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55화 (555/605)

바닷속 사냥꾼

2024년 1월 28일 08:25,

동주 남동단 170km 해심(장보고함(SS-061) 전투통제실).

은밀하고 조용히 침묵 잠항 상태에서 미 해군 핵잠수함인 콜롬비아함(SSBN-901) 추적에 들어간 지 5일째, 최신예 잠수함도 아닌 대한민국 해군 잠수함 중에서도 가장 구형에 속한 장보고함(SS-061)의 승조원의 피로도는 말이 아니었다. 특히나 침묵 잠항 상태였기에, 인간이 참을 수 있는 한계까지 도달한 상태였다. 몇몇 승조원은 공황장애 증상을 보일 정도였다.

이에 장보고함 의무관인 김민원 대위는 승조원들의 건강 안위를 위해 침묵 잠항을 멈추고 즉시 부상해야 한다는 조언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오성원 중령은 전시상황에서 아군에게 크나큰 피해를 준 미 해군의 핵잠수함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개인적 욕심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그것보다는 저 빌어먹을 핵잠수함이 또 다른 아군에게 큰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생각이 앞섰다. 이에 승조원들의 건강이 염려되기도 했지만, 끝내 김민원 대위의 조언을 기각했다.

장보고함(SS-061)의 승조원 중 가장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 승조원은 음탐관들이었다. 현재 6명의 음탐관은 극악의 환경 속에서 하루 8시간씩 2인 1조로 음탐 임무를 수행 중이었다.

“함장님! 조금 전, 음탐관 한 명이 실신했습니다.”

전투통제실에서 무거운 책임감에 짓눌린 채로 하루 20시간을 의자에 앉아 지휘하던 오성원 함장은 조용히 다가와 속삭이는 부함장의 보고에 얼굴은 금세 어두워졌다.

“의무실로 이동했나?”

“네, 김 대위가 치료 중입니다.”

자신의 욕심 때문에 부하들이 고통받고 있다고 생각이 들었는지 오성원 함장은 더는 말없이 앞에 펼쳐진 스크린만 쳐다봤다. 이에 부함장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함장님! 김 대위 말대로 이제 추적을 멈추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부상 후 해군본부에 연락해 전방위 대잠경계를 펼친다면 다시 찾아낼 수 있을 겁니다.”

그동안 묵묵히 함장의 지시를 따르던 부함장까지 속내를 비치자 오성원 함장도 망설이게 되었다.

“자네도 그렇게 생각하나?”

“네, 함장님! 심도 이천에서 부상하지 않고 계속 잠항한다면 공격 기회도 없을뿐더러 우리 승조원들 상태도 더욱 심각해 질 겁니다.”

“음, 그렇긴 하지! 알겠네! 그럼 부상,”

이때, 음탐관 한 명이 손을 번쩍 들었다. 뭔가 문제가 발생했다는 뜻이었다.

함장을 비롯한 여러 승조원이 조심스럽게 걸으며 음탐관 쪽으로 모였다.

“뭔가?”

부함장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부상하고 있습니다.”

순간, 오성원 함장의 눈빛이 반짝였다. 방금까지 추적을 포기하려던 상황에서 처음으로 공격할 기회가 생겼기 때문이었다.

“현재 심도와 잠항각은?”

“1,820! 잠항각 상향 20으로 계속 부상 중입니다.”

“20도라···. 단순 부상은 아닌 듯합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 부함장!”

“네, 함장님!”

“총원 전투태세 전환!”

“네, 전투태세로 전환합니다.”

잠시 후 장보고함(장보고함(SS-061) 실내는 붉은 조명이 요란하게 돌아갔고 승조원들도 최대한 조용히 자신의 자리로 이동했다.

“함장님 총원 전투배치 완료했습니다.”

“부함장, 핵잠을 상대로 우리에게 공격 기회는 딱 한 번뿐이야. 실패하면 우리가 역공을 당할 수 있어! 어느 상황에서 공격했으면 좋겠나?”

“적어도 심도 500까지는 부상하고 거리는 2,000 이내일 때가 가장 나을 듯합니다.”

“음, 내 생각과 비슷하군.”

부함장과 속삭임으로 대화를 마친 함장은 전술통제관에게 조용히 물었다.

“전통관! 현재 상황 브리핑!”

“네, 현재 표적 대상! 방위각 1-7-0과 거리는 3,200!, 심도 1,550으로 잠항각 변함없이 상향 20도로 계속 부상 중! 초당 0.62입니다.”

침묵 잠항이었기에 전술통제관은 최대한 작은 목소리로 브리핑했다.

고개를 끄덕인 오성원 함장은 자신의 손목시계를 봤다. 그리고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뭔가 계산하는듯했다. 그리고는 몇 초 후 부함장에게 지시를 내렸다.

“부함장! 방위각 그대로로 잠항각만 하향 3도로 300까지 내려간다. 속도는 현재 속도에서 2노트 추가!”

