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66화 (566/605)

애원하는 일본

2024년 1월 30일 17:00,

남주 서울특별시 용산구 국립중앙의료센터(VIP 병동 301호 특실).

전날, 이혜진으로부터 이자성이 크게 다쳤다는 소식을 듣고 아침 일찍 병문안을 오려고 했으나, 이혜진이 알아본 봐, 지금은 특수 재활치료를 받고 있어서 면회가 불가하다는 연락을 받았다. 하지만 남궁원의 끊길진 요구에 이자성의 주의치는 오후에 잠깐 면회할 수 있도록 허락했다.

이에 남궁원은 이혜진과 함께 허락된 시간에 맞춰 국립중앙의료센터 VIP 병동을 방문했다.

남궁원 역시 이곳 VIP 병동에 입원했던 경험이 있는 탓에 어렵지 않게 301호를 찾을 수 있었다.

301호실 문 앞에서 선 남궁원은 담당 의사로부터 몇 가지 당부를 기억하며 길게 숨을 내쉬며 노크를 했다.

똑똑똑

“들어오세요”

특실 안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분명 자신의 절친한 친구인 이자성이었다.

“나다. 남궁원”

남궁원은 밝은 표정으로 문을 열고 들어갔다.

“어? 원! 어떻게 알았어?”

침대에 누워있던 이자성이 밝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하지만, 남궁원은 순간 얼어붙고 말았다. 이에 이혜진이 손가락으로 남궁원의 뒤쪽 허리를 가볍게 찔렀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남궁원은 어정쩡한 자세로 이자성에게 다가갔다.

남궁원의 눈에 보인 이자성의 모습은 이랬다.

침대에 누워있는 이자성의 오른팔은 터미네이터 영화에서 나올듯한 로봇팔이 붙어 있었다. 이에 남궁원이 순간적으로 놀라며 얼어붙고 만 것이었다.

“자성아! 괜찮냐?”

목소리는 밝았지만, 남궁원의 표정에서는 슬픔을 숨기지 못했다. 하지만 담당 의사가 당부한 대로 쏟아지려는 눈물을 꾹 참았다.

“뭐! 보는 대로다. 하하”

이자성은 자신의 오른쪽 로봇팔을 흔들며 환한 웃음을 보였다. 그러자 남궁원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지려 하자 살짝 고개를 돌리고는 눈치채지 않게 급히 손매로 눈물을 훔쳤다.

함께 온 이혜진 역시 상당한 충격을 받았는지 남궁원 뒤에서 눈인사하고는 이내 시선을 피했다.

“마! 괜찮아! 한쪽 팔 잃었다고 죽지 않는다.”

남궁원의 슬픈 표정을 읽은 이자성은 일부러 더욱 태연스럽게 자신의 로봇팔을 움직이며 도리어 남궁원을 다독거렸다.

“어떻게 된 거야?”

“임무 수행 중에 다쳤다. 우리 하는 일이 위험하지 않냐?”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답하는 이자성! 천성이 낙천적인 탓에 이자성은 자신에게 닥친 현실을 쉽게 받아들인 듯했다.

11일 전, 라트비아 리가에서 임무 수행 중 미국 CIA 요원의 저격수에게 저격을 당하면서 크게 다친 이자성은 리가의 대형병원에서 긴급 수술을 받았지만, 의료수준이 높지 않은 탓에 임시방편의 수술만 받게 되었다.

이후 본국으로 긴급 후송 후 이곳 국립중앙의료센터에서 2차 수술을 받았지만, 안타깝게도 오른쪽 어깨부위부터 팔까지 정상적인 상태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결과가 나오고 말았다. 결과적으로 오른쪽 어깨부터 오른팔은 평생 움직이지 못하는 장애인 신세가 되는 것이었다.

이에 의료진들은 고심 끝에 현재 파르테논 연구소에서 프로젝트형식으로 연구 중 대체로봇이식기술에 눈을 돌렸다.

대체로봇이식기술이란, 인공장기는 물론, 팔다리와 같은 신체장애인에게 로봇 팔다리를 이식하여 좀더 일상생활에 불편함이 없도록 하기 위한 선진적 복지 정색의 목적으로 시작된 프로젝트였다. 로봇 팔다리의 골격은 인체에 해가 없는 고밀도 합금 금속이지만, 인공 피부로 감쌈으로써 절대 눈으로 식별하기 힘들 정도였고 더 나아가 인공 피부에 나노급 신경회로를 삽입해 실제 피부의 감촉처럼 느낄 수 있는 수준까지 연구가 진행되고 있었다.

