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촉즉발
2024년 1월 22일 20:00,
남주 서울특별시 용산구 B2 벙커(합동참모본부 정보본부 디지털정보센터).
군복을 입은 군인들과 연구용 가운을 입은 연구원들은 누군가 컴퓨터를 조작하고 있는 남자 뒤에 모여 진지한 눈빛을 발산하며 진행 상황을 지켜봤고 가끔 뭔가에 대해 키보드를 두드리는 남자에게 주저 없이 조언하고 있었다.
이렇듯 여러 명의 군인과 연구원들에게 둘러싼 채로 열심히 키보드를 두드리는 남자는 남궁원이었다.
그이 두 눈은 뻘겋게 충혈되어 있었고 눈 밑으로 진한 눈그늘이 턱까지 내려와 있는 것이 한마디로 초췌하고 피곤함에 찌든 얼굴이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남궁원은 어젯밤부터 잠 한숨도 못 자고 24시간째 컴퓨터와 씨름을 하고 있었다. 식사 역시 시간을 뺏길까 봐 빵과 우유로 대충 때웠다.
하지만, 남궁원은 즐거웠다. 자신이 가장 잘하고 매일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 몸은 피곤했지만, 정신적으로 행복했기 때문이었다. 만약 옆에서 아내인 이혜진이 옆에 있었다면 당장 뜯어말렸겠지만, 이곳에 없다는 것이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속으로 신나있었다.
다다다닥! 다다다다닥! 다닥! 다다다다다다닥!
기계식 키보드의 자판이 눌릴 때마다 감질 맛나게 들려오는 것이 남궁원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어느새 디지털센터의 벽면 시계가 정확히 22시 10분을 가리킬 때 남궁원은 양손을 벌리며 환호성을 질렀다.
“예스! 완성!”
“오! 정말입니까? 대단하십니다. 이걸 하루 만에 만들다니······.”
"와 소문대로네요.”
“천재다! 천재!”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군인들과 연구원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던졌다. 이들 역시 컴퓨터 계통에서 한 가닥 하는 사람들이었지만, 남궁원의 실력을 직접 눈으로 보고는 감탄사가 저절로 나왔다.
의자에서 일어나 만세를 부르듯 양팔을 벌린 남궁원은 순간 머리가 핑 돌듯 현기증이 느껴짐과 동시에 피곤함이 육신을 덮치자 의자에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에고! 현기증 난다.”
자신의 이마를 매만진 남궁원은 그제야 환자였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괜찮으십니까?”
“야! 커피 가져와! 아니다. 물물!”
“아! 괜찮습니다. 순간 일어났더니 현기증이 나서 말입니다. 하하”
자신 때문에 여러 명이 오두방정을 떨 듯 분주해지자 남궁원은 애써 괜찮다는 표정을 지으며 만류했다.
“것도다. 김태석 대령님!”
“네, 남궁원 과장님!”
“아! 저 과장 아닙니다. 이제 국정원 소속도 아니고요. 그냥 남궁원 씨라 불러주세요.”
“그래도 씨라고 부르는 것보다는 그렇게 부르는 게······.”
“그러게요. 호칭이 뭐가 중요할까요. 이게 중요하지. 하하. 어쨌든 어쨌든 프로그램은 완성을 시켰는데요. 테스트는 여러분들이 해줬으면 합니다. 괜찮겠죠? 김태석 대령님!”
자신의 뒷머리를 긁적거린 남궁원은 다른 손으로 컴퓨터 모니터 화면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 그럼요. 정말 수고했습니다. 푹 쉬고 오세요. 그때까지 테스트는 우리 대원들이 깔끔히 진행해 놓겠습니다.”
“네, 그럼 저 4시간만 자다 오겠습니다. 아! 맞다. 이 프로그램을 담을 장비는 파르테논 연구소에서 언제쯤 오나요?”
“벌써 도착해서 대기 중입니다.”
김태석 대령은 한쪽 편 탁자 위에 올려진 커다란 은빛 케이스를 가리켰다.
“아! 그렇군요. 하하!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이만!”
“네, 그래요. 어서 가서 쉬세요. 휴게실은 우리 대원이 안내하겠습니다.”
이젠 말할 힘도 없는지 남궁원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고는 이내 안내하는 대원을 따라 디지털정보센터실을 빠져나갔다.
