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56화 (556/605)

바닷속 사냥꾼

2024년 1월 28일 09:05,

동주 남동단 181km 해심(콜롬비아함(SSBN-901) 조종실).

조금 전까지 평온했던 콜롬비아함(SSBN-901) 실내는 붉은 조명이 요란하게 돌아가고 비상사태로 전환되자 아비규환 직전의 상황이 연출되고 있었다.

특히나 절규 섞인 음탐관의 보고 한마디에 조종실(CR) 승조원들은 몸이 굳어질 만큼 큰 충격을 받고 말았다.

“초, 초공동 어뢰로 추정되는 4기! 본 함을 향해 빠르게 다가오는 중! 본 함 도달까지 초탄 11초!”

하지만 에머슨 하인드먼 함장은 베테랑답게 최대한 평정심을 유지하며 현재 위기 상황을 극복하고자 했다.

“현재 심도는?”

“885입니다.”

“좋아! 1차 어뢰 요격 어뢰 발사 후 조타장은 잠항각 하향 최대각으로 전환한다. 무장관은 즉시 1번부터 4번 어뢰로 요격절차 진행!”

시급한 상황이었기에 에머슨 하인드먼 함장은 전투정보관을 통해서가 아닌 무장관과 조타장에게 직접 명령을 내렸다.

- 1번부터 4번 어뢰 발사합니다.

투웅! 투웅! 투웅! 투웅!

상층부 VLS(수직발사대)의 루프도어가 개방되자 초공동 어뢰 4기가 차례대로 사출되었고 마치 대공미사일이 발사되는 것처럼 엄청난 버블 꼬리를 늘어뜨리며 후방 해심으로 항주했다.

이때 조타장의 목소리가 조종실(CR)을 울렸다.

“잠항각 하향 최대각으로 전환합니다.”

끼이이이이잉!

괴기한 소음이 울림과 동시에 콜롬비아함(SSBN-901)은 마치 해저 바닥을 향해 수직으로 꽂아 떨어지는 듯한 잠항력을 보여줬다. 이에 승조원들이 일제히 앞으로 쏠리며 넘어지거나 뭔가를 잡고는 안간힘을 썼다.

에머슨 하인드먼 함장 역시 두 손으로 철제 손잡이를 잡고 버티며 다시 한번 명령을 내렸다.

“닉스! 4기 모두 사출!”

- 닉스 4기 사출합니다.

전투정보실(CIC)로부터 복명복창이 이어진 후 콜롬비아함(SSBN-901)의 후미 양측의 디스펜서에서 자주항주식 닉시 4기가 방출됐고 곧바로 추진동력이 작동되며 부채꼴 모양으로 점차 멀어져갔다. 그리고 콜롬비아함(SSBN-901)과 같은 음문이 담긴 음파를 방사했다. 혹, 어뢰 요격에 실패했을 경우를 대비한 대어뢰 대책이었다.

짧은 시간, 수련된 승조원들이 일사불란하게 하달된 명령을 수행하는 가운데 저 멀리 해심에서 엄청난 폭발이 일어났다. 순간 응축된 폭압력이 휘몰아쳤고 거대한 버블이 생성되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아무래도 장보고함(SS-061)에서 발사한 C-744A 백상어A 중어뢰가 요격된 것으로 보였다.

“현재 심도 955!”

- 적 어뢰 도달까지 앞으로 6초! 5초!

그런 와중에 현재 심도에 대한 보고와 전투정보실(CIC)로부터 적 어뢰에 대한 정보가 실시간으로 보고되고 있었다.

그리고 근거리에서 한 차례 더 엄청난 폭발이 일어났다. 그리고 그제야 전투정보실(CIC)에 있던 음탐관이 첫 번째 어뢰가 요격된 것을 확인 보고했고, 이어 두 번째 어뢰도 요격된 것을 확인했지만, 나머지 2기의 C-744A 백상어A 중어뢰는 콜롬비아함(SSBN-901)을 향해 850m까지 근접한 채로 어김없이 항주하고 있었다.

