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74화 (574/605)

최후의 발악

2024년 2월 03일 11:10 (러시아시각 11:10),

러시아 자바이칼 지방 시시키노 북단 3km 26전차대대 숙영지.

전날 치타를 점령한 후 대대별로 주변 중소도시 점령에 박차를 가한 제20기갑사단(결전), 치타 중심부로부터 29km 떨어진 이곳 시시키노에는 제60기갑여단 26전차대대가 새벽 2시를 기해 점령을 완료 후 북단 3km 지점 산릉선 아래 평지에 야외숙영지를 차리고 오전 9시까지 휴식을 취한 후 지금은 이동준비를 마치고 대기하고 있었다.

모든 전차장이 대대본부 막사에서 이동과 관련한 간단한 작전회의가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거친 엔진음을 내는 712호 전차 뒤쪽에는 염훈기 하사와 김일수 상병이 쪼그려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어라! 대박에!”

쪼그려 앉아 오른손은 담배를 쥐고 왼손으로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던 염훈기 하사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입을 벌린 채 감탄사를 연발했다.

“왜 그러십니까?”

“야! 너! 너! 1월 월급 안 봤지?”

“아! 벌써 월급 받는 날인가?”

“날이 아니고 지났지 마! 어서~ 확인해봐라! 크크 대박이다.”

닦달하는 말하는 염훈기 하사의 말에 김일수 상병은 방탄조끼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들고는 바로 국방은행 앱을 실행시켰다.

2021년 후반기부터 일반 사병은 물론 모든 직업군인은 국방부에서 운영하는 국방은행을 통해 월급, 휴가비, 각종 수당 등을 이체받았으며 그에 따른 모든 세부사항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어? 이거 실홥니까~”

김일수 상병 역시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웬만한 대기업 과장급 월급이 입금되어 있었다.

“크크 대박이지?”

“워! 1월 월급이 980만 원입니다.”

김일수 상병은 몇 번이고 자신의 눈을 확인했다.

“난 천만 원이 넘는다~”

“췌! 사병과 직업군인 간의 차별인가?”

“뭣 마? 차별? 콱! 고작 백만 원 차이다 이놈아!”

“크크 농담입니다. 근데 이번에 왜 이렇게 많이 나왔습니까?”

“보면 되지?”

염훈기 하사는 국방은행 앱에서 1월 월급 상세명세를 클릭했다.

“아! 이것 때문에 많이 준거네.”

“뭔데 말입니까?”

“이번 월급에 승리수당 500만 원이 추가되었네”

“워! 승리수당이 말입니까? 그럼 나중에 정말 종전 승리수당은 어마어마하게 나오겠습니다? 크크크”

“그거야 모르지! 암튼, 요 몇 개월간 받은 월급만 해도 1년 연봉에 가깝구나~”

이때 염훈기 하사와 김일수 상병의 등을 누군가가 후려쳤다.

파악!

“뭐가 그리 좋아 마!”

“악! 깜짝이야!”

“이것들이 빠져서리 이동 대기 중에 전차 밖에서 웃고들 있어? 콱!”

“아! 전차장님 애 떨어질 뻔했습니까?”

“애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시껍고 뭐가 그리 좋아서 입이 귀까지 찢어졌냐?”

“크크, 이것 보십쇼.”

염훈기 하사가 자신의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뭔데?”

“1월 월급입니다.”

“월급? 아! 벌써 2월이구나. 전장에 있으니 시간 가는 줄 모르겠네”

“아아! 좀 화면 좀 자세히 보십쇼.”

염훈기 하사가 스마트폰을 더욱 가까이 들이 내밀었다.

“아! 월급 원데이 투데이 받냐? 뭘 새삼스럽게 그래?”

“아! 답답! 금액 말입니다.”

그제야 자세히 스마트폰 화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김영주 중사!

“어라? 네 월급이 왜 일케 많어?”

