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73화 (573/605)

최후의 발악

2024년 2월 03일 05:00, (러시아시각 11:00),

한편 그 시각 러시아 모스크바 벙커 스테이트 R-21(보안실).

“엘리베이터 4기 모두 폐쇄 완료”

“주 통로 차폐문 모두 차단 완료!”

보안실 운용 요원들의 보고가 실시간으로 전해지는 가운데 각종 모니터를 보고 있던 아지즈벡 카파제 대령은 굳은 표정으로 고개만 끄덕였다. 하지만 옆에서 보고 있는 이그나티 투라에프 중장의 표정은 매우 어두웠다.

20여 분 전, 함정 통로로 침투하던 한국 특수부대 일부를 후방 차폐문을 닫아 가둬버리고 GB 가스를 살포해 해치웠다고 생각했을 때까지만 해도 좋았다. 하지만, 실제 주 통로인 3번 통로로 진입한 20명에게 2개 대대급 규모의 부대가 전멸하자 상당한 불길함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고작 20명도 안 되는 인원에게 저 많은 병력이 당할 수 있는 건가?”

이그나티 투라에프 중장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흘려 말했다.

“총참작전부관님!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놈들은 절대 이곳으로 내려올 수 없습니다. 엘리베이터 4기 모두 폐쇄한 상태입니다.”

“확실한가?”

“네, 저곳에서 이곳까지 깊이가 50m에 달합니다. 절대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지 않은 이상, 이곳으로 내려올 수 없습니다. 그리고 최종 차폐문 2개도 모두 닫은 상태입니다.”

“음, 엘리베이터를 폐쇄했다면 저곳으로는 앞으로 이동할 수 없겠군”

“네, 완전 폐쇄로 인해 다시 재가동을 하려면 적어도 일주일은 걸립니다.”

“알았네. 자네는 계속 주시하고 난 이만. 상황실로 돌아가겠네.”

“네, 조심히 살펴 가시기 바랍니다.”

“그래, 무슨 일이 있으면 바로 연락하게”

“네, 알겠습니다.”

무거운 마음을 뒤로하고 일어난 이그나티 투라에프 중장은 부관들과 함께 보안실을 떠났다.

“3구역에 있는 카메라 중 다시 재가동 시킬 수 있는 카메라가 있는지 확인해봐!”

치열한 교전으로 인해 제3구역에 설치된 모든 CCTV 카메라가 박살 나거나 고장 나 현재 제3구역 상황을 영상으로 확인할 수 없는 상태였다.

“현재 2개 카메라에 대해 복구작업 중입니다.”

운용병 하나가 큰 목소리로 대답했다.

“서둘러! 저놈들이 뭔 짓을 하는지 확인해야 한다.”

“네, 알겠습니다.”

★ ★ ★

2024년 2월 03일 11:05, (러시아시각 11:05),

한편 그 시각 러시아 모스크바 벙커 스테이트 R-21(상황실).

보안실에서 돌아온 이그나티 투라에프 중장은 곧바로 총참모장에게 다가가 현재 상황을 보고했다.

“3구역까지 도달했다고?”

“네, 그렇지만, 이곳 4구역으로 올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인 엘리베이터 4기 모두 완전히 폐쇄했기에 더는 진입하지 못할 것입니다.”

“확신하나?”

총참모장 산자르 투르수노프 대장이 한쪽 눈을 치켜뜨며 의구심을 보이자, 순간 이그나티 투라에프 중장은 섣부르게 대답하지 못했다.

“뭔가? 확신하지 못한다는 말인가?”

“아닙니다. 보안책임자는 절대 진입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자네나 보안책임자는 지금 그 말을 책임져야 할 것이야.”

“네, 책임지겠습니다.”

그나티 투라에프 중장의 대답을 뒤로하고 뭔가를 결심한 산자르 투르수노프 대장은 즉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책상 서랍 안에서 겉장에 1급 기밀이라 쓰여있는 문서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는 곧바로 푸틴 대통령이 있는 곳으로 발검을 옮겼다.

잠시 후 의자에 앉아 깊은 고뇌에 잠겨있는 푸틴 대통령 앞에 다가가 산자르 투르수노프 대장이 절도있는 각도로 거수경례했다.

“대통령님!”

총참모장의 거수경례에 오른손으로 이마를 짚고 고뇌에 빠져있던 푸틴 대통령이 고개를 들었다.

“그래, 현재 어떻게 돌아가는 건가? 지상도 그렇고 이곳에 침투한 한국 특수부대도 그렇고 말이야.”

