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26화 (526/605)

눈치 게임

2024년 1월 20일 21:20 (영국시각 13:20),

영국 런던시 웨스트민스터 외교부 청사.

영국 외교부의 또 다른 접견실에는 전날 전용기를 타고 이곳 런던에 도착했던 미국 국무부 메인 존슨 장관이 온갖 인상을 꾸기고는 의자에 앉아있었다.

방금, 수행비서관으로부터 라트비아 CIA 지부의 아지트가 정체불명의 괴한에게 습격을 받아 사상자가 발생했고 무엇보다 중요한 문서들이 탈취되었다는 보고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빌어먹을 한국놈들······.’

정체불명의 괴한이라 보고가 올라왔지만 메인 존슨 장관은 그들의 정체가 한국 정보부에서 보낸 자들이라는 것을 확신하는 듯했다.

‘어떻게 도리어 당한단 말이야?’

암살 실패 후 CIA 요원들은 김명환 2차관은 물론 경호원과 한국 정보요원들에 대한 24시간 감시체제로 전환한 상태였다. 그러한 상황에서 역으로 자신들의 아지트가 습격을 당했다는 것에 메인 존슨 장관의 심기는 매우 불편했다.

하물며, 김명환 2차관의 암살과 관련된 정보들이 한국 정보부에 흘러 들어가지 않았을까 하는 걱정도 머릿속을 꽉 차게 만들었다.

철컥!

온갖 잡념이 그의 머리를 휘젓고 있을 때 접견실 문이 열리고 엔더스 장관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 죄송합니다. 갑작스럽게 총리님과 점심 약속이 잡혀서 말입니다.”

약속한 시각보다 20분이나 늦게 나타난 엔더스 장관이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이에 메인 존슨 장관은 굳은 표정으로 건넨 손을 잡고 가볍게 악수를 했다. 그러면서 마음속으로 욕설을 내뱉고 있었다.

‘여우 같은 자식!’

무슨 일로 갑작스럽게 총리와 점심 약속이 잡혔는지 짐작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 총리와의 갑작스러운 점심은 무슨 일인지 알 수 있을까요?”

“네? 하하, 뭐 국내 정치 문제입니다.”

다시 한번 능청스럽게 거짓말을 하는 엔더스 장관! 이에 메인 존슨 장관이 한쪽 눈을 치켜뜨며 의미심장한 말을 꺼냈다.

“한국에서 온 특사와 회담한 내용 때문은 아니고요?”

“네? 허허, 그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엔더스 장관은 곧바로 사실을 밝혔다. 메인 존슨 장관이 저렇게 말을 내뱉었을 정도면 이미 다 알고 있다는 얘기였다. 그러니 숨겨봤자 모양새만 빠질 뿐 바른대로 말하는 게 낫다는 판단이었다.

“그 정도야 식은 죽 먹기입니다.”

“하하, 역시 세계질서를 주도하는 국가라 정보력이 상당하군요.”

칭찬인지 아니면 비꼬는 건지 아리송한 말을 내뱉은 엔더스 장관은 비서관이 내온 커피잔을 들고는 한 모금 마셨다.

“엔더스 장관님! 시간도 없고 하니 바로 본론으로 넘어가겠습니다.”

“네, 그렇게 하시죠.”

“기존에 약속한 대로 현재 나토군에 파견된 영국군의 지휘관을 우리 쪽으로 완전히 넘겨주시기 바랍니다.”

“음, 그것이······.”

엔더스 장관이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커피잔을 탁자에 내려놓고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협조하기로 사전에 약속하지 않았습니까?”

메인 존슨 장관이 다그치듯 목소리를 높이며 되물었다.

“점심때 총리께서 이 부분에서 수용할 수 없다는 뜻을 밝히셨습니다.”

“뭐요?”

“아시겠지만, EU도 이 안건에 대해서 부결하지 않았습니까? 그런 상황에서 우리 영국이 끼어드는 건 국제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십니다.”

“엔더스 장관! 영국은 우리 미국의 동맹국이지 않습니까? 동맹국이 요청하는데, 그렇게 거절할 수 있습니까?”

