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52화 (552/605)

철퇴

2024년 1월 26일 11:00,

남주 서울특별시 용산구 합동참모본부(작전회의실).

일침 일찍 청와대 지하 벙커를 방문하고 온 신성용 합참의장은 기다란 회의 탁자를 두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50여 명의 장성과 참모들을 차례대로 살펴본 후 무겁게 입을 열었다.

“대통령께서 승인하셨네”

순간 합동참모본부의 장성들과 참모들 입에서 조그마한 탄성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그들의 얼굴에서는 의외라는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

“정말입니까?”

김용현 합참차장이 못 믿겠다는 듯 다시 한번 물었다. 이에 신성용 합참의장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렇디요! 그렇디요. 이번 기회에 확실히 러시아를 눌러줘야지 않겠습니까? 하하하”

호기스런 말들을 서슴없이 내뱉은 성격답게 윤기윤 합참차장은 어깨가 들썩일 정도로 웃어 젖히며 말하자 그를 따르는 몇몇 장성과 참모들이 따라 웃었다. 하지만 일부 장성과 참모들의 표정은 굳어있었다. 뭔가 염려된다는 표정을 숨기고 말이다.

북서부전선의 향후 향방을 결정지을 오논강 도하가 시작된 지 하루가 지난 현재 오논강 너머 서단 지역의 설원에서 러시아군의 극렬한 저항에 부딪힌 제1군과 제7기동군단은 러시아군과 밀고 밀리는 공방전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으나 전체적인 전장 상황은 한국군에게 매우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러시아 총참모부로부터 죽음을 각오하고 방어선을 사수하라는 특급 지령을 받은 북서부전선의 사령부였지만, 불행하게도 제7기동군단의 제20기갑사단(결전)은 붉은기갑군단 소속의 여러 예하부대의 집중적인 방어저지에도 불구하고 기어코 오논강 도하에 성공, 이후 일부 예하여단이 물주기를 따라 빠르게 남단으로 진공, 중간에 생각지 못한 대전차지뢰로 인해 골머리를 쌓긴 했지만, 여러 기지를 발휘에 돌파에 성공하면서 오논강을 따라 방어선을 구축하고 있던 제29군독립군단 소속의 제36차량화보병사단을 시작으로 제27기갑사단의 측면을 공격하여 방어선 일축을 무너뜨렸다.

특히나 오논강 중단을 방어하던 제36차량화보병사단은 그동안 여러 전투를 치르는 동안 사단 전력의 50%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었기에 제20기갑사단의 한 개 기갑여단에 속절없이 당하고 말았다.

이처럼 도미노 현상처럼 방어선을 구축했던 러시아군 예하 부대들이 차례대로 무너지게 되면서 제7기동군단의 또 다른 예하부대인 수도기갑사단(맹호)과 제30기계화보병사단(필승)이 도하에 성공하며 러시아군을 서서히 서단 후방으로 밀어냈고 그 틈을 타 제1군 소속의 여러 사단도 신속하게 오논강을 도하 하고는 전력을 보탰다.

이로 인해 현재 역 C자 형태의 굽어진 오논강 서단의 200여 km의 설원에는 시꺼멓게 타버린 각종 전차와 장갑차의 잔해와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시신들이 널려 있었다.

새하얀 설원이었기에 치열하고 참혹했던 전장의 상흔이 하늘에서 비행하며 날아다니는 각종 정찰정력에 뚜렷이 보였다.

마치 하늘의 구멍이라도 뚫린 듯 며칠간 쏟아진 폭설은 방어선을 구축하고 있던 러시아군에게 유리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방어선이 뚫린 이후 서단 설원 위에서 치러진 대규모 기갑 교전에서는 불리하게 돌아가는 방해물이 되고 말았다.

기갑전에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민첩한 기동력이었다. 한가지 예로 붉은기갑군단에서 운용하는 최신예 전차인 T-14B 아르마타 전차는 강력한 16MJ 레일건을 장착한 것에 비해 100mm 광자포에 어김없이 관통당하는 방호력의 한계를 보완할 수 있는 건 오직 민첩한 기동력이었다. 하지만, 이들 T-14B 아르마타 전차 역시 설원 위에서는 눈에 띄게 확연히 기동력이 떨어졌다.

최신예 전차인 T-14B 아르마타 전차마저 이러한데 성능이 하양인 전차와 장갑차는 말 안 해도 뻔한 일이었고 장갑차에서 하차한 휴대용 대전차미사일을 운용하는 전투 보병들의 움직임도 많은 제약을 받고 말았다.

일부 전투 보병들은 눈 속에서 매복한 상태로 한국군 전차와 장갑차에 기습적인 대전차미사일 공격을 가하기도 했지만, 그것은 일부였다. 건물 안도 투시하여 탐지할 수 있는 VR-M 투시경 같은 고성능의 광학장비가 장착한 전차와 장갑차, 더욱이 넓게 펼쳐진 설원의 눈 속에서 매복했던 러시아군 전투 보병들은 공격 한번 하지도 못하고 사전 제압공격을 받고 눈 속에서 산화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이처럼 눈으로 인해 각종 제약을 받으며 교전에 들어간 러시아군에 비해 한국군 제7기동군단 소속의 전차와 장갑차들은 플라즈마 엔진의 높은 출력 때문에 별 무리 없이 설원에서도 신속하고 민첩한 기동력을 발휘했다.

