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54화 (554/605)

철퇴

2024년 1월 27일 13:30 (러시아시각 13:40),

러시아 자바이칼 지방 오논강 서단 설원(제20기갑사단 제60기갑여단 26전차대대).

오논강 서단 설원에서 러시아 기갑군과 이틀간 쉬지 않고 교전을 벌였던 제20기갑사단의 제60기갑여단은 사단본부로부터 12시를 기해 후방으로 이동해 정오까지 휴식 및 정비 시간을 가지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이에 26전차대대도 오논강 강가로 이동해 임시 숙영지를 차렸다.

그동안 붉은기갑군단을 비롯한 36차량화보병사단과 치열한 교전을 벌였던 26전차대대는 막강한 C-3A1 백호 전차를 운용했음에도 동료 전차 10여 대가 피격되거나 기동불능에 빠져 전력에서 제외되었고 부상자 14명에 전사자도 2명이 나왔다. 한러전 발발 후 가장 큰 피해를 보았다.

그만큼 이틀간 오논강 도하부터 설원에서 벌어졌던 기갑전이 얼마나 치열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데이터였다.

“전차장님! 염 하사님! 식사하러 오랍니다.”

4인용 텐트를 칠 자리를 확보하기 위해 제설 삽으로 눈을 치우고 있던 김영주 중사와 염훈기 하사에게 다가온 한가득 부식품이 들어있는 백 팩을 보이며 말했다.

“김 상병이! 너 빨랑빨랑 갔다 안 오냐?”

뻐근해진 허리를 뒤로 젖힌 염훈기 하사가 김일수 상병을 쏘아보며 갈궜다.

“아! 염 하사님! 여기서 눈 치우는 게 백번 천번 낮지 배낭 메고 저 눈밭 위를 걸으려고 해보시지 말입니다.”

“시꺼 마! 아무리 그래도 눈 치우는 것보다 힘들겠냐?”

“이것들은 떠들 힘이 남아도는가 보네. 둘 다 그만하고 밥 먹으러 가자! 뱃가죽이 등에 붙었다.”

제설 삽을 내동댕이치듯 눈밭에 던진 김영주 중사가 벗었던 야전 상의를 입으며 다시금 입을 열었다.

“점심 메뉴가 뭐냐?”

“후후, 닭볶음탕이라고 합니다. 크크 좋으시죠?”

“오! 닭볶음탕? 오예스~”

방금까지 눈을 부라리며 김일수 상병을 갈구던 염훈기 하사는 어느새 중대 식당이 차려진 방향으로 눈밭을 가르며 걸어갔다.

“닭볶음탕 못 먹어 죽은 귀신이라도 붙었나? 아주 이럴 땐 동작이 날쌔요 날쌔! 넌 저러지 마라! 일수야!”

양손으로 눈을 가르며 엉금엉금 걸어가는 염훈기 하사의 뒷모습에 김영주 중사는 혀를 찼다.

“네, 알겠습니다. 크크, 식사하러 가시지 말입니다. 전차장님!”

“그러자! 가자! 가! 아! 713호 애들은 어떻게 됐는지 확인해봤냐?”

김일수 상병이 부식 받으러 간다는 할 때 713호 승조원들의 안부 상태를 알아보라고 말했었다.

“네, 오진원 중사님과 이태원 병장은 군단 수송병원으로 호송되었고 이현호 일병은 긴급수술 후 본국으로 귀국해 국군병원에서 치료를 받는다고 합니다.”

“수술은 잘됐데?”

“어제 연락이 왔는데 다행히 수술은 잘되었다고 합니다.”

“그래? 다행이다. 이번 달에 일병 달았지?”

“네, 전쟁 터졌을 때 이병이었습니다. 그래도 수준급으로 조종도 하고 잘했는데······.”

같은 전차 조종수로서 애잔한 마음이 들었는지 김일수 상병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

“남 일 아니다. 우리도 전쟁 끝날 때까지 조심하자!”