겉으로 신경 쓰지 않는척하며 말하는 푸틴 대통령, 하지만, 미세하게나마 푸틴 대통령의 목소리는 살짝 떨리고 있었다. 단지, 상황실에서 돌아가는 각종 기계음에 묻혀 눈치채지 못할 뿐이었다.

“현재 3구역까지 일부 한국군이 침투하는 데 성공은 했으나, 이곳 4구역 지바벙커로는 절대 들어올 수 없을 것입니다.”

“바깥 상황은 어떤가?”

“현재 강력한 전자파 방해로 잠시 방어군 본부와 통신두절된 상태라···. 현재 모든 인력을 총동원해 복구 중이니 연결되는 대로 확인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언제 복구가 된단 말이야? 지금 모스크바 전체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는 게 말이 되나?”

과도한 손짓을 하며 질타하는 푸틴 대통령! 그의 얼굴은 몇 시간 새 10년은 늙은 듯 보였다. 아무래도 러시아 수도인 모스크바에 한국 특수부대의 출현은 물론 이곳 스테이트 R-21 지하벙커까지 침투했다는 사실에 적잖은 스트레스를 받은 듯했다.

푸틴의 눈빛은 과도하게 흔들렸고 이마에서는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평소에 당당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어 보였다.

“말해보라고! 하! 어쩌다가, 우리 러시아가 동방의 조그마한 나라에 이런 망신을 당하다니 말이야!”

총참모장이 우물쭈물하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푸틴 대통령! 심리적 압박감을 해소하고자 거친 호흡을 몇 번을 하고는 조금은 섬뜩한 목소리로 말했다.

“총참모장! 북서부전선의 패전은 전 총참모장의 전략 실패였기에 조용히 넘어갔지만, 이번 모스크바 공수침투 건은 자네 책임이야.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겠나?”

“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잖아도 며칠 전부터 준비 중인 전술핵 사용에 관한 보고를 하고자 합니다.”

전술핵이라는 말에 푸틴 대통령의 눈빛이 반짝였다.

“그래? 준비된 상황은?”

“현재, 전술핵 포탄을 장착한 1개 포대가 북서부전선 일대에서 은밀히 이동 중입니다. 작전 시간은 금일 오전 7시입니다. 목표물은 현재 북서부전선을 총괄하는 한국군 제1군 사령부를 비롯해 전개 중인 5개 사단입니다. 자세한 작전 안은 이 보고서를 보시면 됩니다.”

산자르 투르수노프 대장은 가져온 문서를 대통령에게 내밀었다. 그러자 한 손으로 받아든 푸틴 대통령은 겉장을 넘기고는 천천히 읽어나갔다.

4일 전, 산자르 투르수노프 대장으로부터 중대한 명령을 받은 중부군구 사령부의 예비전력지원단 야수르 하사노프입 대령은 탄약지원단에 있는 전술핵 포탄을 은밀히 이동시켜 87포병대대에 전달했다.

현재 87포병대대는 밤을 이용해 한국군의 각종 감시망을 피하며 포대별로 기동 중에 있었다.

“후후! 좋아! 총참모장에 오른 후 처음으로 제대로 일을 하는 거 같군!”

“감사합니다.”

“음, 작전 시간이 7시라면 앞으로 2시간도 안 남았군,”

“네, 그렇습니다. 대통령님!”

“좋아! 남부전선은 어떤가?”

“남부전선은 러시아의 최대 곡창지대라는 부분 때문에 전술핵은 사용은 어렵다는 참모들의 반발이 심하며 미국 나토군도 전개 중인 상황이라······. 대신 북서부전선 일대에 전술핵을 사용하게 된다면 남부전선의 한국군 역시 위축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에 한쪽 눈을 치켜뜨고 뭐라 하려던 푸틴 대통령은 수긍이 되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음, 틀린 말은 아니군, 그렇더라도 전술핵 활용 건에 대해서 계획은 수립하도록 하게!”

“네, 알겠습니다.”

이때, 루슬란 피메노프 총비서관이 대통령에게 슬쩍 다가가 귓속말을 전했다.

“대통령님! 아무래도 전술핵을 사용하기에 앞서 다른 안전한 곳으로 이동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게 무슨 소리인가? 다른 곳으로 이동하다니?”

다소 황당한 소리에 푸틴 대통령은 총비서관을 위아래로 훑어봤다. 이에 총비서관은 더욱 가깝게 다가가 속삭였다.

“제가 알아본바! 3구역까지 침투했다는 건 바로 코앞까지 접근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현재 지상 상황을 모르는 상황에서 자칫 이곳에 갇히게 되는 꼴이 되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또한, 잘 아시잖습니까? 미국 USSC 놈들이 한국군에게 어떻게 당했는지······. 만약 전술핵을 사용했을 경우, 대통령께서 이곳에 있다는 걸 알고 있는 한국군이······.

