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전야
2024년 1월 20일 09:00,
남주 서울특별시 용산구 B2 벙커(국군 합동지휘통제소 합참의장실).
내일 오후 1시를 기해 오논강 도하를 시작으로 대대적인 공세를 취하려던 합동참모본부는 북서부전선을 책임지고 있는 제1군 사령관으로부터 보고를 받고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역대 기록을 갈아치울 만큼 엄청난 폭설이 내려, 내일 있을 대공세 작전을 불가피하게 수정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또한, 현재 확인된 기상예보에 의하면 적어도 내일까지는 자바이칼 지방에 지금과 같은 폭설은 계속된다는 기상예보였다.
“이럴 때 7기동군단도 호버시스템이 장착된 기갑군단이었으면 이런 날씨 영향은 받지 않았을 텐데 말이디요.”
윤기윤 합참차장이 아쉽다는 표정을 지으며 혀를 찼다.
“그러게 말입니다. 20기갑사단이라도 먼저 도입을 했었어야 했는데······.”
이은형 육군참모총장 마저 아쉬운 마음을 표하자 반대편에 앉아있던 작전기획본부장인 이훈상 중장이 한쪽 머리를 쓸어올리며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하하, 이거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아! 김 중장! 자네 들으라고 한 말이 아니네.”
“그래도 죄송스런 마음이 듭니다.”
“이거 괜한 소리를 한 듯하군”
초창기 호버시스템이 장착된 기갑전력이 본격적으로 생산되면서 국방부에서는 가장 먼저 실전 배치할 부대를 선정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이때 제20기갑사단(결전)과 제3해병기동사단이 최종 후보로 거론되었고 당시 해병대 사령관이었던 이훈상 중장이 강력하게 요청함으로써 호버시스템이 장착된 기갑전력은 끝내 제3해병기동사단(화룡)에서 가장 먼저 도입하게 되었다.
이런 과거가 있던 탓에 이훈상 중장이 미안한 마음을 갖게 된 이유였다.
잠시 후 작전브리핑실 스크린에는 자바이칼 지방에 전개된 한국군의 숙영지 일대가 정찰위성으로 촬영된 영상이 보였다.
마치 하얀 물감으로 온 세상을 칠한 듯 하얀색 이외의 다른 색은 보이지 않았다. 일부 숙영지에서 나온 병사들이 전차와 장갑차 등의 상단에 쌓인 눈을 쓸어내어 국방색 특유의 색이 보였지만, 쏟아지듯 떨어지는 폭설로 인해 금방 사라지고 있었다.
“내래, 백두산 근처에서도 군 생활을 했디만, 저 정도의 폭설은 본적이 없구만 기래”
시베리아 못지않게 북한의 겨울 폭설도 알아줘다. 하지만, 현재 내리고 있는 폭설 량은 윤기윤 합참차장에게도 흔치 않은 광경이었다.
현재 쌓인 눈 상태를 보자면 모든 전차나 장갑차의 포탑만 보일 정도였다. 즉 허리 이상까지 눈이 쌓였다는 것이었다.
“1군 사령부의 요청대로 내일 대공세 작전을 연기해야 할 듯합니다.”
최종적으로 신성용 합참의장이 결론을 내리자 군 지휘관들과 참모진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그렇다고 마냥 늦출 수는 없는 상황입니다. 대공세 작전이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방어에 들어간 러시아군에게는 호재이니 말입니다.”
김용현 합참차장이 자신의 의견을 내자, 또다시 고개를 끄덕이는 지휘관들과 참모진들, 이에 신성용 합참의장이 말을 이었다.
“김 차장 말이 맞네, 하지만 늦어질수록 우리에게 좋을 건 없지! 하지만, 대공세 작전의 진공 여부 판단은 현지 지휘관인 1군 사령관에게 맡기도록 합시다. 이곳에서 영상으로 보는 거와 실제 현장에서 지휘하는 지휘관과의 시각적 차이점은 분명히 있으니까 말입니다.”
다시 한번 신성용 합참의장이 현재 상황을 정리했다.
“합참의장님 말씀이 맞디요. 뭣보다 현장 지휘관의 판단이 가장 정확하니끼니 말입네다.”
“양 중장은 1군 사령관에게 방금 결정상황을 전달하게. 전적으로 1군 사령관의 판단이 우선이라고 말이야.”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장병들에게 필요한 보급품이 있는지도 물어보게, 우선으로 보내준다고 말이야.”
“네, 알겠습니다. 의장님!”
“좋아! 북서부전선 건은 이걸로 일단락하고 태평양함대 건으로 넘어가지!”
“네, 알겠습니다.”
작전본부장 양민춘 중장의 대답과 동시에 스크린 화면의 영상이 바뀌었다.
“현재 태평양함대의 제3함대와 제7함대의 항로를 보자면 우리가 예상한 합류 해상보다는 남동단 200km 해상에서 수정된 듯합니다.”