“네, 전차장님!”

★ ★ ★

2024년 1월 28일 05:30,

남주 서울특별시 용산구 B2 벙커(합동참모본부 정보본부 디지털정보센터).

퀭한 낯빛에 반쯤 풀린 두 눈, 하지만 키보드에 올려진 두 손의 손가락은 쉬지 않고 움직이고 있었다.

오늘 포함, 4일째 간이 소파에서 한두 시간 정도 눈을 붙이며 자며 암호화된 파일과 싸움 중인 남궁원의 모습이었다. 주위에서 건강이 걱정되어 쉬어가며 하라고 권유를 했지만, 남궁원은 특유의 오기를 부리며 아랑곳없이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다.

“남궁 과장님! 이거 드세요.”

언제 왔는지 부센터장 김태석 대령이 투명한 유리잔을 건넸다. 얼음이 잔뜩 들어가 있는 아이스커피였다.

“역시, 부센터장님밖에 없습니다.”

피곤함에 찌든 얼굴이었지만, 남궁원은 환한 미시를 보이며 받아든 아이스커피를 한 모금 시원하게 들이켰다.

수십 대에 달하는 컴퓨터와 각종 전자장비가 즐비한 이곳 디지털정보센터의 열기는 한겨울임에도 훅은 후끈할 정도여서 가끔 에어컨이 가동할 정도였다.

잠시 의자에 몸을 젖히고 아이스커피를 음미하며 한 손으로 버근해진 뒷목을 주무르는 남궁원에게 솔깃한 말을 전해왔다.

“남궁 과장님! 오늘은 잠시 집에 가서 쉬다 오세요.”

“집에요?”

“네, 나흘 동안 날 샜는데 한번은 집에서 가서 푹 쉬다 오는 게 건강을 위해서도 컨디션을 위해서도 좋을 거 같아서 말입니다.”

“하하, 말씀은 고맙습니다. 하지만 지금 상태에서는 찜찜해서 집에 가도 못 쉴 거 같습니다. 제 성격상 뭐든 한번 빠지면 어떻게든 뽕을 뽑아야 직성이 풀립니다. 하하”

“네? 뽕을요?”

“하하, 네,”

“그래도 아내께서 임신도 했는데, 갔다 오시죠”

“아뇨. 울 여왕님께서도 일 마치고 돌아오라고 했습니다.”

잠시나마, 김태석 대령과 잡담을 나누며 커피를 마신 남궁원은 마지막으로 얼음 하나를 입에 털어 넣고는 크게 기지개를 켰다.

“아! 상쾌해지네요. 커피 잘 마셨습니다. 부센터장님!”

“그래요. 쉬엄쉬엄하면서 하세요.”

“네”

김태석 대령이 돌아가고 다시금 컴퓨터 화면과 마주 앉은 남궁원은 양손을 잡고 손목을 가볍게 돌리며 풀고는 바로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모니터 화면에 수많은 영어문자가 어지럽게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일반이 보자면 대체 뭘 하는지 모를 작업을 이어갔다.

‘하~ 호큘라만 있었어도 금방 끝났을 텐데······.’

남궁원은 자기도 모르게 3년 전에 자신의 별로 돌아간 호큘라 이름을 읊었다. 하지만 사실, 이곳에도 호큘라 시스템을 바탕으로 한 고성능의 인공지능 슈퍼컴퓨터가 여러 대가 있었다. 성능적으로 호큘라보다 비교하자면 아직은 비교 불가지만 그래도 지구 상에서 가장 똑똑한 슈퍼컴퓨터이긴 하다. 현재 모델 5가지 생산된 상태로 향후 모델 10 정도가 되면 호큘라와 비슷한 성능을 발휘할 것이라는 하는 파르테논 연구원들의 예상을 하고 했다.

잠시 엉뚱한 생각에 빠졌던 남궁원은 머리를 세차게 한번 흔들고는 다시금 집중했다.

