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멸렬
2024년 1월 23일 06:10,
일본 도쿄 신주쿠구 보안대 중앙본부 벙커상황실.
“하하하. 성공입니다. 성공! 현재 해병대 주둔기지 여러 곳을 제압했다고 보고입니다.”
요시다 마야 총감이 입이 귀까지 걸린 얼굴로 박장대소를 했다. 벙커상황실 분위기 역시 총감 얼굴처럼 화기애애했다. 거사를 치르기 전 팽팽하고 무거웠던 긴장감은 온대 갖게 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제1해병사단 사단본부 기지 역시 제압에 들어갔다는 보고입니다.”
경시 계급장의 나가토모 유토 상황전파장이 방금 올라온 보고를 전했다.
“좋아! 좋아! 잘하고 있군. 역시 미국 특수부대의 활약이 큰 듯합니다.”
요시다 마야 총감이 아부 떨 듯 말하자 미이케 다카시 보안부 장관 역시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흡족해했다.
“그래. 이제 미국만 상륙하면 우리 일본은 예전처럼 자주 국가가 되는 거지!”
“그러게 말입니다. 3년간 지옥이었습니다. 우리 자위군을 해산시키고 멋대로 지켜준다면서 사사건건 끼어들어 방해만 하고 말입니다.”
3년 전, 중국과 전쟁 당시 그 기회를 이용해 선제공격을 감행해 참전했다가 패전하여 항복협정에 따라 진행되었던 한일관계를 까맣게 잊은 채 마치 대한민국을 침략국마냥 떠들어댔다.
그리고 이들은 매우 큰 착각을 하고 있었다. 현재 작전을 수행하고 있는 보안대의 지휘관들로부터 순조로운 제압작전이 진행되고 있다는 보고를 받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들의 관점에서 판단한 보고일뿐이었다.
현재 도쿄도 방어를 책임지고 있는 제1해병사단은 이미 본국으로 이동할 준비를 모두 마친 상태였고 무리한 교전 역시 일부러 피하고 있었다. 만약 제1해병사단 전력이 일본의 ‘자주국가선포’를 사전에 막으려 했다면 이러한 대응전략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사전에 혼슈 곳곳에서 오는 보안대의 길목을 차단하거나 또한 도쿄도 곳곳에 집결한 보안대 숙영지를 역 기습공격으로 전멸을 시켰을 것이고 도쿄에 미국 특수부대가 전개한다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기에 그에 맞는 교전 전략으로 대응했을 것이다.
제1해병사단은 사실 이러한 대응전략을 완전히 수립하고 만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추은희 대통령의 새로운 명령이 내려오기 전까지 말이다.
이렇듯 아무것도 모르면서 착각에 빠져 헛소리를 하는 가운데 보안부 보좌관이 조용히 다가와 미이케 다카시 보안부 장관에게 말을 건넸다.
“장관님! 방금 한국 대통령이 이번 사건과 관련한 성명발표를 했다고 합니다. 방금 끝났는데 녹화본이 있습니다.”
“그래? 그럼 틀어봐!”
“네, 알겠습니다.”
잠시 상황실 스크린이 켜지고 추은희 대통령의 성명발표 영상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몇 분이 지나고 요시다 마야 총감이 콧방귀를 끼었다.
“훗! 저 여자 말하는 본색하고는······.”
“저 여자 처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여자가 정치하면 저렇게 됩니다.”
추은희 대통령의 설명 발표를 보며 저마다 놀려대며 한마디씩 던졌다.
“그런데 말이야. 8분 후면 우리 일본이 3년 전으로 돌아간다고 하는데 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하하, 5분 후면 우리 모두 3년 전 과거로 돌아가는 겁니까? 한국 대통령은 시간을 지배하는 여자인가? 하하하”
요시다 마야 총감마저 추은희 대통령을 놀려대자 상황실은 이내 웃음바다가 되었고 잠시 영상은 끝이 났다.
“흥 헛소리나 하는 영상이군. 난 이만 가야겠어!”
영상이 끝남과 동시에 미이케 다카시 보안부 장관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아! 총리님 만나시려는 겁니까?”
“그래. 지금 중앙청 벙커에 계시네. 좋은 소식은 직접 가서 보고드려야지 않겠나?”
“아! 그럼요. 맞습니다. 장관님! 이곳은 걱정하지 마시고 다녀오시기 바랍니다.”
“그래. 이곳은 마야 총감이 알아서 하고 혹, 변동사항 있으면 바로 연락하고”
“네, 알겠습니다.”
★ ★ ★
2024년 1월 23일 06:20,
일본 게이힌 공업지역.
도쿄와 요코하마와 가와사키를 중심으로 발달한 게이힌 공업지역은 일본 제1의 공업지역으로 불릴 정도였고 중화학 공업, 철강과 석유화학, 자동차, 전자와 정밀 기계 공업이 발달한 지역으로 3년 전 전쟁 통에 완전히 폐허로 변했지만, 지리적 특성상 전쟁복구 첫 번째 지역으로 지정되어 대대적인 복구 사업이 진행되어 현재는 3년 전의 60%에 해당하는 정도로 되돌아간 상태였다.