“하하, 이제야 아셨구만, 이번 달 월급 승리수당이 추가됐습니다. 어서 전차장님도 보십쇼.”

“오! 정말? 하사 나부랭탱이가 이 정도 받으면서 난 한 이천 되겠지?”

“네? 헐!”

이때 소대장으로부터 명동 준비 명령이 떨어졌다.

- 소대 이동준비! 대대통신망 개방하고 대기!

“아! 맞다. 야! 다들 탑승! 5분 후 출발한다.”

자신의 스마트폰을 꺼내려던 김영주 중사는 소대장의 명령에 탑승하라는 손짓을 했다.

“크크, 나중에 확인하시고 얼마 나왔는지 알려주십쇼.”

“남의 월급은 뭘 알려고 하냐 마!”

“하사 나부랭탱이보다 얼마나 더 받는지 궁금해서 그럽니다.”

“시꺼! 얼렁 타! 네들 때문에 깜빡했잖아! 김 상병!”

“네, 전자창님!”

“우리 이동 경로 바뀌었다. 전송해줄 테니까 확인해!”

“알겠습니다.”

“갑자기 왜 바뀝니까?”

포수석에 앉은 염훈기 하사가 물었다.

“우리 소대만 바뀌었다. 나머진 기존 경로로 이동한다. 우리는 대대 선봉으로 북서단 11시 방향 야지로 기동해 앞질러 간다.”

“또 선봉입니까?”

“왜? 싫냐?”

“뚝 하면 중대에서도 우리 소대가 선봉 역할을 하니까 하는 말 아닙니까?”

염훈기 하사가 투덜거리자 김영주 중사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자식! 우리가 이런 임무를 수행하니까 월급에 이런저런 수당이 추가되어 많이 주는 거야 자식아! 월급 받을 때만 좋지?”

“아! 뭐 그렇긴 하지만,”

“그람 입딱하고 조준경이나 잘 봐라!”

“뉍!”

“김 상병아! 경로 확인했냐?”

- 네, 지금 보고 있습니다.

“좋아! 우리가 선두니까 네비 잘 보면서 가라!”

- 알겠습니다. 그런데 여기 완전 산악지대인데, 엉덩이 불나겠습니다.”“자식! 예전 구형 전차 탔으면 네 엉덩이 뿔났겠다?”

- 흑표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래 마! 흑표보다 우리 전차 현수장치가 얼마나 부드러운데, 엉덩이 불난다는 소리를 해!”

- 헤헤! 말이 그렇다는 겁니다요.

“시끄럽고 저기 소대장 전차 앞으로 이동해!”

- 알겠습니다.

쿠르르르르릉!

묵직한 엔진음을 울리고는 앞으로 튀어나간 712호 전차는 이내 소대장 전차인 711호 전차 앞에 섰다.

- 대대장이다. 이동계획대로 각 중대 및 소대 이동한다.

개방된 통신망을 통해 대대장의 최종 이동 명령이 떨어지자 곧바로 소대장으로부터 출발 명령이 날아왔다.

- 이동 준비되었으면 1소대 출발!

“가자!”

“옛설!”

쿠르르르릉! 쿠르르르릉!

폭설 이후 연이은 포근한 날씨 덕에 어느덧 무릎 아래까지 녹아내린 눈들은 육중한 무게로 짓누르며 지나가는 전차의 캐터필러를 따라 눈과 함께 진흙이 뒤섞이며 기다란 줄을 만들었다.

★ ★ ★

2024년 2월 03일 11:20, (러시아시각 05:20),

한편 그 시각 러시아 모스크바 벙커 스테이트 R-21(상황실).

20분 전, 대대장 김민길 중령으로부터 한가득 욕설을 얻어먹은 91중대 중대장은 다른 소대원들의 구출을 포기하고 엘리베이터 통로를 통한 침투 명령을 내렸다.