‘이제 마지막 3단계만 풀면 된다.’

다시 한번 각오를 다짐하고 빛 속도에 가까운 타자 실력을 보이는 남궁원, 그때 지금까지 막혀있던 뭔가가 풀리는듯한 느낌이 들더니 컴퓨터 화면에 ‘success’라는 반가운 영어단어가 나타났다.

“됐어! 까오오오오~”

기쁜 나머지 자기도 모르게 만세를 부르며 외친 남궁원! 그러자 주변에 있던 디지털센터 요원들이 한꺼번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어? 뭡니까? 푼 겁니까? 과장님!”

“성공했습니까?”

“와! 대단하다.”

“역시 세계 제일의 해커입니다.”

몰려든 디지털센터 요원들이 한마디씩 던졌다.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간 남궁원은 조심스럽게 폴더 하나를 선택하고 클릭했다. 사실, 3중 암호화 코드를 푸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문제는 무턱대고 3중 암호화 코드를 풀었다가 만에 하나 자동삭제프로그램이 작동해 어렵게 내려받은 자료들이 삭제되거나, 아니면 알 수 없는 추적프로그램이 작동하여 해킹한 사실은 물론 역추적 되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기에 최대한 신중하게 암호화 코드를 풀어야만 했다.

어쨌든 이번에도 남궁원의 손으로 국가에 큰 보탬이 되는 일을 하게 됐다.

여기저기에서 환호성이 터지고 한 번씩 남궁원의 어깨를 짚으며 격려를 해줬다.

딸각!

선택된 폴더에 마우스 포인트를 갖다 대고 클릭을 하자 지금까지 금단의 영역이었던 폴더가 열렸다.

폴더 안에는 20여 개의 파일이 들어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첫 번째 폴더 안에 있는 파일들은 아틀라스 위성과 관련된 자료들이 아니었다. NASA 서버 망에서 아틀라스 위성과 관련된 자료는 물론 비슷한 자료를 몽땅 내려받았기에 필요치 않은 파일들도 상당히 들어있었다.

“자! 암호화 코드 번호 알려드릴게요. 각자 담당하는 폴더 검색해서 아틀라스 위성과 관련된 파일을 찾으세요. 아셨죠?”

“네, 알겠습니다.”

“가자! 가자!”

몰려들었던 요원들은 우르르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잠시 후 남궁원이 알려준 암호화 코드 번호를 통해 각자 주어진 폴더를 열고 파일들을 하나하나 확인하기 시작했다.

“남궁 과장님! 큰일 하셨습니다.”

30여 분 전, 아이스커피를 건네고 잠시 자리를 비웠던 부센터장 김태석 대령이 헐레벌떡 뛰어오더니 가쁜 숨을 내쉬며 말했다.

“운이 좋았습니다.”

“운이라니요. 이것 때문에 며칠을 고생했는데요. 하하하, 지금 합참에 갔던 센터장님도 오고 계실 겁니다.”

10여 분 후,

“찾았습니다. 찾았어요.”

누군가 손을 번쩍 들며 소리쳤다. 그러자 이번엔 그쪽으로 모든 요원이 몰려갔다. 남궁원과 김태석 대령도 기대 찬 표정을 지으며 소리친 요원 쪽으로 향했다.

“워워!”

마우스를 쥐고 있는 요원의 손이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이게 뭐라고 이리 흥분되고 떨리는지······. 요원은 마우스 포인트를 움직여 폴더 안에 있는 파일 하나하나를 클릭해 컴퓨터 화면에 띄웠다.

화면에 띄워진 파일들은 그동안 찾고자 했던 아틀라스 위성과 관련된 정보가 담긴 파일이 분명했다.

“와!”

“옳다구나 야!”

“대에에에에~ 박!”

“아! 이제 좀 쉴 수 있는 건가?”

