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전
2024년 1월 23일 08:55,
일본 지바현 가쓰우라시 동단 155km 해상.
연합함대의 퇴각을 위해 최대 속도로 남동단 방향으로 항해했던 손병희함(CG-1103)과 차리석함(CG-1105)은 원하던 대로 태평양함대가 물러나자 현재 위치에서 대잠, 대공, 대함경계를 펼치며 대기 중이었다.
하지만, 해군작전사령부로부터 긴급 명령을 하달받고는 다시금 강력한 플라즈마 엔진을 가동하며 남동단 방향으로 항해에 들어갔다.
그들에게 하달된 명령은 이랬다. 최대 속도로 항진하여 최소 태평양함대 소속의 항공모함 1척 이상을 격침하라는 임무였다.
명령을 하달받은 2척의 충무공이순신급 호큘라 순양함 함장들은 다소 위험한 임무라고 받아드릴 수도 있었지만, 두 함장은 망설임 없이 전속항진 명령을 내렸다. 두 함장 역시 미국 핵잠수함의 어뢰 공격으로 아군 함정의 피해가 막심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현재 태평양함대와의 거리 290km, 30분 후면 함포 사거리 안으로 진입할 것으로 예측됩니다.”
교전이 시작되기 전부터 함교를 부함장에게 맡기고 직접 전투지휘실에서 교전 현황을 지켜보고 있던 손병희함(CG-1103)의 서길수 함장은 전술통제관의 보고에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통신사관! 차리석함 연결하게”
“네, 연결합니다.”
잠시 후 함장 전용 모니터에서 차리석함(CG-1105)의 안원석 함장의 얼굴이 비쳤다.
- 충성! 그러잖아도 연락드리려고 했습니다. 선배님!
“아 그런가? 인심 전심이었군. 안 함장은 어떻게 했으면 좋겠나? 무턱대고 밀고 들어가기엔 다소 위험하니 말이야.”
- 선배님! 저희 함이 멀티 경계를 전담하겠습니다. 선배님께서는 최대 출력 유지하고 전속 항진하시죠? 후배가 확실하게 뒤를 책임지겠습니다.
“이런,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을 자네가 먼저 하는군. 그러지 말고, 자네가 전속 항진하게. 내가 뒤를 맡을 테니”
- 찬물도 위아래가 있는데, 어찌 이런 기회를 후배가 하겠습니까? 이번엔 특별히 선배님에게 양보하겠습니다. 하하
해군사관학교 1기 후배인 안원석 함장은 향후 해군 역사에 길이 남을 미 해군 항공모함 격침이라는 영광을 선배에게 양보하고자 했다.
“이거 참, 정말 그렇게 해도 되겠나?”
- 물론입니다. 선배님!
“알았네. 그럼, 자네만 믿고 한번 해보세.”
- 네, 아주 깡그리 작살을 내주십시오.
“자네 기대에 부응하도록 최대한 노력해보겠네.”
- 너무 그렇다고 무리하시면 안 됩니다. 선배님!
“알았네.”
이렇듯 두 함장은 태평양함대를 상대할 전략을 짧게나마 세운 후 각자 주어진 임무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먼저 방어 임무를 수행하게 될 차리석함(CG-1105)은 모든 출력을 최대치로 상승시켜 반경 1,000km에 대한 대공 및 대함경계와 반경 300km에 대한 대잠 경계에 돌입하면서 전방위 방어 임무에 들어갔고 공격 임무를 수행하게 될 손병희함(CG-1103)은 출력 소모를 줄이기 위해 각종 레이더와 소나, 그리고 전자장비 일체 운용을 최소화한 채 오직 엔진 출력만 상승시켜 최대 속도인 60노트로 항진했다.
손병희함(CG-1103)이 출력 소모를 줄이고자 하는 이유는 이랬다.
현재 손병희함(CG-1103)과 태평양함대와의 거리는 대략 290km, 즉 스퀴테 K-2 함포를 사용하기 위해선 사정거리인 250km 안으로 진입해야만 했다. 당연히 태평양함대는 빠르게 접근하는 손병희함(CG-1103)을 위험 1순위로 지정하고 어떻게든 격침 시키고자 호위 중인 구축함과 잠수함, 그리고 모든 황공 전력을 총동원하여 대규모로 공격할 것은 뻔한 사실이었다.
