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46화 (546/605)

하얀전쟁

“그럼 다음으로 넘어가 볼까?”

북서부전선과 관련한 내용이 일단락되자 합참의장은 다른 화면을 주시하며 말했다. 그가 바라본 스크린 화면에는 현재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남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전쟁을 총괄 지휘하는 피스부대 사령관 김선호 중장이 믿음직한 모습으로 대기하고 있었다.

- 금일 오전에 보고드린 내용 외 특별한 부분만 추가로 보고해도 되겠습니다.

“그렇게 하게!”

- 감사합니다. 현재 모든 전장의 교전 상황은 사전에 수립한 대로 차질없이 진행되고 있으나, 현재 볼가강 동단에서 미확인 기갑부대가 다수 확인되어 현재 정찰 중입니다. 아무래도 남부구군 수속의 여러 부대를 규합한 통합부대로 보이며 규모는 1개 사단급 이상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세부 정찰 후 확실히 파악한 후 볼가강 도하작전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그래! 그쪽은 전격적으로 자네 판단하에 진행하게! 사실 그쪽에 신경 쓰지 못한 거 같아 항상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네!”

- 당치 않습니다. 합참의장님! 필요한 지원을 요청할 때마다 먼저 지원해 주셔서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거이 신경이라도 못쓰니 전쟁물자라도 팍팍 밀어줘야 않겠네? 하하”

“그런 뜻이었습니까? 하하하”

“하하하하”

별것도 아닌 거에 작전브리핑실은 웃음바다가 되었다.

“김 중장!”

“네, 합참의장님!”

“이틀 후부터는 북서부전선에서도 본격적인 공세가 시작되면 폭설 때문에 다소 진공 속도는 늦어지겠지만, 적어도 1개월 안으로 러시아군을 바이칼호수 서단까지 격퇴하고 이르쿠츠쿠를 점령할 예정이네. 거리도 그렇고 시간상으로 빠듯할 거야. 그러니 그쪽에서도 수립한 작전 안대로 러시아 남부 일대 점령은 물론 향후 국경선이 될 예상 전선을 공고히 해줬으면 하네. 부탁하네.”

- 네, 합참의장님! 실망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래, 고맙네. 다른 상황은 없남?”

- 네, 나머진 오전에 보고 드린 것에서 별다르지 않습니다.

“좋아! 그럼 그럼 러시아 남부전선도 이쯤에서 마무리 하고, 보고서가 정리될 때까지 각 군 지휘관들과 참모들은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말해보게나.”

신성용 합참의장이 자유발언 시간을 주자 젊은 영관급 장교들이 앞다퉈 손을 들며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기존 딱딱하고 상명하복 체계였던 군대 문화가 신성용 합참의장에 의해 상당히 바뀌고 있었다.

★ ★ ★

2024년 1월 23일 19:00 (미국시각 22일 06:00),

미국 워싱턴 D.C. 해리 S. 트루먼 빌딩 국무부 청사.

대한민국 연합함대와의 해전에서 사실상 태평양함대의 패배로 끝난 상황에서 이른 새벽임에도 펜타곤을 방문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 참모진들 비롯한 펜타곤 수뇌부 지휘관들과 향후 계획에 대해 잠시 브리핑 시간을 가졌다.

회의실 대형 스크린에는 현재 사이판으로 전격 퇴각항해를 하는 태평양함대의 각종 수상함이 보였다.

초반 3개 함대에 1개 강습함대급의 규모였던 태평양함대는 이제는 1개 함대와 1개 강습함대급으로 50%로 매우 축소되어 위풍당당한 모습은 사라지고 없었다. 침몰 된 수상함들과 사용했던 무기들을 돈으로 환산한다면 무려 2,000억 달러였다. 패전한 전투에서 무려 2,000억 달러가 먼지처럼 날아간 것이었다.

문제는 돈도 돈이지만, 3,800여 명에 달하는 사상자였다. 이 중에 전사자는 1,900명이었고 1,239명은 시신조차 찾지 못하는 상황으로 국민의 지지로 먹고사는 정치인에게는 이러한 상황이 가장 치명적이었다. 혹, 전사자 가족을 중심으로 일대 반전언론이 확대될 경우 명확한 명분 없이 그저 동맹국의 '자주국가선포‘를 위해 대한민국 해군에 대한 선제공격 명령을 내린 도널드 트럼프에게 모든 화살이 돌아갈 것은 뻔한 일이었고 이에 대통령 임기 1년을 남기고 탄핵까지 당할 수 있는 매우 심각한 상황으로 전개될 수 있었다.

이러한 이유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을 떠나 이곳 펜타곤을 직접 방문한 이유 중 하나였다.

“어떠한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전사자들의 시신을 꼭 찾아야 하네.”