그제야 총비서관이 무슨 의미로 그런 말을 했는지 깨달은 푸틴 대통령은 상체를 앞으로 당기며 총참모장을 불렀다.

“총참모장!”

“네, 대통령님!”

“비상통로는 확실하게 확보된 상황이겠지?”

“네, 그렇습니다.”

스테이트 R-21 지하벙커에서 지상으로 연결된 3번째 비상통로는 이곳 4구역으로부터 2km에 달하는 기다란 통로로 되어있고 그 후 비상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형식으로 만들어진 말 그대로 비상식 이동하는 통로였다.

“좋아! 다른 벙커로 이동할 준비를 하게!”

“네? 이동하다니요?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요?”

조금 전까지 전술핵 작전 문서를 보고 흡족해하던 푸틴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말에 산자르 투르수노프 대장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지으며 반문했다.

“무슨 말이다니? 전술핵 사용 이후 한국군의 보복공격으로 자칫 잘못되면 이곳에서 생매장을 당할 수 있지 않겠나?

“네? 생매장이라니요? 이곳 벙커는 스테이트 R 지하벙커 중에서도 가장 안전한 장소입니다. 그 어떠한 핵폭탄이 폭발해도 버틸 수 있습니다. 또한, 모스크바 전역에 한국 특수부대가 날뛰고 있는 상황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건 더 위험합니다.”

산자르 투르수노프 대장의 계속된 설득에 푸틴 대통령은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한참을 고민한 푸틴 대통령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알았네. 자네 말을 믿지! 대신, 언제든 비상통로로 이동할 수 있도록 철저하게 관리하게!”“네,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이만 상황실로 돌아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게!”

다시 한번 절도있는 동작으로 거수경례한 산자르 투르수노프 대장은 뒤돌아서며 총비서관을 째려봤다.

다시는 대통령에게 쓸데없는 소리를 하지 말라는 무언의 압박이었다. 이에 총비서관은 어색한 미소를 보이며 다른 곳을 보며 시선을 피했다.

‘개자식! 겁만 많은 돼지 새끼······.’

속으로 욕설을 내뱉은 산자르 투르수노프 대장은 상황실로 돌아오자마자 통신구역으로 향했다.

“아직도 모스크바 방어군 본부와는 연락이 안 되나?”

“네, 방해 전파가 심각합니다.”

“유선통신 복구는?”

“현재, 복구작업 중에 있으나, 언제쯤 복구가 완료될지는 모르는 상황입니다. 죄송합니다.”

대령 계급장의 영관급 장교는 땀을 뻘뻘 흘리며 대답했다.

“최대한 빨리 복구하게!”

“네, 알겠습니다.”

뒤돌아 상황실 중앙으로 돌아온 산자르 투르수노프 대장은 총참작전부관을 불렀다.

“네, 총참모장님!”

“호위군 중에 발 빠른 애들 몇 명 추려서 비상통로를 통해 지상 상황을 파악하도록 하게!”

“보안실에서 비상통로를 차폐문으로 막아 놓은 상태입니다.”

비상통로에는 총 4개의 차폐문을 운용되고 있었다. 만에 하나 핵폭탄 공격을 막기 위해서였다.

“그걸 누가 모르나? 정찰병들이 이동할 때 잠깐 열면 될 게 아닌가? 그리 유통성이 없어!”

“알, 알겠습니다.”

호위군 중에서 선발된 10명의 군인은 단독무장 상태로 비상통로를 따라 이동한 지 몇 분이 지난 후 스테이트 R-21 지하벙커 전체가 느낄 정도의 거대한 진동이 전해왔다.

쿠르르르르르르르릉~

지하 200m임에도 이러한 진동이 느낄 수 있다는 건, 지상에서 크나큰 충격이 가해졌다는 뜻이었다.

천장에서 흙먼지가 흩날리고 각종 조명이 깜빡였다. 이에 상황실에 있던 사람들은 저마다 놀란 눈을 하고는 서로를 쳐다봤다. 그리고 누군가가 상황실 쪽으로 헐레벌떡 뛰어왔다. 보안실 부책임자였다.

“크, 큰일입니다. 지금 엘리베이터 통로를 통해 한국 특수부대원들이 내려오고 있습니다.”

“뭔 소리인가? 그 통로는 절대 들어올 수 없다고 하지 않았나?”

총참작전부관인 그나티 투라에프 중장이 달려들어 부책임자의 멱살을 잡고는 눈을 부라리며 호통쳤다.

“그게······.”

멱살을 잡힌 상태로 얼버무리는 부책임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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