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촉즉발
2024년 1월 23일 04:40,
일본 자바현 가쓰우라시 동단 120km 해상.
“현재 미 해군 구축함 8척! 교전 가능 해상까지 진입! 방위각 1-1-5! 거리 265k! 계속해서 최대속도로 서북단 방향으로 접근 중!”
태종대왕함(DDG-996) 전투지휘실에 전술사관의 큰 목소리가 울렸다.
사실 전술사관이 굳이 큰 목소리로 보고하듯 말하지 않더라도 전투지휘실의 중앙 스크린에는 어린아이라도 한 번만도 봐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쉽고 간편한 전술기호로 표기되어 있었다.
그렇더라도 중요한 정보에 변수가 생기며 이렇게 사람이 직접 중요한 정보를 알람처럼 알려주는 것 역시 중요한 부분이기도 했다. 전투지휘실에 지휘관이 있더라도 계속해서 스크린만 보고 있진 않기 때문이었다.
“역시나 시간에 맞춰 우리와 교전을 벌인 모양이군! 하하하”
미 해군 함대와 교전을 앞둔 상태에서 갑작스러운 웃음에 전투지휘실에 있던 모든 시선이 김이원 제독에게 쏠렸다.
이에 김이원 제독은 계속해서 웃으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부하들에게 말했다.
“자네들은 이 상황이 웃기지 않나? 우리가 뻔히 알고 있는 대로 미 해군이 움직이고 있으니 말이야. 하하하”
상황이 그렇더라도 계급이 낮은 입장에서 따라 웃을 수도 없는 전투지휘실의 참모들과 운영 오퍼레이터들은 속으로 웃을 뿐 겉으로 나타내지 않았다.
“음, 이놈들 좀 놀려줄까?”
김이원 제독은 장난기가 발동했는지 전투지휘실의 통신사관을 찾았다.
“통신사관!”
“네, 제독님!”
“멋모르고 지옥 길로 다가오는 미 해군 구축함에 통신 연결해봐!”
“네? 미 해군 구축함에 말입니까?”
“그래! 연결되면 화상통신으로 전환해!”
“네, 알겠습니다.”
이때 옆에 있던 수석작전관 홍승태 준장이 만류하려 했다.
“제독님! 무슨 말을 하시려고······.”
“궁금한가? 그럼 옆에서 기다려봐!”
잠시 후, 국제통신라인으로 미 해군 구축함과 연결이 되었다. 그리고는 잠시 후 지휘관용 모니터에 불이 켜지면서 미 해군 정복을 입은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대한민국 해군 제2함대 사령관 김이원이라 합니다.”
모니터에 비친 상대방보다 계급이 높음에도 김이원 제독은 먼저 자신을 소개했다.
- 안녕하십니까? 저는 태평양함대 제3함대 제1항모전단 소속 구축함전대장이자 폴 해밀턴함의 함장 랜던 도노반입니다.
“그래요. 반갑습니다. 계급이 그럼 대령이십니까?
- 네, 맞습니다.
“아! 그렇군요.”
- 한데 무슨 일로 통신을 보내셨는지요?
모니터에 비친 랜던 도노반 함장은 약간의 경계를 내비쳤다.
“아! 다른 게 아니라, 훈련 중인 줄 아는데, 자꾸만 일본 해상으로 접근 중이라 무슨 의도인지 궁금해서 말입니다.”
김이원 제독은 질문을 던지면서도 반응이 무척 궁금했다.
- 네? 그게 무슨 말씀인지요? 이곳은 엄연히 공해 상입니다. 전혀 문제 될 게 없는데 말입니다.
“네, 압니다. 하지만 엊그제부터 확인해보니 계속해서 일본 동해 쪽으로 항로를 잡고 있어서 말입니다. 지금도 최대속도로 다가오고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공해 상이긴 하나 그곳은 일본의 EEZ 안이기도 합니다.”
- 음, 해상 훈련과 EEZ와는 별개의 문제라 생각됩니다. 제독님!”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일본 영토와 해상을 지키고 있는 우리 대한민국으로서는 조금 불편함이 느껴지는군요.”
- 음, 국제법상 전혀 문제 될 게 없기에 제독님께서 심적으로 불편하시더라도 제가 뭐라 해드릴 수가 없군요.
지극히 정상적인 말이었다. 이에 김이원 제독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수긍하는 모습을 보이는가 싶더니 또다시 질문을 던졌다.
“그럼 어느 선까지 접근하시려는 겁니까?”
- 네? 무슨 상관이십니까?
억지스러운 얘기에 살짝 기분 상한 표정이 역력한 랜던 도노반 함장은 한층 목소리에 힘을 주고는 반문했다.
“미 해군 훈련에 상관할 바는 아니지만, 뜨금없는 해상에서 거대한 해군전력으로 훈련하는 것이 일본 영토를 수호하는 입장에서는 상관이 되어 보입니다.”
- 그 부분은 훈련 보안상 말씀드리기 곤란합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타국의 해상 훈련에 너무 감 놔라 배 놔라 하시는 거 같습니다.
“그럼, 부탁이라고 합시다. 부디 일본으로부터 150해리(277.8km) 이내로는 접근하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김이원 제독의 억지스러운 주장에 참모들과 오퍼레이터들은 저마다 어떤 반응이 나올까 하는 표정으로 지켜봤다.