특히나 이곳은 일본의 중심지인 도쿄도와 매우 가까운 거리로 수많은 사람이 도쿄도에 살면서 이곳에 직장을 다니는 곳이었다. 즉, 도쿄도의 대부분 사람의 생계 지역이라 볼 수 있었다.
이처럼 일본 경제산업의 중심지라 볼 수 있는 이곳 게이힌 공업지역의 시작인 군마현 상공에 수상한 비행기 이십여 대가 어둠을 뚫고 모습을 드러냈다. 삼각형 형태에 후익 날개가 길게 튀어나온 기존 비행기와는 생김새가 판이한 이 비행기는 대한민국 공군 제36전략폭격비행단 소속의 CB-91P 참매 폭격기였다.
쿠우우우우웅~
그리 크지 않은 플라즈마 엔진음을 울리며 30분 전, 수원 공군기지에서 출격해 최대속도로 동해 상공을 지나 이곳 군마현에 도달한 22기의 CB-91P 참매 폭격기는 각자 할당받은 폭격타격지역에 폭격하기 위해 서서히 고도를 낮추기 시작했고, 일정고도까지 다다르자 3개의 내부무장실 페어링이 동시에 열렸다.
그리고는 재래식 폭탄들이 줄줄이 소시지마냥 내부무장실에 분리되면서 지상으로 낙하했다. 눈먼 폭탄이라 불리는 재래식 폭탄들은 지정된 타격지점에 정확히 착탄 하면서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검붉은 용오름을 만들었다.
특히나 중화학 성분이 담긴 웬만한 농구구장보다 큰 대형 탱크에 재래식 폭탄이 떨어져 폭발할 때는 마치 핵폭탄이 터진 듯 엄청난 버섯구름이 형성되었고 주변 수십 킬로미터까지 파장이 전달되었다. 또한, 거대한 불길이 주변 몇 킬로미터를 덮쳐버려 재리식 폭탄이 착탄 하지 않더라도 쑥대밭을 만들었다.
최대 무장량인 50t를 꽉꽉 채워 온 CB-91P 참매 폭격기 22기는 이날 총 8번을 반복하여 출격하여 군마현부터 지바현과 가나가와현까지 백여 킬로미터를 비행하며 수천 발의 재래식 폭탄에 얻어맞은 게이힌 공업지역은 검붉은 화염과 시꺼먼 연기만 피어오르다가 2주 만에 불길이 커지면서 희뿌연 잿더미가 되고 말았다.
★ ★ ★
2024년 1월 23일 06:20,
일본 주쿄 공업지역.
일본 경제를 지탱하는 주축산업 중 하나인 자동차와 기계 및 철강 산업이 몰려있는 이곳 주쿄 공업지역은 나고야를 둘러싼 형상으로 개발된 공업지역으로 지난 한일전 당시 다른 공업지역보다 전쟁 피해가 작아, 복구 사업으로 가장 먼저 예전의 모습을 되찾아 일본의 경제회복에 있어서 중심이 되었던 공업지역이었다.
하지만 금일 새벽 조용히 찾아온 죽음의 사신 CB-91P 참매 폭격기 12기에 의해 옛말이 되고 말았다.
여의도 면적의 100여 배에 달하는 넓은 지역에 형성된 주쿄 공업단지는 거대한 폭발과 하늘 높이 솟구치는 검은 연기, 그리고 철까지 녹여버릴 정도의 꿈틀거리는 화염이 춤을 췄다.
특히나 일본 자동차 기업들의 공장이 즐비한 곳인 만큼 생산이 완료되어 수출이나 외부지역으로 이동하기 전, 대기하고 있던 수만 대의 자동차들도 폭탄 화마를 피하지 못하고 불길에 휩싸여 철골만 앙상히 남겨질 정도로 홀라당 다 타버리고 말았다.
10시간에 걸친 대대적인 폭격이 끝나고 나고야는 물론 주변 일대의 지방 소방서의 모든 소방차가 긴급 출동했지만 마치 쓰나미처럼 십여 미터 높이로 솟구치며 번져나가는 화염에 진화하기는커녕 먼발치에서 구경하거나, 아니면 주변 지역에 있는 시민들의 대피를 도울 뿐이었다.
★ ★ ★
2024년 1월 23일 06:20,
일본 한신 공업지역.
오사카와 고베에 있는 이곳 한신 공업단지는 일본의 4대 공업지대 중 하나로 처음엔 섬유 공업으로 시작했으나 나중에는 철강과 조성, 그리고 석유화학이 점차 발전한 공업단지였다.
당연히 이곳 역시 3년 전 한일전의 피해지역이기도 했던 곳으로 예전에 명성을 날리던 반도체와 섬유는 새롭게 개발된 고노스 산업단지로 이동했고 지금은 철강과 석유화학 공장이 집중하여 중핵을 이뤘다.
