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35화 (535/605)

지리멸렬

2024년 1월 23일 07:10,

일본 지바현 가쓰우라시 동단 105km 해상(태종대왕함(DDG-996) 전투지휘실).

“왕건함(DDH-978) 승조원 모두 퇴함을 완료했다는 보고입니다.”

방금 제2구축함전단으로부터 올라온 보고를 홍승태 수석작전관이 전달했다.

20여 분 전, 대함미사일 1기를 얻어맞고 전투 불능이 되어버린 왕건함(DDH-978)은 다행히 침몰할 정도의 타격을 입지 않아 후방 일대로 물러난 후 승조원들은 퇴함 절차에 들어갔었다.

“사상자 현황은 확인되었나?”

약간 상기된 표정을 짓고있는 김이원 제독은 거미줄처럼 그어진 각종 전술기호가 난무한 스크린에 시선을 고정한 채 물었다.

“미사일이 함수 측면에 꽂혀 갑판병들 피해가 컸습니다. 전사자 1명, 중상자 3명, 경상자 5명입니다. 시신 모두 수습했다고 합니다.”

“음. 전사자라······. 휴~”

김이원 제독은 깊은 한숨을 내쉬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복잡한 생각이 그의 머리를 헤집었다. 태평양함대와 교전이 시작되기 전, 김이원 제독은 자신감에 차 있었다. 제7기동전단은 물론 세계 최강의 충무공이순신급 순양함이 2척이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교전이 시작하고 1시간 30분째 접어는 듯 지금, 교전 전, 김이원 제독이 생각한 전술상황하고는 많이 엇나가고 있었다.

자꾸만 뭔가 놓치고 있다는 느낌이랄까? 압도적인 우세는 아니더라도 태평양함대의 공중전력 정도는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고 생각했으나 공중전만 하더라도 주작과 흑주작 전투기가 지원을 왔음에도 절대적인 우세를 보이지 못하고 있었다. 봉황 공격기만으로도 시뮬레이션을 돌린 결과 교전 비율이 5대 1일이었음에도 말이다.

또한, 해상전 역시 지금쯤이면 결판이 나도 진작에 났을 상황이었다. 연합함대 좌·우측 진형에서 대공방어를 책임지는 2척의 충무공이순신함급 순양함에서 발산되는 SECM(전파교란시스템)은 연합함대 전체를 싸고도 남을 정도로 강력했으나, 태평양함대의 구축함들은 정확히 레이더로 탐지 및 조준하여 대함미사일을 발사하고 있었다.

즉, 스텔스나 SECM(전파교란시스템) 등 모든 것이 태평양함대의 레이더에 무력화가 되었다는 얘기였다.

“제독님! 제독님!”

잠시 깊은 생각에 빠졌던 김이원 제독은 순간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뭐, 뭔가?”

“방금 호위함 3척이 피격되었습니다. 대구함(FF-818), 서울함(FF-823) 부산함(FF-827)입니다.

“피해는?”

“대구함은 완파!, 서울함과 부산함은 반파입니다.”

“영상 호출하게”

“네, 알겠습니다.”

잠시 스크린에 분할 된 화면으로 3척의 호위함 모습을 비췄다. 대구함(FF-818)은 함교 부위가 완전히 날아간 상태로 불에 타며 좌현으로 급속도로 기울어져 있었고 서울함과 부산함은 측면부위에 불길이 사납게 춤을 추고 있지만 침몰될 상황은 아니었다.

쿵!

의자 팔걸이를 세차게 주먹으로 내지른 김이원 제독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대구함에게는 즉시 퇴함 명령 내리고 서울함과 부산함은 후방으로 즉시 퇴각하라고 전하게”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제독님!”

“뭔가? 함정들의 대함미사일 수량이 바닥나고 있습니다.”

이 말의 뜻은 재장전을 위해 전장에서 잠시 퇴각하자는 말이었다. 1시간 30분 동안 해상전이 이어진 탓에 VLS(수직발사대)에 장전되어 있던 대함미사일 대부분을 소모한 상태였다. 어떤 호위함과 구축함은 장전한 대함미사일을 모두 발사하고 대공방어 임무만 수행하고 있었다.

이에 김이원 제독은 대형 스크린 화면의 상단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상단 화면에는 연합함대에 속한 모든 함정의 미사일 수량이 종류별로 상세하게 표기되어 있었다. 대부분 대공미사일만 남은 상태였고 충무공이순신급 호큘라 순양함 2척을 제외하면 오직 8척만이 소량의 대함미사일이 남은 상태였다. 상황에 따라 몇 분이면 모두 소진할 수량이었다.