- 제독님! 지금 발언은 타국에 대한 권리 침해입니다. 마지막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더는 우리 해군의 훈련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참견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별 3개인 김이원 제독과 대화하는 랜던 도노반 함장은 미국 해군이라는 자긍심 때문인지 절대로 꿀리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을 서슴없이 내뱉었다.
그럴 만도 했다. 현재 랜던 도노반 함장을 향해 약간의 억지스러운 주장을 펼치는 김이원 제독이 이끄는 제2함대라 해봤자, 이지스 구축함 1척에 방공 구축함 2척, 그리고 7척의 호위함과 2척의 다목적상륙함이었다. 더불어 1척밖에 없는 이지스함 역시 현재 청군역을 맡은 8척의 줌왈트급 구축함 중 어느 하나와 상대해서 이길 수 있는 성능을 가진 구축함이 아니었다. 기껏 알레이버크급 중 플라이트 II급 정도나 상대할만한 전력이었다. 더군다나 그의 뒤에는 어마어마한 전력을 보유한 태평양함대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하하하, 이거 참, 저는 서로 간 불필요한 문제가 없기를 바라는 마음에 한 말을 너무 곱씹어 들으셨군요.”
- 제독님! 곱씹다니요? 말이 심하십니다.
“아 미안합니다. 훈련 중에 시간을 많이 뺏은 듯합니다. 그럼 이만 들어가겠습니다. 그럼 수고하시기 바랍니다.”
실컷 약 올린 김이원 제독은 간단히 인사를 하고는 랜던 도노반 함장이 안보이는 쪽으로 편 손을 좌우로 흔들었다. 이에 눈치채 통신사관은 바로 통신담당 오퍼레이터에게 통신을 끊으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렇듯 타이밍이 절묘하게 김이원 제독이 일방적인 인사를 건넨 후 화상통신은 끊어졌다.
“하하하하!”
통신이 끊어지자마자 김이원 제독이 크게 웃었다. 이에 아무 말 없이 지켜보고 있던 홍승태 수석작전관도 입을 가리며 따라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제독님도 참,”
“재밌었나?”
김이원 제독은 뭔지 모르게 나름 만족한다는 표정을 짓고는 푹신한 의자에 몸을 기대어 앉았다.
“제독님! 정말 어린 아이 같으십니다. 말싸움하시려고 통신하신 겁니까?”
“이 친구 뭘 모르는군. 자네는 싸움할 때 주먹부터 나가나? 싸움은 말이야 일단 이빨로 상대를 제압하고 시작하는 거야.”
“네? 그런 거였습니까? 하하하. 저놈들 제독님 때문에 부들부들하겠는데요?”
“내가 원하게 바로 그거라네.”
김이원 제독은 순간 무서운 표정을 지었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요?”
“자네 3년 전, 일본놈들과의 해상전에서 길 제독님 당하신 거 알지?”
김이원 제독이 말하는 길 제독은 3년 전, 제1함대 사령관인 길운석 소장으로 일본 해상자위군과의 벌어졌던 해상전에서 미국이 비밀리에 제공한 줌왈트급 구축함의 레일건 공격에 피격되면서 전사한 분이었다.
“네, 당연히 알고 있습니다. 해군에 복무하는 군인으로서 그 일을 누가 모르겠습니까?”
“그래! 잊으면 안 되지. 그래서 말이야. 이번 기회에 일본놈들에게 줌왈트급 구축함을 제공하여 길 제독님께서 돌아가신 것에 대한 응당 죗값을 받아낼 거란 말일세 그러려면, 앞뒤 안 가리고 열 받아서 치고 들어오는 놈들을 상대하기가 좋지 않겠나?”
“허! 그런 의도이셨습니까?”
“뭐 의도라기보다는 저놈들 죽이기 전에 약 좀 올려주는 생각도 있었고. 죽인 후에 약 올릴 수는 없잖나?”
방금까지 무서운 표정을 지었던 김이원 제독은 어느새 평소의 인자한 표정으로 돌아와 다시금 장난기 어린 말들을 늘어놨다.
“네? 아! 제가 제독님을 1년 가까이 모셨지만, 정말 모르겠습니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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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월 23일 04:55 (현지시각 05:50),
남주 수원시 권선구 수원공군기지(제36전략폭격비행단).
2022년 5월 대대적인 확장 공사를 통해 부지면적이 2배 이상으로 넓어진 이곳 수원공군기지는 기존 제15특수임무비행단 말고도 2023년 새롭게 창설된 제36전략폭격비행단을 운용하고 있었다.
그동안 전투비행단 내에 꼽사리 형식으로 폭격비행대대를 운영했지만, 폭격 임무에 있어서 통합적이고 체계적인 관리 운용의 필요성이 재기대면서 제36전략폭격비행단을 창설하게 되었다.
비행단 내 예하부대는 총 3개의 비행대대로 편제되었다. 첫 번째 예하부대는 제330전략폭격비행대대로 20기의 CBS/A-30P 청룡 전략폭격기를 운용. 두 번째 예하부대는 제331전술폭격비행대대, 세 번째 예하부대는 332전술폭격비행대대로 각각 24기의 CB-91P 참매 폭격기를 운용했다.