임해공업지대의 내륙 쪽에는 경공업을 주로 한 내륙공업지대가 펼쳐져, 기계기구, 잡화 등 각종 중소공장이 많으며 남부의 센슈 일대는 섬유 공업지대다. 임해지수에서는 지하수의 양수가 금지된 뒤부터는 지반의 침하가 거의 멎었으나 연기배출에 의한 대기오염이 문제가 되기도 한 곳으로 임해공업지대의 포화로 인해 서쪽은 하리마 지구로, 남쪽은 와카야마 지구로 공업지대가 확장되어 철강, 석유화학공업이 더욱 커졌다.
그래서 그런지 이곳은 다른 공업지역보다 각종 화학성분이 저장된 대형 탱크들이 즐비했다. 웬만한 건물보다 큰 원형의 대형 탱크만 해도 200여 개가 넘을 정도였다.
이러한 이유로 CB-91P 참매 폭격기들의 출현과 함께 쏟아지는 재래식 폭탄보다 200여 개의 대형 탱크가 폭발하면서 피해 규모는 몇십 배로 늘어났다.
대형 탱크가 한번 터질 때마다 마치 지구 종말이라도 세상 전체가 흔들렸고 가까운 거리에 있던 사람들은 고막이 나갈 정도로 파장이 대단했다. 이러한 폭발이 200여 번이나 일어났으니 이곳은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자 엄청나게 큰 용광로였다.
특히나 화학성분이 타면서 위독가스가 바람을 타고 수십 킬로미터나 날아가 고베와 오사카에 사는 민간인들의 피해가 적잖이 생기고 말았다. 특히 어린아이와 폐가 약한 노인들에게서 사망자가 발생했다. 이 부분은 합동참모본부의 실수이기도 했다. 이번 폭격작전을 수립하면서 유독가스로 인해 이 정도의 많은 민간인 희생자가 발생할 줄 몰랐다.
여담으로 종전 후 나고야와 고베 민간인의 희생자와 관련하여 사후조사가 진행되면서 당시 폭격작전을 기획했던 합동참모본부의 작전본부장과 합참의장은 책임을 지고 군복을 벗게 되었다.
어쨌든 이번 폭격작전에 있어서 대한민국 공군이 보유한 모든 재래식 폭탄을 모두 소모했다. 여기서 의문점 한가지가 있는데, 왜 러시아와 전쟁 중이고 앞으로 미국과 전면전까지 벌어질 판에 혹, 앞으로 필요할 재고 폭탄을 모두 소진했느냐였다.
그 이유는 러시아나 미국 같은 경우, 일단 대한민국과 거리가 멀었다. 미국처럼 폭격기가 수백 대가 있는 것도 아니기에 한번 폭격하기 위해 수천 킬로미터나 되는 거리를 비행해서 고작 재래식 폭탄으로 폭격하는 것은 그리 효과 있는 방법이 아니었고 또한 장거리 비행인 만큼 호위하는 전투기도 대단위로 동원해야만 했다.
또한, 땅덩어리도 넓어 일본처럼 가까운 거리에 공업단지나 각종 공장지대가 모여있지도 않았고 러시아나 미국 같은 경우 핵보유국인 만큼 이런 대규모 폭격작전을 수행하면서 전술급 규모의 폭격보다는 전략급 규모의 폭격으로 대응하는 것이 순리였다.
이에 예비탄약고까지 털털 털어내 모든 재래식 폭탄을 이번 일본 폭격작전에 모두 소진한 이유였고 그 안에 추은희 대통령의 단호한 명령도 숨어있었다.
★ ★ ★
2024년 1월 23일 06:20,
일본 사이타마현 고노스시 고노스 산업단지.
기존 게이힌 공업지역에서 분리될 만큼 일본 경제의 새로운 경제 부흥의 원동력이 된 고노스 산업단지에서도 거대한 화염이 사방에서 속출했다.
금일 새벽, ES-C1 엑소슈트를 착용한 해병들이 고노스 산업단지를 돌며 설치한 PP7-XAM을 원격 무선으로 시간에 맞춰 일제히 폭발시켰기 때문이었다.
설치용 플라즈마 응집탄인 만큼 폭발위력은 대단했다. PP7-XAM 1개가 터질 때마다 반경 300m가 초토화되었다.
한일전 패전 후 새롭게 조성된 고노스 산업단지는 미래산업의 주축인 전기 자동차와 반도체 등 첨단기술이 접목된 고부가가치의 산업단지였다. 그래서 다른 공업지역보다 규모 면에서는 넓지 않았지만, 고부가가치 산업단지이었기에 일본 경제의 15%를 차지한 이유였다.
그러한 고노스 산업단지가 몇 분 만에 거대한 화염에 휩쓸린 채로 사라져가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도쿄도 주변의 크고 작은 각종 공장 역시 거대한 폭발과 함께 불길에 휩싸이고 있었다.
자그마치 328곳이었다. 아닌 말로 웬만한 중기업 이상의 모든 공장마저 제1해병사단 해병들의 폭파타격 표적에 포함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