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65화 (565/605)

설원의 하얀 깃발

2024년 1월 30일 08:00 (러시아시각 01:00),

러시아 모스크바 벙커 스테이트 R-21(상황실).

2시간 전, 산자르 투르수노프 대장이 걱정했던 대로 푸틴 대통령은 1시간가량 폭언과 질타를 퍼부으며 반 뒤집어 놓은 상태로 상황실 분위기는 그야말로 얼음장마냥 차가운 기운이 맴돌고 있었다.

1시간 동안 푸틴 대통령에게 시달린 산자르 투르수노프 대장은 기진맥진한 상태로 의자에 앉아 총참모장 자리에 오른 것에 대한 회의적인 생각이 들었는지 잔뜩 미간에 힘을 주고는 중얼거렸다.

“괜히 이 자리를 수락했는지 모르겠군. 제길!”

잠시 후, 누군가가 헐레벌떡 뛰어왔다. 총참작전관 샤브카트 무라야노프 중장이었다.

“총참모장님! 드디어 중부군구 소속의 예하 부대 중 하나와 연결이 되었습니다.”

“정말인가? 어느 부대인가?”

“중부군구 직할부대 중 하나인 예비전력지원단입니다.”

“예비전력지원단? 그 부대는 비전투부대가 아닌가?”

예비전력지원단은 중부군구 사령부의 직속 부대로 후방에서 예하 부대의 전력 현황을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각종 전쟁물자를 필요한 부대에 즉각 지원할 수 있도록 조율하는 비전투부대였다.

“이곳으로 즉시 연결해!”

산자르 투르수노프 대장은 북서부전선 일대 상황을 직접 알아보고자 상황실 스크린을 가리키며 말했다.

“현재, 통신장애가 심한 상태라, 화상통신은 어렵다고 합니다.”

“제길, 그럼 음성이라도 연결해!”

“네, 알겠습니다.”

대답과 동시에 샤브카트 무라야노프 중장은 손짓으로 상황실 통신 장교에게 지시를 내리자 통신담당 오퍼레이터들의 손놀림이 빨라졌다. 그리고 이내 상황실에는 쩌렁쩌렁한 남자 음성이 들려왔다.

- 예비전력지원단 야수르 하사노프입 대령입니다.

“대체 그쪽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북서부전선에 전개 중인 모든 부대와 연락이 되고 있지 않단 말이야.”

- 현재 이곳 지역은 한국 공군의 대규모 폭격에 아비규환 상태입니다. 이로 인해 2시간 전부터 중부군구 사령부와 동부군구 사령부와 연락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아마도 폭격을 받고 괴멸한 것으로 보입니다.

“두 군구 사령부가 괴멸해? 제길!”

아랫입술을 질근 깨문 산자르 투르수노프 대장이 탁자를 부서져라. 주먹으로 내려쳤다. 이에 탁자 위에 올려진 찻잔이 바닥에 떨어지며 깨져버렸다.

쿠앙!

쨍그랑!

아틀라스 정찰위성으로부터 탐지정보가 갑작스럽게 끊기면서 러시아 공군 전투기들이 큰 피해를 보고 이로 인해 제공권 상실 후 북서부전선의 지상군도 어느 정도 피해를 볼 것으로 예상은 했지만, 북서부전선의 두 축이라 할 수 있는 동부군구와 중부군구 사령부가 괴멸된 것으로 보인다는 보고는 산자르 투르수노프 대장으로서는 정말로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 그리고 연락이 되지 않은 전투부대 대부분이 한국군에 항복하고 있다는 보고도······.

“뭐야? 한국군에 항복했다고?”

다시 한번 어이없는 보고에 급기야 자리에서 일어난 산자르 투르수노프 대장이 치미는 분노에 소리를 질렀다.

- 네, 현재 여기저기에서 확인한 바로는 그렇게 들려옵니다.

“항복하는 부대가 얼마나 되나?”

- 전투부대는 대부분입니다.

“이런 미친놈들을 봤나! 목숨을 사수하고 북서부전선을 사수하라는 명령은커녕 한국놈들에게 항복해?”