이렇듯 남궁원이 날밤을 새우며 하루 동안 만들어진 해킹프로그램은 김태석 대령이 가리킨 은빛 케이스 안에 보관된 X-119P라는 이름을 가진 기다란 장비에 삽입된 후 곧바로 CFS/A-31SP 삼족오 우주전투기에 실려 대기권 밖으로 날아가 그곳에서 현재 목표물로 선정된 NASA 소속의 허블우주망원경 2호 위성에 X-119P를 발사할 계획을 하고 있었다.
만약 계획대로 허블우주망원경 2호 위성에 X-119P가 정확히 장착되어 위성의 내부 시스템을 해킹하는 데 성공한다며 이후 위성 무선통신망을 타고 NASA 내부 서버망에 접근할 수 있게 된다.
NASA 해킹을 위해 전략급 전력이라 할 수 있는 CFS/A-31SP 삼족오 우주전투기까지 동원된 것에는 이번 임무가 신성용 합참의장으로부터 내려온 임무인 만큼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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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월 23일 02:00,
일본 사이타마현 고노스시 고노스산업단지.
도쿄 중심지로부터 45km 떨어진 고노스시 외곽에는 지난 한일전 패전으로 수많은 산업시설이 폐허가 된 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대폭적인 경제지원을 받아 새롭게 조성된 고노스산업단지는 일본 내에서 규모 면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큰 산업단지 중 하나였다. 넓이는 대략 여의도 면적의 18배에 달할 정도로 대한민국의 산업단지와 비교했을 때 규모 면에서 전혀 뒤지지 않았다.
또한, 이곳 고노스산업단지는 예전부터 일본이 강세를 보였던 자동차와 각종 전사산업 공장들이 즐비했다. 즉, 일본 경제의 15%를 이끌어갈 정도로 이끌어가는 경제적으로 매우 중요한 산업단지였다.
이렇듯 웬만한 도시 크기의 고노스산업단지 여러 도로 위에는 수많은 C-161PT 소형전술차량들이 TCS(투평은폐시스템) 모드를 활성화 한 채로 은밀하고 신속하게 각자 주어진 장소로 이동 중에 있었다.
C-161PT 소형전술차량은 기존 C-161P 소형전술차량에 TCS(투평은폐시스템)와 호버시스템이 탑재된 업그레이드 버전의 소형전술차량이다.
도로 위를 미끄러지듯 비행하듯 날리는 C-161P 소형전술차량들은 TCS(투평은폐시스템) 상태에서 아주 작은 엔진음을 내며 마치 암살자처럼 보안대의 감시망은 물론 사방에 설치된 감시 카메라를 피할 수 있었다.
이렇듯 아무런 제약 없이 각자 주어진 장소에 도착한 C-161P 소형전술차량에서는 착용형 외골격 로봇인 XS-1 엑소슈트를 착용한 해병대원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당연히 그들 역시 TCS(투평은폐시스템)을 활성화한 상태였다.
ES-C1 엑소슈트는 사용자의 몸 외부에 골격 형태로 착용하여 작동되는 장치를 의미하는 ‘엑소(Exo)’와, 옷을 의미하는 ‘슈트(Suit)’의 합성어로 몸에 착용하여 사용자의 의도에 따라 근력을 증강하거나, 작업 동작을 정밀하게 조절할 수 있다.
현재 엑소슈트와 같은 장비들은 산업현장, 구조작업, 재활 의료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으며, 이중 ES-C1 엑소슈트는 자체 무게 경량화 및 사용자의 행동적 자유로움, 그리고 움직임의 속도개선 등이 대폭 향상된 완전한 군사용 장비였다.
즉 ES-C1 엑소슈트를 착용한 군인은 시속 25km로 1시간 내내 달릴 수 있으며 최대 500kg 무게까지 들 수 있었다. 무엇보다 교전에 필요한 자유로운 자세와 움직임의 속도가 착용 전과 후의 차이가 없을 정도로 불편함이 없었다.
이렇듯 각자 ES-C1 엑소슈트를 착용한 해병대원들은 보기에도 무거워 보일듯한 상자들을 엑소슈트를 이용해 집어 들었다. 이들은 제1해병사단 소속의 폭파 주특기를 부여받은 해병대원들이었다.
소형전술차량마다 엑소슈트를 착용한 3명과 이들을 호위하는 3명의 해병대원이 1개 조로 움직였다.
- 여기는 옥수수 하나! 둘! 셋! 넷!은 듣기만 한다. 이상! 복귀시간 확실히 지켜라! 괜히 늦었다가 불벼락 맞고 옥황상제한테 문안 인사하기 싫으면 말이야.
선임 해병대원의 당부와 같은 지시가 무음성 통신망을 타고 여러 후임 해병대원에게 전달되었다.
