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62화 (562/605)

2023년 1월 30일 05:25 (러시아시각 22:25),

러시아 자바이칼 지방 아긴스고예 남단 8km 지점(제41군 제888방공지휘센터).

양쪽 산릉선 아래 기다란 계곡 길에 주둔하고 있던 제41군 소속 제888방공지휘센터는 조금 전까지만 해도 X-아틀라스 정찰위성으로부터 적 전투기에 대한 탐지정보를 전달받고는 예하 방공부대에 표적분배를 하던 중, 데이터링크가 끊기면서 일단 혼란이 일어났다.

특히나 예하 부대 중 제61방공미사일여단 소속 예하 포대에서는 발사 중 멈추게되면서 다시금 탐지정보를 보내달라는 요청이 쇄도했다. 하지만 제888방공지휘센터 역시 X-350 아틀라스 정찰위성으로부터 탐지정보를 받아 단순 표적분배 정보를 제공할 뿐,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다시 연결해! 다시 연결하라고!”

“재시도하고 있지만, 아틀라스에서 반응이 없습니다.”

제888방공지휘센터의 지휘관인 세르베르 제파로프 소장이 잔뜩 인상을 쓰면서 질타하자 중좌 계급을 단 좌관급 장교 하나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제길! 계속 시도해! 연결되면 보고하고!”

“네, 알겠습니다.”

대답하는 부관를 뒤로하고 지휘 막사를 나온 세르베르 제파로프 소장은 답답한 마음에 담배 하나를 꺼내 물고는 하늘을 봤다.

어둠 속에서 샛별만이 총총하게 빛나는 것이 현재 치열한 전장의 하늘이라고는 어울리지 않을만큼 평온해 보였다.

후우우우우~

어느새 담배에 불을 붙인 세르베르 제파로프 소장은 깊숙이 빨아드린 후 하늘에 대고 천천히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하얀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오르며 어두운 하늘을 가리는 듯싶더니 이내 사방으로 흩어져갔다. 그리고 이내 담배 연기가 사라지자 샛별만 보이는 어두운 하늘에서 푸른빛을 발산하는 뭔가가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다.

“저게 뭐야?”

무의식중에 중얼거리는 세르베르 제파로프 소장은 불현듯 불길한 예감이 뇌를 스쳤다.

피우우우우우웅~

콰아아아앙!

순간, 휘파람 부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바로 조금 전까지 있었던 지휘 막사가 있던 자리에 거대한 불기둥이 하늘 높이 솟구쳤고 순간, 엄청난 폭풍파에 휘말린 세르베르 제파로프 소장은 외마디 비명과 함께 퉁겨져 날아갔다.

크윽!

다행히 수북이 쌓인 눈이 완충작용을 하여 큰 충격 없이 눈밭 위로 날아간 세르베르 제파로프 소장은 고개를 흔들어 정신을 가다듬고는 일어서려 했다. 하지만, 오른쪽 허벅지에서 극심하게 밀려오는 통증에 그만 주저앉고 말았다.

“잇! 뭐! 뭐야!”

엎어지듯 다시금 주저앉은 세르베르 제파로프 소장은 자신의 오른쪽 허벅지를 봤다.

“아아아악!”

자신의 오른쪽 다리는 보는 순간 기겁을 하고 말았다. 이에 본능적으로 비명을 지르는 세르베르 제파로프 소장!

그의 오른 다리는 허벅지부터 잘려나간 채로 검붉은 피가 솟구치고 있었다.

“군의관! 군의관!”

애써 고통을 참으로 두 손으로 잘려나간 오른쪽 허벅지를 꽉 쥔 세르베르 제파로프 소장 목청이 터져라. 군의관을 불렀다.

하지만, 그의 외침은 주변에서 터지는 폭발음에 묻히고 있었다. 순간 주변을 둘러 본 세르베르 제파로프 소장은 보면서도 믿기지 못할 광경에 입을 다물지 못하고 그대로 굳어버렸다.

세르베르 제파로프 소장을 중심으로 사방에서 불기둥이 사정없이 솟고 쳤고 그럴 때마다 강렬한 붉은 화마는 주변 일대를 닥치는 대로 집어삼켰다.

“폭, 폭격인가?”

그리고 잠시 후 그에게도 엄청난 화염이 순식간에 몰려와 휩쓸고 지나갔다. 이로써 다리 잘린 고통에 해방이 되었다.

정신적 충격에 다리 잘린 고통도 잊었는지 멍한 표정으로 하늘을 바라봤다. 그의 두 눈동자에는 푸른빛 하나가 비추는가 싶더니 큰 폭발과 함께 산화하고 말았다.

★ ★ ★

2023년 1월 30일 05:25 (러시아시각 05:25),

러시아 자바이칼 지방 아긴스코예 남단 50km 지점,

CF-21P 주작 전투기 편대의 호위를 받으며 고도 10km 상에서 은밀히 비행하던 CBS/A-30P 청룡 전략폭격기 1기는 타격 목표지역에 도달했는지 서서히 고도를 낮추는 비행에 들어갔다.