작전참모장인 닉 리만도 중장의 브리핑이 끝난 후 가장 먼저 도널드 트럼프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현재 민간선박으로 이뤄진 구조대가 구조 및 시신 인양을 해당 해상으로 긴급 투입된 상태입니다. 침몰한 배에서 퇴함하지 못한 시신과 바다에 떠다니는 시신은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인양할 수는 있겠으나, 화재와 폭발로 인해 훼손된 시신은······.”

대통령의 물음에 작전참모장을 대신해 대답하던 오스틴 베리 합참의장은 끝내 말끝을 흐리고 말았다. 대통령이 원하는데 대답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합참의장! 뭔 수를 써서라도 무조건 찾게! 알겠나? 이건 명령일세”

특유의 표정을 지으며 압박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기에 오스틴 베리 합참의장은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이에 옆에 있던 듀크 윌리엄스 국방부 장관이 나섰다.

“대통령님! 시간이 걸리더라도 최선을 다해 모든 시신을 인양하도록 하겠습니다.”

“장관이 약속하는 것이오?”

“네,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듀크 윌리엄스 국방부 장관이 살짝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좋소. 윌리엄스 장관만 믿고 넘어가겠소.”

“네, 알겠습니다.”

이때, 조지 캐머런 정치보좌관이 조심스럽게 말을 끝냈다.

“대통령님! 일본 전역이 한국으로부터 폭격을 받아 산업시설 전부가 파괴된 마당에 더는 일본에 대한 메리트는 없어졌다고 생각됩니다.”

“캐러런 정보관! 하고 싶은 말이 뭔가?”

본론을 말하기에 앞서 빙빙 돌려 말하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답답했던지 중간에 말을 끊었다.

“이쯤에서 손을 떼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손을 떼다니? 막대한 피해를 본 상황에서 손을 떼다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펄쩍 뛰었다.

“앞서 대통령께서도 말씀했다시피 현재는 전사자에 대한 시신 인양이 급선무입니다. 지금은 초기이고 적절한 언론 통제로 조용하지만, 조만간, 이번 해전과 관련하여 모든 언론에서 떠들어낼 것입니다. 그 전에 신속한 시신 인양을 서둘러야 하는데, 한국과 전쟁을 벌이고 있다면 여의치 않겠습니까?”

“그렇더라도 이렇게 끝낼 순 없어!”

이에 조지 캐머런 정치보좌관이 눈치를 보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것 때문에 그러시는 겁니까?”

“어허 이 친구가? 그만하게! 자네 의견은 충분히 알겠으나 더는 얘기하지 말게. 이번 한국과의 전쟁은 일본과 상관없이 진정 세계 패권국이 누구인가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본심을 드러냈다.

그랬다. 태평양함대로 시작된 대한민국과의 전쟁은 3년 전 치욕은 물론 다시금 세계 패권국으로 올라서기 위한 힘의 전쟁이었고 그 안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약점이라 할 수 있는 USSC(United States Supreme Security Council)을 완전히 숨기려는 의도였다.

그렇기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여기서 멈출 수 없었다. 대통령일 때 어떻게든 결말을 짓고 물러나야만 퇴임 후 자신의 안위가 보장되기 때문이었다.

“음, 대통령님! 한국 속담에 빈대 잡으려다가 초가삼간 불태운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만! 그만, 하라니까?”

대통령을 위해 진심의 조언을 하던 조지 캐러런 정치보좌관은 대통령의 역정에 그만 말을 멈추고 말았다.

조지 캐러런 정치보좌관이 두 눈을 감으며 말을 멈추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국방부 장관과 합참의장을 번갈아 보며 큰 소리로 말했다.

“시신 인양과는 별개로 태평양함대는 재정비를 마치는 대로 5함대와 합류하여 이번엔 일본이 아닌 한국 본토에 대한 전면적인 공격 작전 안을 수립하게! 또한, 이번에는 미 공군의 모든 전력을 총동원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전략급 핵잠수함도 모두 한반도로 이동시키게! 필요하다면 대서양함대 전력도 고려하게!”

앞서 전략급 무기 사용을 승인한 만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거칠 게 없었다. 이렇듯 막힘없이 내뱉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말에 회의에 참관한 군 지휘관들과 백악관 참모들은 각기 다른 표정을 지으며 받아드렸다.

특히 메인 존스 장관의 표정 속에는 엷은 미소가 번지고 있었고 반대로 조지 캐러런 정치보좌관의 표정에는 근심이 가득해졌다.

기존 태평양함대가 상대방을 견제를 파악하기 위해 내뻗은 잽이었다면 이제는 카운터 펀치를 준비하는 상황이었다.

★ ★ ★

2024년 1월 24일 09:00 (러시아시각 09:00)

러시아 자바이칼 지방 반레이시 남서단 11km 지점(제20기갑사단 60기갑여단 26전차대대 임시주둔기지).

예기치 못한 폭설로 인해 대공세를 앞두고 이곳 발레이 북단에서 발목이 잡혀 일주일 째 휴식 및 정비 시간을 갖게 된 제20기갑사단(결전)의 장병들은 매일 아침 하늘에 대고 온갖 욕설을 해가며 일과를 시작했다.

