덫
2023년 1월 29일 16:00,
남주 서울특별시 송파구 잠실본동 어느 호수공원.
디지털센터에서 8일간 개고생을 한 후, 집에 돌아온 남궁원은 다음날 이혜진과 함께 산부인과 병원에 들렀다가 지금은 근처 호수공원 벤치에 앉아 오랜만에 찾아온 여유를 만끽하고 있었다.
이젠 눈에 띌 정도로 배부른 이혜진의 배를 쓰다듬으면서 말이다.
“자기는 입덧 같은 거 안 해?”
“응, 아직 그런 거 없는데?”
“그래? 다른 사람은 임시 초기에 장난 아니라는데······.”
이혜진의 허벅지에 머리를 놀려놓고 누운 상태로 질문을 이어가는 남궁원, 그런 남궁원이 귀여운지 그의 콧등을 꼬집으며 환한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내가 누구야? 국정원 대외정보과 과장 출신인데 입덧 같은 걸 하겠어?”
“훗! 과연······.”
“뭐야? 못 믿겠다는 거야?”
“큰 소리는······. 나중에 정말 입덧 심해서 나 괴롭히지 말라고.”
“걱정 붙들어 매세요. 아! 맞다. 깜박했네.”
“뭘?”
“자기 센터 들어간 후 다른과 동료가 전해준 건데······.”
이혜진은 말하다 말고 말끝을 흐렸다.
“뭔데 말하다 말아?”
“그게······.”
말할지 말지 고민하는 이혜진의 표정에 궁금증이 폭발한 남궁원이 재촉했다.
“말을 꺼냈으면 좀 말해! 나 이런 거 궁금하면 잠도 못잖다네요.”
“자기 친구 말이야. 이자성 과장!”
“응! 자성이가 왜?”
“며칠 전에 해외 출장 갔다가 크게 다쳐서 현지에서 큰 수술을 받고 현재 본국으로 호송 와서 중환자실에 입원 중이래!”
“뭐?”
벌떡 일어난 남궁원이 놀란 눈으로 이혜진을 쳐다보며 다그치듯 재차 물었다.
“언제? 얼마나 다친 건데? 어느 병원이야?”
속사포처럼 질문을 이어간 남궁원!
“좀 앉아! 차근차근 말해줄 테니까”
“아! 미안!”
남궁원이 벤치에 앉아 이혜진은 조곤조곤 설명해 나갔다.
“음, 지금 면회는 가능한 거야?”
“내가 알게 된 건 4일 전이었는데, 지금은 면회가 되는지 모르겠어!”
“아! 바보 같은 놈! 맨날 센척하더니, 어쩌다가 크게 다친 거야! 건물이 붕괴할 때도 멀쩡했던 놈이······.”
걱정된 나머지 괜히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내뱉은 남궁원이었다.
“집에 들어가면 다시 알아볼게. 면회가 가능한지!”
“그래, 자기야. 그렇게 해줘!”
“우리나라 의료기술 대단한 거 알지? 너무 걱정하지 마!”
이혜진은 낙담한 남궁원의 뒷머리를 위로의 말을 전하며 쓰다듬었다.
★ ★ ★
2023년 1월 29일 20:00 (러시아시각 13:00),
러시아 모스크바 벙커 스테이트 R-21(상황실).
며칠 전, 유럽에서 주둔하고 있던 미국 나토군이 모스크바 남단으로 이동하려는 시점, 푸틴 대통령을 비롯한 군 수뇌부는 안보를 위해 스테이트 R-13에서 스테이트 R-21로 옮겼다.
미국과 임시적인 군사적 동맹을 맺었다고 하나 수십 년을 적대 관계로 지내왔던 미국의 나토군이 러시아의 수도인 모스크바로부터 남단 100km 지점을 통과함에 있어서 푸틴 대통령은 안심할 수 없었다. 이에 그동안 줄곧 전쟁 지휘 벙커로 사용하던 스테이트 R-13을 떠나 모스크바 북단 외곽에 있는 스테이트 R-21으로 옮기게 된 이유였다.
사실 수백 개에 달하는 스테이트 중 코드 넘버 R-21이란 이름으로 지정된 이곳은 그 어느 곳보다 핵 공격에도 버틸 수 있을 정도로 매우 튼튼한 벙커였고 각종 편의 시설은 물론 최첨단 시설이 갖춰져 있었다. 또한, 모스크바 방어군 본부와 근접 거리에 있어서 외곽 경계에 있어서 이곳보다 안전한 곳은 없었다. 굳이 단점을 꼽자면 모스크바 중심지로부터 상당히 멀리 떨어진 외곽이라는 것이었다.