제3함대와 제7함대의 기존예상항로와 새롭게 바뀐 예상항로가 각각 붉은 점선과 녹색 전선으로 표기되었다.
제3함대는 9시 방향에서 8시 방향으로 항로를 수정했고 제7함대는 12시 방향에서 1시 방향으로 예상항로가 수정되었다.
“아무래도 우리 연합함대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항로를 수정한 듯합니다.”
“음, 그렇다면 우리 연합함대와의 거리는 얼마 정도인가?”
자세를 고쳐 앉은 신성용 합참의장이 질문을 던졌다.
“예상컨대 대략 600km입니다.”
“음, 600km라, 기존보다 200km는 더 떨어졌군. 그 이유가 궁금하군”
“그 부분은 현재 파악 중입니다.”
“미제 놈들 우리 해군이 모여있으니 지레 겁을 먹은거디요. 안 그렇습네까? 하하하”
윤기윤 합참차장이 털털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다분히 그럴 수도 있지만, 그래도 확실한 의도는 파악해야겠지요.”
“네, 현재 전략분석팀에서 태평양함대 관련하여 분석 중입니다.”
“잠수함 전력은 확인되었나?”
“현재 아레스 초계위성 2기와 각종 초계정찰기 12기가 반경 400km 해상에 대해 초계 중이나 아직은 미 해군 핵잠수함으로 보이는 정체는 탐지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무엇보다 미 해군 핵잠수함 탐지가 중요하니 항공우주군 사령관은 초계 전력을 더 투입하였으면 하네.”
“네, 알겠습니다. 초계위성 2기를 더 추가하도록 하겠습니다.”
항공우주군참모총장인 최진국 대장이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렇게 해주게. 그리고 청와대로부터 특별한 지시가 내려왔다는 강 장관의 연락이 있었네.”
청와대란 말에 모든 시선이 신성용 합참의장으로 쏠렸다.
“무슨 지시입니까?”
작전본부장도 처음 듣는지라 가장 먼저 질문을 던졌다.
두 줄로 길게 앉아있는 각 군 지휘관과 참모진들을 두루 살핀 신성용 합참의장은 뒤에서 대기 중인 보좌관에게 손짓으로 지시를 내리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옆구리에 끼고 있던 문서들을 나눠주기 시작했다.
잠시 후 나눠준 문서를 읽은 각 군 지휘관들과 참모진들의 표정이 각인각색이었다.
“오호호! 이거이! 이거이! 아주 마음에 드는 명령이구만 기래. 으핫핫핫”
화통 삶아 먹은 듯한 웃음을 내뿜는 윤기윤 합참차장과는 다르게 다른 지휘관들의 얼굴에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정말, 이것이 청와대에서 내려진 명령입니까?”
김용현 합참차장이 문서를 들고는 재차 물었다. 이에 신성용 합참의장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드디어 청와대에서 확실히 칼을 든 듯합니다.”
진지한 표정으로 문서를 끝까지 읽어나간 해병대 사령관 임경수 중장이 마치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진작에 그랬어야 했어야.”
아직도 웃음이 얼굴에 가득한 윤기윤 합참차장이 탁자 위에 놓인 문서를 툭툭 치며 말했다.
“임 중장! 기존 수립한 대응 작전 안을 전면 수정해야 할 거 같네.”
“네, 그래야겠습니다.”
“이 부분은 따라 양 중장과 새롭게 작전 안을 수립하도록 하게.”
“네, 알겠습니다.”
양민춘 중장과 임경수 중장이 동시에 고개를 숙이며 대답하자 신성용 합참의장은 고개를 돌려 스크린으로 향했다.
스크린에는 분할된 화면으로 각 군 작전 사령관이 모습을 보였고 그중 공군 작전 사령관인 안상희 중장을 바라봤다.
“공군전력이 상당히 필요할 것으로 보이는데 현재 공군 폭탄 재고량이 어느 정도인가?”
화상회의에 참여한 모든 지휘관에게도 청와대에서 내려온 명령 문서는 스캔 된 자료로 보내졌다.
“군수 사령관과 얘기는 해봐야겠지만 재래식 예비 폭탄을 사용한다면 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알았네. 이번 기회에 재래식 폭탄 재고를 말끔히 처리하면 되겠군”
“네, 상세한 재고량은 따로 보고하겠습니다.”
창고에 쌓여있는 재래식 폭탄마저 회의에 논의될 정도로 청와대에서 내려온 명령 문서는 충격적이었다.
지난 2021년에 발발한 한일전에서 패배한 일본은 전 국토가 전쟁의 화마에 휩싸이며 각종 산업시설이 파괴되고 천문학적인 전쟁피해보상금을 지급하느라 경제는 휘청했고 대불황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일본을 제2의 내수시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기본적인 산업시설과 각종 기반시설의 복구 사업을 대단위로 추진하여 어느 정도 경제위기를 극복할 수 있게끔 조치해 왔다.
