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53화 (553/605)

철퇴

“그러니끼니 의장께서는 미제 놈들이 진작부터 한러전에 개입했다는 말이디요?”

오동권 중장의 설명이 끝나자 윤기윤 합참차장이 가장 먼저 말문을 열었다.

“아직 확실할 순 없지만, 지난 공중전에서 우리 공군의 피해가 큰 것으로 봐서, 그러한 의심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비공식적으로 오 중장에게 지시를 내렸던 겁니다.”

“그렇군요. 오 중장! 언제쯤 해킹한 파일을 열어볼 수 있갔어?”

윤기윤 합참차장의 질문에 다시금 모든 시선이 오동원 중장에게 쏠렸다.

“음, 3중으로 된 암호화 프로그램이 기존 프로그램과 다르게 상당한 기술로 만들어져 애를 먹고 있는 듯합니다. 장담할 순 없지만, 며칠 이내로 풀 수도 있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이거이, 줄줄이 사탕이구만 기래! 모스크바에 공수침투를 하려면 바아칼 호수에서 북서부전선이 고착화가 되야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공중지원이 필수고, 그러려면 정말 미제 아새끼들의 아틀라스가 뭔가 하는 정찰위성의 정체를 파악해야 하니끼니 해킹한 파일의 암호화 프로그램을 푸는 것이 가장 우선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디 않습네까?”

윤기윤 합참차장이 현재 상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서 말했다.

“만약 암호화 푸는 것이 지체된다면 오성덕 대장 요청대로 공중전력을 투입해야겠지요.”

김은호 공군참모총장은 공중전력의 손실을 각오한 듯 말했다.

“미국과 전면전을 앞둔 상황에서 또다시 공중전력을 잃을 순 없네. 하루나 이틀 정도 기다려보고 그때 결정하도록 하세.”

“그러디 말고, 현재 미국과 전면전을 앞둔 상황에서 하늘에 떠 있는 미제들의 모든 위성을 박살 내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럼 그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디요.”

윤기윤 합참차장의 말대로 미국 위성으로 판단된 모든 위성을 공격한다면 이러한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전면전을 앞둔 상태임에도 아직 군사위성인지 민간위성인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무별 적인 위성 공격은 3년 전 동북아전쟁 이후 UN의 모든 가입국이 체결한 전쟁발발 시 적성국의 민간위성에 대한 공격을 금지하는 조약에 위배 되기 때문이었다.

“그건, 민간위성공격금지 조약에 어긋납니다.”

신성용 합참의장이 단호하게 말했다.

“합참의장님! 지금까지 조약은 강대국에 의해 수시로 깨지지 않았습니까? 이렇듯 힘의 논리에 왔다 갔다 하는 조약을 굳이 지금 상황에서 지키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네다.”

“하하, 윤기윤 합참차장님! 지금부터라도 강대국인 우리 대한민국이 솔선수범해야지 않겠습니까?”

과욕 적인 윤기윤 합참차장의 발언에 신성용 합참의장은 조곤조곤 조용한 말투로 이해시키려 했다.

“솔선수범도 상황에 따라 해야지 않겠습네까? 국가의 운명을 걸고 치르는 전쟁에서 그깟 조약을 지키려는 건 나중에 큰 후회를 할 수 있습니다.”

끝까지 자신의 의견을 내세우는 윤기윤 합참차장! 이에 신성용 합참의장은 최후의 수단으로 대통령 이름을 팔았다.

“대통령께선 절대 수용하지 않을 것입니다. 윤 차장님도 잘 알지 않습니까? 대통령의 성향을 말입니다.”

“음, 음, 그렇긴 하디만······.”

단념하듯 윤기윤 합참차장이 말끝을 흐리자 자리에서 일어선 신성용 합참의장은 양손으로 회의 탁자를 딛고는 힘있게 말했다.

“자자! 어쨌든, 이틀 정도는 기다려볼 시간은 있을 듯합니다. 그러니 그때까지 기다려보고 다시 한번 심도 있게 의논해 봅시다. 그럼, 러시아 남부 관련 브리핑을 시작하도록 합시다.”

신성용 합참의장이 말이 끝남과 동시에 그동안 스크린 화면상에 모습을 보이던 피스부대 사령관 김선호 중장이 절도있는 경례를 시작으로 브리핑을 시작했다.

- 저번 브리핑 이후 새로운 상황부터 먼저 브리핑을 하겠습니다. 먼저 지도를 봐주시기 바랍니다.