현재 대표적인 전선 두 곳에서 치열한 교전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하루 24시간 지켜보고 있는 총참모부의 신경은 온통 북서부전선에 쏠려 있었다.
며칠 전, 오논강 도하 저지방어에 실패하면서 물량적인 우세임에도 불구하고 전투부대들의 패전 소식이 계속해서 올라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략 제주도보다 약간 큰 설원 지대에서 교전 초반 방어 임무에 참전한 러시아군은 총 50여만 명이었으나 지금은 30여만 명으로 크게 줄어든 상태였고 대부분 북동단 산릉선으로 밀려나 재차 방어라인을 구축 중이었다.
다행인 것은 한국군 역시 육군전력만으로 진공 하는 상황이었기에 일부 일선 전투부대들은 피해를 최소화하면 퇴각하고 있었다.
쿠웅!
상황실 출입문을 박차고 들어온 푸틴 대통령이 잔뜩 화가 난 표정을 지으며 누군가를 째려봤다.
이글거리는 푸틴 대통령의 두 눈에 찍힌 인물은 총참모장 블라디미르 베샤스트니흐 대장이었다.
“대, 대통령님! 무슨 일이십니까?”
갑자기 나타나 무섭게 노려보는 푸틴 대통령의 행동에 살짝 당황한 블라디미르 베샤스트니흐 대장이 엉거주춤한 자세로 경례하며 물었다.
“몰라서 묻나? 내가 저번에 모든 전선에 전술핵 사용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라고 하지 않았나?”
순간, 상황실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수많은 작전회의를 걸치면서 전술핵 블라디미르 베샤스트니흐 대장으로부터 전술핵이라는 단어 자체가 언급된 적이 없었기에 참모진들은 다들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건 명령 불복종이야!”
푸틴 대통령은 악에 받친 목소리로 일갈하며 주변의 참모진들을 훑어봤다. 무언의 압박이었다.
“대통령님!”
“나에게 할 말이 있는 건가?”
진중한 어투로 부르는 블라디미르 베샤스트니흐 대장에게 쏟아 붙였다.
“진정, 러시아를 핵 방사능의 지옥으로 만들고 싶습니까?”
심기를 건드리는 말에 푸틴 대통령은 아무 말 없이 블라디미르 베샤스트니흐 대장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그리고는 오른손을 들어 그의 모자를 잡더니 사정없이 바닥에 집어 던졌다.
“당신은 명령 불복종에 따른 죄로 직위해제야.”
바닥에 나뒹구는 모자를 사정없이 밟아 짓기는 푸틴 대통령의 모습에 블라디미르 베샤스트니흐 대장을 추종하는 몇몇 참모진들이 달려들려고 했으나, 어느새 푸틴 대통령 뒤에는 스페츠나츠 출신으로 이뤄진 대통령 경호원들이 자동화기로 중무장한 채로
이에 참모진들은 움찔하며 그대로 그 자리에서 얼어붙고 말았다.
무거운 분위기가 상황실을 덮친 상태로, 잠시 정적이 흐르자 블라디미르 베샤스트니흐 대장은 자신의 권총집을 풀어 바닥에 내려놨다. 그러자 경호원들이 그를 둘러싸고는 포박을 했다. 그리고는 밖으로 끌고 나갔다.
“자네들 중에 저 인간을 따라갈 사람이 있다면 지금 손을 들게!”
총참모장 의자에 털썩 앉은 푸틴 대통령은 부관이 내미는 시가렛 하나를 꺼내 입에 물고는 삐딱한 자세를 취하며 말했다.
하지만, 조금 전까지 동조하려던 몇몇 참모들은 자신들을 지향하고 있는 청구 앞에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그대로 서 있었다. 그런 모습을 비웃기라도 한 듯 콧방귀를 뀐 푸틴 대통령은 자리에서 일어서며 한마디를 던졌다.
“지금부터 총참모장은 산자르 투르수노프 상장이 하게!”
“네? 제가 말입니까?”
갑자기 자신을 지명하자 놀란 산자르 투르수노프 상장이 얼떨결에 대답했다.
“그래, 자네가 하게!”
“하, 하지만, 여기에는 저보다 상관인······.”
“그게 뭔 상관인가? 자네는 지금부터 대장으로 진급했어! 그러니 두말 말고 총참모장직을 수행하게!”
