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38화 (538/605)

제2차전

2024년 1월 23일 08:00,

일본 지바현 가쓰우라시 동단 99km 해심(콜롬비아함(SSBN-901) 전투정보실).

전투정보관으로부터 연합함대 구축함에 대한 첫 번째 피격 보고가 올라왔다. 이에 에머슨 하인드먼 함장은 흐뭇한 표정을 짓고는 즉시 부함장에게 지시를 내렸다.

“부함장! 최대심도까지 잠항, 지금부터 침묵 잠항에 들어간다.”

마음 같아선 연합함대의 피격 결과를 모두 확인하고 싶었으나, 본 함의 안전상 이만 물러날 때라 판단했다.

“최대심도까지 잠항, 본 함 지금부터 침묵 잠항 모드로 전환합니다.”

부함장은 복명복창과 함께 그대로 조타장에게 명령을 하달했다. 또한 앤히크함(SSBN-902)과 윌리엄 펜함(SSBN-903)도 콜롬비아함(SSBN-901)과 마찬가지로 기수를 밑으로 기울이며 긴급 잠항에 들어갔다.

이때, 침묵 잠항에 들어간 상황에서도 전투정보실을 울리는 음탐관의 다급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본, 함으로 2개의 어뢰출현! 거리 12,000! 방위각 0-9-8! 매, 매우 빠릅니다.”

“그 와중에 우리 함을 공격했다는 건가? 도달 시간은?”

“38초 남았습니다.”

“거리가 12.000인데 38초밖에 남지 않았다는 건가?”

대응 시간이 너무나 짧은 나머지 부함장이 다급히 되물었다.

“어뢰 속도가 무려 600노트에 다다르고 있습니다.”

“600노트?”

음탐관의 믿기지 않은 보고에 전투정보실 사람들의 얼굴은 일제히 경직되었다. 말이 600노트지 미사일로 따지자면 순항미사일보다도 빠른 거의 마하 1에 근접하는 속도였다. 그런 속도를 수중에서 낸다는 건 SF영화에서 나올법한 얘기였다.

“즉시! 가능한 닉시 모두 사출하고 최대 속도로 잠항한다. 그리고 함미 1번 2번 발사관과 어뢰 장전 및 음탐 된 정보 제원 삽입한다.”

전투정보실에서 유일하게 에머슨 하인드먼 함장만이 침착함을 유지하고 가장 현명한 지시를 내렸다.

쿠우우우우우우우웅웅!

전방에 초공동 현상을 일으키며 엄청난 속도로 질주하는 S-SSFM-500B 트라이던트 6기는 각자 정해진 표적 잠수함을 향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앗 첫 번째 닉스 교란 실패! 두 번째 닉스 또한 실패했습니다. 거리 2800”

믿고 싶지 않은 보고만이 전투정보실을 울렸다.

“1번, 2번 발사관 개방 후 바로 발사!”

에머슨 하인드먼 함장의 명령이 떨어짐과 동시에 기다리고 있던 함미 머즐도어가 개방되고는 이내 2발의 중어뢰를 토해냈다.

쿠르르르르릉! 쿠르르르르릉!

강력한 공기압축발사체계 방식으로 발사된 2기의 중어뢰는 입력된 표적 제원에 따라 빠르게 다가오는 S-SSFM-500B 트라이던트를 향해 잠항해 나갔다.

“1번 어뢰! 충돌까지 5초! 4초! 3초! 2초! 1초 요격 성공!”

음탐관은 기쁜 나머지 만세를 부르며 소리쳤다. 하지만 이내 2번째 요격결과를 확인하기 위해 급히 벗겨진 헤드폰을 고쳐 쓰고는 집중했다.

“2번 어뢰 충돌까지 3초! 2초 1초! 실패! 요격 실패!”

이때 콜롬비아함(SSBN-901) 전체를 휘감는 폭발음과 함께 엄청난 충격이 연속으로 몰아쳐 왔다. 서 있던 승조원들이 바닥에 내동댕이쳐질 정도였다.

“뭐, 뭔가?”

“아! 윌리엄 펜함과 앤히크함이 당했습니다.”

절규 섞인 음탐관의 보고였다. 하지만 지금 현재 에머슨 하인드먼 함장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몇 초 후면 자신들도 같은 신세가 될 수 있는 절망적인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잠항하각 최대치로 좌현 전타!”

짧은 시간, 에머슨 하인드먼 함장은 일만의 기적을 기대하면서 소리쳤다. 순간 콜롬비아함(SSBN-901)은 좌현으로 크게 선회하면서 해저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듯 급격히 기울어졌다.

끼이이이이이이잉!

소름 끼칠듯한 소음이 함 전체에서 울렸다.

“적 어뢰 도달까지 얼마인가?”

“3초입니다.”

