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전쟁
2024년 1월 25일 08:30 (러시아시각 08:30),
러시아 자바이칼 지방 안디노 포셀리라 서단 8.7km 지점(제20기갑사단 제60기갑여단 26전차대대).
진공로 및 도하예정지역에 대한 사전 정찰 임무를 마친 26전차대대는 오논강을 몇 킬로미터 앞두고 아침 일찍부터 횡대 대열을 갖춘 채 대기하는 상황에서 후방 일대에서는 하얀 눈밭으로 수많은 전차와 장갑차들이 행렬을 이루며 다가오고 있었다.
26전차대대가 속한 제60기갑여단이었다. 현재 제20기갑사단(결전)은 오논강과 합류하는 운다강을 기준으로 북단에는 제60기갑여단이 남단에는 사단 본대라 할 수 있는 제61기갑여단과 제26기계화보병여단 그리고 사단 포병여단과 사단본부가 차례대로 도하 할 예정이었다.
사단 본대가 도하 할 운다강 남단 평지보다 제60기갑여단이 도하 작전을 펼칠 지역의 폭은 대략 1km도 안 되는 좁은 평지대로 여단급 전력이 한 번에 도하 하기에는 다소 협소한 장소였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제60기갑여단이 이곳을 도하 장소로 결정한 이유는 이랬다.
도하 작전을 수립하기에 앞서 제20기갑사단(결전)은 가용한 모든 정찰전력을 동원하여 오논강 전 구역에 대해 세세한 정찰을 한 결과 몇몇 지점이 러시아군의 방어 취약구역을 확인했다. 하지만, 반대로 말하자면 그곳은 제20기갑사단(결전)이 도하 하기에 지형적으로 매우 불리한 구역이라 봐야 했다.
즉, 오논강 전 구역에 대한 도하 방어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판단한 러시아군은 지형적 특성을 고려해 도하 하기 힘든 구역은 최소한의 방어병력만 투입한 상태였다. 이에 제60기갑여단은 역으로 기동과 도하가 힘들더라도 방어 취약구역을 노려 도하 하기로 한 첫 번째 이유였고 두 번째로는 만약 이곳을 신속하게 도하에 성공하여 오논강을 따라 방어라인을 구축한 러시아군의 측면을 치게 된다면 러시아군의 도하 방어선은 급속도로 무너질 것이고 타 사단의 도하 역시 수월해질 수 있다는 분석이었다.
그만큼 제60기갑여단은 이번 도하 작전의 핵심 중의 핵심이었고 그중 정찰 및 도하 선봉을 맡은 제26전차대대의 역할이 가장 중요했다.
온 세상이 하얀 눈으로 덮여 강의 경계는 물론 길조차 확인할 수 없는 상황에서 기존 촬영된 디지털 지도와 한국형 C-GPS만을 의지한 채 건친 엔진음을 내뿜으며 대기하던 26전차대대 소속 C-3A1 백호 전차들이 대대 통신망을 통해 대대장의 기동 명령이 떨어지자 포탑 높이까지 쌓인 하얀 눈을 좌우로 가르며 앞으로 튀어나가기 시작했다.
하늘에서는 여단 본부에서 날린 스파이더-II 정찰 드론과 30여 대의 이글-I 공격 드론이 공격헬기를 대신해 오논강으로 비행하며 공중 화력지원에 들어갔다.
“일수야! 디지털 지도 잘 봐야 한다. 알았지?”
오논강 도하까지 3km를 남겨둔 상태에서 전차장 김영주 중사가 다시 한번 당부했다.
-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얼마나 봤던지 외운 것처럼 머릿속에 가득합니다.
현란한 움직임으로 조종핸들과 좌우 발판을 밟아가며 자신의 애마 702호 백호 전차를 운전하던 김일수 상병이 자체 통신망을 통해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방심은 금물이다. 정신 바짝 차려! 자치 잘못했다간, 기동불능 상태 빠지면, 적 포병한테 난타당한다.”
- 아! 전차장님! 정말 저의 운전 솜씨 못 믿는 겁니까?
