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발악
2024년 2월 03일 10:45, (러시아시각 04:45),
러시아 모스크바 벙커 스테이트 R-21 1번 지하 1번 통로.
무색무취의 GB가 가득한 통로, 방독면을 써주고 해독제를 투여하여 중독된 대원들이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리자 1소대장은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움직일 수 있갔네?”
“소대장 동지! 부축하면 움직일 수 있을거 같습네다.”
“기래? 그럼 바로 이동하자우, 감염된 이곳에서 지체했다가는 우리도 위험할 수 있어야.”
“알갔습네다. 애들 부축하라우!”
부소대장의 명령에 대원들이 쓰러져 있는 대원들을 부축하며 일으켰다.
“가자우! 오 중위! 네가 앞장 서라우!”
“알갔습네다.”
대답과 동시에 오 중위는 반대편 방향으로 뛰기 시작했다. 이어 1소대장이 뒤따라갔고 나머지 대원들은 중독된 대원들을 부축하며 이동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먼발치에서 앞서가던 오 중위가 통신망으로 보고했다.
- 소대장 동지! 뒤돌아가는 길도 막혔습네다.
“뭔 소리네?”
- 거대한 철문이 막고 있습네다.
“철문? 올 때 그런 거 없지 않았네?”
- 그러게 말입네다. 이거이 완전히 닫힌 듯합네다.
“기다리라우”
“나먼지 갈테니끼니 따라오라우”
뒤돌아 부축하는 대원들에게 알린 소대장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불빛 하나 없는 깜깜한 통로를 적외선 비전모드로 보며 소대장이 달려오자 손바닥으로 철문을 이리저리 만지던 오 중위가 고개를 돌려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보시라요. 철문 두께가 심상치 않습네다.”
1소대장은 천천히 여기저기 철문 곳곳을 확인하고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이거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C-4폭탄으로도 안되겠구만, 아주 골치아푸게 되어야!”
오 중위 말만 따라 철문을 통로를 막고 있는 철문은 예사롭지 않아 보였다.
“어떻게 합네까? 반대쪽에 있는 중대와도 연락이 안 되는데 말입네다.”
오 중위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말하는 그때, 중독된 대원을 부축하던 나머지 소대 일원도 도착했다.
“부소대장! 일단 바닥 제독하고 애들 눕히라우! 철문에 길을 막혀서 뭔가 수단을 강구해야갔어!”
BG가 가득한 통로에서 오도 가도 못하게 된 엿 같은 상황에 1소대장은 이마의 주름을 깊이 새기며 깊은 생각에 들어갔다.
그 시각, 중앙구역에서 대기하고 있던 중대장은 3번 통로를 제외한 나머지 통로로 진입한 소대와 연락이 되지 않자 상당히 초조한 상태였다.
“아직도 연락이 안되네?”
“네, 먹통입네다. 중대장 동지!”
중대장 본인 헬멧에 장착된 터키온-Xsf 통신기로도 연락이 안 되자 광역통신기를 운용하는 통신담당 대원에게 재차 묻고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기에 갑자기 통신이 먹통이 된기야?”
“강력한 전파가 흐르던가 아니면 뭔가 차단된거 같습네다.”
“낭패구만! 인원도 모잘라 보낼 수도 없고 말이디”
이때 3번 통로로 진입했던 3소대로부터 다급한 통신이 날아왔다.
-3소대장입네다. 이쪽 저항이 만만치 않습네다. 지원해줄 수 있습네까?“
“기다리라우~ 그리로 즉각 가갔어!”
-알갔습네다.
통신을 마친 중대장은 화기소대장을 향해 손짓하며 말했다.
“화기소대장! 3번 통로로 지원하러 가자우!”
“알갔습네다.”
통신이 끊긴 3개 소대가 걱정이긴 했지만, 지체할 상황이 아니라 판단한 중대장은 일단, 3소대를 지원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각종 중장비를 들거나 메고 있던 화기소대가 뛰기 시작했다. 뒤이어 뛰어가던 중대장은 자신 뒤에서 바짝 붙어가던 통신담당 나 하사를 불렀다.