“알, 알겠습니다.”
어쩔 수 없다는 듯 대답하는 산자르 투르수노프 상장은 주변에 있는 자신보다 상관인 지휘관들을 곁눈질로 살펴봤다. 다들 똥 씹은 표정들이었다.
“총참모장!”
“네, 대통령님!”
“지금 전장 상황이 개판이니 즉시 작전회의를 소집해 전술핵 사용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작전 안을 수립해 바로 보고하게! 알겠나?”
“네, 알겠습니다.”
잠시 후 푸틴 대통령이 상황실을 나가자 험악했던 분위기는 어느 정도 누그러졌으나 상황실 곳곳에는 중무장한 경호원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 그럼, 지금 바로 작전회의실에서 전술핵 사용에 관한 작전회의를 하도록 합시다.”
어색했다. 어느 순간 자신이 군 최고상급 자가 되어 작전회의를 소집하는 것이 말이다. 모자를 벗고 뒷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하는 자신이 생각해도 매우 어색한 상황에 가장 먼저 작전회의실로 발걸음을 돌리자, 하나둘 지휘관들과 참모진들도 따라나섰다.
하지만, 이것은 오스카 남우주연상을 받을 만큼의 산자르 투르수노프 상장의 연기에 불과했다.
며칠 전, 스테이트 R-21로 이동한 후 푸틴 대통령은 자신의 충복 중의 충복이라 할 수 있는 산자르 투르수노프 상장을 통해 전 총참모장인 블라디미르 베샤스트니흐 대장이 전술핵과 관련한 어떠한 작전 안도 수립하지 않다는 것을 보고받았다.
이에 기회를 엿보던 푸틴 대통령이 금일, 이와 같은 야단법석을 떨며 블라디미르 베샤스트니흐 대장을 내치고 그 자리에 산자르 투르수노프 상장을 올린 것이었다.
그리고 산자르 투르수노프 상장 역시, 혹여나 군 수뇌부의 반발을 염려해 어절 수없이 총참모장 직무를 수행할 수밖에 없는 것처럼 뻔뻔하게 연기를 한 이유였다.
★ ★ ★
2023년 1월 30일 05:00 (러시아시각 22:00),
러시아 자바이칼 지방 오논강 동단 280km 상공.
별빛마저 구름에 가려 어두컴컴한 오논강 동단 상공에 그동안 간헐적으로 보였던 대한민국 공군전력의 핵심인 CF-21P 주작 전투기와 CF/A-25P 흑주작 전폭기 200여 대가 마치 하늘을 뒤덮은 것처럼 각자 편대 대행을 이루며 빠르게 자바이칼 지방으로 비행하고 있었다.
그리고 대기권 밖에는 제2우주전투비행단 소속의 골프편대와 호텔편대 8기는 각각 2기씩 무리를 지으며 계속해서 대기권 밖을 탈출하기 위해 출력을 상승키며 날아가고 있었다.
북서부전선의 승리와 고착화 구축이 초석이라 할 수 있는 기만전술이 가미된 ‘시베리아 불곰 덫’ 작전이 드디어 시작되고 있었다.
현재, 지상의 설원에는 제7기동군단을 선두로 8개의 각종 사단이 대공세에 들어간 상태로 양국 간의 치열한 교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한편, 러시아 측에서도 미국의 X-350 아틀라스 정찰위성으로부터 탐지된 정보를 데이터링크하여 현재 오논강 동단에서 날아오고 있는 대한민국 공군 전투기들을 일부 확인하여 이미 모든 대공 부대는 요격 절차를 들어간 상태였다. 그리고 저번 한중러 공중전에서 살아남았던 동부군구의 제3항공군과 중부군구의 제2항공군, 그리고 남부군구의 제4항공군 소속의 전투기 80여 대도 긴급 출격에 나섰다.
그동안 꾸준히 대공 전력을 북서부전선 일대로 이동시켜 강력한 요격 화망력을 보유하게 된 동부군구와 중부군구 총사령관은 이번 기회에 한국 공군전력을 무력화시킬 것으로 기대했다. 만약 이러한 기대를 합동참모본부에서 알았더라면 박장대소를 하면 웃을 일이었다.
어쨌든 북서부전선의 향방을 결정지을 주사위는 던져졌다. 그동안 육군전력만으로 공격과 방어가 진행되면서 전쟁 기일이 늘어났지만, 다시금 공군전력이 투입됨으로써 북서부전선에 또다시 피바람이 거세게 몰아칠 것으로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