“바로 너의 그 근자감 때문에 더 걱정인 거다.”
- 아! 여단 최고의 조종수! 김 상병! 한번 믿어주십시오! 하하하
“제가 조종수일 땐 저러지 않았는데 요새 사병들 정신상태가 이상해졌습니다.”
전직 조종수였던 염훈기 하사마저 뭘 믿고 저런 자신감을 내치는지 모르겠다며 한마디 던졌다.
“내가 볼 때 너도 만만치 않았다.”
“네? 무슨 그런 섭섭한 말씀을······. 저는 저렇게 나대지 않았는데요?”
“정말?”
“그럼요.”
이때 하늘에서 휘파람 부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순간 곳곳에서 하얀 눈이 하늘 높이 솟구쳤다.
“잡담 그만! 이제 시작이다. 다들 정신 바짝 차리자!”
기존 대전차미사일 요격을 위해 C-3A1 백호전차 포탑 후방에 장착된 레이저요격시스템이 작동되면서 하늘에서는 화려한 불꽃 쇼가 연출되었다.
쭈웅쭈웅쭈웅쭈웅쭈웅쭈웅쭈웅~
콰앙! 콰아앙! 콰아아아아앙!
또한, 공중화력 지원을 위해 날아갔던 이글-I 공격 드론이 포격을 가하는 러시아군 지형으로 빠르게 날아가 제압공격에 들어갔다. 이로써 북서부전선의 향후 향방을 결정지을 오논강 도하 작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눈으로 오논강 경계를 구분할 수 없는 상황에서 C-GPS로 자신의 위치를 파악해가며 기동하던 712호 통신망을 통해 김일수 상병의 외침이 들려왔다.
- 지금부터 도하 들어갑니다. 다들 알고 계십쇼
현재 오논강은 얼어있는 상태였으나, 일주일간 폭설이 내리면서 바깥 기온은 그리 낮지 않았다. 영하 5도에서 영상 2도 정도의 날씨였기에 수십 톤에 달하는 전차가 얼음 위로 기동하기엔 다소 무리였고 또한 얼음 위에 쌓여있는 눈 무게 역시 만만치 않았기에 혹, 도하 중에 얼음이 깨져 강 속으로 빠질 수 있었다.
C-3A1 백호 전차는 수중 도하 능력을 갖췄기에 물속에 빠지더라도 큰 위험은 아니었으나, 문제는 얼음을 깨면서 건너야 하는 상황이 직면하게 매우 난처해질 수밖에 없게 된다. 즉, 도하 속도가 현저히 떨어지게 되면서 러시아군의 표적이 되기 쉽기 때문이었다.
쿠르르르릉! 쿠르르르릉!
울퉁불퉁한 지형과 다르게 오논강 얼음 위에 올라서자 712호 전차는 안정적으로 기동했고 속도 역시 시속 30km였다.
눈만 아니었으면 최대 속도로 도하를 하겠지만, 그러지 못하는 상황이다 보니 이번 도하 작전은 완전히 악조건 속에 진행되었다.
쩌어어어억! 쩌어어억!
서로 간 20m의 간격을 두고 기동했지만, 얼음 깨지는 소리가 얼마나 컸으면 전차 내부에까지 들려오기도 했다.
“어메! 살 떨린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다. 26전차대대 전차들이 오논강 중간까지 진입한 상황에서 건너편 동단에서 대규모의 포탄이 날아왔다.
대대본부의 C-30 비호A2와 CSMA-천마A2를 비롯해 전차에서도 최대한 요격에 들어갔으나 일부 포탄들은 요격 화망을 돌파하고는 오논강 위에 떨어졌다.
콰앙! 콰아아앙! 콰앙!
쩌저저저적! 쩌억!
폭발과 동시에 사방으로 금이 가면서 얼음 위를 달리던 백호 전차들이 하나둘 물속으로 빠지고 말았다.
712호 전차도 이러한 악재를 피하진 못했다. 순간 왼쪽으로 쏠리는가 싶더니 이내 물속으로 가라앉고 말았다.
- 수중 기동 모드 작동합니다!
