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속 사냥꾼
조금 전, 콜롬비아함(SSBN-901) 측 상황은 이랬다.
C-744A 백상어A 중어뢰 2기를 자주항주식 닉시로 운 좋게 따돌리고 살아남아 즉시 일정 잠항각을 유지하고 VLS(수직발사대)를 통해 4기의 초공동 어뢰를 발사한 콜롬비아함(SSBN-901)은 함수 어뢰 발사관에 장전된 어뢰로 다시금 공격하기 위해 좌현으로 크게 선회하고 있었다.
현재 콜롬비아함(SSBN-901)의 VLS(수직발사대)는 모든 어뢰를 소모하여 비워진 상태였다. 재장전하기 위해서는 지체되는 소모시간이 컸기에 에머슨 하인드먼 함장은 이미 어뢰가 장전된 함수 발사관을 선택했다.
이처럼 콜롬비아함(SSBN-901)이 정체불명의 잠수함 쪽으로 크게 선회하는 그때, 충격파를 동반한 거대한 수압 폭풍이 연달아 몰려왔다.
쿠르르르르르르~ 쿠르르르르르르~
두 차례나 휘몰아친 충격파와 수압 폭풍은 잠항 배수량 20,000t에 전장이 200m인 콜롬비아함(SSBN-901) 자체가 흔들릴 정도였다.
수압 폭풍의 정체는 하드킬로 요격한 어뢰 간의 충돌 폭발로 일어난 수중 폭압력이 사방으로 퍼지며 이제야 도달한 것이었다.
여기서 생각지 못한 일이 발생하고 말았다.
콜롬비아함(SSBN-901)을 죽음의 문턱에서 구해졌던 자주항주식 닉시들은 그만 충격파와 수압 폭풍에 휘말리면서 음문 방사 기능이 고장이 나고 말았다. 이로 인해 그동안 가짜 음문을 유인당해 방향을 전환했던 C-744A 백상어A 중어뢰 2기중 1기는 자주항주식 닉시와 함께 수압 폭풍에 휘말려 해저 깊은 곳으로 사라졌지만, 문제는 나머지 C-744A 백상어A 중어뢰 1기였다.
가까스로 충격파와 수압 폭풍 소용돌이에서 살아남은 C-744A 백상어A 중어뢰 1기는 곧바로 주변 해심에 있는 똑같은 음문을 발산하는 목표물을 찾아냈다. 그것이 바로 크게 선회하고 있던 콜롬비아함(SSBN-901)이었다.
이 당시, 콜롬비아함(SSBN-901)의 음탐관들은 발사된 초공동 어뢰들의 항주 상황에 집중했고 두 번이나 휘몰아친 충격파에 의해 정작 자신들의 함을 향해 되돌아오는 C-744A 백상어A 중어뢰를 놓치는 중대한 실수를 하고 말았다.
발사한 모델명 Mk 101 초공동 중어뢰 3기가 차례대로 하드킬 요격을 당하고 나머지 1기 마저 디코이에 속았다는 암울한 보고를 하려던 음탐관들의 입에서 동시에 절규에 가까운 비명이 터졌다.
그제야 되돌아오는 C-744A 백상어A 중어뢰의 정체를 파악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때는 손 술수 없을 정도 이미 늦고 말았다. 500노트에 달하는 엄청난 속도를 내는 C-744A 백상어A 중어뢰는 이미 콜롬비아함(SSBN-901)의 측면을 노리며 항주하고 있었다.
직감적으로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라 깨달은 에머슨 하인드먼 함장은 최소한 저 빌어먹을 정체불명의 잠수함과 저승길 길동무가 되고자 마지막 어뢰 발사 명령을 내렸다.
이에 함수 발사관의 머즐도어가 개방됨과 동시에 1번 발사관에서부터 차례대로 Mk 101 초공동 중어뢰가 발사되었고 막 4번 발사관에서 어뢰가 사출되려는 그때 C-744A 백상어A 중어뢰가 콜롬비아함(SSBN-901)의 측면을 파고들며 강타했다.
엄청난 가속도로 항주해온 C-744A 백상어A 중어뢰는 콜롬비아함(SSBN-901)의 측면 4중 공간 차벽을 순식간에 뚫어버리며 내부에서 폭발했다. 응축된 폭압력이 순식간에 팽창하며 20,000톤에 달하는 콜롬비아함(SSBN-901)을 산산조각을 내버렸다.
다시금 (장보고함(SS-061) 전투통제실.
