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72화 (572/605)

최후의 발악

겁에 질린 나머지 순순히 털어놓는 러시아 군인, 이후 몇 가지 정보를 더 획득한 중대장은 너부러진 상자 위에 앉고는 깊은 고민에 들어갔다.

대대로부터 인원 지원을 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 함정에 빠진 중대 대원들을 살리느냐, 아니면 현재 20명도 안 되는 인원으로 엘리베이터 통로를 따라 침투를 계속하느냐였다.

“중대장 동지! 어서 침투하디요. 시간이 없습네다.”

매사 잔인할 정도로 냉정하여 냉혈한이란 별명을 가진 화기소대장답게 중대장을 보챘다.

“3소대장은 어찌 생각하네?”

“지하 55층에 무장병력이 400명이라면 지금 우리 인원으론 부족합네다. 다소 시간은 걸리겠디만서도 일단 다른 소대원을 구출한 후 침투해야디 않겠습네까?”

화기소대장과 반대의 의견을 내놓았다. 이에 화기소대장은 목소리를 높이며 즉각 반박했다.

“3소대장! 지금 지상에서는 다른 중대가 죽음을 각오하고 시간을 벌고 있어야. 다른 소대원들을 구출하려 했다가 시간이 지체되면 푸틴 그 아새끼레 토깔 수 있어야. 그럼 죽도 밥도 안 되는 거 모르네?”

“그만들 하라우! 둘 다 일리 있는 말이야.”

쉽게 판단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중대장은 헬멧에 장착된 터키온-Xsf 통신기를 통해 중앙구역에 남아있는 통신담당 김 하사를 호출했다.

“김 하사래 아직도 다른 소대와 연락이 안 되네?”

- 중대장 동지! 계속 시도는 하고 있디만 계속 먹통입네다.

“알갔어! 계속 하라우!”

- 알갔습네다.

★ ★ ★

2024년 2월 03일 10:55, (러시아시각 04:55),

러시아 모스크바 벙커 스테이트 R-21 출입구 건물.

드르르르르르르~

타탕! 타타타타타탕! 타타탕!

지하에 침투한 91중대가 난처한 상황에 빠진 사이, 스테이트 R-21 출입구 건물을 포위한 러시아군의 맹렬한 공격을 퍼붓고 있었다.

전방 널따란 도로에는 장갑차와 전차가 진을 치고 맹렬한 포격이 이어졌고 하늘에는 모스크바 방어군 소속의 MI-24 하인드F 공격헬기 10여 기가 건물을 중심으로 돌며 건물 내부에서 77대대 대원들의 그림자만 감지해도 30mm GSh-30K 트윈 베럴 기관포와 S-24 로켓탄을 건물 속으로 작렬시키고 있었다.

현재 1층에는 92중대와 93중대가 사방에서 밀려오는 모스크바 방어군을 막고 있었고 94중대는 2층부터 5층에서 저격 및 제압사격을 가하고 있었다. 하지만 병력과 화력에서 비교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1시간에 가까운 교전을 벌이면서 상당한 수의 대원들이 크고 작은 상처를 입은 상태였다.

쿠앙! 쿠앙! 쿠앙!

하얀 연기 꼬리를 물고 날아온 로켓탄 여러 발이 건물 외벽과 충돌하면서 폭발했다. 로켓탄 파편과 함께 벽돌들이 흉기가 되어 건물 내부로 쏟아졌고 시꺼먼 연기가 실내를 순식간에 삼켜버렸다.

쿨럭! 쿨럭!

로켓탄 폭풍에 휘말린 77대대 대원 몇 명이 바닥에 나뒹굴며 숨 쉴 때마다 들어오는 먼지에 기침했다. 전투복과 보호슈트의 방탄능력에 치명상은 당하진 않았지만, 계속해서 끊이지 않고 쏟아지는 불벼락에 77대대 대원들은 죽을 맛이었다.