엑소슈트를 착용한 해병대원 1명과 호위를 맡은 해병대원 1명이 2인 1조로 하여 각자 정해진 장소로 빠르게 움직였다.
얼마 후 이들은 공장 내 보안시스템을 무력화시키고는 제집 들어가듯 아무런 제지 없이 자유롭게 공장 내부로 진입했고 곧바로 엑소슈트를 이용해 들고 온 상자에서 도시락처럼 생긴 폭탄들을 죄다 꺼냈다.
이 폭탄은 PP7-XAM 이라는 물리는 설치 폭탄으로 보통 플라즈마 응집탄에 사용하는 고농도 플라즈마탄이 들어있었다.
같은 규격의 TNT 폭탄과 비교했을 때 폭발력은 무려 10발에 달하는 고성능의 폭탄이었다. 단점이라면 폭발력이 센 만큼 무게가 매우 무겁다는 것이었다. 이에 엑소수트를 입지 않은 상태라며 배낭에 넣고 움직이려면 서너 개 정도밖에는 넣지 못할 정도였다.
이날 고노스산업단지에 엑소슈트를 착용하고 투입된 해병대원은 총 98명으로 이들은 주어진 2시간 동안 인당 80개의 PP7-XAM 폭탄을 설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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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월 23일 04:30,
일본 도쿄 신주쿠구 보안대 중앙본부 벙커상황실.
보안대 중앙본부의 벙커상황실는 무거운 적막감이 흐르는 가운데 미이케 다카시 보안부 장관은 물론 보안대의 총책임자인 요시다 마야 총감과 보안대 지방본부의 주요 간부들까지 전부 모여있었다.
이들의 얼굴은 하나같이 밀려오는 긴장감에 압박을 받는지 표정이 그리 밝지 못했다. 괜히 “자주국가선포‘라는 미명의 극우파 정치인들의 꼬임에 빠져 자신의 인생이 망쳐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일본 특유의 상명하복 때문에 반대 의견도 내지 못하고 이 자리에 앉은 몇몇 간부들은 마음속으로 지금이라도 손을 뗄까 하는 갈등이 일어나기도 하는 상황이었다.
“아직 미군으로부터 연락은 없나?”
답답함에 미이케 다카시 보안부 장관이 서두를 열었다.
“네, 아직 없습니다.”
“허허! 이런, 앞으로 30분밖에 남지 않았는데 아직도 연락이 없으면 어쩌란 말이야?”
미이케 다카시 보안부 장관은 괜히 보안대 총감인 요시다 마야에게 불통을 터뜨렸다.
“모든 준비는 마쳤으니 곧 연락이 오지 않겠습니까?”
보안대 수장답게 요시다 마야 총감은 애써 태연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대답하자, 옆에 있던 사사키 쇼 경시장이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혹시! 취소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뭐야? 30분도 안 남은 마당에 취소라니? 자네는 그리되길 바라는가?”
괜한 소리에 미이케 다카시 보안부 장관으로부터 핀잔을 받은 사사키 쇼 경시장은 바로 머리를 조아리며 찌그러졌다.
이때, 적막감을 깨는 비상용 전화벨을 울렸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미군으로부터의 전화였다.
“네, 총감본부입니다. 네, 네, 알겠습니다. 네, 네”
간단히 통화를 마친 경부보 계급장의 오사코 유야는 상황실 전체가 들릴 정도로 방금 전화 온 내용을 보고했다.
“미이케 다카시 장관님! 미 해군 태평양 사령관으로부터 예정된 시간에 상륙작전을 시행하니 보안대에서도 ‘자주국가선포’ 작전을 시작하라는 내용입니다.”
오사코 유야 경부보의 말이 끝나자 상황실 내 몇몇 간부는 내심 취소될 것을 기대했는지 낙심하는 표정을 지으며 머리를 땅에 떨어뜨렸다.
“어차피 물은 쏟아졌다. 이번 거사는 어떻게든 성공해야 한다. 우리 일본의 미래가 걸려있으니까 말이야. 다들 책임감을 느끼고 임무에 충실하도록 이상!”
미이케 다카시 보안부 장관은 자리에서 일어나 큰 목소리로 떠들었다. 자기 딴에는 거사를 앞두고 간부들의 사기 증진을 위함이었지만, 예상과 반대로 간부들의 반응은 별로 좋지 않았다. 저마다 아무 말 없이 무표정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간단히 경례한 후 자신이 지휘할 병력이 있는 장소로 가기 위해 하나둘 무거운 발걸음으로 상황실을 빠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