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70화 (570/605)

최후의 발악

2024년 2월 03일 10:30, (러시아시각 04:30),

러시아 모스크바 벙커 스테이트 R-21 지하통로.

20여 분에 걸쳐 지하벙커 주 통로까지 도달한 77대대 91중대는 내려오는 동안 중간중간, 튀어나온 러시아 군인들과 치열한 교전을 치렀으나, 큰 피해 없이 내려왔다.

소형 차량 두 대가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널따란 주 통로 양쪽 측면에는 널따란 공간이 있어서 그곳에서 경계 임무를 수행하는 러시아 군인들의 간헐적인 저항을 해왔지만, 강력한 보호 슈트 덕과 TCS 모드 기능을 적절히 사용하며 제압해 나갔다.

쭈웅!쭈웅!쭈웅!쭈웅!쭈웅!

선두에서 달리던 대원들은 천장에 매달리 조명과 벽면에 달린 CCTV 카메라를 모조리 박살 내며 앞으로 나아갔다.

이때 고막을 찢을듯한 강렬한 총성이 터널 같은 주 통로를 가득히 매웠다.

투투투투투투퉁! 투투투투투투퉁! 투투투투투투퉁!

공기를 찢을듯한 파공음과 묵직한 총성으로 보자면 적어도 12.7mm급의 중기관총이었다.

“피! 피햇! 벽으로 붙으라우!”

일갈하며 급히 벽면에 붙은 중대장의 실드 글라스로 보이는 전방상황은 이랬다. 100여 미터 떨어진 통로 양측에 마련된 공간에서 총구만 내민 중기관총이 불꽃을 터뜨리고 있었다. 아마도 중간 경계구역으로 만들어진 공간인 듯했다.

크억! 헉!

쏟아지는 총탄에 맞은 대원들이 신음을 토하며 바닥에 나뒹굴었다. 보호슈트 덕에 관통은 당하지 않아 생명엔 지장이 없지만, 순간 밀려오는 고통에 그만 중심을 잃고 넘어진 듯했다. 아무리 보호슈트가 방탄과 충격흡수 기능이 탁월하다고 해도 12.7mm 탄을 근거리에서 맞으면 그 고통은 상당했다.

쏟아지는 철갑탄 속에 예광탄이 마치 레이저 빛줄기처럼 보이며 통로를 스치며 날아갔다.

파팟! 파팟! 파파파팟!

착탄한 총탄에 바닥과 벽면에 불꽃이 튀었다.

불꽃을 터뜨리며 총구에서 쏟아지는 철갑탄 중에 끼어있는 예광탄은 마치 빛줄기처럼 보이며 어둡고 기다란 터널을 스치며 날아갔다.

“선두 뭐하네? 음파탄 날리라우!”

“알갔습네다.”

중대장의 명령에 선두에서 달리던 대원 하나가 전투 조끼에 달려있던 수류탄 같은 것을 움켜쥐고는 곧바로 안전클립과 안전핀을 제거한 후 전방을 향해 던졌다.

휘리리릭!

탁! 탁! 탁! 떼구르르르르~

피윳! 파아앗!

손에서 떠난 음파탄은 기다란 통로를 따라 날아가 벽면과 바닥에 연달아 튕기고는 몇 번 구르다가 멈췄다. 그리고는 작은 진동과 함께 순간적으로 공중도약을 하더니 폭발과 함께 강렬한 충격파를 방출했다.

음속에 가까운 강렬한 충격파가 앞뒤 통로를 따라 휩쓸고 지나가자 양쪽 측면에서 무지막지한 사격을 가하던 중화기 사수는 물론 러시아 군인들은 순간적으로 정신을 잃고는 그대로 바닥에 꼬꾸라졌다.

보통, 인질구출작전 시 인질의 생명을 담보하기 해서 비살상 제압용으로 개발된 모델명 C-51 음파탄은 실내나 좁은 통로에서 붕괴위험 없이 적들을 제압하기에 이것보다 좋은 무기는 없었다.

시끄럽게 울려대던 총성이 일순간 조용해졌다.

“중대장 동지! 전방 제압 했습네다.”

“그러티며 지체하디 말고 앞으로 가라우!”

선두 대원의 보고에 91중대장은 칭찬은커녕 더욱 부하들을 다그쳤다. 이에 대원들은 다시금 어둠 속을 향해 앞으로 뛰어갔다.

이렇게 수백 미터에 달하는 긴 통로를 달리면서 이와 같은 교전이 한 번 더 일어났으나 음파탄의 효과를 또다시 보며 주 통로 끝에 도달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선두에서 뛰어가던 1소대장으로부터 난감함이 묻어있는 목소리가 통신망을 타고 들어왔다.

- 중대장 동지! 이거이 곤란하게 되었습네다. 통로가 여러 갈래입네다.

- 몇 개나 되네?

- 4개입네다.

- 4개라 했네?

- 그랗습네다.

- 알갔어 사주경계하고 기다리라우.

