가 출현해 폭격을 가했습니다. 저희는 그걸 목격한 후 급히 비상통로를 통해 도망쳐 왔습니다.”
“그래서 지상 상황이 어떻다는 건가?”
좋지 않은 보고에 총참작전관 샤브카트 무라야노프 중장이 다급히 되물었다. 이에 상위 장교는 부하 중 한 명을 불렀다.
“투크타코자에프 앞으로 나와서 최종 상황 보고하게!”
“네,”
초급하사 계급장을 단 군인이 한쪽 다리를 절뚝거리며 앞으로 나왔다. 오른쪽 허벅지에 피 묻은 붕대가 감겨있었다.
“제가 마지막으로 본건, 모스크바 방위군 본부에 거대한 버섯구름이 피어올랐고 건물 주변에 있던 방위군 역시 괴멸에 가까운 피해를 보는걸 확인했습니다.”
“자네 다리는 왜 다친 건가?”
“비상통로로 도망치다가 일부 통로가 무너지는 바람에 돌에 깔려 이렇게 되었습니다.”
“뭐야? 비상통로가 무너져?”
“네, 엘리베이터와 연결된 지상의 통로가 일부 붕괴하였습니다.”
다시금 상위 계급장을 단 장교가 대답했다.
“그럼 엘리베이터는 문제없다는 건가?”
“네, 저희가 타고 내려왔을 땐 문제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앞서 말한 대로 엘리베이터에서부터 지상으로 연결된 통로 일부가 붕괴하여 그쪽으로는 더는 이용할 수 없을 거 같습니다.”
“정말 이용할 수 없을 정도로 크게 붕괴하였나?”
“죄송합니다. 붕괴 당시 급히 도망치느라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이때, 푸틴 대통령이 다가오고 있었다. 아무래도 정찰갔던 군인들의 보고를 들은 총비서관이 대통령에게 고자질한 듯했다.
“뭔가?”
★ ★ ★
2024년 2월 03일 12:00, (러시아시각 12:00),
러시아 자바이칼 지방 시시키노 북서단 17km 지점.
염훈기 하사의 비명이 계속되는 가운데 러시아 자주포와 3km까지 거리를 좁히고 있었다.
러시아의 금수 무기 중 하나인 코알리치야-SV 자주포는 최대 속도가 시속 70km였으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노면에서나 가능한 속도였고 야지에서는 시속 50km 안팎이었다.
중량은 전차와 비슷하면서도 높이가 높아 좌우 중심축 잡기가 힘들뿐더러 4,500마력 상당의 C-3A1 백호 전차를 속도로 따돌리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리고 계속해서 전방에 위협사격을 가하는 통에 러시아 자주포들은 직선으로 달리지 못하고 회피기동을 번갈아가며 기동해야만 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산능선에 가려 위협사격을 가할 각이 나오지 않게 되었다.
이때 3번째로 달리던 자주포 한 대가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 여기는 골룸 쓰리! 3번째 표적은 골룸 쓰리가 접수 이상!
“여기는 골룸 투! 확인 이상!”
통신을 마친 713호 전차가 마치 설원에서 드래프트하듯 오른쪽으로 미끄러지며 방향을 하고는 줄이지 않은 속도 그대로 뒤쫓아갔다.
713호 전차 조종수는 26전차대대 내에서도 전차 조종실력만큼은 세 손가락 안에 드는 말년 병장이었다.
“워! 나 병장이 대단한데?”
713호 전차가 드래프트로 방향전환을 하는 모습을 현시경을 통해 본 김영주 중사가 감탄했다.
- 아! 저도 저 정돈 문제없지 말입니다.
통신망을 통해 들었는지 김일수 상병이 큰소리를 쳤다.
“오냐! 네가 못 하는 게 어딨겠느냐마는 지금은 저놈들 잡아야 하니 드래프트는 나중에 하고 속도나 더 올려라!”
- 아! 그러다가 염 하사님 피똥 싸시는 거 아닙니까? 비명 때문에 고막 나가겠습니다.
“김 상병아! 염 하사 너의 귀중한 고막을 위해 통신은 잠시 꺼놔라! 나도 꺼놨다.”
- 옛설입니다.
어쨌든 러시아 자주포 한 대가 이탈 후 713호 전차가 따라가는 상황에서 나머지 2대와의 거리를 좁혀가는 그때, 좀처럼 듣기 힘든 경보음이 울려댔다.
삐이이이익! 삐이이이익!
“뭐야? 이 낯선 경보음은”
경보음이 울리자 전차장 전용 모니터를 확인한 김영주 하사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방사능?”