- 적 어뢰 도달까지 앞으로 3초!

요격에 성공했다는 보고에 일부 승조원들이 탄성을 지르며 좋아했지만, 에머슨 하인드먼 함장은 코앞에 닥친 죽음의 운명을 받아들였는지 지그시 두 눈을 감았다.

절체절명의 순간, 음탐관으로부터 믿기 힘든 보고가 올라왔다.

- 앗! 적 어뢰 2기 모두 닉시에 속아 방향 전환!

C-744A 백상어A 중어뢰 2기는 콜롬비아함(SSBN-901)에 도달하기 직전 급격히 좌우로 방향 전환을 하며 자주항주식 닉시를 따라갔다.

정말 행운도 이런 행운은 없었다.

닉시에 속은 중어뢰 2기가 엄청난 속도로 잠수함 함미에서 스치며 항주하자 잠수함 내부까지 진동이 느껴졌다.

“와!”

“오! 마이 갓!”

순간 살았다는 기쁨에 승조원들은 그만 이성을 잃고 만세를 부르며 환호성을 쳤다. 이에 다급히 조지 알티도어 부함장이 손짓하며 일갈했다.

“교전 중이다. 다들 조용히 해!”

한편, 에머슨 하인드먼 함장은 이글거리는 눈빛을 보이며 통신 수화기를 입에 갖다 댔다.

“전투정보관!”

- 네, 함장님!

“VLS쪽 5번부터 8번 어뢰! 적 잠수함을 표적으로 발사 절차에 들어간다.”

조금의 여유가 생기자 함장은 정상적인 절차로 명령을 하달했으나 전투정보관은 복명복창 대신 어뢰 발사 불가 사항을 설명했다.

“함장님! 현재 잠항각으로는 어뢰를 발사할 수 없습니다.”

잠수함의 함수 어뢰 발사관과 다르게 VLS(수직발사대)에서 어뢰를 발사하기 위해서는 일정한도의 수평적인 잠항각을 유지해야만 어뢰를 발사할 수 있었다. 그렇지 않고 잠수함이 기울어진 상태에서 어뢰를 발사될 경우 자칫 사출된 어뢰가 잠수함과 부딪쳐 자칫 사고가 발생할 수 있기에 기술적으로도 일정한도의 수평적인 잠항각이 유지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어뢰가 발사되지 않았다.

“음, 내가 잠시 망각했군. 대기!”

죽음의 문턱까지 밀어붙였던 적 잠수함에 대한 극렬한 복수심에 잠시 평정심을 잃었던 에머슨 하인드먼 함장은 이내 이성을 차리고 고민에 들어갔다.

일단 최대심도까지 잠항하여 이곳에서 벗어날 것인지, 아니면 잠항각을 수정한 후 적 잠수함에 대한 공격을 가할 것인지였다. 이에 부함장에게 의견을 물었다.

“부함장! 자네는 어떻게 했으면 좋겠나?”

“일단, 위기는 벗어났으니 응징 보복이 우선이라 생각합니다.”

단호한 부함장의 의견에 에머슨 하인드먼 함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내 생각과 같군, 그래, 미 해군의 최신예 핵잠이 이렇게 꼬리를 보이며 도망갈 수는 없지! 조타장!”

“네, 함장님!”

“방위각 유지한 채로 잠항각 상향 20에 속도는 20노트로! 전투정보관은 어뢰 발사 가능 잠항각 확보 시 그대로 5번부터 8번 어뢰 발사하도록!”

“네, 잠항각 상향 20으로 조정!”

- 네, 알겠습니다. 5번부터 8번 어뢰 발사 대기 중입니다.

