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전
2024년 1월 23일 08:25,
일본 지바현 가쓰우라시 동단 101km 해심(콜롬비아함(SSBN-901) 전투정보실).
한차례 죽음의 고비에서 벗어난 콜롬비아함(SSBN-901)은 침묵잠항 속에서 최대심도까지 잠항에 들어갔다. 또한, 음탐실에서는 패시브 소나 출력을 최대한 올려 동료 잠수함을 찾고 있었다.
몇 분 전, 두 차례의 큰 파장으로인 동료 핵잠수함들이 피격되었다는 보고가 있었지만, 정확한 상황 판단을 위해 주변 해심을 천천히 잠항하는 중이었다.
“함장님, 일단 이곳에서 벗어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살아있더라도 TQQ-3M 시스템 때문에 우리 패시브 소나로는 찾기 힘듭니다.”
* TQQ-3M 시스템은 자체 함에서 나오는 소음이나 외부에서 쏟아지는 탐신음을 흡수하여 패시브 및 액티브 소나를 무력화하는 최첨단 기술이었다.
에머슨 하인드먼 함장의 귀에 대고 부함장이 작은 목소리로 자신의 의견을 내놓았다. 맞는 말이었다.
이에 에머슨 하인드먼 함장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손짓으로 다음 목표지점을 가리켰다. 그러자 200m에 달하는 콜롬비아함(SSBN-901)은 마리아나 해구를 따라 다시금 북쪽으로 잠항해 나갔다.
하지만 그때 콜롬비아함(SSBN-901)의 외벽을 두드리는 둔탁한 소음이 전해왔다.
타탁! 탕! 타타타탕!
“뭔가?”
깜짝 놀란 에머슨 하인드먼 함장이 전투정보관을 쳐다봤다. 이에 급히 음탐실로 들어갔던 전투정보관은 정체불명의 소음을 알아냈는지 바로 보고가 올라왔다.
“아무래도 어뢰 폭발로 인해 비상했던 파편들이 떨어지면서 우리 함에 맞은 듯합니다.”
몇 분 전, 콜롬비아함(SSBN-901)을 스치고 지나갔던 S-SSFM-500B 트라이던트가 해저 바닥과 충돌하며 거대한 폭발을 했고 이에 수많은 파편이 수백 미터나 날아갔다가 다시금 해저 바닥으로 떨어지는 파편들이었다.
10여 초간 콜롬비아함(SSBN-901) 전체를 두드리며 발생한 소음은 이내 사라졌다. 하지만 침묵 잠항 속에서 이러한 소음은 은밀함을 유지해야 하는 잠수함에는 매우 치명적이었다. 혹, 근처에 적 잠수함이라도 있으면 위치가 발각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함장님! 잠항 항로를 변경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혹, 방금 소음으로 본 함이 발각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부함장이 의견을 냈다.
“부함장! 이 정도 소음으로는 절대 발각되지 않아!”
“함장님! 현재 5km 안쪽으로 해상에는 10여 척의 구축함이 대잠 경계를 펼치며 본 함을 찾고자 눈에 불을 켜고 있을 겁니다. 또한, 이곳 해심으로 한국 잠수함들도 몰려들고 있을 겁니다.”
“현재 심도 이천이야. 아마, 한국 구축함이나 잠수함은 이 정도 해심에서 잠항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할 거야. 괜찮으니 현재 잠항 항로로 빠르게 이동한다.
“현재 심도에서, 방위각 그대로 유지하며 속도만 15까지 상승한다.”
부함장의 조언을 무시한 에머슨 하인드먼 함장은 조타장에게 조용히 명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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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월 23일 08:25,
일본 지바현 가쓰우라시 동단 105km 해심(장보고함(SS-061) 전투통제실).
연합함대 구축함과 호위함이 정체불명의 잠수함으로부터 기습적인 어뢰 공격을 받고 있다는 내용을 초장파 통신을 통해 접한 장보고함(SS-061)은 최대 속도로 이곳 해심으로 잠항했고 몇 차례, 크고 작은 폭발음과 함께 전해오는 파장으로 대략적인 잠수함의 위치를 파악하고는 심도 250m에서 조용히 추적 중이었다.
하지만, 적 잠수함의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었다. 대략적인 위치와 함께 예상 잠항 항로를 계산해 잠항하던 중, 심도 2,000m에서 연속적으로 들려오는 소음을 음탐관이 탐지하는 데 성공했다.
처음에는 소음의 정체가 무엇인가 헷갈렸던 음탐관은 장보고함에서 3년간을 복무하면서 축적한 경험을 바탕으로 이것이 잠수함 외벽과 무언가가 부딪치며 나는 소음이라 확신을 했다.
“정말인가?”