3년 전 해상전하고는 판이할 정도로 태평양함대의 대공 방어능력이 생각 이상으로 강력했다. 김이원 제독이 계속해서 의구심이 들고 있는 부분이기도 했다.

“제독님! 퇴각 준비에 들어가는 게 어떻겠습니까?”

“무턱대고 퇴각할 수는 없지 않은가?”

홍승태 수석작전관의 재차 요청에 김이원 제독은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하더니 이내 뭔가를 결심했는지 팔짱을 끼고는 지시를 내렸다.

“수작관! 손병희함과 차리석함 함장들 호출하게.”

“네, 알겠습니다.”

잠시 후 대조영함(DDH-977)을 비춰주던 스크린에서 두 명의 함장 모습이 나타났다.

- 충성! 손병희함 함장 서길수입니다.

- 충성! 차리석함 함장 안원석입니다.

“수고가 많네. 지금부터 우리 함대는 후방 50km까지 퇴각하려고 하네. 자네들 순양함이 적 함대로 긴급 항진하여 스퀘테 함포 사거리까지 도달한 후 공격을 했으면 하네. 만약 저 함대가 우리의 의도를 알아채고 물러난다면 양 함대 간 대함미사일 사거리 밖까지만 항진하다가 복귀하도록 하게.”

- 네, 알겠습니다.

- 네, 따르겠습니다.

2척으로만 태평양함대로 진격하라는 명령이었으나 두 함장은 별다른 반대의견 없이 바로 대답했다. 그만큼 두 함장은 자신들이 지휘하고 있는 자함의 대공 방어력을 믿고 있다는 얘기였다. 그 믿음에는 자기장 보호막인 SSS(실드차폐시스템)가 한몫했다. 대공방어능력 한계점을 넘은 공격이 들어오더라도 한두 번쯤은 SSS(실드차폐시스템)을 이용해 대대적인 공격을 무력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렇듯 퇴각에 있어서 김이원 제독이 내린 명령은 탁월했다. 무턱대고 퇴각하게 된다면 태평양함대로부터 무차별적인 공격을 받게 됨으로써 추가적인 또 다른 구축함이 피격될 위험에 처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공격력과 방어력이 세계 최강인 순양함 2척이 태평양함대로 돌진한다면, 태평양함대의 지휘관이 바보가 아닌 이상 의도를 파악하고 퇴각할 수밖에 없을 거이라 판단했다.

이유인즉슨, 앞선 교전에서 줌왈트급 구축함 8척이 충무공이순신급 순양함의 스퀴테 K-2 2연장 함포에 몰살당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스퀴테 함포에서 쏟아지는 플라즈마 응집탄은 대함미사일보다 크기도 작을뿐더러 마하 10에 달하는 속도로 날아가기 때문에 요격할 확률은 매우 낮을 수 있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만약 김이원 제독이 예상한 대로 태평양함대가 물러서지 않고 계속해서 공격해온다면 연합함대에서도 추가로 피격되는 구축함이 발생 될 수 있었다.

현재 연합함대보다 태평양함대의 구축함 수는 적었다. 하지만, 300여 기에 달하는 전투기에서 발사하는 대함미사일로 인해 연합함대보다는 태평양함대 구축함에서 발사하는 대함미사일 수량은 적었다.

어쨌든 물러서지 않고 계속해서 공격을 감행한다면 분명 충무공이순신급 순양함의 스퀘테 함포 사거리 안에 들어가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태평양함대 역시 큰 피해를 볼 것은 자명, 태평양함대 지휘관이 어느 쪽을 선택하든 연합함대는 손해 볼 장사가 아니었다.

잠시 후 김이원 제독으로부터 최대속도 항진명령을 받은 2척의 호큘라 순양함이 앞으로 튀어나가듯 푸른 파도를 가르며 대형에서 이탈했다.

전장이 235.5m에 달하는 거대한 함정이었지만, 플라즈마 초광자 Mod-D급 엔진이 4개 장착된 호큘라 순양함은 바다 위에서 무려 70노트라는 엄청난 속도를 보여줬다. 시속으로 계산한다면 129.64km/h였다. 제트워터 터빈을 장착한 고속정보다도 배로 빠른 속도였다.

현재 태평양함대와의 거리는 대략 280km로 앞으로 100km 더 떨어진다면 보유하고 있는 대함미사일의 사거리에서 벗어나게 된다.

“일단, 대구함 승조원들 퇴함 상황 확인하고 나머지 서울함과 부산함도 향해 가는 여부 판단하여 퇴함 명령을 내릴 것인지 바로 판단하라고 전하게.”

“네,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잠시 후, 통신사관을 통해 지시사항을 전달했던 홍승태 수석작전관이 돌아왔다.