“김 하사는 여기서 대기하며 나머지 소대와 계속 통신시도하고 연결되면 즉각 보고 하라우 알갔네?”
“알갔습네다. 조심하라요.”
통신담당 김민재 하사를 뒤로하고 중대장은 화기소대를 따라 3번 통로로 진입했다.
다다다다다다! 다다다다다다!
수백 미터에 달하는 어두운 통로를 따라 뛰어가던 중대장과 화기소대는 어느덧 통로 끝쪽까지 도달했다.
전방에서는 격렬한 총성이 끊이지 않고 울려댔다. 3소대장 말대로 러시아 군인들의 저항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들려오는 총성으로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고막을 파고들고 있었다.
투아앙! 타타타타타아아앙! 타타탕!
“화기소대장! 도착하는 즉시 중화기 설치하고 갈기라우!”
“도착하는 즉시 중화기 설치하고 갈기라우!”
통로 끝, 축구장 크기만 한 널따란 공간이 중대장의 눈에 들어오자 화기소대장에게 명령을 하달했다.
“알갔습네다.”
잠시 후 통로를 빠져나온 화기소대는 전방에서 교전을 벌이고 있는 3소대쪽으로 다가간 후 각자 엄폐물에 몸을 숨기고 즉시 CS6A 레이저 머신건을 조립했다. 보통 장갑차나 차량에 장착되어 운용하는 CS6 레이저 머신건을 휴대용으로 개조한 개량형이었다.
철컥!
철컥!
드드드드드드드륵! 드드드드드드드륵!
어디선가 기관총에서 쏟아지는 탄환이 최대한 몸을 낮추고 조립하는 화기소대 대원들의 머리위를 스치며 날아갔다.
팟팟팟팟!
날아간 기관총 탄환들이 바닥과 벽면을 훑으며 불꽃을 터졌다.
“얼마나 되네?”
어느 순간 3소대장 옆으로 다가간 중대장이 철재로 만들어간 난간벽 위로 머리만 살짝 내밀며 물었다.
“적어도 대대급 이상입네다.”
“대대급? 300명이 넘었다는 거네?”
“네, 기래도 음파탄을 모두 소진한 결과 반 이상은 해치웠시야요. 하디만 계속 밀려오고 있어서리 어쩔 수 없이 지원요청하게 되었습네다.”
“고생했겠구만 기래!”
“다른 소대는 어떻습네까?”
“말도 말라우! 나머지 소대는 연락두절상태야”
“그렇습네까? 일단 이쪽 교전에 신경쓰자우”
“알갔습네다.”
빗발치는 총알 세례 속에서 중대장과 3소대자이 짧게나마 대화를 하는 사이 화기소대장으로부터 통신이 날아왔다.
- 중대장님! 제압 들어갑네다.
“알갔어! 사정없이 갈기라우!”
휴우우우우우!
휴우우우우우!
제압사격에 앞서 화기소대는 가지고 있던 C-51 음파탄을 전방을 향해 시간차를 두며 던지기 시작했다.
포물선을 그으며 날아간 첫 번째 음파탄이 작은 폭발과 함께 강렬한 충격파를 발산했다. 공중에서 발산한 충격파는 엄폐물 뒤에 숨어 총격을 가하는 러시아 군인들을 날려버리며 기절시켰다.
파아아앙! 파아아앙! 파아아앙! 파아아앙!
뒤이어 날아간 음파탄이 연달아 터지자 일순간 총성이 멈췄다. 그리고는 여지없이 CS6A 레이저 머신건 빛줄기가 빨랫줄처럼 뻗어가며 닥치기는 대로 걸레 조각으로 만들었다.
“전진하라우!”
이때를 놓칠세라 중대장이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3소대 대원들이 가격을 가하며 앞으로 뛰어갔다.