현재 추적 중인 자주포에서 방사능이 탐지된 것이었다. 이에 김영주 중사는 소대장에게 즉시 보고했다.
“여기는 골룸 둘! 추적 중인 적 자주포에서 미세한 방사능 감지! 미세한 방사능 감지! 확인 바람. 이상!”
- 여기는 골룸 하나! 정말 방사능인가?
“거리가 좁혀질수록 방사능 수치가 올라간다. 아무래도 핵포탄이 적재된 듯하다. 이상!”
- 여기는 골룸 하나! 일단 대기하라! 상부에 보고하겠다. 이상!
통신을 마친 김영주 하사는 방사능 수치가 계속해서 올라가자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대체 이 미친놈들, 정말 핵포탄을 적재한 건가? 설마 전쟁이 끝나가는 마당에 쏘겠다는 거야?”
어이없음에 혼잣말로 중얼거리자, 지금까지 비명을 지르며 고통을 호소하던 염훈기 하사가 잔뜩 인상을 쓴 채로 말을 건넸다.
“핵포탄입니까?”
“방사능 수치가 올라가는 것으로 봐서는 그럴 확률이 높다! 이거 까딱 잘못하다가 엿되겠는데?”
나름 추격전에 재미있었던 김영주 중사의 얼굴 낯이 어느 순간 회색빛으로 바뀌었다.
“아윽! 그럼 지금 당장 쏘시지 말입니다. 저놈들 너 죽고 나 죽자하고 아무대나 쏴버리면 다 죽는 거 아닙니까?”
“일단 기다려! 소대장이 상부에 보고한다니까! 일단 넌 뒤쪽 전차나 정확히 조준하고 있어!”
“알겠습니다.”
대답과 동시에 염훈기 하사는 조준경의 십자선 조준점을 2번째로 기동하는 자주포 포탑 후면 중앙에 정확히 갖다 댔다.
“명령만 내리십시오. 그대로 박살 냅니다.”
“알았어, 대기해!”
이때 두 번째로 달리던 자주포가 왼쪽으로 방향을 급히 꺾으며 방향전환을 했다.
- 어라! 2번째 표적! 왼쪽으로 토깝니다. 어떤 놈 따라갑니까?
김일수 상병이 통신망으로 다급히 물었다.
순간 당황했는지 김영주 중사가 선뜻 대답하지 못하자 재차 되묻는 김일수 상병,
- 전차장님! 어떤놈 따라갑니까?
이때 소대장으로 통신이 날아왔다.
- 기는 골룸 하나! 제거! 당장 제거하라는 대대장님의 명령이다.”
“여기는 골룸 둘! 확인, 이상!
“염아! 먼저 두 번째 자주포 제거 후 곧바로 첫 번째 자주포 간다.”
“알겠습니다.”
두 번째로 달리던 러시아 자주포가 왼쪽으로 급격한 방향전환을 하며 기동했지만, 첫 번째 자주포를 향해 기동하던 712호 전차의 포탑은 회전한 상태로 광자포 포신은 정확히 두 번째 자주포를 겨냥하고 있었다.
쮸웅!
야지에서 시속 90km에 달하는 속도로 기동하며 발사된 100mm 광자포의 붉은 입자는 정확히 자주포의 좌측면 자체를 뚫고는 폭발했다.
콰앙앙!
폭발과 함께 코알리치야-SV 자주포는 산산조각이 나며 사방으로 파편들이 비상했다. 검붉은 화염이 꿈틀거리며 흉물스럽게 변해버린 자체를 집어삼켰다. 그리고 3시 방향에서도 광자포 발사음과 함께 큰 폭발음이 연달아 울렸다. 아마도 오른쪽을 방향을 틀어 기동하던 러시아 자주포를 713호 전차가 해치운 듯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터지고 말았다. 김일수 상병의 비명이 전차 내부를 휩쓸었다.
- 어! 적 자주포가 급정거했습니다. 아 포, 포신이······.
현시경과 조준경을 통해 확인된 러시아의 마지막 코알리치야-SV 자주포는 마치 방열한 듯 설원에 정지한 상태로 남동단 방향 상공을 향해 포신 고 각을 올리고 있었다.
“설, 설마! 저 미친놈들 핵포탄을 쏘려는 거야? 염! 염아 뭐 하냐? 발사해!”
“아! 잠시만 포탑 회전합니다.”
지지지지징!
712호 전차의 포탑이 회전한 후 멈추고 포신이 정확히 정차한 코알리치야-SV 자주포의 포탑 중앙에 십자 조준선이 도달하자 염훈기 하사는 즉시 발사 판을 밟았다.
쮸웅!
퍼엉!