“제독님! 대구함은 퇴함 진행 중이며 서울함과 부산함은 항해 가능하다고 합니다.”

“그래? 그럼 대구함 퇴함만 빠르게 진행하면 되겠군”

“네, 서두르라고 지시해놨습니다.”

10여 분 후! 충무공이순신급 순양함 2척이 함대 대열을 이탈해 20km 정도 앞서 항해해 나가자 김이원 제독은 전 함대에 퇴각 명령을 내렸다.

★ ★ ★

2024년 1월 23일 07:30 (현지시각 08:30),

일본 지바현 가쓰우라시 동단 385km 해상(제널드 R. 포드함(CVN-78) 전투통합지휘실).

17척의 각종 구축함을 잃은 상황에서 아틀라스 정찰위성으로부터 손병희함(CG-1103)과 차리석함(CG-1103)이 대열을 이탈해 빠르게 항진 중이라는 정보를 보고받고는 상당히 심각하게 고심 중이었다.

과연 무슨 의도로 2척의 순양함이 밀고 들어오느냐였다.

“제독님! 이번 기회에 저 두 척의 순양함을 제거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지미 로페스 주임작전관은 가장 강력한 대한민국 해군의 순양함을 제거할 호기라 생각했는지 이와 같은 의견을 제시했다.

“자네는 저들이 멍청이라 생각하나?”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다른 의도가 있다는 말이야.”

“의도라 하면······.”

“허허. 자넨 태평양함대의 주임작전관으로서 그걸 나한테 묻다니······.”

루빈 스콧 제독은 조금은 한심하다는 듯한 눈으로 쳐다보며 혀를 찼다.

“아! 죄송합니다. 제독님!”

“현재 공중전력은 죄다 한국 전투기와 공중전에 참여한 상황에서 이제 20척밖에 남지 않은 전력으로 저 순양함을 침몰시킬 수 있다고 보나?”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2척 정도는······.”

“자네 그걸 잊었구먼,”

“뭘 말씀이십니까?”

“보호막!”

“아!”

그제야 지미 로페스 주임작전관은 자신의 이마를 치며 탄식을 터뜨렸다.

그동안 미국은 한국의 모든 무기에 대한 정보를 취합 및 분석해 왔다. 당연히 충무공이순신급 순양함에 대해서도 대략적인 재원을 확보한 상태였다.

“죄송합니다. 제가 미처 그 생각을 못 했습니다.”

“그거뿐만 아니야. 8척의 줌왈트급 구축함이 뭐로 당했나?”

“함, 함포입니다.”

“그래. 함포지! 우리의 256MJ급 레일건보다 성능이 더욱 탁월한 그 함포야. 지금 저 순양함은 함포 사거리 내로 진입하기 위해서 빠른 항진을 하는 것으로 보이지 않나?”

루빈 스콧 제독은 순양함의 빠른 항진 의도를 제도로 파악하고 있었다.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그럼, 어떻게 하시는 게······.”

이때, 상황전파장으로부터 보고가 올라왔다.

“적 함대 퇴각 중! 적 함대 퇴각에 들어갔습니다.”

“그거였군,”

루빈 스콧 제독은 자리에서 일어나 스크린 화면 쪽으로 다가가더니 연합함대 함정들의 항해 방향을 게슴츠레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본 함대를 퇴각시키기 위해 방어력이 강력한 두 순양함을 진격시킨 거야. 우리 역시 퇴각하라는 뜻으로 말이야. 원하는 대로 해주지! 하지만, 그냥은 보낼 수 없지!”

의미심장한 말을 중얼거린 루빈 스콧 제독은 몸을 돌려 자신의 자리로 돌아와 의자에 앉고는 명령을 내렸다.

“로페스 주작관!”

“네, 제독님!”

“우리 함대도 퇴각절차에 들어간다. 함대장과 전단장에게 하달하고 각 항모 전투비행단장에게도 교전 상황에 따라 판단하여 복귀 명령을 내리라고 전하게.”

“네,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보안전문 준비하게!”

“네, 알겠습니다.”

루빈 스콧 제독의 명령에 따라 태평양함대도 선회하며 퇴각에 들어갔다. 이로써 2시간 가까이 진행되었던 양 국가의 해상전은 막을 내렸다.

피해 현황을 보자면, 1차 해상전은 대한민국 해군 연합함대의 승리라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 끝난 것은 아니었다.

빛조차 없는 심해 깊은 곳에서는 지금까지 한 번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콜롬비아급 핵잠수함 3척이 마치 해저 바닥을 기어가듯 바짝 붙은 상태로 잠항 중이었고 그들의 위에는 연합함대 구축함과 다목적상륙함이 크게 선회하며 퇴각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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