제36전략폭격비행단의 모든 폭격기를 동원할 시 웬만한 국가 하나는 지도상에서 흔적도 없이 지워버릴 수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폭격 임무에 있어서 최강의 파워를 가진 비행단이라 봐야 했다.
이러 전략급 무기가 즐비한 이곳 제36전략폭격비행단 활주로에는 수십대의 CB-91P 참매 폭격기가 이륙 준비를 마치고 이륙 명령이 떨어지길 기다리고 있었다.
폭격기 치고 아담한 사이즈의 CB-91P 참매 폭격기의 무장량은 상당했다. 웬만한 서방국가의 전략폭격기의 무장량과 비슷한 순수 무장량이 50t에 달했다. 미국 전략급 폭격기 중 가장 유명한 B-1B 랜서의 내부무장량은 34t이며 외부 무장량까지 합쳤을 때 56.7t이니 그보다 크기도 작으면서 순수 내부무장량이 50t인 참매 포격기의 무장량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현재 기다란 활주로 끝부터 대기하고 있는 CB-91P 참매 폭격기의 내부무장실에는 전국의 모든 공군 탄약고에 저장되어 있던 재래식 폭탄을 전부 가져와 무장했다.
그동안 먼지만 쌓이고 자리만 차지하고 있던 구형 재래식 폭탄을 이번 기회에 깡그리 사용해 재고정리라도 하고자 하는 듯했다.
어쨌든 내무부장실에 50t에 가까운 최대치의 재래식 폭탄을 꽉꽉 채운 40여 대의 CB-91P 참매 폭격기들은 서서히 엔진 열을 올리며 전방의 출격 명령 앰프가 켜지기만을 기다렸다.
CB-91P 참매 폭격기에 주어진 폭격 임무의 타격 대상지는 일본이었다. 혼슈의 도쿄도를 제외한 북부와 남부, 그리고 시코쿠의 모든 산업시설과 기간시설이었다. 현재 일보 영토임에도 폭격 임무의 타격 대상지에서 빠진 곳은 유일하게 홋카이도였다.
피해 없는 일본 영토 하나쯤은 남겨놔야 향후 전 영토가 황폐해진 일본으로부터 더는 항복협정에 따른 전쟁피해보상금을 받을 수 없다는 점을 이용해 홋카이도에 대한 영토 이양을 요구할 의도였다.
★ ★ ★
2024년 1월 23일 05:00,
일본 도쿄도 도쿄시 시내.
정확히 현지시각으로 오전 5시가 되자 도쿄도 전체에서 총성이 울리기 시작했다. 영문을 모르는 시민들은 일제히 울려대는 총성에 신고가 빗발쳤고 이에 경찰 당국에서는 이미 알고 있는 듯 절대로 집 밖으로 나오지 말라는 경고만 할 뿐이었다.
그리고 일본 모든 TV 방송국과 라디오 방송에서는 긴급속보라는 자막과 함께 내각실의 한 장소가 보였고 이내 대국민 담화라는 자막이 보이면서 우치다 총리가 단상 위로 올라왔다.
단상 위로 올라와 가져온 담화문서를 펴든 우치다 총리는 길게 호흡을 한번 하고는 자신을 비취고 있는 방송 카메라를 직시했다.
우치다 총리의 얼굴은 굳어 있었지만 흔들리는 두 눈빛으로 인해 잔뜩 긴장하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존경하는 시민 여러분, 금일 저는 우리 일본의 미래를 위해 중대한 발표를 하고자 이 자리에 섰습니다.”
이렇듯 모든 TV 채널에서 일제히 우치다 총리의 대국민 담화 발표가 이어지는 가운데 도쿄도 곳곳에서 울리는 총성은 더욱 커지는 것은 물론 더욱 퍼져나갔다.
지지멸렬
2024년 1월 23일 04:50 (현지시각 05:50),
일본 지바현 가쓰우라시 동단 298km 해상.
10분 전, 김이원 제독과 화상통신을 마친 후 속으로 부글부글한 랜던 도노반 함장은 즉시 태평양함대 지휘함에 이와 같은 사실을 보고했다. 또한, 금일 현재 청군 역할을 맡은 8척의 줌왈트급 구축함에 대한 지휘관을 요청했다.
이유인즉슨, 본격적인 해상전이 시작되면 청군 구축함만으로 대한민국 제2함대를 격퇴해 지금의 울분을 씻고자 했다.
이에 태평양함대 지휘부에서는 제2함대의 전력을 이미 분석하였기에 충분히 청군 구축함만으로 제압할 수 있다고 판단했는지 랜더 도노반 함장의 요청을 승인했다.
이로써 8척의 줌왈트급 구축함의 지휘권을 부여받은 랜더 도노반 함장은 부함장에게 함교를 맡기고 전투지휘실로 내려갔다.
그 시각, 우치다 총리가 대국민 담화 발표형식으로 ‘자주국가선포’를 선언하고 동맹국인 미국 정부에 공식적인 요청 서안을 발송.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즉시 요청 서안에 서명함과 동시에 의회에 제출, 이미 의회에서 대기하고 있는 하원과 상원에서 일사천리로 통과되었다.
완전히 짜고 치는 고스톱판이었다.
이렇듯 일본으로부터 공식적인 요청 서안을 받음으로써 국제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는 군사적 개입의 명분을 얻게 된 트럼프 대통령은 즉시 펜타곤에 명령을 내렸고 이에 펜타곤은 태평양 사령부에 명령을 하달, 다시금 태평양 통합군사령부는 즉시 태평양함대에 일본에 대한 상륙작전 명령을 내렸다.