먼저, 굳게 닫힌 철문으로 만들어진 엘리베이터 외부 출입문 2개를 C-5 폭탄으로 박살 낸 후 빛조차 없는 까마득히 보이는 어두 껌껌한 수식 통로를 강하 라펠 형식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통로 중간중간, 사방으로 펼쳐진 감지 센서들 때문에 다소 시간이 지체되었지만 얼마 후 선두로 내려온 3소대 대원들이 바닥에 세워져 있는 엘리베이터 지붕에 도달했다.

“가르라우!”

3소대장의 명령에 대원 하나가 배낭에서 레이저 절단기를 꺼냈다. 그리고는 이내 엘리베이터 지붕에 갖다 대고는 사람이 통과할 수 있을 정도의 크기로 원을 그렸다.

찌찌지지지지지~

절단기에서 내뿜은 강렬한 레이저 빔은 마치 종잇장 오리듯 엘리베이터 지붕을 깔끔하게 절단했다.

“됐습니다.”

절단기를 든 대원이 말하자 다른 대원이 붉은 실금이 간 엘리베이터 지붕을 힘차게 발로 찼다.

터엉!

동그랗게 잘려나간 지붕 조각이 엘리베이터 안으로 떨어졌다.

“뛰라우!”

착! 착! 착!

3소대장의 명령에 뚫린 구멍으로 몸을 날려 엘리베이터 안으로 진입한 대원들은 곧바로 반대편 상황을 보기 위해 실드글라스의 출력을 최대한으로 올리고 인버터 비전모드를 실행했다.

“이거이 쉽지 않겠습네다. 엘리베이터 출입문 말고도 단단한 철문이 막고 있습네다.”

“얼마나 단단하네?”

마지막으로 엘리베이터 안으로 뛰어내린 3소대장이 앞으로 나서며 물었다.

"인버터 비전모드로 밖이 보이지 않습네다.“

“최대출력으로도 말이네?”

“기렇습네다.”

“대체 두께가 얼마나 되는데 인버터 모드로 볼 수가 없다는 거네?”

3소대장이 실드 글라스의 출력을 최대한 올리고는 살펴봤다. 역시나 부하가 말한 대로 거대한 철문에 막혀 투과되지 않았다.

“최대출력일 때 최대 50cm 정도의 철문은 투과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네다.”

“기렇다면 50cm가 넘는다는 거네? 다 와서 골치 아프게 되었구만기래!”

이때 중대장도 라펠을 타고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왔다.

“뭔일이네? 열지 않고서리”

“그거이······. 인버터도 투과 안 되는 철문이 막고 있습네다.”

“그래서? 그냥 부시라우! 고민할 시간 없어야! C-4 폭탄 지향성으로 전환하고 죄다 붙이라우!”

“알갔습니다.”

잠시 후 각자 배낭에서 꺼내든 C-4 폭탄 12개를 엘리베이터 문에 장착하고는 엘리베이터 지붕으로 올라갔다.

“다들 후폭풍 조심하라우 셋, 둘, 하나!”

C-4 폭탄이 지향성 폭탄이라 하더라도 좁은 공간에서 그것이 12개를 동시에 폭파할 경우 후폭풍은 물론 고막이 터져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걱정까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대원들이 각자 자신의 귀를 막고 최대한 몸을 웅크리자 중대장은 격발기의 버튼을 눌렀다.

쿠앙!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거대한 충격파가 엘리베이터 전체를 강타했다.

쿠아아아아아아~

솟구치는 후폭풍에 대원들의 몸이 들썩거렸고 시꺼먼 먼지구름이 엘리베이터 통로에 가득 찼다.

쿨럭! 쿨럭! 쿨럭!

“뭣들하네? 뛰어내리라우!”

메케한 화약 냄새가 진동하는 가운데 정신 차린 대원들이 난장판이 된 엘리베이터 안으로 다시금 뛰어내렸다.

“와우! 뚫렸습네다.”