즉, 250km 안으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차리석함(CG-1105)의 전방위 방어체계 도움을 받는다고 쳐도 위급 시 두세 번 정도는 실드차폐시스템(SSS)을 가동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할 수 있기에 손병희함(CG-1103)은 어떻게든 최대 출력을 유지하고자 한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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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월 23일 09:00 (현지시각 10:00),
일본 지바현 가쓰우라시 동단 445km 해상(제널드 R. 포드함(CVN-78) 전투통합지휘실).
태평양함대 역시 우현으로 크기 선회하여 남동단 해상으로 퇴각하는 상황에서 제널드 R. 포드함(CVN-78) 전투통합지휘실에서는 루빈 스콧 제독을 비롯해 참모들은 손을 번쩍 들고는 환호하는 분위기였다.
바로 콜롬비아급 핵잠수함의 공격에 연합함대의 여러 구축함이 침몰했다는 보고와 함께 아틀라스 정찰위성으로부터 촬영된 영상이 전송되었기 때문이었다.
생각보다 큰 피해는 아니었지만, 피격된 함정 중에 호큘라 구축함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 그들의 기쁨을 배로 만들고 있었다.
초반 8척의 줌왈트 구축함이 이렇다 할 활약도 하지 못하고 괴멸되면서 수적으로 밀렸던 함정 수에서도 이제는 20대 18로 유리해졌고 더군다나 연합함대 함정 18척 중에는 4척이 호위함이었다.
콜롬비아급 핵잠수함 2척이 침몰한 것을 모르는 상황에서 루빈 스콧 제독은 재정비 후 다시금 총공세를 퍼붓는다면 충분히 연합함대를 격파할 수 있을 거라는 판단이 들었다.
“지정된 해상까지 퇴각하면 모든 함대에 재무장 지시를 내리게”
하얀 거품을 일으키며 바닷속으로 빠져들고 있는 대한민국 구축함의 모습을 보며 루빈 스콧 제독은 지미 로페스 주임작전관에게 지시를 내렸다.
하지만, 이때 후방에서 아틀라스 정찰위성으로부터 다급한 영상과 함께 보고가 올라왔다.
- 20분 전, 일정한 거리를 두고 기동을 멈췄던 연합함대의 호큘라 순양함 2척이 다시금 빠른 속도로 본 함대를 향해 항진 중이라는 보고와 함께 영상이 스크린에 비췄다.
예전 제2차 세계대전에서나 볼법한 전함 크기의 순양함 2척이 마치 고속정이 질주하는 것처럼 엄청난 속도로 하얀 파도를 좌우로 가르며 항해 중이었다.
“대체 속도가 얼마나 되는 건가?”
원거리 영상임에도 항해 속도가 너무나 빠르게 보였기에 루빈 스콧 제독이 고개를 절레거리며 물었다.
“정찰위성 판단으로는 대략 55노트 이상이라고 합니다.”
“55노트? 그게 말이 되는가? 어떻게 저런 거구의 함정이 55노트를 낼 수 있다는 말인가?”
루빈 스콧 제독은 이번 작전에 투입하기 전에 대한민국 함정에 대한 대략적인 제원을 알고 있었다. 당연히 충무공이순신급 호큘라 순양함 역시 대충은 알고 있었고 속도가 60노트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사실 속으로 콧방귀를 꼈었다.
30여 년간을 해군에 복무한 군인으로서 250m에 달하는 함정이 60노트라는 속도를 낸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직접 영상을 통해 실제로 확인하니 뭔가에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 들었다.
“현재 본 함대와 거리는?”
“선두에서 항해 중인 함정과는 288km입니다.”
현재 2척의 호큘라 순양함은 서로 간 5km 간격을 두고 종대 대형으로 항해 중이었다.
“제독님! 아무래도 우리 잠수함 공격에 대한 보복성 공격을 감행하는 듯합니다.”
통합지휘실 수석통제관이 한마디 던졌다.
“그렇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단 2척으로 우리 태평양함대 전체를 상대하려 하다니. 처음 퇴각유인을 위해 항진한 것은 이해는 가지만 말이야.”