트럼프 대통령의 명령이 태평양함대에 내려지기까지 단 3분이었다. 사전에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면 절대로 나올 수 없는 시간이었다.
루빈 스콧 제독으로부터 직접 공격 명령을 하달받은 랜던 도노반 함장은 즉시 8척의 줌왈트급 구축함 함장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이에 종대 대형으로 북서단 방향으로 항해하던 줌왈트급 구축함 8척은 서서히 서로 간 거리를 벌리며 다이아몬드 대형을 갖추기 시작했다.
그리고 10여 분 후 줌왈트급 구축함 8척이 완전한 대형을 갖추자 전술통제관에게 직접 명령을 내렸다.
“현재 상황 보고!”
“현재 상황 보고합니다. 적 함대! 방위각 2-9-5, 거리 210K! 현 위치 고수 중! 모든 대함미사일과 레일건 사정거리 안입니다.”
전술통제관으로부터 간단한 브리핑을 받은 랜던 도노반 함장은 자신의 손목시계를 한번 쓱 하니 보고는 잠시간 고민에 빠졌다.
현재 거리에서 대대적인 공격을 감행할 것인지 아니면 좀 더 거리를 좁힌 후 공격을 가할 것인지였다.
이지스 구축함이 1척밖에 없는 대한민국의 제2함대 정도는 비싼 초음속 대함미사일을 사용할 가치도 없다고 판단한 랜던 도노반 함장은 될 수 있으면 가성비가 탁월한 레일건만으로 섬멸하고자 했다.
이에 좀 더 거리를 좁힌 후 일시적으로 기습공격을 감행하기로 생각을 굳히고는 즉시 함장들에게 최대항속으로 항해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줌왈트급 구축함 8척은 최대로 낼 수 있는 속도인 30노트까지 끌어올렸다. 오늘따라 날씨도 도와주는지 파고는 그리 높지 않았고 바람도 불지 않았다.
단지 어두운 새벽을 수평선으로 넘어가는 달과 샛별만이 반짝였고 바다 위로는 하얀 거품을 일으키며 좌우로 갈라지는 8개의 항적만이 물결과 섞이며 사라져갔다.
“모든 함대 자기장 출력 최대치로”
7번 함부터 건조된 줌왈트급 구축함에는 최첨단 레이더 교란 장치인 자기장 펄스 시스템이 가동되었다.
줌왈트급 구축함 전체에 강력한 자기장 펄스가 형성되어 적의 레이더 탐지를 방해하는 시스템으로 이런 경우 사격통제 레이더에 잡히지 않아 직접 보고 쏘는 무기가 아닌 이상 레이더를 이용한 무기에 대해선 사전에 강력한 방어를 할 수 있었다.
생김새부터 예사롭지 않은 줌왈트급 구축함들은 이렇듯 강력한 자기장 펄스 막을 두르고 빠르게 항해하면서 강력한 무기 중 하나인 레일건의 가동도 준비했다.
전방 함수 갑판에서 페어링이 좌우로 갈라지며 개방되더니 이내 안에서 커다란 포탑이 천천히 올라왔다. 그리고는 포탑 정면부가 좌우로 열리면서 그리 길지 않은 특이한 생김새의 레일건 포신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치 SF영화에서나 나올법한 장면이 연출됐다.
더불어 줌왈트급 구축함에서도 플라이트 II 설계로 건조된 레이번함(DDG-1012)과 폴 해밀턴함(DDG-1014)은 다른 구축함과 다르게 함수 갑판에 2문의 레일건이 탑재되어 있었다.
또한, 기존 레일건의 출력이 128MJ이었다면 플라이트 II부터는 256MJ급으로 출력 파워가 2배로 늘어나 사거리는 물론 금속탄은 최대속도는 마하 10으로 늘어났다. 같은 줌왈트급이었지만 3년 전 초기형 줌왈트급과는 비교 불가의 새로운 구축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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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월 23일 05:10,
일본 자바현 가쓰우라시 동단 120km 해상.
미 해군 소속의 줌왈트급 구축함 8척이 대열을 바꾸며 쾌속 항해하는 가운데 이러한 움직임을 부처님 손바닥 보든 김이원 제독은 팔짱을 낀 채로 의자에 앉아 느긋이 전술 스크린을 보고 있었다.
“제독님 전 함대에 전투준비 명령을 내리시겠습니까?”
미 해군 구축함들이 전투대형을 갖춘 상황에서도 김이원 제독이 아무런 명령을 내리지 않자 홍승태 수석작전관은 불안한 마음에 몇 번이나 반복적으로 물은 이유였다.
“수작관! 조급할 거 없네! 저놈들은 내가 생각하기에 바로 공격하지 않을 거야”
무슨 자신감인지 모르겠지만 김이원 제독은 쾌속 항해하는 미 해군 구축함의 의도를 단번에 간파한 듯했다.
“제독님! 지금 전단장들로부터 확인 요청이 쇄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 역시 미리 준비는 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이 듭니다만”
“하하하, 알았네. 알았어! 전 함대에 전투준비 발령 내리고 현재 TCS모드 상태인 함정은 따로 명령을 내릴 때까지 현재 상황 유지하라고 전하게”
“네, 알겠습니다.”