부함장은 즉시 조타장에게 명령을 하달했다.

심도 250에서 5노트 속도로 침묵 잠항 중이던 장보고함(SS-061)은 약간 함수가 기울어졌고 이내 미끄러지듯 해저 속으로 파고들어 갔다.

“부함장! 현시간 기준 28분 후면 우리가 공격할 수 있는 조건이 갖춰지네! 무장관에게는 따로 지시가 없더라도 27분에 최대한 빠르게 1번부터 4번 발사관에 어뢰 장전 준비하라고 지시하고 지금부터 모든 승조원은 완전 침묵 잠항에 들어간다.”

“네, 알겠습니다.”

하달받은 부함장은 자신의 손목에 달린 단말기를 통해 마치 문자메시지를 보내듯 명령 내용을 쓰고는 무장관에게 전송했다. 완전 침묵 잠항 상태에서는 무전이 아닌 이런 식으로 명령을 하달하고 있었다.

이제부터는 오성원 함장이 생각한 대로 상황이 연출될지를 기다리는 부분만 남았다. 이에 장보고함(SS-061) 실내는 팽팽한 긴장감으로 가득 찼다.

★ ★ ★

2024년 1월 28일 08:50,

동주 남동단 175km 해심(콜롬비아함(SSBN-901) 조종실).

5일간 심도 2,000에서 잠항했던 콜롬비아함(SSBN-901)은 에머슨 하인드먼 함장의 명령에 따라 서서히 부상 중이었다.

최신예 잠수함답게 심도 2,000에서도 잠항력을 갖췄지만, 어쨌든 3일간 이런 심도에서 계속해서 잠항하는 건 승조원들에게 정신적 육체적으로 엄청난 스트레스를 줄 수 있었다. 이런 이유로 에머슨 하인드먼 함장은 5일 전에 있었던 교전 해심에서 충분히 벗어났다고 판단, 이에 부상 명령을 내렸다.

잠항각 상향 20도로 1초에 0.62 속도로 부상하는 콜롬비아함(SSBN-901)은 멀지 않은 해심에서 장보고함(SS-061)이 잠항 중이라는 것을 상상도 못 하고 있었다.

현재 콜롬비아함(SSBN-901)은 임무를 수행하는 승조원을 제외한 나머지 비번 승조원들은 오랜만에 주어진 휴식시간을 즐기고자 공간이 허용되는 곳에서 각자 운동하거나 아니면 몇몇이 모여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현재 심해 5,000 이내 깨끗합니다.”

전투정보실(CIC) 전투정보관으로부터 통신으로 보고를 받은 에머슨 하인드먼 함장은 자신의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그리고는 부함장을 불렀다.

“부함장!”

“네, 함장님!”

“지금부터 CR실 지휘권 부함장에게 위임하네. 나는 조금 쉬어야겠어. 정확히 3시간 후 부관 통해 깨워주게!”

“네, 알겠습니다.”

부함장의 어깨를 두드린 에머슨 하인드먼 함장은 피곤한 몸을 이끌고 자신의 함장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함장님! CR실 나갑니다. 지금부터 CR실은 부함장이 지휘합니다.”

함 내 통신망을 통해 지휘권 관련 상황을 전파됐다.

함장을 대신해 CR실 지휘권을 위임받은 조지 알티도어 부함장은 함장 전용 의자에 앉고는 전방 상황을 보여주는 3D 스크린을 주시했다.

음파를 통해 전방 상황을 보여주는 여러 가지 색상이 이뻐 보이는지 의자를 저치고는 감상하듯 쳐다봤다. 이때 조타장이 심도 50단위로 실시간 보고했다. 콜롬비아함(SSBN-901)이 설정한 목표 심도는 600으로 아직 650이나 남은 상태였다.

“현재 심도 1,250!”

“현재 상태 계속 유지!”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 갑자기 전투정보실(CIC)의 음탐실에서 분주해졌다. 그리고 이내 믿을 수 없는 보고가 올라왔다.

- 음탐실입니다. 방위각 1-7-5, 거리 2,500! 심도 300에서 어뢰 발사관 개방음으로 추정되는 소음 확인! 총 4번!

청천벼락 같은 보고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조지 알티도어 부함장은 즉시 부관에게 소리쳤다.

“함장님 호출!”

“네, 알겠습니다.”

부관 한 명이 대답과 동시에 다급히 함장실로 뛰어갔다. 그런 사이 조지 알티도어 부함장은 통신 수화기를 들었다.

“CR실이다. 발사관 개방음 확실한가?”

- 네, 현재로써는 확실합니다.

“제길! 부상 중지! 다시 방위각 3-0-5로 우현 반타! 잠항각 하향 30으로 최대심도까지 최대출력으로 잠항!”