★ ★ ★

2024년 1월 28일 09:00,

남주 서울특별시 용산구 B2 벙커(합동참모본부 정보본부 디지털정보센터).

신성용 합참의장은 몇몇 참모진들 대동하고 직접 디지털정보센터를 방문했다. 업무 시작과 함께 디지털센터장으로부터 아틀라스 위성과 관련된 정보를 획득했다는 보고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음, 정말 어처구니가 없군!”

아틀라스 위성과 관련하여 취합한 자료 보고서를 한 움큼 받아든 신성용 합참의장은 한 장씩 넘기며 허탈한 한숨을 내쉬었다.

읽고 있는 보고서에는 아틀라스 위성은 미국의 최신예 정찰위성이며 기존 다른 정찰위성과 다르게 스텔스 기능이 탑재된 전투기와 구축함을 중점적으로 탐색하는데 특화된 초고도의 성능의 레이더가 장착된 첩보 및 정찰하는 군사위성이라고 설명되어 있었다.

“미제 아새끼들이래, 이거이 한러전에 있어서 불법 개입이 아닙네까? 적성국에 저런 군사위성으로 탐지정보를 제공하고 말입네다.”

“윤 차장님! 그렇다고 미국이 러시아에 탐지정보를 제공했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김용현 합참차장이 신중한 태도로 차분히 말했다.

“증거가 없다니요? 그 당시 공중전이 펼쳐졌던 지구 상공에는 정찰위성으로 생각되는 것은 저 빌어먹을 위성밖엔 없었습네다. 그게 증거이디 뭡네까? 그리고 지금은 미국과 전면전에 가까운 전쟁을 벌이는 상황이니끼니 증거 같은 건 필요없디요.”

흥분한 윤기윤 합참차장이 탁자를 내려치며 울분을 토하며 말했다. 이에 김용현 합참차장은 불같은 성격의 윤기윤 합참차장과 말이 길어질 거 같았는지 살짝 의제를 바꿔 말했다.

“하지만, 어떻게 우리 전투기의 스텔스 기능을 무력화시키는 레이더를 개발했는지 의문입니다. 지난 한미전에서 51구역을 완전히 초토화했는데 말입니다.”

질문 비슷하게 말하는 김용현 합참차장의 말에 맞은편에 앉아있던 나현희 수석연구원이 상체를 회의 탁자 앞으로 당기며 입을 열었다.

“미국은 수십 년 동안 외계 과학기술을 토대로 수많은 연구를 진행했을 겁니다. 51구역에 있던 각종 외계 과학기술 자료들이 날아갔더라도 지금까지 여러 곳에서 연구했을 것은 자명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 조금은 안일하게 대처한 듯합니다.”

합동참모본부의 요청으로 아침 일찍 파르테논 연구소에서 상경한 나현희 수석연구원은 초양자 레이더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저명한 박사 중의 한 명이었다.

“기술된 자료를 보면 우리가 개발한 초양자파를 이용한 레이더로 보입니다. 아직은 기초적이긴 하지만, 제가 볼 때 이 정도면 우리 스텔스 전투기들을 30%에서 50% 정도는 탐지당할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함께 온 강혁도 선임연구원이 추가적인 설명을 이어갔다.

“합참의장님! 지금 당장 항공우주군을 통해 저 빌어먹을 위성들을 죄다 박살 내는 게 어떻겠습니까?”

윤기윤 합참의장의 말에 신성용 합참의장은 팔짱을 끼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합참의장님! 고민할 게 뭐가 있습네까? 당장 박살네시디요.”

다그치듯 재차 묻는 윤기윤 합참차장의 말에 신성용 합참의장은 보고서를 탁자에 내려놓으며 무겁게 입을 열었다.

“역으로 써먹어야겠습니다.”

“그게 무슨 말입네까?”

재차 묻는 윤기윤 합참의장에 말에 신성용 합참의장은 엷은 미소를 보였다. 뭔가 기발한 생각이 있다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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