수석작전관의 요청에 마지 못해 전투준비 명령을 내린 김이원 제독은 뭐가 신나는지 콧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이에 전투지휘실의 참모들과 오퍼레이터들은 다들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짓고 말았다.
훈련상황도 아니고 생사를 걸고 세계 최강 미 해군과의 교전을 앞둔 상황에서 저런 여유로움을 보이니 이러한 반응이 나오는 게 정상이었다.
잠시 후 수석작전으로부터 전투준비 명령이 연합함대에 전파되었지만, 사실 연합함대의 모든 함정은 이미 반 전투준비 태세로 전환한 상태임에도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당연히 태종대왕함(DDG-996)에서도 함장이 미리 반 전투태세 명령을 내려 놓은 상태라 몇몇 승조원만이 이동할 뿐 대부분 승조원은 자기 위치에서 전투준비를 마치고 대기 중이었다. 이런 사실을 뻔히 알고 있었기에 김이원 제독은 전투준비와 관련하여 느긋이 행동을 보인 이유였다.
“수작관!”
“네, 제독님!”
“자네는 저놈들이 언제쯤 공격 올 것으로 보이나?”
“음, 원래 공격 시간을 초과한 것으로 봐서는 곧 시작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아니 난 적어도 20분 이상은 간다고 보네”
“설마요. 지금도 예상 공격시간보다 10여 분이 지났습니다.”
“보면 알 거야.”
뭔 자신감인지 김이원 제독은 살짝 잉크를 하고는 두 눈을 감았다. 이에 홍승태 준장은 고개를 갸우뚱거리고는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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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월 23일 05:30,
일본 자바현 가쓰우라시 동단 380km 해상.
대한민국 해군 제2함대와 거리 200km까지 좁혀진 상황, 예상했던 공격시간보다 훌쩍 지나 30분이 돼가고 있었다.
“함장님! 이쯤 해서 공격명령을 내리시는 게. 방금 함대 지휘부에서 트럼프 대통령께서도 일본의 요청한 ‘자주국가선포’와 관련하여 요청사항을 받아드리겠다는 성명 발표를 마쳤으니 공격을 가하라는 명령입니다.”
“제길! 조금만 더 기다려주면 어디 덧나나?”
시간을 확인 한 랜던 도노반 함장은 생각 같아서는 20분 정도만 더 빠르게 항해하여 제2함대와 거리를 좁혔으면 하는 바람이었지만, 지휘부의 명령은 따라야만 했다. 자치 늦장 대응했다가 지휘권을 회수당하면 말짱 도루묵이었다.
“작전사관! 모든 함정에 명령 하달하게. 1차 공격은 레일건으로만, 표적 대상은 본 함에서 지정하며 데이터링크 연동 완료 후 각 함으로부터 준비 완료 보고 받겠다. 이후 정확한 공격시간 제 하달!”
차기 제1항모전단의 구축함전대의 전대장으로 승진 예정인 랜더 도노반 함장은 간단명료하면서도 깔끔한 명령을 내렸다.
“네, 명령 하달하겠습니다.”
작전사관은 곧바로 모든 함정에 랜더 도노반 함장의 명령을 하달했다. 그러는 사이 랜더 도노반 함장은 함장용 수화기를 들고 직접 전투정보실을 호출했다.
“전투정보실”
- 네, 전투정보실 전술통제관입니다.
“적 함 표적 설정 및 각 함에 표적 분배!”
- 네, 알겠습니다.
잠시 후 전술통제관으로부터 보고가 올라왔다.
- 현재 모든 함정에 표적 분배 완료 및 각 함으로부터 데이터링크 완료 보고 받았습니다.
“알았다.”
짧게 대답한 랜더 도노반 함장은 함교 벽면에 걸려있는 시계를 보고는 재차 명령을 내렸다.
“현재 시각 05시 38분 앞으로 정확히 2분 후인 05시 40분에 일제 공격!”
“네, 명령 하달합니다.”
명령이 하달되자 8척의 모든 줌왈트급 구축함들은 각자 주어진 목표물을 향해 강력한 512J급 레일건의 포신을 돌렸다.
그리고 2분 후, 그리 크지 않은 포격음이 울림과 동시에 금속탄이 발사됐다.
순간 비행속도가 마하 10인 금속탄은 200여 킬로미터 나 떨어진 목표물을 타격하기까지 고작 79초밖에 걸리지 않은 엄청난 속도로 날아가는 특수복합 금속탄이었다.
크기도 대함미사일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작아 웬만한 요격체제를 갖추지 못했다면 사실상 요격은 불가능할 것으로 판단했고 이에 랜더 도노반 함장은 이번 한 번의 공격으로 제2함대 함정들을 완전히 괴멸시키고자 했다.
“해당 표적 타격까지 앞으로 44초!”
전투정보실로부터 실시간으로 보고가 올라왔다.
보통 대대적인 교전이라면 함장이 직접 전투정보실에 내려가 직접 교전 상황을 지켜봤을 테지만, 현재 교전 상황은 일방적인 학살공격으로 생각하여 내려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대신 전투정보실로부터 데이터링크 되어 적 함정으로 날아가는 금속탄을 표기하는 전술기호만 뚫어지게 바라봤다.