꼬리를 물린 이상, 일단 벗어나는 게 최선이라 판단한 조지 알티도어 부함장이 다급하게 지시를 내리자 콜롬비아함(SSBN-901)은 한번 출렁이는가 싶더니 이내 함수를 해저 바닥에 꽂듯 기울어지더니 이내 엄청난 속도로 해저 깊은 곳으로 빠져들기 시작했다.

순간 하향 잠항에 승조원들은 중심을 잃고는 여기저기서 넘어지기도 했다.

“뭐, 뭔가?”

윗옷도 걸치지 못하고 한 손에 들고 여러 난관을 잡으며 가까스로 조종실(CR)에 들어온 에머슨 하인드먼 함장이 다급히 물었다.

“주변 해저에 적 잠수함의 머즐도어 개방음이 음탐 되었습니다.”

“그게 뭔 소리야? 20분 전까지만 해도 주변 5km 해저는 깨끗하다고 하지 않았나?”

들고 온 해군 정복을 급히 입으며 에머슨 하인드먼 함장이 신경질을 부렸다.

“아마도 침묵 잠항으로 매복 중이었던 거 같습니다.”

“이런, 제길! 발사관 개방음?”

“네, 방위각 1-7-5, 거리 2,500! 심도 300입니다.”

“바로 뒤잖아?”

전방 스크린을 바라본 에머슨 하인드먼 함장의 얼굴이 사정없이 일그러졌다.

★ ★ ★

2024년 1월 28일 09:02,

동주 남동단 178km 해심(장보고함(SS-061) 전투통제실).

오성원 함장이 지시한 대로 완전 침묵 잠항 속에서 일정 시간이 지나자 무장관은 지체없이 1번부터 4번까지 어뢰 장전은 물론 머즐도어 개방 명령을 내렸다.

현재, 콜롬비아함(SSBN-901)과 장보고함(SS-061) 거리는 3,280m였고 심도 차이는 385m로 오성원 함장이 원했던 상황까지는 연출되지 않았지만, 이 정도라면 충분히 공격해볼 만했다.

그리고 머즐도어 개방음으로 인해 표적함인 콜롬비아함(SSBN-901)에서도 본 함 정체를 파악한 지금, 오성원 함장은 망설일 상황이 아니었다.

“1번부터 4번까지 어뢰 차례대로 어뢰 발사! 5번! 8번 어뢰 장전!”

오성원 함장의 명령이 통신망을 타고 전해지자, 무장관은 즉시 어뢰 발사 버튼을 차례대로 돌렸다.

투우웅! 투우웅! 투우웅! 투우웅!

공기터빈펌프체계(ATP) 방식으로 모습을 드러낸 C-744A 백상어A 중어뢰 4기는 무시 못 할 속도로 튀어나온 후 즉시 초공동 현상을 일으키며 순항미사일 맞먹는 속도로 해심을 질주했다.

비록 209형급인 장보고함(SS-061)이 취역한 지 31년이 지나 내년에 퇴역리스트에 올랐지만, 어뢰 공격력만큼은 서방국가의 그 어떠한 최신예 잠수함과 비교해서 전혀 꿀리지 않았다. 먼저 단점만 가득했던 압축공기발사체계(WES)를 공기터빈펌프체계(ATP)로 개량 보수했다.

그리고 2022년부터는 209급과 214급 잠수함에도 C-744 백상어 중어뢰 외에도 개량형인 C-744 A 백상어A 중어뢰를 혼용으로 운용하기 시작했으나 80여억 원이라는 높은 비용으로 인해 209급 잠수함은 한 척당 4기만을 운용했다.

하지만 C-744A 백상어A 어뢰는 발사 중량과 길이는 줄거나 짧아지고 탄두 무게가 220kg밖에 되지 않았지만, 플라즈마 응압탄 계열을 사용함으로써 폭발력에서는 그 어떠한 중어뢰보다 몇 배에 달했다.

무엇보다 C-744A 백상어A 중어뢰는 초공동 중어뢰로 속도가 무려 524노트로 기존 어뢰보다 10배 이상 빨랐고 사거리 역시 2배나 늘어났다. 이처럼 무시무시한 펀치력을 보유한 장보고함(SS-061)이 지금까지 5일간 추적만 할 뿐 콜롬비아함(SSBN-901)을 C-744A 백상어A 중어뢰로 공격하지 못한 이유는 바로 수압에 있었다.

아쉽게도 C-744A 백상어A 중어뢰는 최대심도가 1,500이었다. 그 이상의 심도에서는 수압으로 인해 자폭할 확률이 높았다. 이런 이유로 오성원 함장은 5일간 추적하면서 마음속으로 콜롬비아함(SSBN-901)이 부상하기만을 간절히 바랐었다.

쿠오오오오오오~

수중에서도 1초에 250m를 질주 잠항하는 C-744A 백상어A 중어뢰 4기는 버블 꼬리를 늘어뜨리며 어두운 해저 속으로 사라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