“죄송합니다. 총리님의 뜻이기에 제가 어떻게 해드릴 방법이 없습니다.”

단호하게 말하는 엔더스 장관이었다.

“흥! 그깟 한국이 두렵습니까?”

“두렵다니요. 당치 않습니다.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아니긴 뭐가 아닙니까?”

쿵! 쿵!

움켜쥔 주먹으로 탁자를 치며 메인 존슨 장관이 분노를 표출했다. 하지만 엔더스 장관의 표정은 일관했고 급기야 상체를 앞으로 당기며 조용한 어조로 물었다.

“저기! 메인 존슨 장관님! 혹시 라트비아 리가에서 큰 사고를 치셨더군요?”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순간 당황한 메인 존슨 장관은 애써 숨기며 되물었다.

“우리 정보력 역시 그 정도는 알 수 있습니다.”

“허허, 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군요.”

“김명환 2차관에 대한 암살시도 말입니다.”

대놓고 말하자 메인 존슨 장관은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모르쇠로 일관했다.

“암살시도라니요? 좀 알아듣게 말씀해 보시지요.”

“하하, 다 알고 있는데 발뺌하시는군요. 리가에 있는 CIA 요원들이 전날 새벽에 한국 특사로 온 김명환 2차관을 암살시도 했다는 것을 말입니다.”

“엔더스 장관! 지금 무슨 말 같지 않은 소리를 하는 겁니까? 괜히 우리 미국의 요청을 거절할 명분이 없으니 괜히 말도 안 되는 거로 덤터기를 씌우려고 하는 겁니까?”

급기야 메인 존슨 장관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영국군의 나토군 지휘권 전환문제가 깨진 마당에 계속 이 자리에 앉아있다가는 암살시도 건으로 곤욕을 치를 거 같아 일부러 더 화를 내고 있었다.

“아! 흥분하지 마시고 자리에 앉으시지요.”

“됐습니다. 더는 앉아봤자 달라질 게 없을 거 같군요.”

마지막 말을 내뱉은 메인 존슨 장관은 곧바로 출입문으로 향했다.

“메인 존슨 장관님! 왜 그러십니까?”

마지못해 일어난 엔더스 장관이 잡으려고 하자, 문고리를 잡고 문을 연 메인 존슨 장관이 협박성 발언을 던지고는 그대로 나가버렸다.

“앞으로 영국과는 절대로 국제적 동조는 없을 겁니다. 그렇게 아시기 바랍니다.”

“허허 이거 참······.”

엉거주춤한 자세로 서 있는 엔더스 장관이 출입문을 보며 혀를 찼다.

오전 김명환 2차관으로부터 받은 문서에는 USSC 건도 있었지만, 전날 김명환 2차관에 대한 암살시도 사건에 대한 경위와 암살자들이 미국 CIA 요원들이라는 증거자료도 들어있었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불법행위도 서슴지 않고 벌이는 미국의 행실에 엔더스 장관은 물론 보고를 받은 라이언 총리 역시 더는 미국과 엮이는 것이 영국 이익에 절대 이롭지 않다는 판단을 하게 되었다.

더불어 이들이 이러한 판단을 하게 된 것에는 한가지가 더 있었다.

바로 신바이칭이 빼돌렸던 플라즈마 핵심기술과 관련하여 영국의 MI6이 관여되어 있다는 것을 대한민국이 알고 있다는 것이었다.

지난 1월 1일 프랑스 오뜨비엔느 리무젱에서 무장괴한에게 습격을 받아 신바이칭은 물론 미화 5억 달러를 주고 거래를 하려 했던 플라즈마 핵심기술이 사라진 후 영국 내각은 물론 MI6은 관련된 모든 증거자료를 삭제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대한민국 정부는 모든 걸 알고 있었다. 이렇듯 생각지 못한 부분에서 발목을 잡힌 영국 내각으로서는 어쩔 수 없이 김명환 2차관이 원하는 대로 들어 줄 수밖에 없게 되었다. 즉 최대 동맹국인 미국의 요청을 거절하는 것은 물론 당분간 거리를 둬야만 했다.

