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퇴
위이이이이이잉~! 툭!
엄청난 속도로 회전하며 붉은 빛줄기를 쏟아내던 8mm 6열 레이저 벌컨이 멈추자 하얀색으로 위장복을 입고 접근하던 소대급 러시아 전투 보병들은 차디찬 설원 위를 붉은 물감으로 색칠한 듯 곳곳에 사지가 잘려나간 상태로 피범벅을 만든 후였다.
“적 보병 클리어!”
쿠르르르릉! 쿠르르르릉!
이때 측후방 일대에서 기동하던 1소대장 전차인 711호 전차가 긴급히 다가와 712호 전차 옆에 붙으면서 뒤에 있는 713호 전차를 함께 방어해줬다.
- 소대장이다. 713호 부상자들은 본 전차에 승계하고 713호 전차장은 탑승하도록! 현재 대대본부에서 구조장갑차가 오고 있다고 한다.
“알겠습니다. 부상자 승계 및 본 전차 탑승합니다.”
헬멧에 달린 무선통신망으로 대답한 김영주 중사는 누워있는 3명의 전우를 차례대로 보고는 이내 자신의 전차 쪽으로 뛰었다.
잠시 후 해치를 열고 전차장 자리에 탑승한 김영주 중사는 가빠 오르는 숨을 내쉬었다.
“전차장님 괜찮습니까?”
조준경을 통해 적 동향을 살피던 염훈기 하사가 전차장이 돌아오자 다급히 물었다.
“응! 괜찮아! 것보다! 김 상병! 지뢰는 확인 안 되냐?”
- 그것이 여러 비전 모드로 전환해도 확인되지 않습니다.
“대체 뭐로 만들었는데 감지를 못한 거야?”
자칫 이곳에서 고립될 수 있다는 생각에 김영주 중사는 일갈하며 현시경 측면을 냅다 후려쳤다.
김일수 상병 말대로 현시경의 여러 비전 모드로 전환해 전방 설원 곳곳을 확인했지만, 지뢰로 보일만 한 것도 일절 감지되지 않았다. 이에 답답한 마음에 엄한 현시경에 화풀이를 하고 말았다.
플라스틱이나 목재로 만들어진 작은 대인지뢰조차도 화약성분을 감지할 수 있음에도 45톤에 달하는 전차를 공중으로 솟구치게 할 정도의 고성능 화약을 감지 못하고 있었다.
“어떻게 합니까?”
염훈기 하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뭘 어떻게 해? 뚫고 나가야지!”
“네? 기동한다고 말입니까?”
“그럼 여기서 넋 놓고 있다가 당할 순 없잖아!”
“그래도, 지뢰 성능 보셨지 않습니까? 전차 전체를 날려버릴 정도인데······. 자살행위입니다.”
사실 말은 그렇게 했어도 염훈기 하사 말대로 대전차지뢰가 깔린 눈밭 위를 기동한다는 것은 자살행위와 같았기에 마음속으로 두려웠다. 이때 김영주 중사의 뇌리를 스치는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그렇지!”
손가락을 튕긴 김영주 중사는 중대 통신망을 개방하고는 소리쳤다.
“712호 전차장 김영주 중사입니다. 대전차지뢰가 감지되지 않은 이상! 일정 거리를 두고 광자포와 레이저 벌컨으로 진로 확보하며 기동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적 장갑차들이 400m까지 근접했다는 건, 지뢰지대가 그리 넓진 않은 거 같습니다.”
- 중대장이다. 좋은 생각이다. 구조 중인 전차를 제외한 나머지 전차들은 김 중사 말대로 전방 진로 확보하며 적 장갑차가 출현했던 곳까지 빠르게 지뢰지대에서 이탈한다.
중대장의 승인이 떨어지자마자 김일수 상병은 기다렸다는 듯 오른발에 힘을 주자 712호 전차는 거친 엔진음을 내며 다시금 앞으로 튀어나갔다.
“염아! 넌 광자포로 10m 간격으로 발사해!”
“알겠습니다.”
전자창의 명령대로 염훈기 하사는 포탑의 광자포 포신을 최대한 낮추고는 전방을 향해 10m 간격으로 광자포를 발사했다. 그리고 김영주 중사는 광자포가 착탄한 10m 간격 안에 8mm 레이저 벌컨을 사정없이 쏟아댔다.
콰앙! 콰앙!
쭈우우우우우웅! 쭈우우우우우웅! 쭈우우우우우웅!
쿠아아앙!
각자 기동할 진공로에 광자포와 레이저 빛줄기가 사정없이 쏟아지자 간혹 엄청난 폭발과 함께 거대한 눈 기둥이 하늘로 솟구쳤다. 그러는 사이 711호 전차와 721호 전차는 부상한 승조원을 자신의 전차에 탑승시키고 빠르게 구조장갑차가 오고 있는 후방으로 퇴각했다.
잠시 후 하늘에서 피리 부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조금 전까지 7중대 전차가 대전차지뢰로 인해 기동을 멈추고 서 있던 곳에 수많은 박격포탄과 포탄이 사정없이 쏟아졌다. 그리고는 이내 수를 헤아릴 수 없는 눈 기둥들이 곳곳에서 솟구쳤다.