잠시 후 수직으로 내리꽂듯 해저로 잠항하던 콜롬비아함(SSBN-901)은 서서히 함수를 위로 올리며 부드럽게 다시금 부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짧은 시간이 지나고 어뢰를 발사할 수 있는 잠항각을 확보하자 루프도어가 개방됨과 동시에 4기의 초공동 어뢰가 사출되면서 솟구쳐 올랐다.

★ ★ ★

2024년 1월 28일 09:05,

동주 남동단 178km 해심(장보고함(SS-061) 전투통제실).

그 시각, 장보고함(SS-061) 전투통제실에서도 실시간으로 전해지는 보고에 정신없었다.

“아! 2번 어뢰 요격되었습니다.”

“3번, 4번 어뢰 적 잠수함에 도달까지 4초! 3초!”

“아! 3번, 4번 어뢰 모두 닉시에 속아 방향 전환!”

마지막 보고에 오성원 함장은 앞에 놓인 콘솔을 주먹으로 내려쳤다. 적어도 1기 정도는 적 잠수함을 피격시킬 수 있다고 예상했었다. 하지만 예상과 다르게 허무하게 요격을 당하거나 닉시에 속고 말았다.

“제길!”

얼마나 세게 때렸는지 손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괜찮습니까? 함장님!”

깜짝 놀란 부함장이 손을 보며 물었다.

“신경 쓰지 말게! 지금 이 손이 중요하게 아니야. 무장관! 어뢰 발사 상태는?”

“네, 현재 5번부터 8번까지 어뢰 모두 장전 완료된 상태입니다.”

“좋아! 1번부터 4번 발사관에 어뢰 재장전 절차 들어가고······.”

이때 오성원 함장의 말을 가로막는 음탐관의 보고가 올라왔다.

“적, 적 잠수함으로부터 어뢰 발사되었습니다. 총 4기로 초, 초공동 어뢰로 판명! 속도는 현재 165노트로 계속 상승 중! 본 함까지 앞으로 34초로 오차 플러스 마이너스 2초입니다.”

재차 공격에 들어가려던 오성원 함장은 순간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는 방금 내려던 명령을 번복하며 새로운 명령을 내렸다.

“우리도 요격절차에 들어간다. 5번부터 8번 어뢰로 요격! 그리고 1번과 2번 발사관에 어뢰 재장전 후 2차 요격준비! 마지막 3번과 4번 발사관에는 은상어 준비!”

* 적은 비용으로 209급 잠수함의 생존능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기존 533mm 어뢰 발사관에서 사용할 수 있는 6개 디코이가 장착된 발사체 C-505 은상어가 개발되어 현재 209급 잠수함에는 척당 2개의 C-505 은상어 탑재되어 있었다.

자신의 과한 욕심 때문에 자랑스러운 자신의 부하들을 죽음의 문턱 앞에 내놨다는 생각에 오성원 함장은 콜롬비아함(SSBN-901)에 대한 공격은 포기하고 지금부터는 어떻게든 위험 상황을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굳혔다.

문제는 최신예 잠수함도 아닌 1990년대에 취역한 1,200톤급 재래식 잠수함이 어뢰를 요격한다는 것은 사실 어불성설이었다. 그래도 5번과 6번 발사관에 장전된 어뢰가 C-744A 백상어A 중어뢰였기에 그나마 희망은 있었지만, 7번과 8번 발사관의 어뢰는 기존 구형인 C-744 백상어 중어뢰였다.

어쨌든 지금 상황에서는 이 방법밖에 없다고 판단한 오성원 함장의 명령이 내려지자 기다리고 있던 무장관은 즉시 실행에 옮겼다.

투앙! 투앙! 투앙! 투앙!

머즐도어가 개방되고 사출된 5번과 6번 C-744A 백상어A 중어뢰는 이미 수백 미터를 버블 꼬리를 늘어뜨리며 항주했다.

쿠와와와와와아~ 쿠와와와와와아~

나머지 7번과 8번 C-744 백상어 중어뢰는 엄청나게 비교될 정도로 느린 속도로 앞으로 항주해 나갔다.