이자성 과장 역시 평생 장애인으로 사는 것보다 대체로봇이식기술를 통해 로봇팔을 이식받아 사는 게 낫다고 생각이 들었고 결정적으로 로봇팔 이식 후에도 계속해서 국가정보원에서 블랙 요원으로 일할 수 있다는 것 때문에 고민 없이 흔쾌히 수락했다.

현재, 이자성 과장의 오른팔은 금속골격 상태이지만, 향후 최신형 인공 피부를 이식하게 되면 절대로 눈으로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똑같은 로봇팔을 갖게 된다.

“야! 이거 완성되면 오른손으로 500kg까지 들 수 있다고 한다. 그 영화 뭐지? 어벤저스에서 나오는······. 그래 맞아! 원터 솔져! 내가 현실판 원터 솔져가 되는 거지! 하하하”

“그랫 마! 원터 숄져가 되니 좋냐?”

“그럼, 너는 내가 오른팔 없는 장애인으로 살면 좋겠냐? 자식아? 이 과장님도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아니요. 이 과장님이 괜찮으면 된 거죠.”

이혜진 과장은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글쵸? 그럼 울상인 저놈 기분 좀 풀어주세요. 하하”

“원이가 원래 마음이 조금 여려요. 호호”

“사내놈이 여려서 되겠냐?”

이자성 과장과 이혜진이 번갈아가며 남궁원을 놀리는 그때, 간호사 한 분이 들어왔다.

“죄송한데요. 면회 끝내주세요. 잠시 후에 담당 의사로부터 진찰이 있어서요.”

“아! 알겠습니다. 그럼 언제 다시 면회가 가능한가요?”

“그건, 담당 의사께서 결정할 일이라······.”

“아! 알겠습니다.”

잠시 후 남궁원은 차가운 금속으로 만들어진 이자성의 오른손을 양손으로 부여잡고는 힘주어 말했다.

“다시 올게! 몸조리 잘하고 알았냐?”

“오냐! 형님 걱정은 말고, 너나 건강 챙겨라!”

“알았다.”

★ ★ ★

2024년 1월 30일 18:00,

남주 서울특별시 강남구 국가정보원(대테러수사국 취조실).

남영역에서 불법입국으로 긴급 체포된 구로다 가쓰히로와 우치다 총리 일행은 이곳 국가정보원 대테러수사국에 끌려왔고 우치다 총리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수갑 찬 상태로 각자 취조실에 나뉘어 심도 있는 취조를 받고 있었다.

현재 우치다 총리는 대테러수사국에서 마련된 회의실에 갇힌 채로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철컥!

그리 밝지 않은 조명 아래 탁자 위에 수갑이 채워진 두 손을 가지런히 올려놓고 모든 걸 포기한 듯 멍한 표정으로 앉아있던 우치다 총리는 문이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안녕하십니다. 우치다 총리님!”

들어오자마자 인사를 건네는 인물은 라트비아에서 탁월한 외교력을 보였던 외교부의 김명환 2차관이었고 함께 들어온 나머지 2명은 남영역에서 체포할 당시 봤던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총 3명이었고 그중에 남영역에서 체포당할 당시 봤던 인물이었다. 나머지 두 명은 안연우 국장과 구로다 가쓰히로에게 인상을 쓰며 욕설을 내뱉었던 마동석 부국장이었다. 이들은 우치다 총리를 마주 보는 상태로 의자에 나란히 앉았다.

“저는 외교부 제2차관 김명환입니다.”

자신을 소개한 김명환 2차관은 꽉 맨 넥타이를 조금은 느슨하게 풀고는 유창한 일본어를 구사했다.

“우치다 총리님! 대체 무슨 일로 일본과 단교한 우리 대한민국에 불법적인 방법으로 입국하셨습니까?”

현재 대한민국과 일본은 범국가적 외교가 단절된 상태로 이것은 지난 23일 일본 내각에서 ‘자주국가선포’가 원인이 되었다.

일본의 ‘자주국가선포’는 2021년 3월 1일 요코스카 항에 정박한 충무공이순신함(CG-1101)에서 양국이 체결한 항복조항문서에 어긋나는 것으로 이에 대한민국은 군사적 조치로 일본 전역의 공업지대에 대대적인 폭격을 가해 2차 세계 대전 당시 미국에 의해 완전히 폐허가 된 일본으로 다시금 되돌려 버렸다.

현재 대한민국에는 일본 국적 사람은 모두 추방된 상태였고 당연히 항로와 해로 역시 일본 국적자는 대한민국에 입국할 수 없었다. 국가 차원은 물론 민간 교류 차원까지 완전히 단절된 상황에서 일본 총리가 몇몇 수행원만 데리고 대한민국에 불법입국한 것은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외교부 2차관이라 했습니까?”

