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28화 (528/605)

일촉즉발

2024년 1월 21일 22:00,

일본 도쿄 신주쿠구 보안부 청사.

늦은 시각, 보안부 청사 내 지하 밀실에는 보안부 미이케 다카시 장관을 비롯해 경제산업부 이시하라 신타로 장관, 그리고 건장한 백인 남성 3명이 원형 탁자를 두고 마주 앉은 상태로 뭔가에 관해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렇게 밤늦은 시간 그것도 비밀스러운 밀실에서 작당 모의하듯 나누는 얘기가 결코 좋은 일은 아닌 것은 확실했다.

앞으로 36시간 후 도쿄에서 벌어질 ‘자주국가선포’와 관련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미국에서 지원 온 병력은 얼마나 되는 겁니까?”

음산한 눈빛을 발산하며 경제산업부 이시하라 신타로 장관이 거구의 백인 남성들을 바라보며 넌지시 질문을 던지자 백인 남성 3명 중 은빛 구레나룻이 턱까지 멋스럽게 내려온 백인 남성이 중후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현재 700명 정도 됩니다. 오늘 밤 도착할 병력까지 합한다면 대략 1,000명은 될 겁니다.”

“네? 천명밖에 안 된단 말입니까?”

인상을 국기며 이시하라 신타로 장관이 반문하자 왼쪽에 앉아있던 또 다른 백인 남성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미국 건국 이래 천명이라는 특수부대 병력이 한곳에 모인 적이 없습니다. 일당백의 전력이니 병력에 너무 매달리지 않으셔도 됩니다.”

웃는 얼굴이었지만, 상대방을 압도하는 카리스마가 늘씬 풍기는 말투였다.“아! 그렇다고 해도 천명이라니요. 현재 도쿄도에 주둔한 한국 해병들이 5천 명이 넘습니다.”

살짝 주눅 든 이시하라 신타로 장관이 말꼬리를 흘리며 말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시하라 장관님! 이번 작전에 참여하는 특수부대는 최강의 전력 중 하나인 프로 중의 프로들입니다.”

순간 분위기기 삭막해지자 처음 대답했던 백인 남성이 부드러운 말투로 이내 대답했다.

그랬다. 백인 남성이 말한 대로 현재 도쿄도 곳곳에 은밀히 침투하여 대기 중인 미국 특수부대들은 밀리터리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한 번쯤은 들어봤을 유명한 특수부대였다.

육군특전파견대인 일명 델타포스라 불리는 특수부대 20개 팀과 또 다른 육군 특수부대인 그린베레였다. 그린베레 같은 경우 제3특전단과 제10특전단 등 2개 특전단이 참여했고 더불어 미 해병대의 유일한 특수부대인 레이더 연대 320명이 동원되었다. 마지막으로 오늘 밤에는 영화 소재로 자주 등장하는 미 해군 특수부대인 네이비실 30개 팀이 도착할 예정이었다.

백인 남성 말대로 미국이 수십 년간 세계 곳곳에서 전쟁을 수행해 왔지만 이렇게 특수전력이 한곳에 천명 가까이 모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미국 전쟁 역사에 길이 남을 일이었다.

“아 그렇습니까? 하하 저는, 혹 이번 일이 잘못될까 봐 조바심에 그런 말이 나왔습니다. 미안합니다.”

영화에서 몇 번 들어본 듯한 델타포스나 네이비실 같은 단어가 나오자 이시하라 신타로 장관이 뒷머리를 긁으며 사과했다.

‘자주 국가선포’라는 빛 좋은 개살구를 내세우며 미국과 일본 내각이 본격적인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이곳 도쿄도에는 일주일 전부터 민간인 신분으로 위장한 특수부대 병력이 나리타 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해 왔다.

당연히 가져온 짐 속에는 자신의 개인화기는 물론 전투에 필요한 각종 개인 장구류는 물론 각종 폭탄 화기 역시 아무런 제지 없이 입국심사대와 수화물 탐색기를 통과했다. 사전에 일본 내각에서 출입국사무소에 영향력을 발휘했기 때문이었다. 이러듯 국가 차원에서 개입하지 않은 이상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양 국가의 묵인하에 불법적인 방법으로 각종 전쟁 화기를 가지고 도쿄에 입성한 미국의 여러 특수부대는 도쿄도 곳곳에 전개를 마쳤고 향후 보안대와 공조 작전을 벌이기 위한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그 보다, 도쿄도 주둔군인 한국 해병대 병력 이동 현황은 어떻습니까?”

이번에 오른쪽에 앉아있던 다른 백인 남성이 질문을 하자 미이케 다카시 장관이 대답했다.