음탐관 이준혁 중위로부터 나쁜 소식과 좋은 소식을 연달아 보고받은 오성원 함장은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5일간 끈질기게 개고생하며 추적한 핵잠수함을 피격시킨 것은 매우 기쁜 일이었지만, 다시금 본 함을 향해 빠른 속도로 항주해오는 어뢰 3기를 어떻게 막아내야 하는 생각에 막막했기 때문이었다.
현재 장보고함(SS-061) 무장상태는 1번과 2번 발사관에 재래식 C-744 백상어 중어뢰가 장전되어 있었고, 4번 발사관에는 어뢰 대응체제인 디코이 6연발이 탑재된 C-505 은상어가 장전되어 있었다.
일대일 비율로 어뢰 2기를 요격하고 나머지 어뢰 1기를 디코이로 따돌려야만 하는 매우 희박한 확률을 기대해야만 했다. 하지만, 초공동 어뢰를 상대로 일반 재래식 어뢰로 조금 전과 같은 행운을 다시금 기대한다는 건, 오성원 함장이 생각하기에도 과한 욕심이라 느껴졌다.
이런 복잡미묘한 생각이 그의 머릿속을 어지럽게 만드는 동안 음탐관 이준혁 중위의 보고는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적 어뢰! 본 함 도달까지 44초!”
순간, 오성원 함장은 문뜩 3년 전 해군 본부에서 주최한 잠수함전 세미나에 참석했던 일이 생각났다.
동북아 전쟁이 끝난 후 해군 본부에서는 처음으로 실제 교전 경험을 바탕으로 한 교범을 정립하기 위해 수많은 세미나가 열렸다. 그 당시 부함장이었던 오성원 함장도 여러 번 세미나 참석했었다.
특히 잠수함전 세미나에서 가장 주목받았던 주제는 적 어뢰에 대한 대응체계였고 그중 최후 수단으로 사용하는 긴급부상이라는 전술이었다.
실제로 동북아 전쟁에서 적 어뢰 공격을 긴급부상으로 위기를 모면한 홍범도함(SS-079)과 안운형함(SSP-086)은 해군 역사에 있어서 길이 남을 전설이 되었다. 비록 홍범도함(SS-079)은 매복 중이던 일본 잠수함에 격침을 당했지만, 처음으로 긴급부상이라는 전술로 적 어뢰를 무력화시키고 핵잠수함 2척을 격침한 건 정말 대단한 일이었다.
“그래, 긴급부상, 그 방법밖에 없어!”
“함장님! 무슨 말씀이십니까?”
오성원 함장이 혼잣말로 중얼거리자 옆에 있던 나동필 부함장이 물었다.
“부함장! 긴급부상이야! 최후 수단으로 긴급부상으로 이 거지 같은 위기를 벗어날 방법은 그것뿐이야. 기관장에게 지시해!”
“아! 네, 알겠습니다.”
그제야 함장의 의도를 파악한 나동필 부함장은 통신 수화기를 들고는 그대로 기관장에게 명령을 하달하는 사이 오성원 함장은 조타장에게 지시를 내렸다.
“조타장! 방위각 1-9-5로 좌현 전타!”
“네, 방위각 1-9-5로 좌현 전타 합니다.”
장보고함(SS-061)은 빠르게 좌현으로 선회하며 다가오고 있는 적 어뢰와 수직으로 맞서게 되었다. 측면보다는 정면으로 마주 보고 있는 것이 피격 면적이 줄어들기 때문이었다.
“적 어뢰! 본 함 도달까지 36초!”
계속해서 음탐관 이준혁 중위의 실시간 보고가 이어졌다.
“전통관!”
“네, 함장님!”
“1번, 2번 머즐도어 개방 후 즉시 하드킬 방식으로 요격에 들어간다.”
“네, 알겠습니다. 1번, 2번 머즐도어 개방 후 어뢰 발사합니다.”
투웅! 투웅!
머즐도어 개방 후 사출된 2기의 C-744 백상어 중어뢰가 물길을 가르며 앞으로 항주해나갔다.
“요격까지 앞으로 15초! 14초!”
“4번 발사관 머즐도어 개방!”
“4번 발사관 머즐도어 개방합니다.”
전투통제관 김학성 대위가 즉시 대답했다.
“좋아! 지금부터는 타이밍이 중요하다.”
난간 손잡이를 양손으로 잡고 상체를 음탐관실 쪽으로 향한 오성원 함장은 음탐관 이준혁 중위의 음성에 귀를 기울였다.
“요격까지 5초! 4초! 3초······.”
마치 죽음의 초읽기처럼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몇몇 승조원들은 양손을 모으고 기도를 하기도 했다.
“앗! 1번 요격 실패!”
역시나 초공동 어뢰를 요격하는 건 과한 욕심이었다. 하지만 이내 반가운 소식이 전해왔다.