쿠으으으으으으으웅~

강렬한 플라즈마 쌍발엔진의 추진력에 금세 폭격안정 고도까지 다다른 CBS/A-30P 청룡 전략폭격기는 하단 내부무장실의 페어링을 개방하고는 얼마 전에 무기공장에서 생산하여 탑재한 따끈따끈한 K-PSB(플라스마 확산탄) 80발을 차례대로 쏟아냈다.

자체활공유도탄 형식인 C-PSB(플라스마 확산탄)은 각자 타격지점을 향해 자체추진체로 조금씩 낙하 방향을 조종해 나갔다.

한발당 축구장 5개 넓이를 초토화할 수 있는 가공 활 화력을 지닌 K-PSB(플라스마 확산탄)이 노리는 지상의 목표물은 제41군 소속의 제32독립차량화소총사단이었다.

이곳은 몽골 국경선을 따라 부랴티야으로 퇴각할 수 있는 길목으로 제32독립차량화소총사단은 혹여나 제41군 본진이 퇴각할 수 있는 퇴각로 확보 및 방어 임무를 수행 중이었다.

쿠우아아아앙~

일정 고도까지 낙하하던 C-PSB(플라스마 확산탄)은 이내 동체 페어링이 분리되며 자탄 40발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잠시 후 주변 일대로 번지며 낙하하던 자탄들은 지상으로부터 높이 20미터쯤에서 폭발하며 제2차 자탄을 지상에 뿌렸다.

쿠앙! 콰앙! 콰아아앙! 콰앙! 콰아앙!

지상에 떨어진 제2차 자탄이 폭발하자, 참호 속으로 피하던 보병들은 폭풍 파편에 난자를 당했고 장갑차나 차량 역시 직격을 당하자 거대한 폭발과 함께 붉은 화염을 내뿜었다.

잠시 후 자욱했던 연기가 거치고 쾌쾌한 화약 냄새가 진동하는 가운데 활활 타오르는 불길에 비치는 지상은 그야말로 지옥이었다. 팔다리가 잘려나간 시체들이 곳곳에 널렸고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갈기갈기 찢기고 구멍 난 장갑차와 뼈대만 앙상하게 남은 상태로 불타는 차량만이 추운 겨울 새벽의 적막함을 여실히 보여줬다. 가끔 불타는 차량에서 유폭이 일어나면서 적막함을 깨기도 했다.

CBS/A-30P 청룡 전략폭격기에서 투하된 80발의 C-PSB(플라스마 확산탄)에 그동안 온전히 전력을 유지하고 있던 제32독립차량화소총사단은 완전히 괴멸되고 말았다. 전투 불능의 타격을 입은 장갑차가 120대였고 전차는 33대, 자주포와 견인포 108문, 각종 차량은 250여 대나 되었다. 더불어 전사자는 자그마치 10,300명으로 단 한 명도 살아남지 못했다.

★ ★ ★

2023년 1월 30일 05:40 (러시아시각 22:40),

러시아 자바이칼 지방 오논강 서단 사우스 레이크 호수.

미끼 역할을 담당했던 제20기갑사단(결전)의 제60기갑여단이 적진 깊숙이 종심 기동을 펼친 후 러시아 포병부대로부터 집중적인 포격을 받을 시점에 신속하게 후방으로 퇴각한 후, 지금은 제61기갑여단과 제62기계화보병여단이 빠른 기동을 펼치면 맹공을 펼치고 있었다.

제7기동군단의 예하부대인 수도기갑사단(맹호)과 제30기계화보병사단(필승) 그리고 제5군 제81기계화보병사단(해모수)이 부채꼴 모양으로 퍼지면서 포위막을 형성했고 그 뒤로 제2군단 소속의 제7기갑사단(칠성), 8군단 소속 제29기계화보병사단(선두), 제6군단 소속 제5기갑사단(열쇠), 제8군 직할 제82기갑사단(발해)이 포위망을 더욱 견고히 하며 후방 일대에서 진공 중이었다.

그리고 몽골 국경선과 근접한 남단 지역에서도 제6군단 제65경갑보병사단(일몰)이 제2근위군 잔존 전력을 밀어붙이고 있었다.

현재까지 상황을 보자면 ‘시베리아 불곰 덫’ 작전은 대성공이었다. 간접적 화력지원을 해야 할 전술탄도탄 포대와 각종 포병부대, 그리고 공중전력을 방어해 줄 수많은 방공부대가 괴멸한 지금, 장기로 비유하자면, 차, 포, 상, 마, 모두 떨어지고 이제 졸개만 남은 상태였다.