다른 스크린에서 현재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남부 전체가 보이는 디지털 지도가 펼쳐졌다.

- 현재 칼미키야를 담당하고 있는 피스부대의 제7기계화보병여단의 예하부대 중 하나가 금일 새벽 5시에 아스트라칸스키야 오블래스트의 아스트라한을 점령하였습니다. 이곳을 지키고 있던 남부군구 본부는 볼가강 동단에서 북쪽으로 이동하여 예하부대인 제58군과 합류할 것으로 판단됩니다. 여단 본진은 볼가강 서단에서 북진 중이며, 75기계화보병대대는 아스트라한을 후속 경계부대가 도착하는 즉시 인수인계를 마치고 볼가강 동단에서 북진할 예정입니다.

김선호 중장의 설명에 따라 디지털 지도에서는 각종 전술표기는 물론 각종 이동 경로를 알리는 화살표 기호가 그려졌다.

- 그리고 현재 크라노야르스키 변경주에 대한 완전제압 작전에 들어간 35기계화보병여단은 5해병사단 소속의 경계부대가 도착하는 즉시 3해병사단을 지원하기 위해 로스토프스카야 오블래스트로 이동할 예정입니다. 예정 시기는 대략 2일, 28일 오후 2시입니다. 그리고 이틀 전 볼고돈스크까지 기동했던 11해병기동여단은 현재 3해병기동사단의 예하부대인 제12기계화보병여단과 합류한 상태로 볼고그라드스카야 오블래스트 남단 전선을 담당할 예정입니다.

스크린 화면의 디지털 지도 곳곳에 아군 부대 전술기호들이 설명에 따라 하나하나 표기되었다.

- 3해병기동사단은 현재 서부 주경계선 일대에서 모든 준비를 마치고 대기 중이며 모든 부대가 합류하는 시점인 3일 후 29일 오전 10시에 볼고그라드스카야 오블래스트 진공에 들어갈 예정입니다.

다시 한번 디지털 지도 내에서 여러 개의 화살표가 동시다발적으로 볼고그라드스카야 오블래스트 안으로 그어지고 있었다.

대략 대한민국 남주 크기의 볼고그라드스캬야 오블래스트에는 러시아 서부군구의 제1근위전차군과 제20근위군, 그리고 제50친위군이 적절한 지역에서 대기 중이었고 볼가강 동단에는 남부군구의 제58군이 방어선을 구축한 상태로 기다리고 있었다. 더군다나 이곳은 돈강을 비롯해 호표르강과 메드베디짜강 등 여러 물주기가 사방으로 퍼져나가 방어하는 입장에서는 이렇게 좋은 지형은 없었다. 그렇다고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만에 방어에 성공하고 다시금 남부 지역을 수복하기 위해서는 기공에 많은 제약을 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선방어 후공격이기에 볼고그라드스캬야 오블래스트 곳곳에 배치된 서부군구의 예하부대들은 최대한 주변 지형을 이용해 유리한 곳에서 방어선을 구축한 상태였다.

- 마지막으로 보로네즈스카야 오블래스트의 보로네슈 근방에서 정찰전력에 확인되었던 서부군구 제6군과 함께 미국 나토군 4개 사단은 현재 부투를리놉카까지 남진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하지만, 예상 진공로가 정확지 않아 그에 맞는 대응 작전 안을 수립하는 데 있어서 약간 애를 먹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각종 정찰전력으로 파악한 미국 나토군 규모는 스트라이크여단이라 불리는 경여단 3개와 기갑사단 1개, 그리고 2개의 기동보병사단이었다. 한국군 편제로 보자면 군단급 규모였다.

문제는 서부군구 제6군과 함께 파블롭스크 근방까지 남진한 미국 나토군의 예상 진공로가 분명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파블롭스크에서는 우크라이나 루한스카이나 러시아 로스토프스카야 오블래스트로 올 수 있었다. 아니면 한국군의 최종 점령 지역인 볼고그라드스카야 오블래스트로도 올 수 있었다. 즉, 앞서 설명한 러시아군의 여러 부대와 다르게 전면 공격 임무를 수행할 제6군과 미국 나토군의 진공 방향을 정확히 예상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피스부대의 예하부대를 배치하는 데 있어서 크나큰 걸림돌이 되고 말았다.

가용한 전투부대가 많다면 이러한 고민과 걱정은 없겠지만, 고작 3개 사단급 규모로 한반도보다 몇 배에 달하는 영토를 방어하는 데 있어서 부대 배치는 신중에 신중을 더해야만 했다.

