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45화 (545/605)

제2차전

2024년 1월 23일 11:15,

일본 자바현 가쓰우라시 동단 180km 해상(손병희함(CG-1103).

세계 해전 역사상 손에 꼽힐 정도로 치열한 격전이 끝난 지 1시간이 흐른 시각, 잔잔한 푸른 파도만이 넘실거리는 망망대해에서 검붉은 연기를 내뿜는 손병희함(CG-1103)이 단단한 쇠사슬에 예인되어 차리석함(CG-1104)에 의해 이끌려 가고 있었다.

태평양함대 소속 각종 함재기의 대규모 대함미사일 공격과 256MJ급 레일건 금속탄을 SSS 모드를 가동해 자기장 보호막으로 막아냈던 손병희함(CG-1103)은 출력저하로 인해 중간에 자기장 보호막이 풀리면서 안타깝게도 대함미사일 1기와 X-35 금속탄 2발을 얻어맞고 말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대함미사일 같은 경우는 직접적 피격이 아닌 근접 상공에서 요격에 성공했으나 일부 파편이 손병희함(CG-1103) 함수 쪽에 쏟아지면서 가벼운 피해를 보았다. 하지만 X-35 금속탄 2발이 문제였다.

함수 부위에 연달아 X-35 금속탄 2발을 얻어맞은 손병희함(CG-1103)은 심장이라 할 수 있는 플라스마 초광자 Mod-D 엔진 4개 중 3개가 기능 고장을 일으켰고 이에 1개 엔진만으로 긴급 퇴각항해에 들어갔으나 얼마 가지 못하고 나머지 1개 엔진마저 고장이 나고 말았다. 이에 차리석함(CG-1104)이 긴급 구조에 들어가 이렇게 예인된 신세가 되고 말았다.

더불어 천만다행인 것은 피격 당시 전사자는 발생하지 않았다. 단지 엔진부 담당 승조원 중 부상자가 12명 발생했고 이중 중상자 2명은 차리석함(CG-1104) 소속의 헬기에 실려 가쓰우라시 연해에서 대기 중인 병원선으로 수송했다.

한편, 목숨 걸고 근접비행까지 해가며 손병희함(CG-1103)을 격침하려던 태평양함대 소속의 함재기는 물론 커다란 피해를 본 태평양함대는 끝내 숙원을 이루지 못하고 전격 퇴각항해에 들어갔다.

항공모함 2척에 줌왈트급 구축함 9척, 그리고 알레이 버크급 구축함 10척을 잃게 된 태평양함대는 처음 당당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패전에 따른 깊은 상처와 쓸쓸함만을 남기며 사이판 방향으로 뱃머리를 돌리게 되었다.

더욱이 태평양함대의 진정한 힘이라 할 수 있는 항공전력인 함재기들의 피해가 막심했다. 3개 항공모함과 8척의 강습상륙함에서 운용했던 F-35 시리즈 함재기는 총 390대였으나 현재 가용한 전력으로 남은 함재기는 F-35C 71기와 F-35B 55기가 전부였다.

특히 F-35C 라이트닝II 전투기들이 피해가 컸던 건, 출격 이후 다시금 착함할 항공모함이 격침되자 망망대해에서 착륙할 장소가 없게 되자 부상을 입은 상황에서도 루빈 스콧 제독은 조종사들의 안전을 위해 비상탈출 명령을 내렸다.

엄청난 손실이었으나, 어쩔 수 없는 판단이었다. 교전 후 남은 연료로 가장 가까운 일본 본토 비행장에 착륙할 수 있었으나 현재 일본 상황을 정확히 알 수 없는 태평양함대로서는 모험을 걸 수 없었다. 혹, 일본 비행장에 비상 착륙을 했다가 주둔 중인 대한민국 해병대에 조종사는 물론 전투기까지 빼앗길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남은 연료로 사이판 공군기지까지 비행할 수 없는 거리였기에 루빈 스콧 제독의 선택은 그것이 최선이었다.

이에 1개밖에 남지 않은 항공모함인 로널드 레이건함(CVN-79)에 최대한대로 비상 착륙을 감행했고 나머지 F-35C 라이트닝II 32기의 조종사들은 눈물을 머금고 비상탈출을 하여 바다에 수장시키고 말았다.

한기당 1억 5천만 달러이니 총 48억 달러로 원으로 환산하면 5조 7천억 원이라는 말도 안 되는 엄청난 돈을 바다에 버린 꼴이 되고 말았다.

“선배님!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헬기를 타고 직접 손병희함(CG-1103)으로 건너온 안원석 함장이 의무실에서 부상당한 자신의 부하들을 살피고 있는 서길수 함장에게 다가가 경례와 함께 인사말을 건넸다.

“어? 왔나? 고생은 무슨, 자네가 우리함을 보호한다고 더 힘들었지!”