쭈웅!쭈웅!쭈웅!쭈웅!쭈웅! 쭈웅!쭈웅!쭈웅!쭈웅!쭈웅!
화기소대의 지원 덕에 200여 명에 달하던 러시아 군인의 수는 급격히 줄어들었다. 12mm 레이저 빔은 각종 엄폐물을 쉽게 뚫고는 러시아 군인들을 걸레로 만들었다.
머리에 맞은 군인은 수박 터지듯 붉은 피와 뇌수가 사방으로 뿌렸고 몸통에 맞은 러시아 군인들은 커다란 구멍이 각종 신체장기 찌꺼기를 바닥에 뿌리며 쓰러졌다.
이렇듯 잔인한 장면이 이곳 널따란 공간에서 한동안 펼쳐졌고 어느 순간, 요란했던 총성도 현저히 잦아들었다.
중대장의 실드 글라스에 피아식별로 표기된 러시아 군인은 이제 고작 12여 명뿐이었다. 그리고 이들 역시 전세가 기울었다는 것을 직감했는지 저마다 개인화기를 바닥에 내려놓으며 손을 올리고는 항복 의사를 보였다.
“사격 중지하라우!”
중대장의 명령에 일순간 레이저 빛줄기가 멈추자 러시아 군인들은 잔뜩 겁먹은 표정을 지은채 손을 들고 앞으로 천천히 나왔다.
“중대장 동지! 그냥 갈겨버리디요. 살려둬야 짐밖에 더 되겠습네까?”
어느 순간, 중대장에게 다가온 화기소대장이 귓속말을 건넸다.
“그전에 정보는 빼야디 안갔어?”
“아 그렇디요.”
3소대 대원 여럿이 달려들어 항복한 러시아 군인들 몸수색을 들어갔고 잠시 후 양손을 묶은 상태로 한쪽 바닥에 무릎을 끊게 만들었다.
“여기서 최고선임이 누구네?”
컨트롤 X-K02 단말기에서 통역된 러시아 말이 흘러나왔다. 그러자 러시아 군인들 무리 속에서 한 명이 말했다.
“접니다.”
“나오라우!”
무리속에서 40대로 보이는 중년의 남자가 일어섰고는 앞으로 나왔다.
“소속과 계급이 뭐네?”
“스테이트 R-21 경계연대 연대장 이그나티 투라에프 대령이오.”
순간, 중대장 김성철 대위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중대장 동지! 이거이 월척이지 않습네까? 기껏 대대장 정도는 되겠디 했는디만 연대장이라니······. 고급정보를 획득할 수 있겠습네다. 하하”
조금 전까지 갈겨버리자며 잔인한 미소를 보였던 화기소대장이 도리어 좋아 죽을라 했다.
“이그나티 투라에프 대령! 내래 묻는 말에 대답만 잘하면 살려주갔어! 알갔네?”
한쪽 눈을 치켜뜨며 이그나티 투라에프 대령을 쏘아본 중대장은 천천히 다가가 다시금 말을 걸었다.
“현재 푸틴이 있는 곳이 어디네? 확실하게 정보를 제공하면 당신은 물론 부하들 목숨은 건지는 기야.”
중대장의 반협박성 발언에 이그나티 투라에프 대령은 고개를 살짝 내렸다. 뭔가 깊은 고민에 들어간 듯했다.
“시간 없어야! 아는 대로 이실직고 하라우!”
하지만 이그나티 투라에프 대령은 바닥만 보채 꿈쩍하지 않았다. 이에 중대장은 3소대 대원 한 명에게 고개를 까딱거리면 신호를 보냈다. 이에 3소대 대원은 무슨 뜻인지 아는지 허리춤의 홀스터에서 CS5 레이저 피스톨을 꺼내 들고는 가장 앞에 있는 젊은 러시아 군인 머리에서 총구를 갖다 댔다.