물속으로 빠르게 가라앉던 712호 전차의 하단 4곳에서 작은 기포가 발생하는가 싶더니 이내 안정적인 자세를 잡고는 마치 배처럼 뜨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얼음을 깨며 앞으로 나아갔다.
크그그그그극! 크큭!
마치 쇄빙선처럼 수십 센티미터나 되는 얼음을 깨며 나가려 하자 712호 전차의 속도는 현저히 떨어졌다. 그런 상황에서 양 진형에서 울려대는 포성음에 천지가 진동했고 화려한 불꽃들이 설원 위 푸른 하늘을 수놓았다.
이렇듯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지는 가운데 남동단 하늘에서는 제7기동군단 제17항공단 소속의 FAH-91SP 송골매 공격헬기 8기가 고속비행 모드로 모습을 드러냈다.
두두두두두두두두~
순식간에 오논강까지 도달한 FAH-91SP 송골매 공격헬기 8기는 즉시 헬기모드로 전환한 후 지상을 향해 각종 화기를 퍼부었다.
슈와아아아아앙~ 슈와아아아아앙~ 슈와아아아아앙~ 슈와아아아아앙~
눈밭 속에서 하얀 연기 꼬리를 물고 솟구치는 지대공미사일을 회피기동으로 피한 송골매 공격헬기 한기가 이내 기수를 지상을 향해 내리고는 방금 지대공미사일을 발사한 곳에 50mm 플라즈마 활성탄을 사정없이 뿌렸댔다.
콰아앙! 콰아앙! 콰아앙!
연달아 날아간 활성탄에 하얀 위장막으로 엄폐하고 있던 대공 사수 무리의 시체들이 갈가리 찢기며 사방으로 눈 기둥과 함께 비상했다. 그리고는 큼지막하게 파진 주변 설원에는 서서히 짙은 핏빛 색깔로 물들어졌다.
이러한 장면을 조준경으로 바라본 염훈기 하사가 인상을 쓰며 아랫입술을 질근 깨물었다. 여러 전쟁 경험이 다분했던 그조차도 이러한 장면은 적응하기가 거북했다. 전쟁의 처참한 참상은 절대로 인간이 적응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그리고 어느덧 26전차대대는 멀게만 보였던 오논강 동단 끝자락에 도달할 때쯤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위장막을 걷어낸 붉은기갑군단 제28기갑사단 소속의 전차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도 러시아의 최신예 T-14B 아르마타 전차였고 규모는 2개 전차대대급이었다.
이들 T-14B 아르마타 전차들은 지금까지 하얀 위장막 속에서 숨죽이고 기다리고 있었다. 특히 이들이 덮고 있던 하얀색의 위장막은 알루미늄판으로 만든 특수 재질의 위장막으로 앞서 여러 차례 정찰전력을 동원했음에도 정체를 파악하지 못한 이유였다.
대략 400m밖에 되지 않은 거리에서 갑작스럽게 나타난 이들 붉은기갑군단 제28기갑사단 T-14B 아르마타 전차들은 즉시 16MJ급 레일건을 막 도하에 성공하는 26전차대대를 지향했다.
한편, 두꺼운 얼음을 깨며 거북이 속도로 도하 하며 오논강 동단 물가까지 진입했던 제26전차대대 백호 전차들도 이들의 출현을 즉시 파악하고는 제압사격을 가하려고 했으나, 이미 모든 준비를 마치고 기다리고 있던 T-14B 아르마타 전차의 공격이 한발 빨랐다.
쿠웅! 쿠웅! 쿠웅! 쿠웅! 쿠웅! 쿠웅! 쿠웅! 쿠웅! 쿠웅! 쿠웅!
70여 대가 동시다발적으로 레일건을 발사했다.
빨랫줄처럼 뻗어 나간 수많은 금속탄이 C-3A1 백호 전차의 정면장갑을 노리며 날아왔다.
너무나 가까운 거리인 나머지 몇몇 백호 전차들은 포탑과 하단차체에 금속탄을 얻어맞으나 대부분 전차는 레이저요격시스템으로 금속탄을 모두 요격했다. 하지만 이들의 포격은 이제 시작에 불과했다.