끌어 오르는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는 산자르 투르수노프 대장은 이마에 붉은 핏줄을 세우며 상황실 각군 지휘관들과 참모진들을 보며 분통을 터뜨렸다.

이에 상황실은 분위기는 찬물을 끼얹는 듯 바닥까지 착 가라앉았다.

“정말 대부분 모든 부대가 항복했다는 말인가?”

흥분한 총참모장을 대신해 총참작전관 샤브카트 무라야노프 중장이 통신수화기에 대고 다급히 물었다.

- 확실할 순 없지만, 대부분 부대가 한국군에 항복하여 무장해제까지 하고 있다는 소식까지 들려오고 있습니다.

“큭! 그럼, 연락되는 부대 중에 항복하지 않은 부대는 있는가?”

“네, 산악지대로 퇴각한 여러 부대가 있으나, 대부분 동원예비사단 전력입니다.”

“고작, 동원 예비사단뿐이라니······.”

이때, 흥분을 어느 정도 추슬렀는지 투르수노프 대장이 차분한 음성으로 하사노프 대령을 불렀다.

“하사노프 대령!”

- 네! 말씀하십시오.

“혹시 중부군구의 탄약지원단과는 연락이 되는가?”

- 네, 되고 있습니다. 탄약지원단은 최후방에 위치해 별다른 피해를 보지 않았습니다.

“좋아! 그렇다면 지금 포병전력 중에 연락되는 포병부대도 있는가?”

- 네, 현재 치타 근교에 주둔 중인 중부군구 직할 포병부대 중 321포병대대와 87포병대대가 전력을 보존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321과 87? 그럼 107미사일여단은?”

- 107미사일여단은 연락이 안 됩니다.

“음, 그럼 두 포병대대가 운용하는 포는 뭔가?”

- 321포병대대는 MATS-S 자주포이며 87포병대대는 코알리치아 SV 자주포를 운용하고 있습니다.

“코알리치아의 최대 사거리는?”

- 사거리 연장탄을 사용할 경우 최대 70km입니다.

순간, 산자르 투르수노프 대장의 두 눈빛이 반짝였다. 그리고는 음흉한 미소를 보였다. 뭔가 은밀한 계략이 생각났다는 표정이었다.

“하사노프 중령!”

- 네, 수방사령, 앗! 죄송합니다. 총참모장님!

“자네가 매우 중요한 임무를 수행해야겠어!”

- 네, 무슨 명령이든 따르겠습니다.”

“자네는 지금 당장, 탄약지원단에 연락하게, 그리고 87포병 대대를······.”

★ ★ ★

2023년 1월 30일 10:50 (러시아시각 10:50),

러시아 자바이칼 지방 오논강 서단 사우스 레이크 호수.

적지 않은 나이임에도 다부진 체격에 개인 장구류를 주렁주렁 달아 완전무장한 주임원사가 도착한 장갑차에서 하차하는 장병들에게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빨리 빨리 안 내리냐? 야! 너희들은 저쪽으로 이동해! 야! 3분대는 이쪽으로 이동해서 재들 비무장 상태 빡세게 확인하고 데리고 와!”

이에 장갑차에서 막 하차한 3분대는 주임원사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야! 빨리 빨리 움직여라! 주임원사님 화나면 무섭다.”

분대장 오두원 병장이 부대원들을 다독였다. 잠시 후 3분대가 도착한 곳에는 개인화기와 개인 장구류를 한쪽에 모아놓고 비무장 상태로 대기하고 있는 한 무리의 러시아 군인들이 눈 위에 앉아있었다.

이들은 3분대 장병들이 총을 지향한 채로 다가오자 두려운 눈빛을 발산했다. 세계적으로 상남자 측에 속한 이들이 이렇듯 두려운 눈빛을 보인 것은 그동안 수많은 교전에서 한국군의 압도적인 공격에 기가 눌린 듯했다.

“아저씨들 겁먹지 말고 일어나세요. 그리고 양손 머리 뒤로 올리고 한 줄로 서세요.”