이러한 차이로 인해 교전 초반 몇 배에 달하는 수적 우세 속에서도 시간이 흐를수록 전장 상황은 러시아군에 암울한 현실로 다가오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을 새벽 내내 각종 정찰전력으로 송신된 영상을 스크린을 통해 지켜보고 있던 합동참모본부에서 추은희 대통령께 승인까지 받아가며 꺼내든 카드는 바로 모스크바 전역에 대한 공수침투 작전 안이었고 임무 부대는 작전 12월에 쿠르디스탄에 파병 간 4개 공수육전사단과 본토에서 대기 중인 나머지 4개 공수육전사단, 그리고 특수부대 중의 특수부대인 7개 공수특전여단이었다. 대략 42,000명으로 무시 못 할 대병력이었다.

지난 1차 동북아전쟁 당시 ‘북경몰락’ 작전의 하나로 베이징에 5만에 달하는 특수전 전력을 투입한 거처럼, 이번에도 모스크바에 4만에 달하는 특수전 전력을 투입하여 한러전을 완전히 종결시키고자 했다.

사실, 쿠르디스탄에 파병한 4개의 공수육전사단과 본토에 남아 있는 4개의 공수육전사단은 시베리아 점령작전 안에 따라 향후 북서부전선일대 전장 상황을 지켜본 적절한 시점에 치타를 비롯한 여러 도시에 투입하여 완전한 전선 고착화에 이용할 획이었다. 하지만 금일 새벽, 오논강 도하에 따른 교전 상황이 생각 이상으로 유리하게 돌아가자 작전본부장인 양민춘 중장은 신성용 합참의장에게 새로운 작전 안을 제시했다.

예전 ‘북경몰락’ 작전 안을 참고한 작전명 ‘불곰 포획’ 안이었다. 말 그대로 모스크바 전역에 가용한 모든 특수전 전력을 동시에 공수로 투입 시켜 푸틴 대통령과 군 수뇌부를 직접 군사적 압박을 가해 흔들겠다는 의도였다.

만약 의도대로 푸틴 대통령이나 군 수뇌부가 압박에 흔들려 종전의 손짓을 하게 된다면 한러전을 조기에 끝낼 수 있다는 생각에 신성용 합참의장은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온건파라 할 수 있는 김용현 합참차장을 비롯한 여러 지휘관과 참모들은 반대했다.

현재, 미국과 전면전으로 확대되는 상황에서 러시아 수도까지 교전 전선을 넓히기엔 무리라는 것과 한중전과 다르게 한러전은 어느 정도 전선 일대가 정리되면 서로 간 협상을 통해 전쟁을 종결시켜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일리 있는 주장이었다. 대한민국과 가까웠던 중국과는 다르게 러시아는 영토는 매우 넓을뿐더러 거리 또한 무시 못 할 매우 먼 거리였다. 만약 푸틴 대통령이 모스크바에 대한 공격에 도리어 앙심을 품고 끝까지 전쟁을 몰고 간다면 미국과의 전면전이 치달은 상황에서 매우 힘들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었다. 하지만, 이번 작전 안을 내민 양민춘 중장과 윤기윤 합참차장을 대표로 한 강경파의 주장도 못지않았다.

푸틴 대통령의 성향상, 이번 한러전은 쉽게 종결된 전쟁이 아니라는 것과 그러므로 조금은 무리를 해서라도 모스크바에 직접적 군사 타격을 입혀 푸틴 대통령과 군 수뇌부를 압박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렇듯 서로 다른 주장을 피력하는 두 계파 간의 의견이 충돌하는 합동참모본부 분위기 속에서 신성용 합참의장은 한참을 깊은 고민에 들어간 후 결론을 냈다.

국민의 안전과 국토방위 수호를 우선으로 하는 군인 신분으로써 두 계파 간의 주장은 틀린 것이 아닌 다른 것이었다. 이에 신성용 합참의장은 두 가지의 주장을 일단 대통령께 보고하고자 했다. 그래서 금일 아침 날이 밝자 청와대의 지하 벙커를 방문했다.

결과적으로 추은희 대통령은 강경파가 주장하는 쪽에 손을 들어줬다. 추은희 대통령이 이러한 결정을 한 이유에는 이번 기회에 푸틴을 대통령 자리에서 내려 앉히고 러시아를 사회주의가 아닌 민주주의 국가로 만들기로 작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러시아를 완전히 제압해야 하는 것은 필수였고 모스크바에 대규모 공수부대를 투입하는 것은 적절하다고 판단한 이유였다.

