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27화 (527/605)

일촉즉발

2024년 1월 21일 17:30,

일본 자바현 가쓰우라시 동단 120km 해상.

태평양함대가 본격적인 해상 훈련에 들어간 시점, 전날부터 이곳 해상에서 대기하고 있던 대한민국 해군의 연합함대 역시 사전에 수립된 대응작전 안대로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태평양함대 규모 못지않을 정도로 어마하게 집결한 연합함대는 먼저, 대잠 및 대공방어를 책임질 제7기동전단 소속의 호큘라 구축함 6척이 선두에서 각자 300m 간격으로 기다란 횡대 대형을 갖추기 시작했다.

최신예 구축함답게 동시다발적으로 300여 발에 달하는 적 대함미사일 공격을 무력화시킬 수 있을 정도의 철벽 방어가 갖춰지게 되었다.

이렇게 제7기동전단 구축함들이 전방 방어를 책임지는 가운데 연합함대의 양 측면에는 충무공이순신급 호큘라 순양함인 차리석함(CG-1105)과 강우규함(CG-1106)이 측면 방어는 물론 공격 임무까지 수행하기 위해 중앙대열에서 서서히 거리를 벌리고 있었고 후방 방어 임무를 맡게 제3함대 제3구축함전단 소속의 구축함 6척도 서서히 속도를 줄이며 중앙 대열과 거리를 벌렸다.

이렇듯 최신예 구축함과 순양함이 외곽에서 전후 측면 방어 대열을 갖추는 가운데 중앙에는 제56상륙전단의 다목적상륙함 3척을 중심으로 제2함대 제2구축함전단 구축함 6척과 제2호위함전단 호위함 9척이 다이아몬드 대형으로 둘러싸고 있었다.

제2함대의 구축함과 호위함은 다목적상륙함의 2차 대공방어 및 공격 임무를 수행할 예정이었다.

사전에 수립한 대응작전 안대로 진형을 갖추기 시작한 연합함대는 30분도 안 되어 완벽한 진형을 갖췄다.

“제독님! 모든 예하 전단에서 대열을 완료했다는 보고입니다.”

제2함대의 기함인 을지문덕함(DDG-1013)이 아닌 태종대왕함(DDG-996)의 전투지휘실에서 작전상황을 지켜보던 제2함대사령부 홍승태 수석작전관이 올라온 보고를 취합한 후 느긋한 자세로 앉아있는 김이원 제독에게 보고했다.

“음, 예정시간보다 빠르군”

홍승태 수석작전관의 보고에 자신의 손목시계로 시간을 확인한 김이원 제독이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미소를 보였다.

“그동안 훈련이 아주 잘 되어 있는 듯합니다.”

“그러게 말이야. 함대급 훈련도 아니고 타 함대 수상함들까지 동원되었는데 말이야. 손발이 딱딱 들어맞는군”

“그럼, 제독님! TCS 가동명령을 내리시겠습니까?”

“그렇게 하게, 현 시간부로 TCS 시스템이 탑재된 모든 수상함은 추가 명령이 떨어질 때까지 TCS 시스템 가동하라고 전하게”

“네, 알겠습니다.”

“한동안은 할 것도 없는데, 함장실에 가서 유 함장과 장기나 한판 둬야겠어!”

자리에서 일어난 김이원 제독이 모자를 바로 쓰고는 말했다.

“제독님도 참, 맨날 지면서 또 두시려는 겁니까?”

“내가 언제 맨날 졌나? 엊그제 한번 이겼거든?”

어린아이마냥 김이원 제독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하하, 알겠습니다.”

“허허, 이 사람 이거, 못 믿는 눈치인데? 그렇게 못 믿겠으면 따라와서 직접 보게.”

“아닙니다. 제독님! 못 믿다니요? 믿습니다.”

“아니야. 따라와!”

“갔다 오시지요. 저는 이곳에서 상황 좀 더 지켜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자네 때문이라도 꼭 이기고 와야겠어! 기다리고 있으라고.”

“네, 꼭 이기고 오십시오.”

잠시 후 김이원 제독이 전투지휘실을 나가자 홍승태 수석작전관은 연합함대의 모든 통신망을 개방하고는 명령을 하달했다.

“여기는 제2함대 수석작전관이다. 현 시간부로 연합함대의 모든 수상함은 항해 속도 3노트로 고정 및 대열 유지 그리고 TCS 장착된 모든 수상함은 추후 명령이 하달될 때까지 TCS를 가동하여 유지한다. 이상!”

홍승태 수석작전관의 명령 하달 직후 TCS(투평은폐시스템) 기능이 탑재된 수상함들이 TCS(투평은폐시스템)를 가동했고 하나둘 뒤틀리는 잔상을 남기며 시야에서 사라졌다.