간혹, 창문이나 각종 포탄에 뚫린 구멍을 통해 얼굴을 내밀고 사격을 가할라치면 어김없이 쏟아지는 엄청난 양의 총탄에 반격을 가하기도 쉽지 않았다. 마치 멍석말이를 당하듯 포위된 건물 안에 갇혀 두들겨 맞는 꼴이었다.

“개미떼구만 기래! 간나 새끼들!”

건물을 향해 조금씩 전진해 오는 지상의 러시아 군인들을 보며 77대대 대대장 김민길 중령이 일갈했다. 그리고는 이내 벌어진 벽틈 사이로 총구를 내밀고 다가오는 러시아 군인들을 향해 레이저 빔을 날렸다.

쯍쯍쯍쯍쯍쯍쯍~ 쯍쯍쯍쯍쯍쯍쯍~

연발로 날아간 붉은 빛줄기는 엄폐물 사이로 뛰어가는 러시아 군인들에게 쏟아졌고 이내 몇 명이 붉은 피를 뿌리며 바닥에 쓰러졌다. 하지만 김민길 중령도 급히 뒤로 몸을 빼고 말았다.

피융! 피융! 피융! 피융! 피융!

여러 방향에서 날아온 총탄이 공기를 찢을 듯한 파공음을 내며 김민길 중령을 스치고는 뒤쪽 벽면에 박혔다.

팟 파파파팟! 파팟!

조금만 늦었어도 김민길 중령의 얼굴에 총알구멍이 날 뻔한 위험한 상황이었다. 이에 잠시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뒤돌아 누군가에게 소리쳤다.

“91중대로부터 좋은 소식은 없네?”

“조금 전, 대대급 호위병력과 교전이 벌이고 있다는 보고가 올라왔었습네다.”

“그게 다네?”

“네, 대대장 동지!”

대대 통신담당 대원의 보고에 살짝 인상을 찌푸린 김민길 중령은 살짝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91중대장에게 시간 없으니끼니 서두르라고 하라우! 알았네? 이러다가 작전 실패야! 알갔네?”

“알갔습네다.”

이때 대대통신망으로 통해 92중대장으로부터 다급한 통신이 날아왔다.

- 대대장 동지! 92중대장입네다. 까딱 잘못하다가는 돌파 당하겠시야요.

“많이 힘드네?”

- 지금, 러시아 놈들이 코앞까지 도달했습네다.

“알갔어! 94중대 인원 20명도 보낼 테니끼니 끝까지 버티라우! 돌파당하면 우리 몰살이야! 알갔네?”

- 알갔시야요. 날래 보내주시라요.

92중대장과 통신을 마친 김민길 대대장은 즉시 94중대장을 호출했다.

- 94중대장입네다, 대대장 동지!

“지금 당장 1층으로 20명만 보내라우!”

- 대대장 동지! 직승기 상대하려면 여기도 모잘랍네다.

“닥치고 보내라우! 러시아놈들에게 1층 돌파당하면 말짱 꽝이야. 알갔네? 직승기가 문제가 아니란 말이디”

- 알, 알갔습네다.

잠시 후 계단을 통해 94중대 소속 대원들이 우르르 몰려갔다.

"대대장 동지! 91중대장입네다.“

“내 통신기로 접속시키라우!”

“알갔습네다. 채널 322-11입네다.”

김민길 중대장은 컨트롤 X-K02 단말기를 조작해 채널 번호를 바꿨다. 그러자 터키온-Xsf 통신기에서 91중대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대장이야! 지금 그쪽 상황이 어떠네?”

- 대대장 동지! 현재 난감한 상황입네다.

“시간 없으니끼니 날래 본론을 말하라우!”

- 현재 지하벙커가 있는 곳으로부터 중간지점에 있습네다. 대략적인 호위병력은 모두 제압했는데 말입네다. 한가지 3개 소대가 함정에 걸려 지금 갇혀 있는 상태입네다.

“함정이라 했네?”