“24시간 확인 중에 있으나 4일 전에 드린 병력 배치 현황과 별다르지 않습니다. 이상하게 생각할 정도로 한국 해병대 상황은 조용합니다.”

4일 전, 미이케 다카시 장관은 혼슈 전체에 주둔하고 있는 한국 해병대의 모든 병력 배치 현황을 이미 미국 특수부대 지휘부에 넘긴 상태였다.

“그렇군요. 그럼 보안대 준비 사항은 어떻습니까?”

“네, 그 부분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요청하신 대로 내일 밤이면 혼슈 남부와 북부보안대 2만 명이 도쿄도 보안대와 합류할 예정입니다. 총 4만 2천 명입니다.”

“알겠습니다. 어쨌든 병력 이동은 차질없이 내일 밤까지 신경 써 주시기 바랍니다.”

“네, 그러지요.”

★ ★ ★

2024년 1월 22일 00:30 (현지시각 01:30),

일본 지바현 가쓰우라시 동단 480km 해상.

먹구름이 짙게 깔려 별빛 하나 보이지 않은 기상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해상에서 청군과 백군으로 나뉘어 한창 ‘2024년 태평양 연합훈련’이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이번 훈련 지휘함 제럴드 R. 포드함(CVN-78)의 전투통합지휘실에서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훈련상황보다는 온통 다른 쪽에 관심이 쏠려 있었다.

바로 일본 동해 해상에 전개한 대한민국 해군전력이었다.

태평양함대의 제3함대와 제7함대가 일본 동해로 항해를 시작함과 동시에 미국은 가용한 모든 정찰전력을 총동원하여 대한민국 해군의 전력을 파악하고자 부단히 노력해왔다. 그중 다행히 제2함대 구축함과 호위함이 일본 동해상으로 항해하는 것을 탐지하는 등 여러 가지 유익한 탐지정보를 획득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산발적으로 발산되는 각종 전파방해로 인해 실시간으로 추적은 불가능했고 이에 탐지하거나 놓치거나를 반복하고 있었다.

이에 일본 동해상에는 미국의 최신예 아틀라스 정찰위성 4기가 쉬지 않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은 태평양 바다 위를 샅샅이 훑고 있었다.

“아직도 탐지되지 않았나?”

며칠 동안 펜타곤에서 ‘자주국가선포’와 관련하여 해상작전회의에 참석했던 태평양함대 사령관 루빈 스콧 제독이 붉은 가죽으로 만들어진 멋스러운 의자에 앉아 다소 불편한 기색으로 말했다.

상륙 예정 지점인 지바현 해안에 6개 해병사단을 상륙시키려면 임무를 성공적으로 이루기 위해서는 몇 가지 선제 조건이 따라야 했다.

아무리 상륙전 전개에 있어서 각종 장비가 발전했다 하더라도 6개 해병사단을 동시에 상륙시킨다는 것은 결코 만만한 작전은 아니었다. 따라서 사전에 위험요소를 완벽하게 파악하고 그에 맞는 대응전략으로 확실히 제거한 후 상륙작전을 펼쳐야만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한민국 해군전력을 완벽히 파악해야만 했다.

“네, 현재 예상 해역을 샅샅이 뒤지고 있으나 아직 탐지되었다는 보고는 없습니다. 하지만 3시가 전, 몇몇 함정에 대해선 대략적인 위치 파악은 한 상태입니다.”

태평양함대 사령부의 주임작전관 지미 로페스가 대형 스크린을 가리키며 대답했다. 정면에 있는 대형 스크린에는 3시간 전에 정찰전력으로 탐지했던 제2함대 소속 구축함이 있었던 해상에 붉은 점으로 표기되었다.

“3시간 전이면 수십 킬로미터는 이동했을 터, 그걸로는 부족해!”

루빈 스콧 제독이 자신의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언짢은 표정을 짓자 뒤쪽에 서 있던 3함대 소속의 닉 리만도 작전관이 한 발 앞으로 나서며 자신의 의견을 제시했다.

“사령관님! 우리 쪽 해상초계기를 띄우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그러자 루빈 스콧 제독이 닉 리만도 작전관을 슬쩍 쳐다보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말했다.

“우리 초계기가 일본 동해 쪽으로 비행하면 한국 해군이나 공군에서 바로 알아차리지 않겠나?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 일은 안 하는 게 좋아!”

“네, 맞습니다. 현재 이곳 상공에 한국 6세대 스텔스 전투기도 탐지했던 아틀라스 정찰위성 4기가 동원되었다고 하니 조금 더 기다려보는 게 나을 듯합니다.”

지미 로페스 주임작전관의 추가 의견에 루빈 스콧 제독은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적인 표현을 했다.

“그래! 기다려보도록 하지. 시간도 늦었으니, 야간 훈련 종료하고 다들 당직체제로 전환하라고 전하게.”