고도 한계점을 넘어 서서히 하향 곡선으로 그어지는 금속탄을 나타내는 전술기호인 푸른 점들이 하나둘 스크린에서 사라졌다.
“뭐! 뭔가?”
갑작스러운 상황에 랜더 도노반 함장은 수화기를 들어 전투정보실에 따지듯 물었다.
- 요, 요격된 듯합니다.
“전술통제관! 대체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요격이라니?”
신경질적으로 반응을 보이며 전술통제관과 대화를 주고받는 사이 수십 개에 달하던 푸른 점들이 순식간에 스크린 화면에서 감쪽같이 사라지고 말았다.
“정말! 요격이란 말인가? 제! 제길! 당장 2차 공격 들어간다. 각 함정은 주어진 해당 표적을 향해 피격시킬 때까지 연속 사격한다.”
대답한 마음에 직접 통신 콘솔로 다가간 랜더 도노반 함장은 통신오퍼레이터의 헤드폰을 뺏든 낚아 치고는 소리쳤다.
그 순간, 전투정보실로부터 믿을 수 없는 보고가 올라왔다.
12척으로 알고 있던 제2함대의 해상 곳곳에 20여 척의 새로운 함정들이 출현했다는 보고였다.
사실 이러한 전탐 정보는 대기권 밖에서 정찰하던 아틀라스 정찰위성으로 날아온 정보였다. 현재 일본 동해 상공에는 4기의 아틀라스 정찰위성이 전담하듯 반경 500km 해상을 이 잡듯이 정찰하고 있었다. 만약 아틀라스 정찰위성이 없었다면 TCS(투명은폐시스템) 오프 한 나머지 수상함들의 정체를 바로 알지 못했을 것이다.
지지멸렬
랜더 도노반 함장은 놀란 상황에서 추가 보고 내용에 그만 경악을 금치 못했다.
3년 전, 단 1척으로 줌왈트급 구축함 4척을 바다에 수장시켰던 대한민국 최강의 순양함인 충무공이순신급 순양함으로 보이는 순양함이 추가로 출현한 함정 내 그것도 2척이 피아식별 DB와 비교 분석한 결과 확인되었다는 보고였다.
당시 패전 사유를 운용이 서투른 일본 해군 때문이라는 자위적인 분석을 내놨지만, 그렇다고 해도 건조비가 4조 원이 넘는 미 해군의 최강 구축함 4척이 고작 1척을 상대로 패했다는 건 미 해군 역사상 길이 남고 춘추의 한이 될 기억이었다.
랜더 도노반 함장은 해머에 맞은 듯 뇌 정지 상태가 되어버린 상황에서 스크린 화면의 푸른 점으로 나타내는 전술기호들은 계속해서 사라지고 있었다.
“태평양함대 지휘부로부터 명령입니다. 즉시 교전 지역 이탈하여 퇴각하라는 명령입니다.”
작전사관이 다급히 외쳤다. 하지만 래너 도노반 함장의 귀에 와닿지 않았다.
사거리가 수백km나 달하는 각종 초음속 대함미사일을 보유한 대한민국 해군 함정으로부터 고작 30노트밖에 낼 수 없는 구축함들이 교전 구역을 빠져나갈 확률은 극히 낮았다. 어떻겠든 태평양함대로부터 지원이 올 때까지 정면승부를 벌여 시간을 벌어야만 했다.
‘지금쯤이면 3개 항공모함에서도 전투기들이 이함에 들어갔을 것이고 사거리가 가장 긴 대함미사일 공격 준비도 할 것이다. 적어도 10분만 버티면 된다.’
놀란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생각을 마친 랜더 도노반 함장은 들고 있던 헤드폰에 대고 외쳤다.
“지금부터 각 함장의 판단하에 지휘한다. 타격 목표물은 표적 설정을 서로 간 중복공격이 없도록 데이터링크 유지하며 공격하도록 한다.”
생각지 못한 악재가 계속 발생한 상황에서도 랜더 도노반 함장은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며 현재 상황에서 가장 현명한 판단을 했다.
-적, 적 함대로부터 포, 포탄으로 예상되는 비행물체 탐지! 총 44발, 아니 숫자 계속 늘어납니다. 56발, 67발로 확정! 본 함을 향해 날아오는 비행물체는 총 21발! 자동 요격체제 들어가겠습니다.
전술통제관은 보고하다 말고 자체 판단하에 자동 요격체제로 전환했다. 그만큼 상황이 매우 다급하단 얘기였다.
“부함장!”
“네, 함장님!”
“함교는 자네가 맡게. 난 전통실로 이동하겠네”
“알겠습니다.”
현재 줌왈트급 구축함 8척을 향해 날아오는 정체는 100mm 스퀴테 C-2 함포에서 발사한 고밀도 플라즈마 응집탄으로 256MJ급 레일건에서 발사한 금속탄의 속도에 못지않은 엄청난 속도로 날아왔다. 거의 마하 10에 근접하는 무시무시한 속도였다.