더욱이 러시아 지상군 뒤는 120km에 달하는 거대한 산악지대가 그들의 퇴로를 막고 있었다. 일부 동원예비사단 같은 경우는 산악지형으로 퇴각하여 제2차 방어진지를 구축하기는 했으나 대부분 주력부대는 전차와 장갑차 그리고 차량으로 이뤄진 부대들이었다. 고로 그러한 사단이 퇴각할 수 있는 유일한 퇴로 중 하나인 A350 고속도로는 이미 대한민국 공군의 폭격에 완전히 붕괴한 상태였고 북단 AH30 간선도로 역시 마찬가지였다. 유일하게 남단 후방으로 퇴각할 수 있는 A167 고속도로는 몽골지역으로 크게 우회하여 신속하게 기동한 제7기동군단의 또 다른 예하부대인 제77기계화보병사단이 퇴로를 차단한 상태였다.

이처럼, 완벽한 포위망을 구축한 대한민국 지상군은 20만에 달하는 러시아 지상군에게 마지막 핵 펀치를 날리고자 했다.

C-PSB(플라스마 확산탄) 80발로 무장한 CBS/A-30P 청룡 전략폭격기 6기가 엄호 비행하는 주작 전투기 편대와 함께 오논강 서단 사우스 레이크 호수 상공에 모습을 드러냈다.

현재 이곳 제공권은 완전히 대한민국 공군에 넘어온 상태로 CBS/A-30P 청룡 전략폭격기들은 각자 10km 간격을 두고 서서히 고도를 낮추기 시작했다. 타격할 목표 지점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드디어 2달간 이어져 온 러시아와의 북서부전선 전쟁을 종결시킬 피날레가 막 시작되었다.

★ ★ ★

2024년 1월 30일 10:40, (러시아시각 09:40),

러시아 자바이칼 지방 오논강 서단 바이칼호수 상공.

공중전이 시작된 지 20분이 흐른 시점, 제공권 역할을 맡은 CF-21P 주작 전투기와 일부 CF/A-25P 흑주작 전폭기들은 300여 기가 넘었던 러시아 공군 전투기들을 학살 모드로 격추하면서 지금은 고작 80여 기만 남았고 그들 역시 꽁무니를 빼고는 서단으로 도망가고 있었다.

슈우우우우우웅~

현재 블랙문 편대는 전투 의지를 상실하고 자국의 영토 깊숙이 도망가는 한 무리의 러시아 전투기를 쫓고 있었다. 그러던 중, 부편대장인 하영주 대위가 현재 위치를 확인하고는 조금은 걱정스러운 말투로 통신망을 울렸다.

- 블랙문 투! 컨택 블랙문 하나! 편대장님! 너무 깊숙이 들어가는 거 아닙니까? 주어진 시간도 다 돼갑니다. 편대장님!

“블랙문 하나! 컨택 블랙문 투! 나도 알아! 그건 걱정하지 말고 각자 무장상태 보고하도록. 이상!”

- 블랙문 투! 까치독사 하나!

- 블랙문 뜨리! 까치독사 둘!

- 블랙문 포! 방울뱀 하나, 까치독사 둘!

- 블랙문 하나! 까치독사 하나!

“블랙문 하나! 컨택 블랙문 포! 뭐 한다고 지금까지 방울뱀을 아끼고 있었던 거야?”

- 블랙문 포! 컨택 블랙문 하나! 그것이 제 표적을 블랙문 투가 처리하는 바람에 아쉽게도 남기도 말았습니다.

“블랙문 하나! 컨택, 블랙문 포! 그럼 다른 표적에라도 써서야 할 게 아니야?”

- 블랙문 포! 컨택, 블랙문 하나! 죄송합니다.”

“블랙문 하나 컨택, 블랙문 올! 각자 무장상태에 따라 자동 표적 설정한다. 이상”

- 블랙문 투! 카피 뎃.

- 블랙문 뜨리! 카피 뎃.

- 블랙문 포! 카피 뎃.

잠시 후 블랙문 편대는 각자 무장한 미사일 만큼 표적 설정이 자동으로 이뤄졌다. 그리고 1분 정도가 흐르자 블랙문 편대는 도망가는 러시아 전투기로부터 S-AAM-50 까치독사 미사일의 사거리 안까지 근접했다. 이에 오길성 소령은 미사일 발사 명령을 내렸다.

슈우우우우우웅~ 슈우우우우우웅~ 슈우우우우우웅~ 슈우우우우우웅~

내부무장실에서 튀어나온 미사일들이 일제히 푸른빛을 발산하여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사라졌다.

그리고 어두운 상공에서 여러 개의 섬광이 번쩍였다. 블랙문 편대에서 발사한 S-AAM-50 까치독사 6기와 S-AAM-200 방울뱀 1기는 100% 명중률을 보이며 러시아 전투기 7기를 공중에서 산화시켰다.

“블랙문 하나! 블랙문 올! 복귀 비행한다. 이상!”

레이더 화면에서 러시아 전투기의 전술기호가 하나둘 사라지는 것을 확인한 오길성 소령이 복귀 명령을 내리자 블랙문 편대는 서서히 고도를 상승시키며 크게 선회했고 이후 예셜론 대형으로 복귀비행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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