이로 인해 전쟁 폐허에서 다시금 기사 희생한 일본은 예전 경제 대국을 꿈꾸며 서서히 경제력을 끌어올리는 상황에서 이제는 헛꿈이 되고 말았다.
청와대에서 내려온 명령 문서의 내용은 이랬다.
일본 재건 사업 전면 폐기, 이에 그동안 무상으로 일본에서 추진했던 산업시설 및 기간시설에 대한 철거였다. 즉, 2021년 패전했던 일본으로 다시금 되돌리겠다는 청와대의 의도였다.
문서상에는 철거라는 단어를 사용했지만, 합동참모본부에서는 대대적인 공격을 가해 파괴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이렇듯 청와대에서 작심하고 칼을 빼 든 이유에는 특사 임무를 맡은 김명환 2차관이 라트비아 리가에서 미국 CIA에 기습공격을 받은 사건이 한몫하기도 했지만, 추은희 대통령은 고심한 끝에 더는 일본이라는 국가를 믿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에 추은희 대통령은 일본 내각이 미국과 작당하고 비밀리에 추진하고 있는 ‘자주국가 선포’에 맞춰 영원히 희생 불가능한 국가로 만들기로 했다.
★ ★ ★
2024년 1월 20일 15:00 (현지시각 16:00),
태평양 해상(제3함대).
항공모함 제럴드 R. 포드함(CVN-78)과 퇴역한 칼빈스 함명을 그대로 승계한 포드급 칼빈슨함((CVN-79)을 중심으로 10여 척의 호위함과 각종 강습상륙함부터 지원함들이 집채만 한 높이의 파도를 가르며 빠르게 항해 중이었다.
몇 시간 전, 여러 정찰전력으로 일본 동해 해상에 한국 해군 함정들이 속속들이 합류하고 있다는 정보를 전해 듣고는 제7함대와의 합류 해상을 수정하여 항로를 방위각 2-5-0 수정한 상태였다.
항공모함이자 제3함대의 기함인 제럴드 R. 포드함(CVN-78)의 3층 함교에는 제3함대 사령관인 지미 더글러스 제독이 뒷짐을 지고는 창문 넘어 멀리 보이는 수평선을 바라봤다.
“현재 7함대 위치는?”
지긋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지미 더글러스 제독이 조용히 입을 열자 옆에서 함께 서 있던 닉 리만도 작전관이 바로 대답했다.
“현재 남서단 440km 떨어진 해상에서 20노트로 항해 중입니다. 내일 오전이면 제7함대와 합류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합류 예상 해상을 남동단 200km 뒤로 수정하면서 제7함대와의 합류 역시 빨라졌다.
“예상보다 빨라졌군. 작전관!”
“네, 제독님!”
“자네는 우리 앞길을 막고 있는 한국 해군 전력을 어떻게 보나?”
갑작스러운 질문에도 닉 리만도 작전관은 이미 생각하고 있었는지 서슴없이 대답했다.
“3년 전이면 몰라도 현재 상황에서 충분히 해볼 만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래? 그러한 근거는?”
“하하, 제독님도 아시지 않습니까? 3년 전의 3함대가 아니라는 것을 말입니다.”
“계속 말해보게.”
“3년 전에는 한국의 EMP탄에 별다른 활약도 하지 못하고 전력에서 제외되었지만, 지금은 그런 식으로 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태평양함대의 모든 함정은 EMP에 대한 대응기술이 적용되었고 하물며 마하 30 이상으로 떨어지는 각종 탄도탄 무기에 대해서도 요격능력을 갖췄습니다. 또한, 사거리가 대폭 늘어난 128MJ급 레일건이 모든 함정에 장착되어 있습니다.”
닉 리만도 작전관은 속사포처럼 제3함대에 대한 자랑을 늘어놨다.
“작전관!”
“네, 제독님!”
“3년간 기술발전을 했다면 한국은 그동안 손가락 빨고 있었을까?”
“그거야, 어느 정도 발전을 했겠지만, 양국의 군사기술 차이는 미미합니다.”
닉 리만도 작전관이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대답하는 것과는 다르게 지미 더글러스 제독의 얼굴은 시종일관 어두워 보였다.
“그래, 미미한 차이일 수 있겠지, 하지만 현대전에서는 그 미미한 차이가 전쟁의 승패에 매우 크게 작용한다네······.”
“네?”
“아니네, 그것보다는 루빈 스콧 제독께선 언제쯤 오신다고 했지?”
“내일 오전으로 늦춰졌습니다.”
“음, 합류하는 시점에 오시는군. 알았네.”
태평양함대 사령관인 루빈 스콧 대장은 펜타곤에서 작전회의 참석한 후 금일 오후 비행기를 타고 제3함대로 오기로 했으나, 일본 동해 상에 한국 해군 출현으로 작전회의는 한 차례 더 진행되면서 복귀시간은 그만큼 늦춰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