처음 TCS(투평은폐시스템)이 장착된 수상함은 호큘라 구축함 1번함인 광해함(DDG-1001)으로 이후 건조되는 모든 수상함에는 TCS(투평은폐시스템)가 필수로 장착되었다. 그리고 제1차 동북아 전쟁에서 반파되어 수리 및 업그레이드로 재취한 모든 수상함에도 TCS(투평은폐시스템)이 장착되었다.

잠시 후 가쓰우라시 동단 120km 해상에서 항해하던 수십 척의 연합함대 수상함들은 현재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수상함은 고작 12척에 불가했다. 강화도급 다목적상륙함인 강화도함(LHD-5111)과 연평도함(LHD-5113) 그리고 제2함대 구축함 3척과 호위함 7척이었다.

나머지 18척은 TCS(투평은폐시스템)을 가동하여 모습을 감추고 배꼬리에서 하얀 거품을 일으키는 항적만을 남길 뿐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항적마저 금방 파도에서 파묻히며 사라졌다. 눈 깜짝할 사이 30척에 달하던 연합함대의 수상함이 12척으로 줄어들었다.

400여 km를 거리를 두고 대치한 가운데 이렇게 연합함대 전력을 숨긴 것에는 미국의 정찰전력에 탐지되지 않기 위함도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태평양함대가 연합함대의 전력을 과소평가하여 오판하게끔 하기 위함이었다.

만약 연합함대가 별다른 불상사 없이 태평양함대와 평화적으로 해결을 원했다면 더욱 연합함대의 전력을 보여줌으로써 물러서게 만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연합함대는 필연적으로 태평양함대와의 결전을 생각하고 있는 것이었다.

★ ★ ★

2024년 1월 21일 18:00,

남주 서울특별시 용산구 B2 벙커(합동참모본부 정보본부 디지털정보센터).

간신히 이혜진으로부터 허락을 받은 남궁원은 아침 일찍 이곳 B2 벙커에 있는 합동참모본부 산하 정보본부의 디지털센터에 모습을 보였다.

정보본부의 디지털정보센터는 자국의 군사정보는 물론 타국의 1급 군사정보를 획득 및 취합 그리고 분석하는 부서로 군내 국가정보원과 같은 개념의 부서였다.

또한, 보유한 장비들 역시 국가정보원의 사이버보안국 못지않을 정도로 첨단장비들이 즐비했고 50평 남짓한 공간에는 100여 명의 장교와 부사관들이 각자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느라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남궁원은 출근함과 동시에 부센터장인 김태석 대령으로부터 안내를 받으며 곳곳을 구경했고 이어 NASA 해킹을 시도하고 있는 프로젝트팀과 인사를 나눈 후 곧바로 본격적인 회의에 들어갔다.

오전 회의 주제는 처음 참석한 남궁원을 위해 지금까지 시도했던 해킹 방법과 실패한 원인에 대한 전체적인 보고형식의 회의로 진행되었다. 회의 중간마다 남궁원조차 몰랐던 신기술을 접목한 해킹 방법으로 시도했지만 실패했다는 결과에 놀라고 말았다.

어쨌든 오전 회의는 2시간에 걸쳐 진행되었고 오후 회의는 아직 시도하지 않은 해킹 방법을 찾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하지만 오전 회의에서 나왔던 해킹 방법이 사실 다였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만큼 프로젝트팀에서는 시도할 수 있는 모든 해킹 방법을 다 해봤다는 뜻이기도 했다. 이에 오후 회의는 시간만 지나갈 뿐 별다른 진척은 보이지 않았다.

9년 전, 남궁원으로부터 자신의 서버가 해킹당한 이후 NASA에서는 천문학적인 돈을 투자하여 완벽한 서버 보안체계를 구축했다.

먼저 NASA 메인 서버는 지하 100m에 진공상태로 설치되어 있어서 무인로봇이 아닌 이상 사람이 직접 침투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또한, 외부 무선 통신으로 해킹을 막기 위해 메인 서버 전체에 3중 자기장 차폐막이 설치되어 있어서 그 어떠한 고주파 통신 장비로도 뚫을 수 없게 만들었다.

결과적으로 한 가지 방법밖에 없었다. 사람이 직접 NASA의 메인 서버에 침투하는 방법, 하지만 이것 역시 현재로써는 불가능했다.

즉, 무선이든 유선이든 외부에서 NASA 서버는 물론 내부네트워크 서버망에 침투할 방법이 전혀 없다는 것이었다. 이로 인해 5시간에 걸친 회의는 지루해져 갔다.

자유의사발언형식으로 진행된 회의는 처음 활발하게 서로 간 자신의 발언을 하며 활발하게 진행되었던 회의는 어느 순간에 누구 하나 입을 여는 사람이 없게 되면서 회의실은 조용해졌다.

저마다 깊은 고뇌에 빠진 표정이었고 어떤 장교는 자신의 머리를 마구마구 쥐어흔들었다. 그만큼 정신적 피로도가 상당하다는 얘기였다. 이러한 모습을 보며 팔짱을 끼고 곰곰이 생각하던 남궁원은 생각의 전환이 필요했다.