“제, 제길!”

가망이 없었다. 회피할 수 있는 시간이 너무나 부족했다.

“충돌까지 2초! 1초! 충돌합니다.”

“다들 충돌에 대비하라!”

여기저기에서 비명이 터졌다. 하지만, 음탐관의 충돌 시간이 지난 후에도 콜롬비아함(SSBN-901)은 아무이상없이 잠항했다.

“뭐, 뭔가?”

단단한 구조물을 붙잡고 눈을 질근 감았던 에머슨 하인드먼 함장은 몇 초가 흐른 후에도 아무런 이상이 없자 눈을 뜨고는 주변을 살폈다.

“살았습니다. 적 어뢰가 우리 함을 지나쳤습니다.”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순간 콜롬비아함(SSBN-901) 승조원들은 너나 할 것이 만세를 부르며 탄성을 내질렀다.

에머슨 하인드먼 함장 역시 믿기지 않은 현실에 어안이 벙벙했지만 이내 냉정심을 찾고 명령을 내렸다.

“다들 조용! 지금부터 침묵 잠항에 들어간다. 조타장! 최대심도까지 내려가서 그곳에서 잠시 대기한다.”

“네, 알겠습니다.”

“함, 함장님 어떻게 된 일일까요?”

부함장이 엉거주춤한 자세로 다가오며 물었다.

“난들 알겠나? 어쨌든 살았다는 게 중요하지!”

660노트에 근접하는 엄청난 속도로 질주하던 2번째 S-SSFM-500B 트라이던트는 갑자기 왼쪽으로 선회하며 수직에 가까운 각도로 잠항하는 콜롬비아함(SSBN-901) 우측 상단을 스치며 빗나가고 말았다.

가까운 거리에서 목표물이 갑작스러운 움직임을 보이자 속도가 빠른 만큼 선회력이 약한 만큼 S-SSFM-500B 트라이던트는 그만 목표물을 스치며 지나쳤고 이후 해저 밑바닥과 충돌하면서 거대한 폭발을 만들었다.

쿠아앙! 쿠르르르르르릉!

다시 한번 휘몰아치는 폭압력이 콜롬비아함(SSBN-901)을 휘감았다.

크륵! 크륵! 끼이이이잉!

잠수함 외벽이 쪼개질 듯한 괴상한 소음이 전해졌다. 하지만 콜롬비아함(SSBN-901) 승조원들의 얼굴에는 회색이 돌고 있었다. 방금 저승 문턱까지 갔다가 돌아왔으니 그럴 만도 했다.

어느덧 콜롬비아함(SSBN-901)은 심도 2,000m까지 잠항한 후 그 자리에서 모든 기관을 정지하고 침묵 잠항에 들어갔다. 하루건 이틀이건 주변 해상 일대가 조용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움직일 예정이었다.

하지만, 이들의 바람대로 되지는 않았다. 근처 해심에는 제9잠수함사령부 소속의 장보고함(SS-061)이 잠항 중이었다.

★ ★ ★

2024년 1월 23일 08:20,

남주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와대 국가위기상황센터 지하 벙커.

아침 일찍부터 추은희 대통령은 이곳 지하 벙커에서 강이식 장관과 함께 현재 일본 전역에서 진행되고 있는 공업지역에 대한 폭격 작전은 물론 도쿄도 내 철수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태평양함대와의 해상전 역시 실시간으로 보고를 받고 있었다.

조금 전, 1차 해상전에 대한 결과보고가 합동참모본부로부터 올라왔다. 연합함대의 피해 현황은 1척의 구축함과 3척의 호위함이 대함미사일 공격에 반파되어 전력에서 제외되었고 전사가 6명, 중상자가 15명, 경상자가 41명이 발생, 반대로 태평양함대 소속의 줌왈트급 구축함을 비롯해 총 15척이 반파 또는 침몰시킨 전과를 올렸다는 보고였고 현재는 양국 함대 모두 전장에서 퇴각 중이라는 보고였다.

이외에도 공중전에서 CA-11P 봉황 공격기 43기, CF-21P 주작 전투기 9기, CF/A-25P 흑주작 전폭기 8기가 격추되었고 태평양함대의 F-35B, C 라이트닝II은 총 165기가 격추되었다. 요격비율로 보자면 대한민국 전투기의 압승이라 볼 수 있지만, 지금까지 치러진 공중전을 보자면 대한민국으로서는 큰 피해를 본 것과 같았다.

이에 합동참모본부에서는 2개 전투비행단을 추가로 작전에 투입하여 향후 공중전에서 확실한 우세를 보이겠다는 내용도 함께 올라왔다.

“역시 미국은 그리 만만한 상대가 아니듯 합니다.”