사실 이 부분이 엔더스 장관이나 라이언 총리가 이러한 결정을 하게 된 가장 큰 이유였고 지난번 EU(유럽연합) 대표이사회부터 정상회의까지 터키와 더불어 적극적으로 대한민국 편을 들었던 프랑스 역시 신바이칭의 플라즈마 기술 유출사건과 관련하여 관여되어 있다는 사실만으로 덜미를 잡혀 무조건 대한민국 편을 들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였다.

어쨌든 세계정세는 고대부터 현대까지 약육강식에 따른 힘의 논리에 따라 움직였고 저마다 자국의 이익 타산 계산기를 두드렸다.

★ ★ ★

2024년 1월 20일 22:30 (영국시각 14:30),

영국 런던시 메이페어 암마 호텔.

아무런 성과도 내지 못하고 암마 호텔로 돌아온 메인 존슨 장관은 곧바로 CIA 런던지부장으로부터 리가 건과 관련하여 상세한 보고를 받았다.

추가 보고에 따르면 메인 존슨 장관이 짐작했던 대로 CIA 리가지부 아지트를 습격한 정체불명의 무장괴한들은 대한민국 정보요원들로 밝혀졌다.

“사망자가 몇 명이라고?”

믿지 못하겠다는 말투로 다시금 묻는 메인 존슨 장관!

“사망자는 17명이고 1명만이 중경상을 입고 병원에서 입원 중입니다.”

리가에서 활동하는 CIA 요원 모두가 당했다는 얘기였다.

“에디 루이스 지부장도 말인가?”

“네, 로디슨 뒷골목에서 죽은 채로 발견하였습니다.”

파악!

순간 화가 난 메인 존슨 장관이 자신의 윗옷을 그대로 바닥에 던져버렸다.

“현재 폴란드와 핀란드 쪽 요원들이 동원되어 수습 중입니다.”

“제기랄, 없어진 서류들은 뭔가?”

“확인 중에 있으나, 현재 확인된 바로는 EU 대표이사회 안건 관련 문서들과 우리가 접촉했던 국가리스트 및 정상회의에 참석하는 수장들에 대한 회유정책 등입니다.”

후!

메인 존슨 장관은 분노의 경지를 넘었는지 긴 한숨을 내쉬고는 소파에 덜컹 주저 앉았다.

“끝났군. 끝났어!”

고래를 절레거린 메인 존슨 장관은 더는 들을 필요 없다는 듯 그만하라는 손짓을 했다.

“나의 30년 정치 인생도 이걸로 끝이군. 끝이야!”

이때, 자신의 스마트폰 벨이 울렸다.

“하! 올게 왔군!”

스마트폰 화면에 대통령 이름이 나오자 힘없이 전화를 받았다.

“메인 존슨입니다.”

- 어떻게 되었나? 아직도 회담 중인가?

“아닙니다. 방금 끝나서 호텔로 돌아왔습니다.”

- 그럼, 바로 결과에 대해서 보고를 해야 할 게 아닌가?

“죄송합니다. 결론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영국이 우리의 요청사항을 거절했습니다.”

- 대체 그게 무슨 말인가? 오전까지만 해도 될 거처럼 말하지 않았나?

“아무래도 한국에서 선수를 친 듯합니다.”

“뭐야? 한국이 선수 칠 때까지 뭐했어?

트럼프 대통령의 화가 난 목소리가 스마트폰을 통해 터져 나왔다.

“그것이! EU 정상회담 실패 후 김명환 암살지시를 했었으나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 암살시도라니?

그때까지 트럼프 대통령은 모르고 있었다. 메인 존슨 장관이 단독으로 진행한 일이었다.

“EU 정상회의 안건 부결 후 영국의 나토군 요청계획까지 방해할 것으로 확인되어 암살지시를 내렸었습니다.”

- 자네 제정신인가?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지시를 내렸단 말인가?

암살에 성공했다면 조용히 넘어갈 문제였지만, 실패한 이상 트럼프 대통령은 책임과 관련하여 선을 그었다.