- 그것이 중간에 통로가 4개로 나뉘어 소대별로 진입시켰는데 말입네다. 1개가 진짜 통로고 나머지 3개는 함정용으로 만든 통로였습네다. 지금까지 확인한 바로는 갇힌 통로 3개에 GB가스를 살포되었다고 합네다.”

"GB? 사린 말이네?“

- 그렇습네다.

“기래서”

- 기래서라기보다, 대원들을 먼저 구출을 하고 최종 목적지로 가야하는디 아직 결정하디 못한 상태입네다.

“야이~ 간나 새끼야! 지금 그걸 말이라 하네? 작전 중에 임무가 우선이디 안네? 여기도 지금 다 죽겠생겼어야. 당장 침투해서 푸틴 모가지를 따든 말든 하라우! 알갔어?”

- 알, 알갔습네다.

통신을 마친 김민길 중령은 바닥에 너부러져 있는 뭔가를 발로 냅다 걷어 차버리며 일갈했다.

“병신 같은 아새끼래~”

이때 특유의 기계음이 들리는가 싶더니 건물 왼쪽부터 수평을 그으며 수백 발에 달하는 탄들이 쏟아져 날아왔다.

드드드드드드드드드드드드득~ 드드드드드드드드드드드드득~

“엎드리라우!”

본능적으로 바닥에 엎드린 김민길 중령은 머리를 숙이고 양팔로 머리를 감싸다. 그리고 엎드리기 전 얼핏 본 바라로는 멀지 않은 거리에서 MI-24 하인드F 공격헬기 2기가 호버링 상태로 4층 곳곳을 향해 집중적인 사격을 가하고 있었다.

팟팟팟~

MI-24 하인드F 공격헬기에서 토해내는 30mm 기관포탄의 위력은 실로 대단했다. 벽이건 뭐건 모든 걸 박살 냈다. 실내에 세워진 돌기둥 역시 커다란 구멍이 나거나 파헤쳐져 철골조마저 보일 정도였다.

한편, 1층 역시 난리도 아니었다. 94중대 소속 20명이 지원을 갔지만, 사방에서 밀려드는 모스크바 방위군을 비롯해 뒤쪽에서 제압사격을 가해오는 전차 포탄과 장갑차에서 뿌리는 엄청난 양의 탄들이 77대대 대원들을 괴롭혔다.

쿠우아아앙! 쿠르르르르르!

큰 도로와 연결된 현관 앞, 전차 포탄 한 발이 날아와 폭발했다. 거대한 먼지구름이 사방을 삼켰고 고막을 찢을듯한 굉음이 천지를 진동시켰다. 그리고 현관 지붕을 지탱하고 있던 사각기둥 4개가 힘없이 쓰러지자 지붕 역시 우르르 무너져내렸다.

타타타타탕! 타타타타탕! 타타타앙!

이렇듯 잣은 폭발에 잠시간 반격을 가하지 못하는 사이 모스크바 방위군들이 30m까지 접근하는 데 성공, 각종 엄폐물 뒤에서 개인화기로 사격을 가해거나 수류탄을 던지기까지 했다.

“이거이 실패하갔어!”

뿌연 먼지를 휘저으며 포복으로 반쯤 무너져 내린 바닥 아래로 지상 상황을 보던 김민길 중령이 쓰디쓴 미소를 보이며 푸념했다.

“대, 대장 동지!”

어디선가 신음과 함께 대대장을 불렀다.

“누구네?”

“저, 저입네다.”

뿌연 연기 사이로 대대 작전참모 박만진 소령이 절뚝거리며 다가오고 있었고 머리에서는 검붉은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다쳤네? 오지 말고 엎드리라우! 아직 직승기들이 우리를 노리고 있어야!”

이에 박만지 소령은 힘없이 바닥에 주저앉으며 힘겹게 숨을 내쉬며 말했다.

“죄송합네다. 직승기 공격에 당해버렸습네다. 내래! 잠시 쉬, 쉬어야겠습네다.”