이렇듯 예상보다 큰 피해를 봤다고 생각한 강현수 국가안보실장이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3년 동안 미국이 우리 모르게 많은 준비를 한 듯합니다.”

강이식 장관 역시 올라온 보고가 믿기지 않는 듯 계속해서 보고서를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우리가 여기서 걱정한다고 뭔 도움이 되겠습니까? 믿고 기다려야지요. 대신 일본에 주둔 중이 우리 해병대에 대한 철수 현황과 포격 현황에 대해서 계속 지켜봅시다. 아 그리고 오동진 대사는 미국 국무부와 협상 중이죠?”

오동진 대사는 주미한국대사관의 대사로 이번 태평양함대와 벌어진 해상전을 평화적인 방법으로 해결하기 위해 급히 국무부를 방문한 상태였다.

“네, 대통령님! 현재 국무부 청사에서 줄리언 그린 차관과 면담 중입니다.”

외교부 강경희 장관이 대답하자 추은희 대통령은 한쪽 눈을 치켜뜨며 되물었다.

“메인 존슨 장관이 아니고요?”

“아무래도 저번 라트비아 리가 사건도 있고 해서 피하는 듯합니다.”

“구린 냄새를 숨기고자 하는 거겠지요. 알았습니다. 어쨌든 우리가 원하는 대로 면담이 끝났으면 좋겠군요.”

추은희 대통령은 미국 정치인 중에 메인 존슨 국무부 장관을 유독 싫어했다.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국가 간 이간질은 기본이고 온갖 암수를 펼치는 정치인이었기 때문이었다.

일본을 3년 전 패전했던 당시로 되돌리는 대규모 폭격작전이 진행되면서 홋카이도를 제외한 혼슈에 주둔 중인 제1병사단(해룡)과 제6해병사단(천룡)은 마이즈루와 조에쓰 방향으로 철수에 들어가 제1함대의 호위 속에 제53상륙전단의 각종 다목적상륙함과 수송함을 이용해 본국으로 수송될 예정이었고 시코쿠 주둔군인 제5해병사단은 군 수송기를 타고 본국으로 수송될 예정이었다.

결과적으로 일본에서 완전을 손을 떼게 되는 대한민국으로서는 미국의 의도가 어떻든 러시아와 전면전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을 두고 불필요한 군사적 마찰을 이어갈 필요는 없었다. 단지 일본의 모든 공업지대를 초토화한 후라는 전제조건이 있었다.

이에 외교부에서는 오동진 대사를 통해 미국 정부에 평화적 해결을 위한 제스처를 취하고 있는 이유였다.

하지만, 합동참모본부로부터 실시간으로 보고된 내용에 의해 추은희 대통령의 심경에 변화가 생기고 말았다.

미국 핵잠수함의 어뢰 공격으로 연합함대 구축함 4척과 호위함 2척이 추가로 침몰했으며 정확한 사상자 현황은 취합 중이나 대략 20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을 거라는 보고였다.

보고를 접하자마자 추은희 대통령의 얼굴이 시뻘겋게 물들었다. 얼마나 분노가 치밀고 있는지를 얼굴색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방금까지 일본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는 포격 장면을 보여주고 있던 대형 스크린 화면은 보고와 함께 정찰위성으로부터 촬영된 연합함대를 보여주고 있었다.

30여 척의 각종 수상함이 일본 해역으로 항해하는 중에 중간중간 시뻘건 화염에 휩싸인 채로 차디찬 바닷속으로 침몰하는 여러 척의 구축함과 호위함들이 보였고 주변 일대에는 바다로 뛰어내린 수병들을 구조하기 위해 다목적상륙함에서 출격한 수많은 헬기가 호버링을 하며 구조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그중 눈에 띄는 건 헬기격납고까지 함미 전체가 뜯겨 나간 제7기동전단 소속의 정조대왕함(DDG-1007)이었다. 당장에라도 침몰하고도 남을 상태였지만, 좌현으로 살짝 기울어졌을 뿐 침몰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자체 추진력을 잃어 유수에 떠밀려 가고 있었다.

상상도 하기 싫은 장면이 스크린을 통해 눈앞에서 펼쳐지자 추은희 대통령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는 강경희 장관을 보며 차디찬 음성으로 말했다.

“이동진 대사! 면담 중지하라고 전하세요?”

“네? 대통령님 무슨 말씀이신지요.”

강경희 장관이 깜짝 놀라며 되물었다.

“지금부터 미국과의 평화적 해결방안은 전면 취소합니다. 그러니 이 대사에게 면담 중지하고 대사관으로 돌아가라고 전하세요.”

“정말이십니까? 대통령님!”

“네, 변함없습니다.”

추은희 대통령은 단호했다. 이에 강경희 장관을 비롯해 여러 장관과 수석들은 더는 반대의견을 내놓지 않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