‘과연 뭘까? NASA의 메인 서버와 연결된 외부의 그 무엇은······.’

순간, 남궁원의 머릿속에서 뭔가가 번뜩 생각났다.

‘바로 인공위성이었다.’

어쨌거나 NASA은 수많은 종류의 인공위성을 사용한다.

‘인공위성을 타고 NASA의 메인 서버에 침투할 수 있지 않을까?’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남궁원이 조용히 손을 들고는 방금 생각해 낸 방식에 대해서 발언했다.

잠시 후 남궁원의 발언이 끝나자 일순간 탄성이 터져 나왔고 손뼉까지 쳐졌다. 다들 기발한 아이디어라며 엄지 척을 하며 치켜세우자 남궁원은 쑥스럽다는 듯 자신의 뒷머리를 쓰다듬었다.

“정말 생각지 못한 발상입니다. 대단한데요.”

부센터장 김태석 대령마저 자리에서 일어나 손뼉을 치며 칭찬을 늘어놨다.

“하하, 이거 참! 그런데 문제가 한가지 있습니다.”

순간 회의실은 조용해졌다.

“어쨌든 인공위성을 무선통신망을 타고 NASA 서버망에 접촉하려면 먼저 인공위성을 해킹해야 하는데, 방법이 있을까요? 인공위성이 땅에 있는 물건도 아니고 지구 밖 상공에 떠 있는데 말입니다.”

자신이 내놓은 아이디어인데도 문제점을 말하자 미안한 생각이 들었는지 갈수록 남궁원의 목소리 크기는 줄어들었다.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 같습니다.”

중령 계급장을 영관급 장교 한 명이 환한 웃음을 보이며 말했다. 그러자 모든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다.

“제가 이곳으로 발령받기 전, 항공우주군 정보사령부에 있었습니다. 그 당시 적성국 인공위성의 데이터 추출이라는 개념의 세미나가 있었습니다. 즉 적성국 인공위성에 데이터를 추출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담긴 장비를 장착하여 마치 우리 인공위성처럼 정보를 공유한다는 그런 개념이었습니다. 당시에는 개념만 잡는 세미나였지만, 사실상 지금 기술이라면 충분히 가능하리라 봅니다. 만약 해킹프로그램이 담긴 장비를 NASA에서 운용하고 있는 뭐 보안체계가 가벼운 기상위성 같은 거에 장착만 할 수 있다면 그걸로 인해 NASA 메인 서버를 뚫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 세미나가 언제쯤 있었나?”

김태석 대령이 다급히 물었다.

“음, 작전 3월이니까 10개월 전입니다.”

“10개월 전이라······. 그 프로젝트는 진행되었나?”

“당시에는 시범적인 세미나였고 제가 이곳으로 전출 온 6월까지는 별다른 진행은 없었습니다. 일단 동기에게 확인해보겠습니다.”

“그래, 지금 바로 연락해보게”

“네,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대답과 동시에 영관급 장교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구석으로 간 후 자신의 스마트폰을 꺼내 들어 전화를 걸었다. 그러는 사이 조금은 흥분한 김태석 대령이 남궁원에게 질문을 던졌다.

“남궁원 씨! 만약 저 방법이 가능하다면 NASA 메인 서버를 뚫을 수 있겠습니까?”

“네, 불가능하진 않습니다. 단지, 메인 서버와 연결된 인공위성이어야 한다는 것인데······. 아무래도 메인 서버와 연결된 NASA의 인공위성들은 자체 보안시스템이 운용되어 외부에 뭔가가 장착만 돼도 감지될 듯합니다. 이에 보안시스템이 없으면서도 NASA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위성들을 선별하는 게 과제일 듯합니다.”

이때 짧게 통화를 마친 영관급 장교가 자리에 앉으면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 문제는 어렵지 않을 듯합니다. 당시 세미나에서 세계 각국의 인공위성 일체 정보를 확인한 적이 있습니다. 그중에 NASA에서 사용하는 인공위성 중 자체 보안시스템이 없는 인공위성 리스트 역시 확보한 상태입니다. 그중에 NASA에서 중요하게 생각할만한 인공위성만 선별하면 될 거 같습니다.”

“그렇군, 그보다 오 중령! 알아본 건?”

“아! 죄송합니다. 남궁원 님 질문에 답변한다고 깜박했습니다. 현재 파르테논 연구소에 프로토타입으로 개발한 것이 있다고 합니다.”

“정말인가?”

“네, 제가 이곳으로 전출 온 후 시범 사업으로 추진되었다고 합니다.”

“그거 잘됐군. 잘됐어!”

김태석 대령은 오랫동안 앓던 이가 빠진 듯 환하게 웃었다. 아마도 이번 건으로 위에서 압박이 심했던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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