“음, 위치상 그럴 만도 하군. 가용한 정찰전력을 최대한 이용해 실시간으로 저 부대들을 감시한다고 하더라도 일부 미끼부대를 이용해 교란할 것은 분명할 테니 말이야.”

신성용 합참의장이 팔짱을 낀 채로 어두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 네, 그렇습니다. 어쨌든 작전참모진들이 최대한 대응 작전 안을 수립 중입니다.

이때 양민춘 중장이 손을 들며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김 중장님!”

- 네, 본부장님!

“제가 생각하기엔 나토군과 6군은 절대로 볼고그라드스카야 오블래스트로 가지 않을 것입니다.”

“이유가 뭔가?”

김용현 합참차장이 확신 찬 어투로 말하는 양민춘 중장에게 질문을 던졌다.

“네, 현재 볼고그라드스카야 오블래스트에는 고작 2개 사단급 규모의 우리 군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대략 4군 규모의 전력이 방어 임무에 투입된 상태입니다. 저나 러시아군 수뇌부가 봐도 충분하다고 판단할 것입니다. 그런 곳에 또 다른 1개 군과 미국 나토군까지 방어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이동하진 않을 것입니다.”

양민춘 중장의 논리정연한 설명에 지휘관들과 참모들은 고개를 끄덕이거나 반짝이는 눈빛으로 수긍을 표했다.

“그렇다면 루한스카이나 러시아 로스토프스카야 오블래스트 중 한 곳으로 예상하는 건가?”

다시 한번 김용현 합참차장의 질문이 이어지자, 양민춘 중장은 조금 전보다 더욱 확신 찬 목소리로 말했다.

“루한스카도 아닙니다. 미국 나토군과 서부군구 6군은 로스토프스카야 오블래스트로 진공 할 것입니다. 그거는 이렇습니다. 러시아의 최대곡창지대라 불리는 이곳 남부를 잃은 상황인 만큼 그들에게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격입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우크라이나의 루한스카 수복할 여력은 없다고 봅니다. 서부군구는 유럽으로부터 수도인 모스크바를 방어하는 절대 방어선의 부대들입니다. 그러한 부대를 모두 남부에 투입했다는 것은 얼마나 그들에게 있어서 남부가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예라 생각합니다. 아마도 나토군과 6군은 우리 피스부대가 볼고그라드스카야 오블래스트에 대한 본격적인 진공을 하는 시점을 기해 역으로 로스토프스카야 오블래스트로 진공 이후 우회하여 피스부대의 후방을 노릴 확률이 높습니다.”

설명을 마친 양민춘 중장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지휘관들과 참모진들을 두루 살피고는 천천히 제자리에 앉았다.

“그래! 양 중장 의견에 나는 전적으로 동의하네.”

가장 먼저 신성용 합참의장이 양민춘 중장의 말에 손을 들어주자 윤기윤 합참차장도 탁자까지 치며 칭찬을 늘어놨다.

“그렇구만, 이거이 양 중장이래 전략가 중의 전략가야. 내래 인정을 하지 않을 수 가 없구만기래. 하하하”

윤기윤 합참차장의 박장대소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스크린에 눈을 돌린 신성용 합참의장이 물었다.

“김 중장은 어떻게 생각하나?”

- 저 역시, 듣고 보니 합당한 근거라 생각합니다. 양 중장님 때문에 우리 참모진들 고민거리가 풀린 듯합니다.

“그래, 현재 상황에서는 양 중장의 의견을 참고삼아 대응 작전 안을 수립하여 보고해주게.”

- 네, 알겠습니다.

“좋아! 러시아 남부전선은 이쯤에서 마무리 하고 미국 해군의 동향과 수정된 대응 작전 안에 관해서 얘기하도록 하지!”

어느 정도 만족했는지 신성용 합참의장이 주제를 변경하고자 했다.

“네, 의장님, 그럼 해외정찰국으로부터 확인된 내용부터 브리핑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작전회의 사회를 맡은 양민춘 주장의 말에 뒷자리에서 기다리고 있던 해외정찰국 부국장 박정규 준장에 자리에서 일어나 단상 옆 스크린 앞으로 다가갔다.

“해외정찰국 부국장 박정규 준장입니다. 금일 아침까지 해외정찰국에서 정찰한 미 해군의 동향에 대해 브리핑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날 작전회의는 오늘따라 오후 3시가 되어서야 끝이 났다. 그만큼 대한민국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시점이 다가왔다는 방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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