신형급이라 할 수 있는 8척의 줌왈트급 구축함에는 CIWS(근접방어체계)를 책임지고 있는 8MJ급 레일건이 초기형 구축함과는 다르게 함교 상부와 함미에 각각 1정씩 탑재되어 요격 확률이 높아졌지만, 문제는 숫자였다. 아무리 강력한 대공 방어력을 갖춰다 하더라도 짧은 시간 내에 22기에 달하는 그것도 지름이 100mm에 길이가 1,500mm밖에 안 되는 고밀도 플라즈마 응집탄을 100% 요격한다는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만약 가까운 거리에 태평양함대의 나머지 구축함들이 있었더라면 요격지원을 받아 그나마 100%에 가까운 요격률 희망을 품었겠지만, 현재 태평양함대와의 거리는 대략 88km로 제2함대와 거리를 좁히기 위해 20여 분간 쾌속 항진한 이유로 거리가 더 벌어진 상황이었다.
즉, 랜더 도노반 함장의 무모한 욕심 때문에 줌왈트급 구축함 8척이 살아남을 유일한 방법마저 사라지고 말았다.
좁은 복도와 계단을 뛰어가 함 내부 중앙에 있는 전투정보실 도착한 랜더 도노반 함장은 분주하게 지시를 내리고 있는 전술통제관 쪽으로 다가갔다.
하지만, 현재 다급한 상황 때문인지 전술통제관은 경례는커녕 눈길 하나 주지 않으며 자신의 임무에 최선을 다했다. 도노반 함장 역시 현재 상황이 어떤지 알고 있는지라 혹 방해될까 봐 옆으로 다가가 일단 지켜보기만 했다.
지금 상황에서는 전술통제관의 지휘 아래 본 함으로 날아오는 적 포탄을 요격하는 것이 최우선이었다.
“11번, 12번, 표적 요격 성공! 13번 요격 실패! 14번 요격 실패! 15번 요격 성공!”
사격통제관이 통합정보 디스플레이를 보며 요격 상황을 실시간으로 보고했다.
파파파파파파파팡! 파파파파파파팡! 파파파팡! 파파파파파파앙!
풀 해밀턴함(DDG-1014)의 8MJ급 레일건 2정은 과열될 정도로 요격용 금속탄을 어두운 하늘을 향해 사정없이 뿌려댔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지나고 지평선 넘어 어두운 상공에는 빠른 속도에 따른 공기마찰 때문인지 검붉은 점들이 하나둘 나타나더니 이내 풀 해밀턴함(DDG-1014)으로 마치 중력에 이끌려오듯 빨려 들어오고 있었다.
콰앙!
몇 분 사이에 표적이 되어버린 풀 해밀턴함(DDG-1014)으로부터 몇 킬로미터를 남기고 첫 번째 검붉은 광점이 공중에서 폭발했다. 함교 위에 탑재된 8MJ급 레일건에서 뿌려 된 요격용 금속탄에 맞고 요격된 듯했다.
하지만 또 다른 여러 개의 검붉은 광점이 하나둘 나타났고 금세 폴 해밀턴함(DDG-1014)을 덮쳤다.
충무공이순신급 호큘라 순양함인 박열함(CG-1102)과 손병희함(CG-1103)에서는 2연장 스퀴테 K-2 함포에서는 쉬지 않고 고밀도 플라즈마 증포탄을 토해내고 있었다. 조금 전, 레일건 금속탄 공격에 대한 복수였다.
해밀턴함(DDG-XXX)의 전술통제관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분전했지만, 역시나 짧은 시간 안에 22기에 달하는 조그마한 포탄을 100% 요격한다는 건 불가능했다.
콰앙!
우측면에서 비스듬히 날아온 고밀도 플라즈마 증폭탄 1발이 삼각형 축대처럼 생긴 폴 해밀턴함(DDG-1014) 함교 부위를 강타하자 묵직한 충격이 함 전체로 전해졌다.
가속력만으로 날아와 부딪친 충격은 실로 대단했다. 공간 장갑으로 이뤄진 함교 부위는 종잇장 찢어지듯 걸레가 되었고 거대한 불길이 사방으로 분출했다. 하지만 불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시한신관이 작동하자 내부 깊숙이 박혔던 고밀도 플라즈마 증폭탄이 진정한 위력을 발휘했다.
내부에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나며 쇳덩어리도 순식간에 녹일 만큼 엄청난 열기가 함 내부 곳곳을 휘저었다. 전투정보실에서 악전고투하며 요격을 위해 최선을 다했던 전술통제관은 물론 이렇다 할 활약도 하지 못하고 동료 함장과 부하들을 지옥의 불구덩이로 끌어드린 랜더 도노반 함장은 순식간에 쏟아진 엄청난 열기에 그대로 산화하고 말았다. 참으로 어이없는 죽음이었다.
이렇듯 엄청난 열기가 함 내부를 휘젓고 다니는 가운데 두 번째 고밀도 플라즈마 증폭탄이 화망을 뚫고 함미 부위를 강타했다.
이번에는 부딪침과 동시에 시한신관이 작동되었는지 충격에 따른 폭발과 폭탄이 터지는 폭발이 동시에 일어나면서 함미 전체가 두 동강 나듯 갈기갈기 뜯어져 날아갔다.
이에 풀 해밀턴함(DDG-1014)의 함미 쪽부터 급격하게 기울어지더니 이내 바닷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운 좋게 살아남은 승조원들이 외부와 연결된 출입문을 열고 생각할 거 없이 그대로 바다로 뛰어들었다. 하지만 일반 함정과 다르게 함 전체 외벽이 일체형으로 되어 있는 줌왈트급 구축함의 설계 특성상 출입문을 얼마 없는 출입문을 열고 바다로 뛰어든 승조원은 그리 많지 않았다.