“그게 뭔 소리네? 정신 똑바로 차리라우!”

다급히 포복으로 박만진 소령에게 다가간 김민길 중령! 힘없이 앉아있는 박만진 솔영의 눈은 풀려있었고 호흡도 갈수록 거칠어졌다.

“많이 다쳤네?”

박만진 소령을 천천히 바닥에 눕힌 김민길 중령은 즉시 컨트롤 X-K02 단말기로 자가진단 프로그램을 돌렸다.

잠시 후 컨트롤 X-K02 단말기 화면에서 자가진단 결과가 데이터로 보였다.

“이런 제기랄!”

심각했다. 충격에 따른 심각한 뇌진탕으로 내출혈이 곳곳에 발생했고 왼쪽 보복에도 관통상에 따른 내장혼상이 있었다. 이로인해 맥박과 심장박동이 느려지고 있었다.

“박 소령! 조금만 참으라우! 이대로 가면 안 되야! 알갔네? 내 눈 똑바로 보라우!”

남북통일 전부터 한 부대에서 10여 년간을 함께 동고동락했던 부하이자 동료인 박만진 소령이 숨을 헐떡거리는 모습에 김민길 중령은 울먹이며 축 처진 육체를 마구 흔들었다.

하지만, 박만진 소령은 끝내 두 눈을 뜬 채로 전사하고 말았다. 김민길 중령의 옷깃을 잡고 있던 오른손이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안돼! 박 소령! 이대로 가면 안덴말이네. 일어나라우! 명령이야!”

악에 받친 고함을 내지른 김민길 중령은 이성을 잃었는지 순간 벌떡 일어나더니 자신의 CS2 레이저 라이플을 움켜쥐고는 그대로 무너져버려 휑한 벽으로 다가가 호버링 상태로 1층을 향해 무지막지한 기관포탄을 날리는 MI-24 하인드F 공격헬기를 향해 총구를 지향했다.

그리고 막 방아쇠를 당기려는 그때, 하늘에서 푸른 빛줄기가 그어지는 듯하더니 MI-24 하인드F 공격헬기가 폭발했다.

쿠아아앙!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공중분해가 되어버린 MI-24 하인드F 공격헬기의 파편이 사방으로 비상했다.

순간 멍해진 김민길 중령은 어두운 하늘에서 여러 개의 빛줄기가 빠르게 다가오는 것을 실드 글라스를 통해 확인했다.

“뭐네? 우리 아군이네?”

멍한 상태로 중얼거리는 그때, 순식간에 근접 거리까지 다가온 여러 개의 빛줄기는 여러 방향으로 갈라지며 지상을 향해 무지막지한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이들의 정체는 제12항모전단 소속 백범김구함(CV-001)에서 출격한 무인전투기 CUF/A-22NP 피닉스였다. 그동안 러시아 남부전선과 우크라이나 내전에서 공중지원 임무를 수행하던 CUF/A-22NP 피닉스 8기가 이곳 모스크바 상공에 출현한 것이었다.

보통 장거리에서 각종 미사일과 폭탄을 투여하던 CUF/A-22NP 피닉스는 육안으로도 볼 수 있는 근접비행 하고 있었다.

혹, 아군이 머무는 건물에 대한 오폭을 우려해 최대한 근접비행으로 정확히 적군을 타격하기 위해서였다.

쉬이이이이이! 슈웅! 슈웅!

콰앙! 콰앙아!

널따란 도로 위에서 진을 치고 건물을 향해 맹렬히 포격을 가하던 전차 여러 대가 하늘에서 쏟아지는 빛줄기를 맞자 거대한 불기둥을 피우며 폭발했다. 현란한 고기동을 하면서도 엄청난 스피드로 비행하며 지상의 적군만 정확히 공격하는 CUF/A-22NP 피닉스를 본 김민길 중령의 두 눈에서는 어느새 의미를 알 수 없는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