콰아앙! 콰아앙! 쾅앙! 콰르르릉! 콰앙!
조금만 늦었어도 멈춰 있던 상태에서 어마어마한 수량의 폭탄을 뒤집어 쓸뻔한 아찔한 순간이었다.
생각지 못한 대전차지뢰로 인해 위험에 직면했던 7중대 전차들은 부상한 전우의 복수를 다짐하며 앞으로 400m 능선 아래쪽에서 엄폐 중인 쿠르가네츠-25 장갑차를 향해 분노의 질주를 이어갔다.
★ ★ ★
2024년 1월 25일 11:00 (러시아시각 04:00),
러시아 트라칸스카야 오블래스트로 아스트라한시 아스트라한 대교(75기계화보병대대).
시가전에 접어든 지 3시간이 흐른 시점, 볼가강 서단 위성 도시를 완전히 점령한 75기계화보병대대는 날이 밝기 전, 동단 아스트라한시를 점령하고자 급히 기동에 들어갔고 선봉으로 3기계화보병중대가 막 아스트라한 대교를 건너기 시작했다.
이번 교전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동단 시가전이 시작됨과 동시에 여러 대의 스파이더-II 정찰 드론을 날려 3시간 동안 아스트라한 대교 동단 상황을 정찰한 결과 매복 중인 러시아군 대부분을 파악하고 있었다.
이에 아스트라한 대교 서단에는 5중대를 제외한 6중대와 본부중대의 각종 장갑차가 화력지원을 위해 기다랗게 횡대 대형을 갖추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덧 3기계화중대 장갑차들이 대교 중간까지 진입할 때쯤 후방 일대에서 50mm 광자포의 맹렬한 폭발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화력지원이 시작되었다.
수십 개에 달하는 광자로 붉은 입자는 그대로 볼가강을 스치며 날아가더니 이내 동단에 세워진 건물들을 강타했다.
콰아앙! 콰아앙! 콰아앙!
사전에 스파이더-II 정찰 드론으로 정찰하여 확보한 러시아군의 매복부대를 정확히 타격했다. 붉은 입자에 강타당한 건물들 사이사이에서 검붉은 화염이 솟구치며 어떤 건물은 일부 무너지기까지 했다.
구경이 50mm였지만, 광자포의 화력만큼은 가공했다.
한편, 매복 중인 러시아군도 마냥 당하지만은 않겠다는 듯 곧바로 보복공격을 가해왔다. 시가지 후방 곳곳에서 방열하고 있던 자주포와 박격포를 시작으로 건물 곳곳에서 얼굴만 삐죽 내밀고 있던 보병들과 대전차화기수들이 자신의 화기를 이용해 집중적인 공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볼가강을 사이에 두고 난타전이 시작되었고 작은 섬을 걸치고 있는 아스트라한대교 중간 지점을 통과하고 있던 3기계화중대 장갑차에도 집중적인 공격이 가해졌다.
쿠우우우웅!
콰아앙~
“으윽!”
“오메! 이러다가 죽겠네!”
“악!”
3기계화중대에서도 가장 앞서서 기동하던 1정찰소대 소속 311호 장갑차 내부에서 전투보병들의 비명이 쏟아졌다. 몸이 사방으로 날아갈 정도의 흔들림과 장갑차 외벽을 울리는 각종 충격음이 이들을 아비규환으로 이끌었다.
3기계화중대에서도 가장 앞서서 기동하던 1정찰소대 소속 311호 장갑차 내부에서 전투보병들의 비명이 쏟아졌다.
“이러다가 장갑차 안에서 통구이 되는 거 아닙니까?”
농담인지 아니면 두려움에 헛소리를 내뱉는 것인지 자신의 헬멧을 부여잡고 고개를 숙이고 있던 곽영환 상병이 외침이 장갑차 내부를 울렸다.
“재수 없는 소리 하고 있어!”
빠악!
맞선임 김성호 병장이 한쪽 눈을 휠 켜 뜨며 그대로 곽영환 상병의 뒤통수를 날렸다.
“아악! 그렇다고 이런 상황에서 구타입니까?”
“구타는 자식아! 정신 나간 거 같아서 정신 좀 들라고 한 거지!”
“아예!”
쿠아앙!
키키키키키키키잉!
순간 왼쪽에서 엄청난 충격이 몰아치는가 싶더니 311호 장갑차는 그만 중심을 잃고 돌면서 미끄러지더니 대교 난간에 부딪히고는 멈췄다.
이에 아수라장이 되어버린 장갑차 내부,
엉키고 설킨 상황에서 단차장 고기준 중사의 목소리가 울려 펴졌다.
“애들아! 하차! 기동불능이다.”
311호 장갑차는 재수 없게도 날아온 대전차미사일이 왼쪽 차륜을 강타했고 2개의 바퀴가 터지며 걸레짝이 되고 말았다.
“정말 내립니까?”
분대장 홍한호 병장이 재차 물었다.