우치다 총리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네, 그렇습니다.”

“그럼, 추은희 대통령을 만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대통령님을 말입니까?”

“네, 그렇습니다. 제가 이렇게 한국에 온 이유가 바로 대통령을 뵙고자 온 것입니다.”

“단교한 국가의 총리가 왜 대통령님을 뵈려는 겁니까?”

김명환 2차관은 뻔히 알면서도 모르는 척 어깃장을 빼며 되물었다.

“다, 아시지 않습니까? 그동안 여러 차례 외교채널은 물론 가용한 모든 채널을 통해 추은희 대통령과 연락을 하려 했지만, 번번이 연결되지 않았습니다. 부디 이렇게 왔으니 제발 대통령을 만날 수 있도록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우치다 총리는 울먹이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구걸하듯 애원했다.

“자주국가선포를 할 때의 그 당당함은 어디 가시고 이렇게 우리 대통령을 만나고자 하시는 겁니까?”

뼈를 때리는 김명환 2차관의 말에 우치다 총리는 고개를 떨구고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 그것, 저의 잘못된 판단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직접 추은희 대통령님을 뵙고 사죄를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우치다 총리님! 단지 대통령님께 사과하려고 직접 오셨다는 겁니까?”

핵심을 찌르는 김명환 2차관의 질문에 고개를 든 우치다 총리는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제발! 우리 일본을 도와주십시오. 지금 일본은 패망한 국가나 다름이 없습니다.”

“우치다 총리님! 혈맹인 미국이 있지 않습니까? 왜 미국에 도와달라 하지 않고 적대국인 우리 대한민국에 도와달라는 겁니까? 이해가 안 되는군요”

살을 벨 듯한 날카로운 질문이 우치다 총리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사실 우치다 총리는 대한민국에 넘어오기 전, 미국 트럼프 대통령에게 일본 경제를 일으킬 수 있는 천문학적인 경제지원을 해달라는 요청을 했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경제지원은 힘들다는 답변을 받고 말았다.

미국 역시 대한민국과 전면전을 앞둔 상태였기에 상당한 전쟁자금을 축적해놔야 하는 상황이었고 더군다나 폐망의 길에 들어선 일본은 미국 이익에 있어서 보잘것없는 국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일본은 미국에 있어서 토사토팽(兎死兎烹)이었다.

이렇듯 미국의 입김에 넘어가 자주국가선포를 강행했다가 폐망의 길에 들어선 우치다 총리는 자신의 판단을 후회하며 몇몇 수행원만 데리고 급히 한국행을 선택한 이유였다.

“제발, 우리 일본을 도와주십시오. 미국은 우리 일본의 지원 요청을 무시했습니다. 현재 우리 일본을 도와줄 수 있는 국가는 한국뿐입니다.”

급기야 바닥에 무릎을 꿇은 우치다 총리는 두 손을 모으고 울며 애원했다.

“뭐하시는 겁니까? 일어서세요. 총리께서 이러신다고 해결될 일이 아닙니다.”

한편으론 우치다 총리의 모습이 애잔해 보였지만, 일본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이 많은 김명환 2차관은 다소 차가운 말투로 일갈했다.

“김 차관님! 제발, 추은희 대통령을 만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허허, 이거 참!”

계속되는 애원에 차가워 보였던 김명환 2차관이 난감해하자, 옆에서 지켜보기만 하던, 안연우 국장이 구원하기 위해 대화 화제를 바꿨다.

“우치다 총리! 당신은 지금 불법입국에 따른 범죄자로 이곳에 온 겁니다. 이점, 분명히 알고 취조에 응하세요. 어서 자리에 앉으세요.”

단호박 같은 안연우 국장의 말에 애원하던 우치다 총리는 울음을 그치고는 힘없이 의자에 앉았다.

“우치다 총리! 당신은 앞으로 24시간 안에 대한민국에서 추방당할 겁니다. 함께 온 수행원 모두 말입니다.”

“네? 추방이라니요. 저는 꼭 추은희 대통령님을 만나 봬야 합니다.”

우치다 총리는 안연우 국장과 김명환 2차관을 번갈아가며 다시금 애원했다.

“추은희 대통령님을 만나게 해주신다면 미국의 기밀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순간, 우치다 총리를 제외한 나머지 3명의 눈빛이 반짝였다.

“미국의 기밀이라고 했습니까?”

“네, 절대로 밝혀지지 않은 기밀 중의 기밀입니다.”

“어떤 기밀입니까?”

안연우 국장이 살짝 떠보았다.

“추은희 대통령을 만나기 전에는 절대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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