“강 대장! 쿠르디스탄에 파병 간 공수육전사단의 동원은 언제쯤 가능하겠나?”

윤기윤 합참차장이 호탕한 웃음을 흘리는 가운데 고개를 돌린 신성용 합참의장인 특수전사령관인 강정현 대장에게 물었다.

“현재 쿠르디스탄 내 담당 경계구역은 대부분 동맹국에서 파병 온 경계병들에게 인수인계가 완료된 상황이라, 대략 2일이면 이동 준비를 마칠 수 있을 거라 판단됩니다.

“음, 생각보다 빠르군”

“네, 피스부대 사령관으로부터 전해 듣기로는 동맹국 중 에티오피아 쪽에서 지속해서 파병군을 늘려왔기에 생각 이상으로 경계구역 인수인계가 빨라졌다고 합니다.”

2019년 ‘6·25 참전국 보은지원단’ 사업 혜택을 가장 먼저 받게 된 에티오피아는 5년이 흐른 현재 아프리카 대륙에서 신흥경제 국가로 올라서면서, 과거 빈민국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눈부신 발전을 한 상태였다. 특히 정치적인 면에서도 부정부패가 척결되고 민주주의 국가로 완전히 탈바꿈하게 되면서 정치적으로도 안전수위 이루게 되었다.

이로 인해 대한민국에 대한 친밀함은 ‘6·25 참전국 보은지원단’ 사업 혜택을 받은 많은 국가 중에서도 에티오피아는 최고였고 항상 경제적 정치적으로 보답하고자 해왔기에 쿠르디스탄 파병 관련 자진해서 많은 군인을 보내고 있었다.

“알았네. 그럼 본토에 남은 전력은 어떤가?”

“지금 당장에라도 투입할 수 있습니다.”

강정현 대자의 힘 있는 대답에 신성용 합참의장은 만족한다는 흐뭇한 표정을 지고는 이내 고개를 돌려 작전본부장 양민춘 중장에게 질문을 이어갔다.

“모스크바에 대한 공수투입 시점은 언제쯤 좋을까?”

“네, 우리가 원하는 바이칼 호수까지 북서부전선이 완전히 고착화 되는 시점이라 생각됩니다.”

“바이칼 호수까지?”

“네, 제가 금일 제시한 모스크바 공수작전 안의 핵심은 푸틴 대통령과 군 수뇌부에 대한 심리적 압박에 있습니다. 그러한 심리적 압박을 최대한 노리기 위해서는 바이칼 호수까지 점령 시점이 가장 적기라 보입니다.”

“음, 바이칼 호수까지라······. 좋은 생각이군, 그렇다면 이 대장!”

고개를 끄덕인 신성용 합참의장은 곧바로 제1군 야전사령관 이민호 대장에게 질문을 던졌다.

“네, 의장님!”

“북서부전선의 최후인 바이칼 호수까지 점령한 후 고착화 전선 구축 시점은 언제라 보나?”

질문을 받은 이민호 대장은 신중한 대답을 하고자 했는지 잠시 생각에 잠긴 후 입을 열었다.

“섣부른 판단은 할 수 없으나 공중화력 지원을 받게 된다면 일주일 안으로 생각됩니다.”

“전제조건이 공중화력 지원인가?”

“네, 그렇습니다. 현재 교전 상황을 보자면 우리 군이 유리한 것은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현재 러시아군은 목숨을 걸고 교전에 임하고 있으며 그동안 숨겨뒀던 공군전력까지 총동원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무리한 진공은 다소 우리 군의 피해가 커질 수도 있습니다. 이에 적 공군전력을 상대하고 지상에 대한 공중화력까지 지원해준다면 일주일 안으로 큰 피해 없이 바이칼 호수까지 점령할 수 있다고 봅니다.”

냉철한 판단과 분석이었다.

“공중지원이라······.”

오른손으로 자신의 턱을 괸 신성용 합참장의장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오동원 중장을 향했다. 이에 오동원 중장 역시 합참의장의 시선을 의식하고는 이내 대답했다.

“앞서 보고드린 대로 현재, 필요한 정보를 획득하였으나, 3중으로 된 암호화 풀기가 쉽지 않은 듯합니다. 현재 가용한 모든 인력을 총동원하여 진행 중입니다.”

“생각보다 시간이 걸리는군.”

괴고 있던 자신의 턱을 쓰다듬던 신성용 합참의장이 짧게 내뱉자 작전회의실에 있던 장성과 참모들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합참의장에게 바라봤다. 그것을 눈치채 신성용 합참의장은 손바닥을 보이며 미안하다는 손짓과 함께 그들의 궁금증을 풀어졌다.

“아! 미안하네. 다들 모르고 있었던 걸 깜빡했군. 내가 비밀리에 정보본부장에게 알아보라고 한 게 있었네. 자네가 설명하게.”

“네, 알겠습니다.”

대답과 동시에 오동권 중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동안 신성용 합참의장으로부터 지시를 받고 진행했던 미국 아틀라스 위성에 대한 정체 파악에 관한 내용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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