분대원들이 반형 형태로 대열을 갖추고 총구를 내민 가운데 분대장 오두원 병장이 말하자 왼팔에 장착한 컨트롤 X-K02 단말기에서 통역된 러시아 말이 흘러나왔다.

이에 러시아 군인들은 서로 간 눈치를 보는 듯하더니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오두원 병장이 말한 대로 양손을 머리 뒤로 올리고는 한 줄로 서기 시작했다.

“이거 통역 제대로 되는가 보네? 김 병장과 오 상병! 나 상병과 김 일병은 몸수색하고 나머진 사주경계 확실히 해!”

“네, 알겠습니다.”

오두원 병장의 명령에 따라 4명의 장병은 손을 올리고 한 줄을 서 있는 러시아 군인들을 차례대로 몸수색했다.

“이상 없습니다.”

몸 수색을 마친 부분대장 김남진 병장이 보고했다.

“오케이! 자! 저기 저쪽 빨간 깃발 있는 곳으로 갑니다. 빠르지도 그렇다고 늘이지 않게 걸으세요. 그리고 혹, 허튼수작 부리면 골로 갑니다. 자! 출발!”

빨간 깃발 꽂혀있는 곳은 3분대를 비롯해 중대 병력이 타고 온 수송 C-28P-M 수송장갑차가 보기 좋게 도열해 있었다.

쿠르르르릉! 쿠르르르릉!

잠시 후 거친 엔진음을 내뿜으며 20여 대의 C-28P-M 수송장갑차들 앞 설원에는 여러 곳에서 모여든 러시아 군인 300여 명이 모였다. 그러자 주임원사가 앞으로 나와 자신의 컨트롤 X-K02 단말기에 확성기를 대고 소리쳤다.

“자! 우리 러시아 친구들! 지금부터 당신들은 대한민국 국군의 정식 포로로 인정한다. 지금부터 저 뒤에 있는 장갑차에 각각 20명씩 탑승합니다. 한다. 그전에 다들 손은 앞으로 내밀고 모으도록”

통역된 러시아어가 확성기를 통해 흘러나가자 러시아 군인들은 일제히 앞으로 손을 내밀었다.

“뭐하나? 묶어!”

고개를 까딱이며 말하는 원사의 말에 장병들은 각자 가지고 있는 전자 포승줄로 러시아 군인들의 손목을 묶기 시작했고 이내 20명이 한 조가 되어 장갑차에 탑승하기 시작했다.

“그만! 너부턴 다음 장갑차로 간다. 따라와!”

장갑차마다 부사관들이 탑승하는 러시아 군인들의 수를 세다가 20명이 되면 다음 장갑차로 안내했다.

어느덧 300여 명의 러시아 군인이 C-28P-M 수송장갑차에 모두 탑승하자 맨 오른쪽에 있던 장갑차부터 움직이기 시작했다. 18대에 달하는 C-28P-M 수송장갑차는 이내 하얀 눈밭 위를 내달리며 동단 방향으로 기동해 나갔다. 이들의 목적지는 현재 임시 포로수용소로 사용하게 될 후룬베이얼에 있는 초중고 학교였다.

금일 새벽, 러시아 군인들이 항복 의사를 표하자 합동참모본부는 포로를 수용할 수 있는 수용소에 관한 회의를 진행했고 시간상, 임시 수용소를 새로 짓기보다는 현재 텅 빈 초중고 학교를 긴급 개조하여 임시 포로수용소로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아침 일찍부터 후룬베이얼의 초중고 학교에는 여러 공병대가 투입되었고 학교 울타리 벽에 추가로 철조망을 설치했고 교실의 출입문과 창문틀에는 철재로 된 가림막 보강하는 작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 ★ ★

2024년 1월 30일 16:00,

남주 서울특별시 용산구 남영역(하이퍼루프),

시속 1,000km 넘는 속도로 대한민국 어디든 2시간 안에 이동할 수 있는 차세대 대중교통을 선도하는 하이퍼루프의 메인 역이라 할 수 있는 남영역 지하 2층의 5번 진공관 플랫폼에 하이퍼루프 모선이 도착했다.