부상당한 부하들을 일일이 확인하며 격려의 인사말을 건네 서길수 함장은 응급실을 빠져나오고는 이내 표정이 어두워졌다.

“선배님! 표정이 안 좋으십니다.”

“좋을 일이 있게나? 부하들이 저렇게 다쳐서 누워있는데 말이야. 답답하니 우리 밖으로 나가세. 바람 좀 세야겠어!”

“아 그럴까요?”

잠시 후 함수 쪽 갑판에 나온 서길수 함장이 담배를 꺼내 들고는 입에 물었다.

“아직 안 끊으셨습니까?”

“끊었었지! 그런데 피고 싶어서 부함장에게 살짝 빌렸다네.”

입에 문 담배에 라이터로 불을 붙인 서길수 함장은 한 모금 깊이 빨아들이고는 이내 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선배님! 전쟁 중에 부하들이 안 다치고 이길 수 있는 전쟁은 없습니다.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니, 안 다칠 수 있었어. 내가 욕심만 내지 않았다면 말이야.”

“전 선배님의 욕심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선배님의 용기로 인해 태평양함대는 2척의 항공모함을 잃고 완전히 퇴각하지 않았습니까? 만약 2개 항공모함이 살아남았다면 이들은 다시금 전열을 가다듬고 다시금 교전 준비를 했을 것입니다. 당시 상황에서 적절한 판단이었다고 생각됩니다.”

걱정해주는 후배의 말에 서길수 함장은 엷은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안 함장! 위로는 고맙지만, 그래도 맘 한구석이 빈 거 같은 느낌은 어쩔 수 없구먼”

“전사자도 없었고 중상자도 급히 병원선으로 수송되었으니 괜찮을 겁니다. 아! 선배님답지 않게 왜 그러십니까? 아 저도 한 대 주십쇼.”

“잉? 자네 원래 담배 안 피우잖나?”

“선배님이 그러시니 저도 한 대 피워야겠습니다.”

“아서게! 몸에 좋지 않은 담배를 늘그막이 왜 피려 하나?”

서길수 함장의 만류에도 뺏다시피 담뱃갑을 채간 안원석 함장은 곧바로 자신의 입에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며 손을 벌렸다.

“불도 주십쇼.”

“허허, 이 사람이······.”

라이터마저 채간 안원석 함장은 곧바로 불을 붙이고는 서길수 함장처럼 깊게 빨아드리다 헛기침을 하고 말았다.

쿨럭! 쿨럭!

“쯧쯧, 그러니 피지 마라니까. 담배도 안 피운 사람이······.”

“아! 이거 왜 이리 독합니까?”

온갖 인상을 쓰며 피우던 담배를 바다에 집어 던지는 안원석 함장을 보고 피식 웃은 함길수 함장은 한동안 아무 말 없이 수평선 넘어 푸른 물결이 울렁거리는 바다를 보며 담배를 피웠다.

바닷바람에 흩어져 사라지는 담배 연기처럼 착잡하고 복잡한 심경도 마음속에서 사라졌으면 하는 서길수 함장의 바람이었다.

★ ★ ★

2024년 1월 23일 12:30,

일본 도쿄도 도서부 미야케섬 북단 14km 해심(장보고함(SS-061) 전투통제실).

장보고함(SS-061)이 패시브 소나 출력을 최대로 올리고 미세한 소음을 따라 추격에 들어간 지 4시간째, 추격 대상인 콜롬비아함(SSBN-901)은 마리아나 해구를 따라 북단으로 잠항하다가 지금은 남서단으로 잠항 침로를 변경하여 지금은 고즈섬과 미야케섬 사이를 통과하고 있었다.

가끔 음탐 정보를 놓쳐 허둥대기도 했지만, 장보고함(SS-061)의 음탐관들은 베테랑답게 아주 미세하게나마 들려오는 소음을 다시금 잡아내어 지금까지 지루한 추격을 계속하고 있었다.

이로 인해 장보고함(SS-061) 승조원들은 죽을 맛이었다. 추격하면서도 자 함의 정체가 발각되지 않도록 숨소리도 크게 낼 수 없을 정도의 침묵 잠항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몇 시간 동안 그것도 언제까지인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발소리마저 내지 않기 위해 현재 위치에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말 한마디 못하는 상황, 전투통제실에서도 서로 간 의사를 주고받을 때는 간단한 수신호나 복잡한 내용은 무음으로 된 스마트폰으로 글자를 써서 정보를 전달했다.

방금도 오성원 함장은 스마트폰을 이용해 전술통제관에게 몇 가지 지시를 내렸다.

★ ★ ★

2024년 1월 23일 13:30,

남주 서울특별시 용산구 B2 벙커(국군 합동지휘통제소 작전브리핑실).