“네, 맞습니다. 분명 잠수함 외벽에서 나는 소음입니다.”
“그런데 심도 2000이라고?”
“그것이, 저도 그 부분이 이상하긴 하지만, 분명 잠수함입니다.”
“심도 2000에서 잠항할 수 있는 잠수함이라니······.”
현재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음탐관의 보고에 오성원 함장이 고개를 잘래거렸다. 이에 전술통제관이 음탐관의 주장을 거들었다.
“함장님! 만에 하나 미국 잠수함 중 심도 2000까지 잠항할 수 있는 잠수함이 있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 의도로 개발했다면 말입니다.”
“음, 그럴 수 있겠군! 거리! 방위각 확인!”
자신의 턱을 매만지며 잠시 생각에 빠졌던 오성원 함장은 결심을 굳혔는지 전술통제관에게 지시를 내렸다.
“잠수함으로 추정되는 표적! 거리 5,300 방위각 3-0-4, 현재 10노트로 잠항 중입니다.”
“좋아! 음탐관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저놈을 놓치지 말도록”
“네, 알겠습니다.”
음탐관의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에 오성원 함장은 추가 명령을 내렸다.
“지금부터 침묵 잠항에 들어간다. 조타장은 방위각 3-0-4 우현 반타! 잠항각 하향 10으로 최대심도까지 13노트를 유지하며 잠항한다.”
오성원 함장의 명령에 따라 장보고함(SS-061)은 왼쪽으로 살짝 선회하는 듯싶더니 이내 해저 밑바닥으로 기울어지며 더 깊은 바닷속으로 잠항에 들어갔다.
이로써 미국 최신예 전략 핵잠수함을 향한 대한민국 해군에서도 가장 작고 오래된 장보고함(SS-061)의 수중 추적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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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월 23일 08:40 (미국시각 22일 19:35),
미국 워싱턴 D.C. 해리 S. 트루먼 빌딩 국무부 청사.
국무부 청사 도착 후 접견실에서 30분을 기다리다 줄리언 그린 차관과 면담을 가진 오동진 대사는 청와대에서 전하고자 하는 내용에 관해 설명해 나갔다. 하지만 듣고 있는 줄리언 그린 차관은 냉소적이었다.
억지로 나온 사람마냥 줄리언 그린 차관의 표정과 말투 그리고 느껴지는 분위기로 봐서는 대한민국이 어떠한 말을 하더라도 절대 들어주지 않겠다는 뉘앙스였다. 하지만 오동진 대사는 그럴수록 주어진 사명감에 어떻게든 이번 협상을 끌어내고자 있는 말 없는 말을 보태가며 설득하려 했다.
“그린 차관님! 사실 우리 대한민국과 미국은 혈맹관계이지 않습니까? 요새 정치적으로 잠시 멀어지긴 했으나, 추 대통령께서는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바라고 계십니다. 이번에 돌발적으로 벌어진 해상전 역시 3년 전처럼 양국이 평화적으로 해결하길 바라십니다.”
“음, 한때에는 미국과 한국은 혈맹국이었지요. 일제치하에 있던 대한제국을 독립시켜 민주주의 국가로 만들어졌고, 625전쟁 역시 가장 많은 파병군을 보내 북한 공산정권으로부터 지켜줬지요. 하지만, 그때의 은혜를 한국은 새까맣게 잊은 듯합니다. 또한, 지금 상황에서는 혈맹국이라 부르기엔······.”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말하는 줄리언 그린 차관, 오동진 대사는 순간 주먹으로 냅다 후려치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다.
‘625전쟁이 왜 일어났는데? 너희들의 이익관계에 한반도가 남과 북으로 갈라지며 광복을 했고 이후 이념 갈등에 동족상잔의 비극이 일어나지 않았나?’
멱살을 부여잡고 따지고 싶은 오동진 대사는 자리가 자리인 만큼 냉정함을 유지하며 조용한 어조로 반문했다.
“잊다니요?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이렇게 추 대통령의 의중을 전해드리러 온 것이 아닙니까?”
한층 낮은 자세로 어떻게든 협상을 하고자 최대한 정중한 어투로 말하는 오동진 대사와는 다르게 계속해서 시큰둥한 태도로 일관하는 줄리언 그린 차관은 급기야 거들먹거리기까지 했다.
“좋습니다. 한국 대통령께서 평화적으로 해결하길 바란다니 한마디 하겠습니다. 우리 미국은 동맹국인 일본의 요청에 따라 국제법에 준수하는 선에서 충분한 명분을 갖고 이번에 한국 함대와 교전을 벌였습니다. 그렇기에 한국과 무턱대고 협상을 할 수 없다고 봅니다. 그래서 말인데요. 백악관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대한민국 연합함대에 대한 선제공격이 국제법상 문제가 없다는 것을 상기시키는 전형적인 외교관 특성의 말 돌리기식으로 분위기를 잡고는 말끝을 흐렸다.