스테이트 R-21 경우 지상으로부터 연결된 통로는 크게 3개였다. 하나는 전용 엘리베이터로 연결된 통로와 비상계단 통로, 그리고 핵 공격 시를 대비한 지하이동 통로였다.

현재 전용 엘리베이터는 완전히 박살 난 상태로 운용할 수 없었고 77대대 91중대는 비상계단을 이용해 지하까지 내려온 상태였다. 그리고 지금, 1소대장이 난감해하며 서 있는 곳은 중앙구역으로 이곳에는 총 4개의 통로가 연결되어있었지만 1개만 지하벙커로 연결된 통로였고 나머지 3개는 외부 침입을 대비한 위장통로였다.

가짜 통로는 수백 미터에 달했고 끝은 막혀있었다.

“이 간나새끼들은 개미들이네 뭐네? 땅굴을 이리 복잡하게 파놓은 거네?”

눈살을 찌푸린 91중대장은 나란히 연결된 4개 통로를 차례대로 확인했다. 적외선 모드로 보는 4개 통로는 끝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었고 모두 똑같아 보였다.

“중대장 동지! 어찌합네까?”

“뭘 어찌하네? 소대당 하나씩 맡고 5팀은 여기서 대기하다가 지원하는 것으로 해야디 않캈어?”

“그것보다 다른 중대가 합류하면 나눠서 진입하는 게 어떻겠습네까?”

이에 91중대장은 한쪽 눈을 치켜뜨며 질타했다.

“1소대장은 무선소리 못 들었네? 합류 같은 소리 하디 말라우”

20분 전, 스테이트 R-21를 목표로 작전에 투입된 제21공수육전사단 소속 77대대는 격렬한 저항을 뚫고 지바벙커와 연결된 건물까지 진입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 이후가 문제였다.

순간적인 기습공격에 한쪽이 무너지면서 건물을 내주었던 벙커 경계군은 물론 모스크바 방어군 병력이 증원되면서 지금은 1만 명에 가까운 병력이 건물을 포위한 공격 해오고 있었다. 이러한 이유로 91중대를 제외한 나머지 중대는 건물 방어에 집중 중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이곳 지하통로에는 91중대 병력만 투입된 상황으로 당분간 추가 지원은 받을 수 없는 상태나 마찬가지였다.

“기래도 이거이 소대라 해봤자 10명이디 않습네까? 안쪽에 얼마나 많은 병력이 있는지도 모르는데······.”

“거 말이 많구만기래! 그런 거 하나하나 따져서 언제 푸틴 모가지를 따갔어?”

두 눈을 부라리는 중대장의 질책에 1소대장은 더는 대꾸하지 못했다.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날래 들어가라우!”

재차 이어지는 중대장의 명령에 1소대장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부하들에게 손짓하며 맨 왼쪽에 있는 입구로 달려갔다. 이에 부하들도 뒤따라갔다.

이때 77대대장으로부터 통신이 날아왔다.

- 대대장이야! 그쪽은 어떠네? 지하벙커까지 진입했네?

“91중대장입네다. 그거이 지하벙커로 연결된 통로가 여러 개라 소대별로 투입된 상태입네다.

- 시간 없어야! 간나새끼들이 개떼처럼 몰려오고 있어야! 최대한 막아보도록 할테니끼니 서두르라우!

“알갔습네다. 대대장 동지!”

대대장의 목소리에서 다급함이 묻어있었다. 이제부터는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 ★ ★

2024년 2월 03일 10:35, (러시아시각 04:35),

한편 그 시각 러시아 모스크바 벙커 스테이트 R-21(보안실).

한국 특수부대 출현으로 발칵 뒤집힌 스테이트 R-21, 특히 이곳 보안을 책임지고 있는 보안실 책임자인 아지즈벡 카파제 대령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CCTV 카메라에 비친 영상을 하나하나 주시하고 있었다.

“현재 한국군 제2구역 초입까지 침투했습니다.”

운 좋게 살아남은 CCTV 카메라 1대가 제1구역으로 보이는 기다란 주 통로를 이동한 후 4개 통로로 갈라지는 중앙구역에서 갈팡질팡하는 한국 특수부대 모습을 비치고 있었다.

잠시 후 지휘관으로 보이는 자가 뒤늦게 중앙구역에 도착하고는 4개 통로를 가리 켜며 지리는 내리는 듯하더니 이내 분대급 규모로 각자 통로로 진입했다.

“한국군 소규모 병력으로 제2구역 4개 통로로 진입 중!”

보안실 운용병의 보고에 아지즈벡 카파제 대령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뭔가 만만의 준비가 되어있다는 듯한 분위기를 풍겼다.

이때, 총참모부 소속 장성 하나가 보안실에 들어와 다급히 물었다.

“현재 어떤 상황인가?”

총참작전부관 이그나티 투라에프였다.

“현재 제2구역으로 진입하고 있습니다.”