하지만, 광자포 발사음과 자주포 포격음이 동시에 울리고 말았다.
콰아앙!
거대한 폭발을 하며 코알리치야-SV 자주포가 박살이 났다. 하지만 포탄 한 발은 이미 152mm 포신을 떠나 하늘 높이 날아가 버렸다.
“제길! 늦은 건가?”
현시경을 통해 포격을 확인한 김영주 하사는 포탄이 날아간 상공으로 현시경을 돌려 방위각을 측정하고는 통신망으로 소리쳤다.
“야! 김 상병아 급정거! 급정거!”
- 네, 알겠습니다.
순간, 712호 전차는 급격히 오른쪽으로 돌더니 미끄러지듯 드래프트를 하면 멈췄다.
- 어떻습니까? 헤헤!
“시끄러워 다들 조용히 해!”
다급한 마음에 호통치듯 말한 김영주 하사는 디지털 지도가 나오는 모니터 화면에서 현재 지점을 중심으로 측정된 방위각으로 긴 선을 그었다.
“핵포탄이면 적어도 40km 이상으로 설정했을 테니 여기고 최대 사거리 70km이니 이곳이군”
김영주 중사는 그어진 선을 따라 실제 40km 지점부터 70km 지점까지를 디지털 지도에 표기했다.
“이런 제길!”
그어진 선을 따라 40km에서 70km 내에는 치타시를 비롯해 임시 포로수용소, 그리고 제1군 사령부의 군수창고 및 6군단 소속 제5기갑사단(열쇠)이 주둔하고 있는 노르보체로보스키였다.
자국의 국민 40만 명이 거주하는 치타시에 핵포탄을 날린 확률은 낮았다. 그렇다면 항복한 러시아 군인을 조국을 배신한 자로 간주하여 보복공격을 감행할 수 있으나, 전술핵까지 동원한다는 것은 무리였다. 그렇다면 남은 건 딱 하나였다. 바로 제1군 사령부의 야전 군수창고와 제5기갑사단(열쇠)이었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김영주 중사는 즉시 통신 콘솔에서 비상코드를 입력했다. 비상코드는 매우 위급한 상황 시 합동참모본부에 직접 연락을 취할 수 있는 핫라인 군용 통신이었다.
번개 같은 손놀림으로 키보드를 조작해 비상코드를 입력하고 엔터를 눌렀다.
- 네, 비상코드 입력 확인되었습니다. 이름, 직위, 계급 확인 바랍니다.
“지, 지금 그런 거 말할 시간 없습니다. 지금 당장 제5기갑사와 제1군 야전 군수창고에 핵포탄 공격 발령을 내려주시기 바랍니다.”
- 아! 일단 절차대로 이름, 직위, 계급을 불러······.
“야이! 개새끼야! 방금 말한 부대로 핵포탄이 떨어진다고, 시간 없으니까 제5기갑사와 제1군 군수사령부에 연락해서 1급 방공태세로 전환하라고 하란 말이야! 이! 개새끼야! 알아 들어먹었느냐?”
- 아! 알겠습니다. 잠, 잠시만
“잠시만이고 뭐가 당장 말하라고 시간이 얼마 없다고?”
김영주 중사는 헤드셋 수화기에 대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다가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대략 포탄이 발사된 시간이 4분 13초! 현재 49초를 지나고 있었다. 즉 포탄이 발사되고 36초가 흐른 상황! 피아식별 DB에서 확인된 코알리치야-SV 자주포 포구 속도 제원은 1초에 992m였다.
대충 1초에 1km를 날아간다 해도 60km면 60초, 70km면 70초였다. 적어도 착탄까지 24초에서 34초의 시간이 있었다. 전달만 제대로 된다면 요격할 확률은 있어 보였다.
- 해당 부대에 연락되었습니다. 저는 합동참모본부 비상대응과 소속의 박상현 소령입니다. 이름, 직위, 계급 확인 바랍니다.
김영주 중사는 상대방 입에서 소령이라는 말에 뜨끔하고 말았다.
“지, 지금 전장입니다. 오래 통신 못 하니까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김영주 중사는 다급히 핫라인 군용통신을 끊어버렸다. 이때 잔뜩 걱정된 표정을 지은 염훈기 하사가 물었다.
“저기, 전차장님! 그럼 방금 소령에게 개자식이라고 욕하신 겁니까?”
“지금 그게 중요하게 아니야 마! 다들 조용히 해봐!”
김영주 중사는 전차장 해치까지 열고는 남동단 하늘을 향해 귀를 쫑긋 세웠다. 전술핵 포탄이라도 70km 거리에서는 충분히 폭발음을 들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