“그렇게 말입니다. 너무 우리를 우습게 아는 듯합니다”
지미 로페스 주임작전관이 한마디 더 붙였다.
“그래도 무시할 함정은 아니야. 적 함포 사거리가 250km였던가?”
“네, 그렇습니다.”
“좋아! 절대로 250km 이내로 접근은 불허한다. 모든 지휘관 연결하게”
“네,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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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월 23일 09:10,
일본 도쿄 지요다구 중앙청 지하벙커(국가보안회의실).
미국의 상륙작전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 나갔던 미이케 다카시 장관이 헐레벌떡 회의실에 들어왔다. 나간 지 1시간 만이었다.
“아니 뭘 하느라고 이제야 옵니까?”
숨을 헐떡이며 들어온 미이케 다카시 장관을 향해 이시하라 신타로 장관이 눈을 위아래로 뜨며 질타했다.
이에 황당한 표정을 지은 미이케 다카시 장관은 곧바로 이시하라 신타로 장관을 노려봤다.
“미이케 장관! 어떻게 되었습니까?”
우치다 총리의 물음에 이시하라 신타로 장관을 노려보던 시선을 풀고는 의장에 덥석 앉으며 대답했다.
“그것이, 한국 해군과 치열한 교전이 벌어져 당장 상륙은 힘들다고 합니다.”
“뭐요? 그럼 언제쯤이면 상륙할 예정이라고 합니까?”
우치다 총리는 상체를 앞으로 밀며 재촉하듯 재차 물었다.
“그것이! 정확히 알 수가······.”
“이런! 그럼 공중전력이라도 보내달라고 하세요. 지금 일본 전역의 산업지대가 초토화되고 있지 않습니까?”
“총리님! 그러잖아도 그 부분에 대해서 요청을 하였지만, 현재 한국 해군과의 교전으로 공중전력을 지원할 여력이 없다고 합니다.”
“으윽! 이런! 이런!”
우치다 총리는 일말의 희망이 산산이 조각나자 자신의 이마를 짚으며 등받이에 몸을 묻혔다. 이때 무로야 세이 내각부 장관이 다른 장관의 눈치를 보며 살포시 총리를 불렀다. 이에 우치다 총리는 극심한 상념에 대답도 귀찮다는 듯 손짓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저기! 총리님! 지금이라도 ‘자주국가선포’를 포기하겠다는 내용으로 한국 정부에 연락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뭐요?”
무로야 세이 내각부 장관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이시하라 신타로 장관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고는 불같이 화를 냈다.
“지금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겁니까? 무로야 장관! 어떻게 일군 일인데 다시금 한국에 구걸하자는 거요?”
“지금 상황에서는 다른 방법이 없지 않습니까?”
“없긴 뭐가 없습니까? 미국 해군의 상륙이 늦어지긴 하지만 상륙만 시작되면 우리 일본의 자주 국가는 실현됩니다.”
“그러다가 정말 우리 일본은 패망합니다.”
이때 또다시 암울한 보고가 올라왔다. 전후복구사업을 통해 다시금 건설된 여러 국제공항이 방금 대규모 폭격을 받아 폐허가 되었다는 보고였다.
회의실 스크린에 불타고 있는 나리타 국제공항과 간사이 국제공항 등 여러 공항의 사진들이 차례대로 보였다.
“이제 공항까지! 이건 국제사회로부터 손가락질받을 불법적 군사 행위입니다. 민간공항에 대규모 폭격이라니요. 즉각 UN에 한국의 불법적인 군사 행위를 고발해야 합니다.”
이시하라 신타로 장관이 자리에서 일어나 악을 쓰며 여러 장관을 보며 소리쳤으나 누구 하나 동조하는 장관은 없었다. 현재 상황에서 UN에 말해봤자 달라질 것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때 뭔가를 결심한 우치다 총리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미우라 차관!”
“네, 총리님!”
외교부 장관에서 사임하겠다며 나가버린 구로사와 키요시 장관을 대신에 회의실에 들어온 미우라 겐타 외교부 차관이 대답했다.
“지금 당장 한국 외교부에 연락을 시도해보세요.”
“총리님!”
미우라 겐타 차관이 대답하기도 전에 이시하라 신타로 장관의 고성이 회의실을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