신성용 합참의장을 비롯해 합동참모본부의 지휘관들과 참모들은 현재 전장 진행되고 있는 전반적인 전쟁 상황과 향후 계획에 관한 내용으로 대통령께 보고하기 위해 몇 가지에 대해서 의논을 하고 있었다.

먼저 몇 시간 전에 승리 아닌 승리로 끝난 태평양함대와의 해전에 관한 내용을 취합했다.

만만의 준비를 하고도 예상치 못한 미국의 최신형 핵잠수함에 일격을 당해 생각 이상의 큰 피해를 본 연합함대의 피해현황을 취합하는 과정에서는 분위기가 상당히 다운되었다.

특히나 해군참모총장과 실질적으로 해군의 지휘 책임자라 할 수 있는 해군작전 사령관은 죄인인 것처럼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의 무능으로 이러한 결과가 나온 것은 아니지만, 책임자이자 지휘관으로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래도 최선을 다하지 않았나? 우리 또한 피해를 많이 보긴 해지만, 태평양함대는 완전히 퇴각 중이지 않나? 그 정도면 최선을 다했다고 보네.”

분위기가 축 처지자 신성용 합참의장은 이기형 해군참모총장과 스크린을 통해 고개를 숙이고 있는 해군작전 사령관인 김민호 대장에게 용기를 북돋아 졌다.

“맞습네다. 그리 기죽을 거 없디요. 미제 놈들이 입에 귀에 걸리며 자랑하는 포드급 항모를 2척이나 잡디 않았습네까? 그 정도면 아주 훌륭하디요. 고개 숙일거 절대 없디요.”

윤기윤 합참차장까지 거들었다.

- 면목이 없습니다. 합참의장님! 가용한 전력이 있었음에도 제 판단 불찰로 큰 피해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 부분에 대해선 전쟁이 끝난 후 그에 합당한 평가를 받고 책임을 지겠습니다.

스크린 화면 속 김민호 대장은 진심 어린 표정으로 말을 건넸다.

“김 대장! 최종 책임자는 나라네. 책임을 지더라도 내가 지는 거지. 자네가 질 필요는 없네. 그리고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았네. 그런 생각만 한다면 앞으로 전쟁에서도 큰 영향을 미칠 거야. 그러니 훌훌 털어내고 앞으로 벌어진 전쟁에 대해서 최선을 다해주게나. 두 번 말 하지 않겠네. 알겠나?”

- 알, 알겠습니다. 의장님!

“좋네. 이걸로 마무리하는 것으로 하고 피해현황은 언제쯤 받아볼 수 있겠나?”

- 네, 현재 정확한 피해현황은 취합되었습니다. 정리되는 데로 자료화하여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대략 30분 정도 소요될 것으로 보입니다.

“알았네. 그럼 북서부 전선 상황으로 넘어가 볼까?”

신성용 합참의장에 말에 다른 화면에서 대기하고 있던 북서부전선의 총지휘관인 오성덕 제1야전군사령관이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말했다.

-예상치 못한 폭설로 인해 기존 수립된 모든 작전 안이 수정된 상태로 현재는 폭설이 완전히 끝났으나 어른 허리 높이까지 쌓인 눈으로 인해 기동 자체가 불가능한 상태로 금일까지 대대적인 제설작업을 진행하여 현재는 임시 주둔기지 내 모든 제설작업을 마친 상태입니다.

“음, 그럼 언제쯤 기동할 수 있겠는가?”

이은형 육군참모총장이 물었다.

“현재 상황에서는 빠르면 이틀 후로 보고 있습니다.”

“이틀이라, 이거이 생각지 못한 놈이 발목을 잡는구만 기래! 이미 결딴이 나고도 남았을 텐데 말이디요.”

윤기윤 합참차장이 회의 탁자를 손바닥으로 치며 상당한 아쉬움을 표했다. 윤기윤 합참차장 말대로 만약 폭설만 내리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제7기동군단을 선봉으로 한 국군의 대공세로 인해 북서부전선의 러시아군의 동부군구와 남부군구는 괴멸이 되거나 아니면 전선에서 완전히 퇴각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폭설로 인해 국군의 대공세가 연기되었고 패전에 패전을 거듭하면서 허겁지겁 후퇴했던 러시아군은 도리어 오논강 따라 방어진지를 구축할 시간을 벌게 되었다. 하물며,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해버린 상황에서는 매복하는 러시아군보다 이동하는 대한민국 국군은 상당히 불리하게 되었다.

- 기동을 위해서는 진공로의 제설작업이 병행해야 하는 상황인지라 어쩔 수 없는 상황입니다.

“이왕 이렇게 늦어진 이상, 현장 지휘관으로 신중한 판단으로 진행해 주게.”

- 네, 알겠습니다. 합참의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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