쿠오오오오~ 쿠오오오오~

“조타장! 방위각 0-2-5, 우현 반타에 잠항각 상향 15, 속도는 최대출력!”

“방위각 0-2-5, 우현 반타에 잠항각 상향 15, 속도는 최대출력!”

조타장이 복명복창을 하며 조타기를 우현으로 크게 돌렸다. 그러자 장보고함(SS-061)의 함수는 부드러우면서도 급격하게 우현 위쪽으로 기울어지며 잠항해 나갔다.

“앞으로 요격까지 1번 표적 요격까지 앞으로 5초! 2번 표적 요격까지 앞으로 4초!”

양측 어뢰 모두 어마어마한 속도로 항주하기에 충돌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쿠앙! 쿠앙!

운 좋게도 5번 어뢰와 6번 어뢰는 1번 2번 표적으로 지정된 콜롬비아함(SSBN-901)의 초공동 어뢰를 요격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문제는 7번과 8번 어뢰였다. 콜롬비아함(SSBN-901)의 초공동 어뢰보다 상대적으로 속도 면에서 엄청난 차이를 보이는 C-744 백상어 중어뢰로 요격할 확률은 매우 희박했다.

그렇기 때문에 오성원 함장은 3번과 4번 발사관에 은상어를 장전하라는 명령을 내린 이유였다.

“재장전 상황은?”

“3번 4번 은상어는 재장전 완료! 1번과 2번 어뢰 장전은 다소 시간이 걸립니다.”

“적 어뢰 도달시간은?”

“앞으로 12초!

음탐관이 다급히 보고했다.

“좋아! 조타장 최대출력! 무장관! 3번 은상어 사출한다.”

“네,”

투앙!

우현 위쪽으로 기울어지며 미끄러지듯 잠항하던 장보고함(SS-061)의 함수 3번 발사관의 머즐도어가 개방된 후 은상어가 사출됐다.

일반 어뢰와 다소 생김새가 다른 은상어의 몸통에서 이내 6개의 디코이가 사출되더니 이내 장보고함(SS-061)과 같은 음문을 방출하며 사방으로 항주하기 시작했다.

자주항주식 닉스와 비슷한 방식이었다.

“적 어뢰 도달까지 12초! 11초!”

이제는 운에 맡겨 할 상황, 일부 승조원들은 주변에 있는 것을 붙잡고는 앞으로 다가올 충격에 대비했다.

“도달까지 앞으로 8초! 앗 3번 표적 요격 성공! 요격 성공, 4번 표적 도달까지 앞으로 8초! 7초! 6초!”

기쁨도 잠시, 마지막 4번째 어뢰가 끝까지 장보고함(SS-061)을 노리며 항주해오자 오성원 함장은 두 눈을 질근 감았다.

“아! 디코이에 속았습니다. 4번째 표적 어뢰! 디코이 쪽으로 방향 전환!”

순간 승조원들은 서로를 부둥켜안으며 살았다는 안도의 기쁨을 내뿜었다. 오성원 함장 역시 내색은 안 했지만, 하늘을 날아갈 거 같은 기분을 느꼈다.

이때 옆에서 길게 안도의 한숨을 내쉰 부함장이 말했다.

“함장님! 최대속도로 이곳에서 이탈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래, 그렇게 하자고, 할 만큼 했으니!”

마음을 굳힌 오성원 함장이 조타장 쪽을 바라보며 명령을 내리던 그때, 다시 한번 음탐관으로부터 지옥 같은 소식이 전해왔다.

“아! 적, 적 잠수함으로부터 어뢰 3기가 추가로 발사되었습니다. 그, 그런데 이상합니다. 그, 그런데 이상합니다. 적 잠수함의 음문이 사라졌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부함장이 반문하자 음탐관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 적, 적 잠수함 피격! 피격되었습니다. 닉시에 속았던 우리 어뢰에 피격되었습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