“네, 말씀하시지요.”
“그에 상응하는 뭔가의 대가가 있어야지 않겠습니까?”
“대가요? 자칫 3차 세계대전으로 번질 수도 있는 비극의 전쟁을 피하고자 평화협상을 하고자 하는 건데 대가라니요?”
지금까지 참고 있던 오동진 대사도 인내의 한계가 왔는지 슬쩍 목소리 톤을 높이며 따지듯 물었다.
“아니 평화협상을 원하는 쪽에서 당연히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는 게 관례 아닙니까?”
“그린 차관님! 그거야 한쪽이 일방적으로 수세에 몰렸을 때나 대가를 치르고 협상을 요청하는 게 아닙니까? 지금은 양 국가가 동등한 상황인데 대가를 말씀하시는 건 너무 나갔다고 봅니다.”
“허허! 이거 참! 하도 애원하셔서 방법을 알려드렸는데 그런 식으로 반응하시는군요?”
오동진 대사는 속으로 부글부글 끓었다. 마음 같아선 확 뒤집어 버리고 싶었지만, 마음속으로 참을 인을 되새기며 대화를 이어가고자 했다.
“그린 차관님! 그럼, 원하시는 게 무엇입니까?”
오동진 대사가 한 발짝 숙이고 들어가자 줄리언 그린 차관은 이때다 싶었는지 소파에 몸을 눕듯이 편한 자세를 취하고는 양손을 벌리며 말했다.
“음, 플라즈마와 관련된 모든 기술제공입니다.”
“네? 플라즈마와 관련된 모든 기술이라고 하셨습니까?”
이때 어디선가 진동벨이 울렸다. 오동진 대사의 스마트폰이었다. 중요한 면담자리였지만, 지금 울리고 있는 스마트폰은 급한 상황에서 본국과 연락하는 스마트폰이었기에 안 받을 수 없었다.
“죄송합니다. 잠시만 통화 좀 하겠습니다.”
오동진 대사는 실례인 줄 알면서도 뒤돌아 전화를 받았다.
“네, 오동진입니다. 네, 네? 네, 알겠습니다.”
짧게 통화를 마친 오동진 대사는 꽉 맨 넥타이를 풀고는 여의로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하하, 급한 전화라 실례를 했습니다. 그럼 마저 얘기해볼까요? 조금 전, 플라즈마와 관련된 모든 기술이라고 했지요?”
“네, 그렇습니다.”
전화통화 후 오동진 대사의 표정이 바뀌었다는 걸 눈치챈 줄리언 그린 차관은 자세를 바로잡고 상체를 일으키며 대답했다.
“하하하, 아무리 생각해도 미국은 참 욕심이 너무 많은 거 같습니다.”
줄리언 그린 차관이 느낀 대로 전화통화 후 180도 달라진 오동진 대사의 표정과 목소리였다.
“뭐요? 욕심이요? 지금 말 다했습니까?”
“아! 다 못했습니다. 사전 통보 없이 선제공격했음에도 평화적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우리 대한민국에 뭘 그리 바라십니까? 기가 찰 뿐입니다. 그동안 국제질서를 주도한다고 여기저기에서 전쟁을 일으킨 버릇 아직도 못 버린 겁니까?”
오동진 대사의 찰진 발언에 줄리언 그린 차관은 자리에서 일어나 호통치듯 따졌다.
“이보시오. 이 대사! 말 다했소? 지금 그 말 분명 후회하게 될 것이오!”
협박에 가까운 언사에 오동진 대사는 한 컷 여유로움을 보이며 맞받아쳤다.
“네, 대한민국이든 미국이든 한 국가는 땅을 치며 후회하겠지요. 하지만, 결코 대한민국이 후회하지 않으리라는 것만 말씀드립니다.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본국으로 복귀하라는 대통령님의 지시가 있어서 말입니다.”
갑작스럽게 돌변한 오동진 대사의 행동에 어안이 벙벙해진 줄리언 그린 차관! 그런 그를 지나치며 오동진 대사가 한마디 더 던졌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유익했습니다. 아! 그리고 메인 존스 장관에게 전해주시겠습니까? 라트비아 리가에서 있었던 사건에 대해서 반드시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뭐요? 대체 뭔 소리입니까?”
손가락질하며 되묻는 줄리언 그린 차관을 뒤로하고 오동진 대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접견실 문으로 향했다. 그리고 문 앞에 선 오동진 대사는 고개를 돌렸다. 마치 십 년 묵은 체증이 확 풀린 듯 호쾌한 웃음과 함께 손을 흔들고는 그대로 문을 열고 나가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