“네, 알겠습니다.”

- 제길! 뭐 하나 제대로 하는 일이 없군! 자네를 국무부 장관에 앉힌 내가 잘못이지······.

인격 모독적인 언사에 자존심이 상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어떠한 변명도 할 수 없는 메인 존슨 장관은 묵묵히 듣기만 했다.

- 당장 돌아와 사임하게!

“네, 돌아가는 데로 사임하겠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CIA 국장한테 보고 받으셨습니까?”

- 뭘 말이야?

“그, 그게 어제 새벽, 리가 지부 아지트가 한국 정보요원들로부터 습격을 받아 17명 사망했고 한 명만이 크게 다쳤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EU와 관련하여 진행했던 1급 비밀문서 여러 개가 한국 쪽으로 넘어갔습니다.”

- 그게 사실인가?

“네, 그렇습니다. 현재 다른 요원들이 동원되어 수습 중입니다.”

- 이런, 이런!

순간 트럼프 대통령의 입에서 험담할 정도의 온갖 욕설이 쏟아졌다. 일국의 대통령 입에서 나올법한 단어들이 아니었다.

잠시 후 한바탕 욕설을 내뱉고 진정된 트럼프 대통령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 자네는 그곳에서 책임지고 수습한 다음 오도록 하게

★ ★ ★

2024년 1월 21일 16:00,

일본 지바현 가쓰우라시 동단 610km 해상.

끝도 보이지 않는 태평양 바다 위에 드디어 태평양함대의 모든 전력이 모여들었다. 함정마다 500m의 간격을 두고 일본 동해로 항해하는 이들 태평양함대의 위용은 정말로 대단했다.

제7함대 소속 포드급 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함(CVN-79)함이 선두인 가운데 좌우로 제3함대 소속의 항공모함 2척이 대형을 갖추며 항해 중이었다. 그리고 항공모함마다 줌왈트급 구축함과 알레이버크급 이지스 구축함 30여 척이 각자 200여 미터 간격을 두고 호위 대형을 갖추고 있었고 중앙에는 항공모함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는 부켄빌급 강습상륙함 7척과 아메리카급 강습상륙함 4척, 그리고 각종 군수지원함 20여 척이 푸른 파도를 가르며 뒤따르고 있었다.

그리고 깊은 심해에는 몇 척인지 모른 각종 핵잠수함이 조용하고 은밀히 잠항 중이었고 상공에는 해군 소속의 스텔스탐지정보기 E-55N는 물론 공중조기경보통제기의 최신예 모델인 E-2FN AHE 호크아이 1기, 그리고 항공모함 착함용인 해군 소속의 P-3N 해상초계기 3기가 각자 주어진 해역의 바닷속을 샅샅히 탐색하며 비행했고 이러한 공중 전력을 엄호하기 위해 F-35C 라이트닝II 4개 편대가 함께 비행 중이었다.

전비 상태도 아닌 통상적인 항해 중인 것을 고려한다면 다소 과도한 군사적 활동으로 보였다.

어쨌든 입이 떡 벌어질 만큼의 장대한 광경을 연출하는 태평양함대는 2시가 전, 펜타곤에서 수송기를 타고 제럴드 R. 포드함(CVN-78)에 도착한 태평양함대 사령관 루빈 스콧 제독은 곧바로 지휘관 전체회의를 소집했고 ‘2024년 태평양 연합훈련’ 회의는 대략 1시간 정도 진행되었다.

그리고 현재, 각자 함정으로 돌아간 지휘관인 함장들은 본격적으로 ‘2024년 태평양 연합훈련’에 돌입했다.

먼저 제3함대 소속 줌왈트급 구축함 6척과 제7함대 소속 줌왈트급 구축함 2척을 선별하여 총 8척의 줌왈트급 구축함 8척을 가상의 적인 청군으로 지정했다.

이렇게 청군이 된 줌왈트급 구축함 8척은 태평양함대 대형에서 벗어나 최대속도로 일본 동부 쪽으로 항해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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