바로 하늘에 구멍이 난 듯 그칠 줄 모르고 쏟아지듯 내려온 하얀 쓰레기 즉 눈 때문이었다. 만약 전쟁 발발 전의 주둔기지였다면 민간기업에서 나와 대대적인 제설작업을 해주었을 텐데, 지금은 전쟁 중임에도 장병들이 직접 제설작업에 동원되어 치워도 치워도 다시금 쌓이는 하얀 쓰레기와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제1차 동북아 전쟁이 끝난 직후 국방부는 그동안 장병들이 해왔던 겨울철 제설작업은 물론 봄가을 제초작업과 진지구축작업을 민간기업에 위탁하게 되었다. 이는 장병들의 전투력 향상과 고도화된 각종 운용 장비 숙달을 위한 전문화된 훈련시간이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아! 개고생도 이런 개고생은 없습니다.”

사단에서 지급한 제설용 장비를 걸쳐 매고 오늘도 주둔기지 주변 일대에 대한 제설작업에 동원된 60기갑여단 26전차대대 7중대 소속의 712호 포수인 염훈기 하사가 무릎까지 빠지는 눈밭을 걸으며 투덜거렸다. 이에 뒤따르던 김영주 중사가 한마디 던졌다.

“야! 그래도 눈은 그쳤잖아? 그리고 오늘 오후부터는 민간제설 차량도 동원된다고 한다. 그러니 튀어나온 입 넣고 마지막 제설작업이나 열심히 하자!”

“올 거면 진작 오지! 지금 와서 뭐합니까? 짐 며칠째 개 노동을 했는데 말입니다.”

“아! 염 하사님! 지금이라도 오는 게 어딥니까?”

김일수 상병까지 대화에 합세했다.

“시꺼 마! 상병 나부랭탱이가 부사관들 얘기하는데 끼어들고 있어!”

“와! 저 다음 달이면 병장 답니다. 그리고 사병 출신 부사관이면 다른 부사관보다 사병들을 더 이해해주고 해야지. 툭하면 나부랭탱이라 하고 너무 하시는 거 아닙니까?”

“아쭈가리! 앵기냐?”

“앵기는게 아니고 사병 출신 부사관이면 좀더 우리 사병들을 이해해달라는 거짓말입니다.”

“야! 네들 둘 다 시끄러워! 음, 그러고 보니 어찌 김 상병은 옛날 염 하사랑 똑 닮았냐?”

“에엑? 김 중사님은 거 말도 안 되는 말을 하십니까?”

“그런 무서운 말씀을······.”

염훈기 하사와 김일수 상병은 동시에 김영주 중사를 보며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한마디씩 던졌다. 이때 먼발치에서 쌓인 눈을 헤치며 얼굴은 40대지만 실제 나이는 30대 중반인 행정보급관이 모습을 보였다. 예전 행정보급관이었던 오영택 상사가 제대하자 후임으로 타 대대에서 전입해 온 박광태 상사였다.

“똑같아! 내가 볼 때 똑같아! 야! 행보관님 오신다.

“충성!”

“충성이고 개밥이고 가네. 네들 왜 이리 늦었어?”

김영주 중사 일행과 마주친 상사 계급장을 단 박광태 행정보급관은 양손을 허리에 차고는 험악한 인상을 쓰며 아침부터 갈구기 시작했다.

“행보관님! 집합시간에 딱 마쳐왔습니다.”

김영주 중사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자신의 손목시계를 가리켰다.

“어쭈구리 탱? 나가 늦었다고 하면 늦은 거지 어디서 중사 나부랭탱이가 또박또박 말대답을 헌다야?”

“네? 킁!”

“킥킥킥!”

순간, 김영주 중사는 더욱더 황당한 표정을 지었고 뒤에 있던 염훈기 하사와 김일수 상병은 뒤돌아서 낄낄거렸다. 이에 째려보는 김영주 중사!

“아따 대답할 시간에 너거들 구역으로 후딱 안가야?”

추종할 수 없는 사투리를 구사하는 행정보급관에게 다가간 김영주 중사가 살짝 입을 가리고는 중얼거렸다.

“아! 행보관님! 자꾸 그런 식으로 말하니 꼰대 소리를 듣는 겁니다.”

“뭐여? 요것이!”

“야! 텨! 텨! 텨!”

박광태 행정보급관이 우락부락한 주먹을 들어 올리자 김영주 중사는 부리나케 제설 장비를 들쳐메고는 눈밭 위를 달렸다.

“전차장님! 같이 가요. 충성! 행보관님 수고하십시오”

대충 손만 올려 거수경례를 한 염훈기 하사와 김일수 상병은 헐레벌떡 김영주 중사 뒤를 따라갔다. 그들이 달려가는 곳에는 이미 중대 대원들이 각자 제설 장비를 들고 대기하고 있었고 그들 주위에는 엄청난 양의 하얀 쓰레기들이 반겨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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