엘리베이터 출입문은 물론 거대한 철문이 반대편 방향으로 크게 찢겨나가 벌어져 있었다. 이에 벌어진 구멍으로 나가려던 대원 하나가 갑자기 쏟아지는 총알에 놀라며 뒤로 넘어졌다.

타타타타아앙! 타탕! 타타탕! 탕! 탕!

팟팟! 파파팟! 팟!

간신히 몸을 피한 대원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가운데 엘리베이터 안쪽 벽면에 착탄 자국이 새겨졌다.

“간나새끼들 대기하고 있었구만 기래!”

찢겨나간 철문 구멍으로 확인된 바깥에는 엄청난 수의 러시아 군인이 총구를 들이 내밀고 기다리고 있었다.

한편, 화기소대가 침투한 또 다른 엘리베이터에서도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아마도 그쪽도 가져온 C-4 폭탄으로 철문을 뚫으려고 했던 거 같았다.

쿠아아아아앙!

또다시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주변 일대가 아수라장이 되었다. 일부 밖에서 대기하던 러시아 군인 여러 명이 폭발위력에 휘말리며 날아갔다.

이때를 기점으로 3소대 대원들이 찢긴 구멍을 통해 신속하게 빠져나가며 레이저 빛줄기를 뿌렸고 일부 대원은 C-51 음파탄을 이리저리 던졌다.

쮸융! 쮸융! 쮸융! 쮸융! 쮸융! 쮸융!

파앙! 파앙!

드드드드드드륵! 드드드드드드륵!

타탕! 타타타앙! 타타타탕! 타탕!

양측간 치열한 교전이 시작되었다. 현재 3소대와 화기소대를 막고 있는 병력은 호위군 410대대로 이곳 지하벙커에 있는 유일한 호위병력이었다.

파파앗! 파파앗!

음파탄이 터지자 주위에 있던 러시아 군인들이 일제히 기절하며 쓰러졌다. 그리고 화기소대 역시 하나둘 총격전에 투입되자 수적으로 불리함에도 300여 명에 달하는 410대대와 접전을 벌였다.

★ ★ ★

2024년 2월 03일 11:30, (러시아시각 05:30),

한편 그 시각 러시아 모스크바 벙커 스테이트 R-21(보안실).

보안실에서 현재 상황을 각종 CCTV 카메라로 확인하는 이그나티 투라에프 중장의 얼굴은 심히 꾸겨질 대로 꾸겨져 있었다.

그런 이그나티 투라에프 중장의 눈치를 보는 아지즈벡 카파제 대령은 죽을 맛이었다.

보안책임자이기도 했지만, 절대 4구역까지 진입할 수 없다고 장담한 게 큰 문제였다.

현재 치열한 교전이 벌어지고 있는 제4-1구역에서 이곳 상황실과 봉안실까지는 거리가 100m밖에 되지 않았다. 통로 중간에 1개의 단단한 차폐문이 있기에 쉽게 이곳까지 진입하기는 어렵겠지만, 어쨌든 4구역 초입까지 침투를 허용했다는 사실만으로 큰일이었다.

“자네 말만 믿었다가 내 모가지가 날아가게 생겼어!”

잔뜩 인상 쓴 이그나티 투라에프 중장이 아지즈벡 카파제 대령을 노려보며 말했다.

“죄, 죄송합니다.”

“죄송하다고 해결될 일인가?”

“현재 4구역까지 침투한 인원은 고작 20명도 안 됩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이곳에서 막아내겠습니다.”

“자네의 그런 허튼소리에 이 사달이 났어! 지금 당장 비상통로 차폐문 개방하게”

“네? 비상통로를 말입니까?”

“그래!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겠어! 연락하는 대로 즉시 차폐문을 개방하게”

“네, 알겠습니다.”

아지즈벡 카파제 대령의 대답을 뒤로한 채 이그나티 투라에프 중장은 즉시 뒤돌아 상황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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