“내래 다시 한번 말하디만, 우리는 시간이 별로 없어야! 정 네가 말하기 싫으면 다 죽여주갔어.”
다시 한번 엄포를 내놓은 중대장의 말에 이그나티 투라에프 대령은 천천히 고개를 들고는 입을 열었다.
“조국을 배신할 순 없습니다.”
쭈웅!
이그나티 투라에프 대령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젊은 러시아 군인 외마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그대로 바닥에 꼬꾸라졌고 뚫린 머리에서 검붉은 피가 쏟아져 바닥을 젖혔다.
그리고 방금 CS5 레이저 피스톨의 방아쇠를 당긴 3소대 대원은 또 다른 러시아 군인의 머리에 총구를 갖다 댔다. 그러자 그 군인은 울먹이며 부들부들 떨었다.
“시간이 없으니끼니 이렇게 하자우! 이 인간 대신 말할 놈이 있으면 그놈만 살려주갔어!”
중대장의 말이 허언이 아니라는 것을 조금 전 자신의 눈으로 확인한 러시아 군인들의 눈동자들이 마구마구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렇게 짧게나마 서로의 눈치를 보며 흔들리던 러시아 군인들은 순간 자신이 말하겠다면 소리치기 시작했다.
“제가 말하겠습니다.”
“제가 더 잘 압니다.”
“모들걸 말하겠습니다. 살려주세요.”
“저요. 제가 말할게요.”
무릎 끊은 상태로 아우성치는 러시아 군인들을 향해 중대장이 엷은 미소를 보이고는 그대로 자신의 홀스터에서 CS5 레이저 피스톨을 꺼내 들고는 방아쇠를 당겼다.
쭈웅!
단발성 레이저 빛줄기 빔성이 울린 후 이그나티 투라에프 대령의 고개가 뒤로 크게 젖혀지며 쓰러졌다.
순간 아우성치며 자신이 말하겠다던 러시아 군인들은 경악에 가까운 공포의 표정을 지으며 얼어붙었다.
“좋아! 너! 네가 말해보라우!”
중대장은 가장 앞에 있는 러시아 군인 하나를 지명했다.
“푸틴 대통령은 현재 이곳으로부터 지하 55층에 계십니다.”
“뭐야? 이곳이 끝 아니었네?”
“아닙니다. 저쪽에 있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30여 미터를 더 내려가야 합니다.”
자백하는 러시아 군인이 가리는 곳을 바라본 중대장은 그곳에 여러 개의 엘리베이터 문이 있는걸 확인했다.
“저거 다 운용되는 거야?”
“네, 운용됩니다만, 저 엘리베이터는 보안실에서 컨트롤하여 지금은 작동되지 않습니다.”
“아! 갈수록 첩첩산중이 아니네? 3소대장! 엘리베이터 확인해보라우!”
“알갔습네다.”
3소대장에게 지리를 내린 중대장은 다시 한번 러시아 군인에게 질문을 던졌다.
“지하 55층엔 호위병력이 얼마나 되네?”
“현재 55층엔 1개 대대가 있습니다.”
“대통령 경호원들은?”
“100여 명정도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음, 그렇다면 400여 명정도 되는구만 기래!”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인 중대장은 계속해서 질문을 이어갔다.
“그렇다면 말이디, 푸틴이 있는 지하 55층에서 이곳 말고 다른 통로가 또 있네?”
“네, 비상통로가 하나 더 있습니다.”
“어디네?”
“그건 저도 잘 모릅니다. 정말입니다.”
“죽고싶네?”
“정, 정말입니다. 그건, 보안실에서만 알고 있습니다.”
“알갔어! 그럼말이디, 이곳에 오기 전에 4개 통로가 있었는데, 4개 통로 모두 이곳으로 이어지는거 아니었네? 아니면 다른 곳으로 연결된 거네?”
“아! 그, 4개 통로 중 저곳 말고 나머지 3곳 통로는 함정 통로입니다.”
“함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