“2번 표적 어뢰 요격 성공!! 요격 성공했습니다.”
어쨌거나 희박한 확률 속에서 1기의 초공동 어뢰를 요격했다. 하지만 마냥 기뻐할 상황은 아니었다. 2기의 초공동 어뢰가 200노트에 달하는 속도로 장보고함(SS-061)을 향해 항주해 왔다.
‘만약, 은상어로 유인하지 못하더라도 기존의 홍범도함이나 이운형함보다 가벼운 우리 함이 긴급부상에 있어서 더욱 유리하다. 충분히 회피할 수 있어!’
이렇듯 마음속으로 되새기며 침착함을 유지하던 오성원 함장은 마른침을 꿀꺽 한번 삼키고는 다시 한번 음탐관 이준혁 중위에 보고에 귀를 기울였다.
“나머지 1번과 3번 표적 어뢰 본 함까지 앞으로 15초! 14초! 13초!”
적절한 타이밍을 노리던 오성원 함장의 명령이 떨어졌다.
“은상어 발사 준비!”
“은상어 발사합니다.!”
투웅!
머즐도어 개방과 동시에 사출된 C-505 은상어는 이내 6개의 디코이를 사방으로 뿌렸다. 그리고는 전방으로 날아가며 마치 꽃이 피듯 360도 방향으로 흩어져갔다.
“적 어뢰 본 함 도달까지 앞으로 9초! 앗! 어뢰 1기 우측 디코에 속아 방향전환! 하지만 나머지 어뢰 1기는 본 함으로······.”
“음탐관! 도달 시간이나 보고해!”
“5초! 4초!”
다급한 상황에서 불필요한 보고까지 하는 나동필 부함장이 일갈했다. 하지만, 오성원 함장은 이미 이러한 상황을 예상했는지 자신의 손목시계를 이용해 어뢰 도달 시간을 체크 하고 있었다.
묵묵히 자신의 손목시계를 보던 함장은 전투통제실이 떠나가도록 큰 목소리로 말했다.
“긴급부상!”
“긴급부상!”
쿠아아아아아앙!
충돌까지 3초를 남기고 시작된 긴급부상! 부력탱크(Main Ballast Tank)와 중력보상탱크(Negative Tank), 그리고 균형탱크(Trim Tank)에 어마어마한 공기가 순식간에 가득 차자 장보고함(SS-061)은 순간적으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한편 디코이 가짜 음문과 버블 막을 뚫고 기어코 장보고함(SS-061)을 향해 항주하던 Mk 101 초공동 중어뢰는 충돌 직전 1초 전에 상향각을 올리며 따라붙으려 했지만 빠른 속도로 인해 아슬하게 스치며 지나가고 말았다.
천만다행으로 죽을 고비를 넘긴 장보고함(SS-061)은 어느새 해수면까지 박차고 올라왔다.
쿠아아앙! 푸와악!
해수면과 부딪치며 튕겨 오르자 물기둥이 하늘 높이 솟구쳤다. 장보고함(SS-061) 승조원들은 함장의 명령에 따라 진작에 충격 대비를 했지만, 다들 천장에 머리를 박거나 사방으로 내동댕이쳐졌다. 하지만 그들의 얼굴은 고통스러운 표정이 아닌 해맑게 웃은 표정들이었다.
죽음에서 살아 돌아온 것보다 기쁠 순 없기 때문이었다.
“만세!”
“와! 살았다.”
“감사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부처님! 알라신, 예수님!”
승조원들은 저마다 얼싸안았고 심성이 약한 승조원은 울기까지 했다. 그런 승조원들을 바라보는 오성원 함장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울컥해왔다.
저런 사랑스러운 부하들을 내 욕심 때문에 죽일 뻔했다는 생각이 다시금 들었기 때문이었다.
“괜찮으십니까? 함장님!”
바닥에 나뒹굴었던 나동필 부함장이 벌떡 일어나더니 가장 먼저 함장에게 다가가 안위를 물었다.
“이런, 넘어진 자네보다야 낮지 않겠나? 자네야말로 괜찮나?”
“하하, 괜찮습니다. 함장님!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수고랄게 있나? 나 때문에 자네나 승조원들이 고생했지!”
“고생이라니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다들 자랑스럽게 생각할 것입니다.”
“그럴까? 그랬으면 조금이라도 미안한 마음이 풀리겠군!”
“그럼요. 보십시오. 어린애 같은 표정을 말입니다.”
살았다는 기쁨에 야단법석인 승조원들의 모습을 본 함장과 부함장의 얼굴에도 어느세 함박웃음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