자동장전시스템에 의해 연발 사격 능력이 탁월한 T-14B 아르마타 전차들은 계속해서 금속탄을 토해냈고 C-3A1 백호 전차에서도 100mm 광자포의 붉은입자를 쏟아냈다.
기갑전치고 매우 짧은 거리에서 연달아 주고받은 금속탄과 광자포 입자! 승패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야야! 그대로 진격! 그대로 진격해!”
현시경을 통해 첫 번째 표적을 박살 낸 712호 전차장 김영주 중사가 3번째 4번째 표적을 설정하며 조종수 김일수 상병에게 지시를 내렸다.
- 전차장님! 방금 한발 맞아서 왼쪽 조종 카메라 먹통입니다.
“핸들 고정하고 그대로 밀고 나가! 안 보여도 그건 되잖아! 여기서 밀려면 우리 대대 전멸한다.”
쮸웅!
그러는 사이 포수 염훈기 하사가 2번째 표적에 조준 십자선을 맞추고는 그대로 발사 판을 밟았다.
순식간에 날아간 광자포의 붉은 입자가 반쯤 눈 속에 파묻힌 상태로 포격을 가하던 T-14B 아르마타 전차의 자체와 포탑 사이를 뚫고 들어갔다.
콰아앙!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포탑 전체가 하늘 높이 솟구치며 날아갔다. 그리고 포탑이 날아간 자체에서는 거대한 화염이 활활 타오르며 불춤을 선보였다.
“굿샷이다. 그대로 3번째 표적으로!”
2번 표적으로 설정한 적 전차의 포탑이 날아가는 장면을 확인한 김영주 중사가 일갈하며 다음 지시를 내렸다.
위이이이이잉!
드디어 도하에 성공하고 경사면을 타고 올라가려던 712호 전차는 3번째 표적을 잡기 위해 포탑이 왼쪽 9시 방향 쪽으로 회전했다. 하지만, 순간 미끄러지면서 표적 설정에 실패하고 말았다.
아무리 강력한 출력을 자랑하는 C-3A1 백호 전차라 하더라도 허리 높이까지 눈이 쌓인 27도 이상의 경사면을 타고 가기엔 무리였다. 계속해서 미끄러지는 바람에 재차 사격은 늦어졌고 5번째 표적으로 삼았던 T-14B 아르마타 전차가 712호 전차를 향해 연속으로 레일건 금속탄을 발사했다.
“야! 뭐 하는 거야? 어서 올라가!”
- 전차장님! 이대로는 못 올라갈 거 같은데 말입니다. 사선으로 올라 가겠습,
콰앙!
순간 712호 전차에 상당한 충격과 함께 진동이 전달됐다.
아악!
크억!
근거리에서 금속탄 타격 충격은 실로 강력했다. 다행히 피격은 모면했지만, 전차 내부 승조원들은 한동안 귀청이 한동안 먹먹할 정도로 상당한 충격이 712호 전차를 덮친 듯했다.
“다들 괜찮냐?”
멍한 상태에서 정신을 차리고자 자신의 머리를 좌우로 흔든 김영주 중사가 승조원들의 안부를 물었다.
- 전 괜찮습니다.
“저도 괜찮습니다.”
“김 상병! 네 말대로 사선으로 움직이고! 염 하사! 4번 표적 패스! 바로 5번 표적으로 넘어간다.”
“옛설!”
한차례 호되게 당한 712호 전차는 약간 오른쪽으로 선회하여 경사면을 사선으로 오르기 시작했고 방금 자신을 향해 레일건 금속탄을 날린 5번 표적으로 광자포 포신을 돌렸다.
얼마 전까지 온 세상이 하얗던 오논강 주변 일대는 불타는 전차 잔해와 시꺼먼 각종 파편이 사정없이 너부러졌고 곳곳에 보기 흉할 정도로 훼손된 시신들이 널려 있었다. 그리고 그 자리는 흘러내린 붉은 피로 이미 물들어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