잠시 후 안내 방송이 나오고 왼쪽 출입문이 일제히 열리자 탑승객들이 하나둘 플랫폼에 내리기 시작했다. 이들 탑승객 중에는 조금은 초췌해 보이는 한 무리의 사내들이 빠른 발걸음으로 1층에 있는 개찰구 방향으로 걸어갔다.

그중에는 한 시내가 앞서서 이들 무리를 안내하고 있었다. 그 사내는 오랫동안 서울에서 생활했던 산케이신문의 한국 지부장이었던 구로다 가쓰히로였다.

잠시 후 구로다 가쓰히로의 안내를 받으며 막 개찰구를 빠져나가려는 이들 무리를 막아서는 사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잠시만요.”

“뭡니까? 무슨 일입니까?”

검은 양복을 입은 사내 여러 명이 갑자기 나타나 막아서자 구로다 가쓰히로가 앞으로 나서고는 공손히 말했다.

“아! 국정원에서 나왔습니다.”

검은 양복 사내는 지갑에서 자신의 신분증을 보였다. 신분증에는 국가정보원 대테러수사국 국장 안연우라 쓰여 있었다.

“네? 국정원요? 국정원에서 무슨 일로?”

구로다 가쓰히로는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다는 과장된 표정을 지으며 되물었다.

“지금부터 당신들은 불법입국에 따른 불법체류 및 테러의심인물로 간주하여 체포합니다.”

“네? 불법입국요? 그리고 무슨 테러의심인물입니까? 우리는 그런 사람들이 아닙니다. 여기 여권이 있습니다.”

구로다 가쓰히로는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급히 자신의 일본 여권을 내밀었다. 그러나 자신의 신분을 알린 안연우 국장은 보는 척 만척하며 좌우로 대가하고 있던 요원들에게 손짓했다. 그러자 일제히 뒤쪽 양복 안쪽에서 수갑을 꺼내 들고는 구로다 가쓰히로를 포함해 뒤에 있는 모든 사내에게도 수갑을 채우기 시작했다.

“저기! 잠시만요. 대체 이런 법이 어딨습니까? 들어보세요. 여기 뒤에 계신 분들은 일본 내각의 고위관료이며 이분은 우치다 총리이십니다. 이건 국가 간 매우 잘못된 결례입니다.”

다급했던지 구로다 가쓰히로는 자신해서 뒤에 있는 사람들의 신분을 알렸다. 하지만, 안연우 국장은 여유로운 미소를 보이며 대답했다.

“하하, 알고 있습니다. 우치다 총리이신 거······. 그리고 옆에 있는 분은 구로사와 키요시 외교부 장관이고, 뒤에 있는 분은 우리나라에서 몹시 나쁜 놈이라고 소문난 경제산업부 장관인 이시하라 신타로가 아닙니까? 그리고 나머진 사람들은 내각 경호원들인가?”

자신들의 신분을 알렸는데도 국가정보원 요원들이 무례하게 체포를 하려 하자 구로다 가쓰히로가 언성을 높이며 따졌다.

“헉! 알면서 한 국가의 정상에게 이런 무례한 실례를 범하는 겁니까?”

“어이 구로다! 이 새끼가 서울에서 수십 년간 헛소리만 하더니 분위기 파악이 안 돼? 아주 간이 배 밖으로 나왔구먼? 저번에 일본으로 쫓겨났으면 그냥 조용히 살지 뭘 믿고 대한민국에서 와서 개지랄 떠는데?”

안영우 국장 옆에 서있던 마동석 부국장이었다. 덩치도 덩치지만 한 인상하는 마동석 부국장의 찰진 욕에 구로다 가쓰히로는 순간 졸았는지 그대로 입을 닫고 말았다.

“그만해! 부국장! 조용히 데리고 가자! 주변에 사람들 많다.”

“네, 그러시죠. 자! 다들 조용히 갑시다. 데리고 가!”

안연우 국장의 말에 마동석 부국장은 수갑 찬 구로다 가쓰히로에 바짝 얼굴을 내밀고는 눈을 부라리며 말하고는 바로 요원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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