“기동불능이라니까 마! 고정표적 되었다가 정말 장갑차 안에서 통구이 되고 싶어! 일단 하차 후 장갑차 뒤쪽으로 엄폐해!”
“알았습니다. 하차! 하차한다.”
분대장의 명령이 떨어지자 하차조 전투 보병들은 열린 후방 해치를 통해 우르르 하차한 후 곧바로 장갑차 뒤로 몸을 숨겼다. 그리고는 장갑차 전방에 연막탄 여러 개를 던졌다.
취이이이이이이~
연막탄이 흑갈색 연막이 터져 나오면 급해 311호 장갑차를 적 시위에서 가려줬다.
“워! 아차 했으면 우리 모두 저승길 갈 뻔했습니다.”
난간에 걸쳐있는 장갑차의 모습을 보고는 곽영환 상병이 고개를 절레거리며 말했다.
311호 장갑차는 대교 난간에 삼분에 일정도 걸친 채로 멈춰 있었다. 만약 조금만 더 미끄러졌다면 수십 미터나 되는 대교 밑으로 떨어질 수도 있었다. 천만다행이었다.
“제길! 하필 차륜에 맞고 지랄이야!”
마지막으로 장갑차에서 내린 고기준 중사가 실컷 욕설을 내뱉었다.
“단차장님! 이제 어찌합니까?”
분대장 홍한호 병장이 단차장에게 물었다.
“고기준 중사는 고개를 빼죽 내밀어 각종 비전 모드로 전방 상황을 확인하고는 이내 대답했다.
“상황 봐서 뛰어가야지!”
“대교 끝자락까지 삼백 미터는 넘겠데 괜찮겠습니까?”
“중간중간에 엄폐할 수 있는 차들이 있잖아! 일단 너희들은 우리 중대가 전방 제압을 완료한 후 5중대가 기동할 때에 마쳐 뛰어가라”
“네, 알겠습니다.”
이렇듯 연막탄과 장갑차 뒤에서 숨을 숨기고 기다리는 동안 대교 동단 끝자락에서 치열한 교전이 진행되고 있음을 방증하듯 수많은 폭발음과 함께 연달아 울려댔다.
쉐에에에에엑~
이때 동단 하늘에서 전투기 엔진음이 울리는가 싶더니 먼가가 아주 빠르게 지나갔다. 이에 311호 장갑차 승조원들과 전투 보병들은 긴장하고 말았다.
혹, 러시아 전투기인가 하는 아찔한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이들의 정체는 제12항모전단 소속의 백범김구함(CV-001)에서 긴급 출격한 무인전투기 CUF/A-22NP 피닉스였다.
그동안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남부 전체에 대한 제공권 확보와 공중화력 지원을 위해 하루에 수십 번씩 출격하던 CUF/A-22NP 피닉스가 이번에 75기계화보병대대를 공중지원하기 위해 날아온 것이었다.
러시아군의 대공 화망을 비웃듯 낮고 빠르게 날아온 CUF/A-22NP 피닉스 6기는 타격할 곳에 정확히 여러 개의 폭탄을 줄줄이 떨어뜨리고는 곧바로 고도를 올리며 시야에서 사라졌다.
순간이었다.
콰아앙! 콰아아아앙!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건물 하나가 통째로 날아갈 만큼 가공할 폭발력이 아스트라한시를 흔들었다. 대부분 대교 동단을 중심으로 매복하고 있던 러시아군에게 폭격이 집중됨으로써 대교 방어 전선 일대가 완전히 와해했다.
이때를 놓칠세라 전방 제압공격에 들어갔던 3기계화중대에 이어 서단 대교에서 대기하고 있던 5기계화중대가 기동을 시작했다.
대교 중간에서 불의의 일격을 받고 장갑차 뒤에서 숨어있던 311호 장갑차 전투 보병들 역시 5기계화중대 장갑차들이 기동하는 때를 노려 있는 힘을 다해 뛰기 시작했다.
“무리하지 말고 중간중간 엄폐물을 이용해 뛴다!”
분대장 홍한호 병장의 명령에 따라 분대원들은 지그재그로 뛰며 흉물스럽게 대교 곳곳에 서 있는 차량을 이용해 가며 앞으로 뛰어나갔다.
파파파팟! 파파파팟!
폭격으로 방어 전선이 무너졌더라도 볼가강을 따라 매복하고 있던 러시아군으로부터 총알 사례는 끝이지 않고 쏟아졌다.
일부 지나가던 5기계화중대 소속의 장갑차가 즉각 제압공격을 가하거나 방패 역할을 해주는 탓에 맨몸으로 달리던 311호 장갑차 분대원들은 큰 위험 없이 동단 대교 끝자락까지 도달했다.
“지금부터 분대장조와 부분대장조로 나뉘어 시가진 진입한다. 분대 거리는 최대 100m 이내에서 움직인다. 무리하지 말고 다들 조심해!”
분대장 홍한호 병장의 명령이 떨어지자 반쯤 무너진 건물 벽에 기대어 거친 숨을 고르던 분대원들은 각자 건물을 기준으로 분대장조와 부분대장조로 나뉘어 본격적인 시가전에 돌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