“2구역까지?”

“네 3번 모니터입니다.”

제2구역 초입이라 할 수 있는 중앙구역에 분대급 규모의 병력만 남은 채 나머지 병력이 4개 통로로 이뤄진 제2구역으로 진입 중이었다.

“뭔가 저 인원이 다인가?”

“네, 중앙구역에 남은 10명을 제외하면 현재 4개 통로로 진입하고 있는 병력은 대략 40명 정도입니다.”

“뭐야? 고작 저 인원 때문에 일급경계발령이 났단 말이야?”

현재 상황실에서 대기 중인 푸틴 대통령의 분노는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로 인해 총참모장을 비롯해 군 지휘관들이 온갖 욕을 먹었는데 고작 50명밖에 안 되는 인원 때문에 이런 사달이 났다는 것에 어이 상실이었다.

“한국 특수부대가 보유한 장비 덕에 여기까지 투입할 수 있었던 거 같습니다.”

“뭐든 간에 어서 처리하게”

“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2구역 1번, 2번, 4번 통로는 보안시스템이 가동되는 구역입니다. 이제 저 쥐새끼들은 죄다 죽음 목숨입니다.”

“보안시스템? 뭘 말하는 건가?”

“잠시 4번 모니터를 봐주시기 바랍니다.”

3개로 분할 된 4번 모니터에는 적외선 카메라로 촬영된 듯 녹색 바탕에 붉은 체온으로 잡히는 인형들이 신속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제 시작하지! 1번, 2번 4번 보안시스템 가동한다.”

“네! 제2구역 1번, 2번, 4번 보안시스템 가동합니다.”

운용병 하나가 복명복창을 하며 콘솔 장비를 조작했다. 그러자 웅장한 기계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우우우우웅!

“대령님! 1번, 2번, 4번, 통로 차폐문 닫혔습니다.”

“좋아! 살포해!”

“네!”

★ ★ ★

2024년 2월 03일 10:40, (러시아시각 04:40),

러시아 모스크바 벙커 스테이트 R-21 1번 지하통로.

“뭐이네 이거?”

어두운 통로를 한참이나 달렸던 1소대는 막힌 통로 끝에서 허망한 표정을 짓자 막힌 벽을 이리저리 살피던 부소대장이 뒤돌아보고는 말했다.

“막힌 듯합네다.”

“가짜 통로였구만 기래! 이 종간나 새끼들! 개고생해서 달려왔더니만, 돌아가자우!”

“그러디요. 소대장 동지!”

우우우우우웅!

순간 뒤쪽에서 기계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이에 1소대 대원들이 일제히 뒤돌아왔다.

“뭔네?”

“철문입네다. 닫힌 듯합네다.”

맨 뒤쪽에 있던 대원 하나가 철문이 닫히는 걸 보고는 소리쳤다.

“이런 함정이네? 어서 가서 뚫으라우!”

“알갔습네다.”

1소대 대원 중 유독 커다란 배낭을 메고 있던 대원 하나가 급히 뒤쪽 통로로 달려가려는 그때 사방에서 무색무취한 뭔가가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곧바로 왼팔에 차고 있던 컨트롤 X-K02 단말기에서 경보음이 울렸다.

삐!삐!삐!삐!삐!삐!삐!

“이건 뭐야?”

갑작스러운 경보음에 자신의 컨트롤 X-K02 단말기 화면을 본 소대장의 두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크게 떠지고 말았다.

요란한 경보음을 내는 컨트롤 X-K02 단말기 화면에는 ‘GB’ 글씨가 깜빡이고 있었다.

“GB다. 방독면 쓰라우!”

외침과 동시에 방독면을 꺼내 착용한 소대장! 하지만, 몇 명 대원은 방독면을 착용하기도 전에 가스를 들이마셨는지 순간 자신의 목을 부여잡고는 사지를 뒤틀며 바닥에 나뒹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모든 구멍에서 분비물을 쏟아지고 있었다.

쿠어어억! 쿠켁!

GB는 신경가스 중의 하나인 사린이었다. 호흡근을 움직이는 교감신경을 차단하여 호흡기를 마비시켜 호흡 장애로 사망하게 하는 끔찍한 생화학 무기로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이 화학병기로 처음 사용했으며, 1980~88년 이란-이라크 전쟁에서 이라크군이 사용하였다. 특히 1994년 나가노현의 마츠모토와 1995년 도쿄에서 옴진리교도가 도시 및 지하철 독가스 테러로 사용하여 대중에게 많이 알려진 신경가스 중의 하나였다.

“뭐하네? 어서 해독제 투여하라우!”

소대장의 일갈에 방독면 쓰고 당황하던 대원들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는 허리춤에 달린 제독킷에서 해독제 주사기를 빼 들고는 바닥에 쓰러져 발버둥을 치는 동료의 허벅지에 사정없이 꽂아버렸다.

이러한 장면은 2번 통로와 4번 통로에서도 똑같이 일어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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