“네, 알겠습니다.”

자리에서 일어선 루빈 스콧 제독은 간단히 명령을 내리고는 곧바로 전투통합지휘실을 벗어났다.

그리고 7시간이 지난 후, 동쪽 수평선에서 서서히 해가 떠오르며 일출 광경이 펼치는 시점, 드디어 아틀라스 정찰위성 중 1기가 일본 지바현의 가쓰우라시로부터 동단 130km 떨어진 해상에 한국 해군전력으로 보이는 함정들을 탐지했다는 보고와 함께 통합전투지휘실 스크린에 탐지한 정보를 투사했다.

그러자 밤새 당직 근무자를 제외하고 한산했던 전투통합지휘실에는 루빈 스콧 제독을 비롯해 태평양함대 지휘관들과 참모들이 꽉 차게 모여들었다.

“정말! 저거밖에 없다는 건가?”

스크린에 투사된 한국 해군전력은 예상했던 것보다 규모가 작아 보였다. 수상함 수는 고작 12척에 불가했고 그것도 2척은 다목적상륙함에 7척이 호위함이었다. 즉 구축함으로 생각되는 함정은 고작 3척이었다.

“아틀라스 정찰위성 4기가 동원되어 정찰한 결과입니다. 아무래도 이곳 일본 동해 해상에 한국 해군전력은 저게 다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아틀라스 정찰위성의 성능을 100%로 신뢰하고 있는 지미 로페스 주임작전관이 확신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음, 그렇다면 한국은 우리 태평양함대의 훈련을 곧이곧대로 믿고 있다는 것인데 말인데······.”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통상적인 훈련에 과인 대응하여 우리 미국과 불편해지는 관계를 피하기 위함일 수도 있다고 봅니다.”

지미 로페스 주임작전관의 추가 발언에 살짝 의심했던 루빈 스콧 제독은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적인 자세로 바뀌었다.

“잘됐군! 저 정도 전력이라면 한 번에 해치울 수 있겠어. 확인된 한국 해군 수상함에 대한 상세한 정보 띄어보게.”

“네, 투사합니다.”

루빈 스콧 제독이 명령을 내리자 곧바로 통합전투지휘실의 수장인 전투정보관이 앞줄에서 분주하게 각종 장비를 운용하는 오퍼레이터에게 명령을 하달했다.

잠시 후 스크린에는 12개의 수상함에 대한 각종 세부 사항이 적힌 정보가 빼곡히 투사되었다.

먼저 구축함으로 판명된 수상함 3척은 KD-3 율곡이이함(DDG-992)과 KD-2 대조영함(DDH-977)과 왕건함(DDH-978)으로 각 함정의 데이터가 상세하게 보였다. 그리고 두 번째로 호위함으로 분류된 수상함 7척은 대구급 호위함인 대구함(FF-818), 서울함(FF-823), 부산함(FF-827), 그리고 김준급 호위함인 고우충함(FF-832), 성충함(FF-835), 지수신함(FF-837), 강수함(FF-839)이었고 마지막으로 중형항공모함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강화도급 다목적상륙함인 거제도함(LHD-5112)과 진도함(LHD-5114)의 상세 정보가 차례대로 보였다.

“제독님! 음, 저 정도 전력이면 현재 청군으로 지정된 구축함 8척으로도 충분히 상대하고도 남을 전력이라 생각됩니다.”

지미 로페스 주임작전관은 스크린에 투사된 각종 정보를 차례대로 읽어나가고는 결론을 내었다.

“음, 그렇긴 하군, 리만도 제독은 어떻게 생각하나?”

그동안 아무 말 없이 묵묵히 자리에 앉아있던 제3함대 사령관인 닉 리만도 제독에게 루빈 스콧 제독이 물었다.

“사전에 파악한 정보와 매우 달라 수상한 느낌이 듭니다.”

스크린을 유심히 보던 닉 리만도 제독은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는지 자꾸만 이마에 주름을 만들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나도 뭔가 의심적이긴 하네. 하지만 로페스 주임작전관 말대로 일반적인 훈련에 한국이 과인 대응으로 나섰다가 우리와의 관계가 불편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저 정도 전력만 동원했었을 수도 있다고 보네.”

“제독님! 그건 어디까지나 우리 생각입니다. 일단은 좀 더 지켜보는 것이 좋을 거 같습니다.”

닉 리만도 제독은 계속해서 의구심을 내세웠다.

“그렇긴 하지만, 상륙작전을 시행하기까지 하루밖에 남지 않았네. 일단은 저 정도 전력을 기준으로 대응 작전 안을 수립해야지 않겠나? 2시간 후 작전회의실로 모든 함정 지휘관들을 소집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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