짧은 시간 풀 해밀턴함(DDG-1014)이 함수 부위만 남긴 채 바닷속으로 완전히 침몰해가는 사이 다른 구축함들 역시 상황은 별다르지 않았다.
다이아몬드 대형에서 우측 모서리를 담당하던 더글러스 맥아더함(DDG-1006)은 무려 4발의 고밀도 플라즈마 증폭탄에 직격을 당하고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파괴되어 이미 흔적도 없이 바닷속으로 수장된 상황이었고 선두에서 전방 방어를 책임졌던 플레이트 II급 레이번함(DDG-1012) 역시 바다 위에 여러 부수물만 남긴 채 사라진 상태였다.
이외에도 배리함(DDG-1007)과 스타우트함(DDG-1009), 그리고 중앙에 있던 피츠제럴드함(DDG-1016)도 흉측한 몰골만 남긴 채 거대한 불길을 내뿜으며 자주 항해력을 잃고 유수에 떠밀려 가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오직 후방에 있던 커티스 윌버함(DDG-1008)과 미처함(DDG-1011)만이 날아온 플라즈마 증폭탄을 가까스로 100% 요격하는 데 성공했다. 동료 함들이 하나둘 피격되어 거대한 불길에 휩싸이거나 바닷속으로 침몰하는 상황임에도 요격 성공 보고가 울리자 다들 자신들은 살았다고 안도한 기쁨을 표출했지만, 그 기쁨도 잠시 또다시 40여 발의 스퀴드 함포에서 발사한 포탄들이 죽음의 아가리를 벌리고는 달려들었다.
10분도 안 되어 벌어진 학살극이었다. 태평양함대 소속의 제럴드 R. 포드함(CVN-78)과 칼빈슨함((CVN-80)에서 긴급 이함 한 F-35C 라이트닝II 전투기가 이곳 상공에 도착했을 때는 줌왈트급 구축함 8척은 이미 차디찬 바닷속으로 침몰하여 여러 부수물만 남길 뿐이었다.
이러한 상황을 전달받은 태평양함대는 아연실색하며 큰 충격을 받았고 출격한 64기 중 양쪽 하단 내부무장실에 초음속 공대함 미사일인 AGM-158S SRASM을 무장한 32기의 F-35C 라이트닝II는 강력한 레이더 방해전파를 방출하며 급격히 고도를 떨어뜨렸다. 그리고 일정 고도까지 다다르자 내부무장실의 페어링을 오픈, 아틀란스 정찰위성으로부터 전달받은 표적정보를 참고해 하나둘 AGM-158S SRASM 미사일을 발사했다.
* SRASM : Short-Range Anti-Ship Missile
초음속이면서도 F-35C형의 작은 내부무장실에 맞게 기존 AGM-158D LRASM를 토대로 새롭게 맞춤 개발된 AGM-158S SRASM은 록히드마틴사와 NASA가 공동으로 최근에 개발에 성공하여 실전 배치한 지 몇 개월도 안된 매우 따끈따끈한 신상품과 같은 F-35B와 C 전용 초음속 공대함미사일이었다.
슈우우우우우와~ 슈우우우우우와~ 슈우우우우우와~
내부무장실을 탈출한 AGM-158S SRASM은 일제히 붉은 불꽃을 터뜨리고는 이내 하얀 연기 꼬리를 늘어뜨리며 조종사 시야에서 사라졌다.
작은 내부무장실로 인해 소형화로 개발된 AGM-158S SRASM은 비행속도가 마하 5에 근접했지만, 사거리가 250km로 생각보다 매우 짧은 편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개발 초기 공군 관계자의 반대로 사업 자체가 무산될 뻔했지만, 스텔스 전투기라는 이점을 살려 적함 레이더를 피하고 미사일 사거리까지 접근한다면 충분히 메리트 있는 무기라는 이유를 가지고 록히드마틴사와 NASA가 끈질기게 설득하여 실전 배치까지 오게 된 무기였다.
그리고 한 가지 더 공군 관계자들이 설득당한 극비 보안의 이유가 한 가지 더 있었다. 앞서 말했듯이 내부무장실의 크기로 인해 초음속 미사일 치고 AGM-158S SRASM은 길이가 매우 짧아졌지만 대신 몸통 4곳에 보조추진엔진을 장착해 사거리가 짧아지는 대신 최대속도를 마하 8까지 끌어올릴 수도 있었다.
또는 요격 미사일로부터 급추진 방식으로 회피할 수 있는 두 가지 모드를 사용할 수가 있었다. 결과적으로 전장 환경에 따라 두 가지 모드를 선택해 사용할 수 있는 매우 큰 장점이었다.
현재 F-35C 라이트닝II 전투기들이 AGM-158S SRASM을 발사한 곳으로부터 제2함대까지 거리는 대략 250km로 최대사거리였다. 즉 2가지 모드 중 속도를 증속시키는 모드는 사용할 수 없는 거리였다.
이에 마하 5에 근접하는 속도로 64기의 AGM-158S SRASM이 바다 위를 스치듯 빠르게 날아갔다. 바람 한 점 없어 잔잔했던 파도는 일순간 출렁이며 하늘로 솟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