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전야
짧게나마 욕설을 내뱉은 박기웅 팀장은 조심스럽게 실드글라스의 배열을 확대하여 CIA 요원들이 보고 있는 모니터들을 확인했다.
대략, 화면에 담긴 장면을 보자면, 자신의 팀이 묵고 있는 호텔은 물론, 이자성 과장이 수술 후 입원 중인 병원과 양정석 대리 일행이 움직이는 장면이 보였다.
즉, 본팀과 1팀 모두 CIA에 감시를 받는 상황이었다. 다행인 것은 김명환 2차관을 비롯한 경호원들을 감시하는 장면은 보이지 않았다.
박기웅 팀장은 잠시 생각에 들어갔다.
‘어떻게 할까? 혼자서 다 뒤집어 버릴까?’
이내 고개를 젓는 박기웅 팀장, 외부에 있는 CIA 놈들까지 모조리 잡으려면 이곳으로 모두 몰아넣고 해치우는 게 나을 거 같았다.
‘그래, 한 놈이라도 놓쳐선 안 되지.’
순간, 박기웅 팀장의 눈에 의심스러운 말한 광경이 목격됐다.
대략 2m에 달하는 크기의 기다란 저격용 총을 탁자 위에 놓고 분해하며 총기 손실을 하는 장면이었다. 딱 보기에 일반적인 대물용 저격용 총으론 보이지 않았다.
‘뭐지?’
강한 의구심에 실드글라스를 통해 총기 정보를 확인하려 했지만, 컨트롤 X-K02 단말기 화면에 일치되는 총기 정보가 없다고 떴다.
‘그렇군, 저게 이 과장님을 다치게 한 그 물건이군.’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박기웅 팀장은 일단 전체적으로 한번 둘러보기로 했다.
10분 후,
다시금 제자리로 돌아온 박기웅 팀장은 컨트롤 X-K02 단말기 만지작거렸다. 지금까지 취합한 정보를 1팀과 본팀에게 보내고자 했다.
- 팀장님! 괜찮으십니까?
- 팀장님! 그쪽으로 넘어갈까요?
무음성 통신으로 여기저기에서 연락이 날아왔다.
- 난 괜찮아! 그리고 현재 위치에서 기다려! CIA 놈들한테 다들 감시받고 있으니까 말이야. 그냥 하던 대로 자연스럽게 행동해!
- 네, 알겠습니다.
- 네, 팀장님
- 강 주임!
- 네, 팀장님!
- 2팀은 언제 도착해!
- 1시간 전에 연락해봤는데 30분 후면 이곳 리가에 도착한다고 합니다.
- 그럼, 기존 장소로 오지 말고 내가 짝은 좌표 보내줘서 그쪽으로 바로 넘어오라고 해!
- 네, 연락하겠습니다.
- 양 대리!
- 네, 팀장님!
- 자네 쪽에 적어도 3명은 붙은 거 같아. 감시 카메라 각도를 보자면 시선 방향을 12시로 봤을 때 왼쪽 9시 방향과 뒤쪽 6시 방향이야.
박기웅 팀장은 CIA 요원들이 감시하는 모니터 상에 비치는 양정석 대리 일행의 각도를 가늠하여 알려줬다.
- 네, 확인하겠습니다.
- 조용히 처리할 수 있겠지?
- 네, 그럼요.
- 좋아! 그럼 2팀이 이곳으로 도착한 후 바로 진행한다. 그때 다시 한번 위치 알려줄게.
- 알겠습니다. 몸조심하십시오.
- 알았다. 강 주임은 2팀에 연락한 후 장비 챙겨서 이쪽으로 넘어와. 호텔에서 감시하는 놈들도 이곳에서 쓸어버려야겠어.
- 그냥 제가 처리하면 안 되겠습니까?
- 안돼! 장비가 져오기 전에 난리 치면 이놈들 그쪽으로 다 출동한다.
- 아! 알겠습니다.
- 저희는 어떻게 합니까?
무음성 통신을 듣고 있던 본팀 오석진 대리가 물었다.
- 본팀은 이 과장님이나 잘 보호해! 그쪽에도 서너 명은 있는 것으로 보여! 병원이고 하니 그곳에서 총격전 벌어지면 문제가 커지니, 세 명 모두 입원실 안에서 지키기만 해!
- 알겠습니다.
속사포처럼 부하들에게 무음성 통신으로 명령을 내린 박기웅 팀장은 컨트롤 X-K02 단말기 화면을 통해 전지량을 확인했다. 화면에 보인 수치는 68%로 표기되었다.
‘68%라······. 충분할 거 같기도 하고······.’
강원일 주임 말대로 본국에서 지원 오는 2팀이 제시간에 이곳으로 온다면 플라즈마 전지량은 충분할 것으로 보였다.
‘그럼, 기다려 볼까?’
얼마의 시간이 지나고, 박기웅 팀장이 잠입한 건물로부터 500m 떨어진 외곽의 숲 가장자리에 크지 않은 엔진음을 내며 뭔가가 착륙했다.
본국에서 지원 온 윤태진 팀장이 이끄는 2팀이었다. 주변 일대가 깜깜해 TCS 모드를 오프하자 CMV-100 스카이버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측면 문이 열리자 각종 장비를 주렁주렁 장착한 윤태진 팀장과 팀원들이 하나둘 하차했다.
- 박 팀장을 구원할 2팀이 왔다. 박 팀장은 나와라!
윤태진 팀장은 하차 후 컨트롤 X-K02 단말기에서 미리 전달받은 무음성 통신 주파수를 맞추고 박기웅 팀장을 호출했다.
- 장난치냐?
- 자식 친구가 왔는데 대답이 꾸리꾸리하다? 하하
- 시끄럽고 어서 이곳으로 와!
- 알았다. 이놈아! 기다려라. 3분이면 간다.
2팀이 제시간에 도착한 것을 확인한 박기웅 팀장은 본팀과 1팀에게 지시를 내렸다.
- 2팀 도착했으니 슬슬 시작하자고. 양 대리는 놈들 위치 다 확인되었어?
- 네. 팀장님! 3명인데 모두 확인되었습니다.
- 오케이 본팀!
- 네, 팀장님! 본팀은 무리하게 놈들 제압하려 하지 말고 과장님 보호에 신경 써!
- 알겠습니다.
- 강 주임!
- 네, 팀장님!
- 강 주임은 장비 챙겨서 놈들 꼬리 물리고 이곳으로 와!
- 알겠습니다.
- 자! 그럼 준비들 하고 있어!
박기웅 팀장은 무음성 통신을 마치고 2팀을 마중 나가기 위해 지하주차장을 통해 밖으로 나왔다.
먼발치에서 TCS(투명은폐시스템) 모드를 활성화한 푸른 인형 여러 개가 실드글라스를 통해 보였다.
“어이! 박 팀장! 나왔어!”
가장 앞서서 달려온 윤태진 팀장이 TCS(투명은폐시스템) 모드를 풀고는 반갑게 인사했다.
“오냐 수고했다.”
“몇명있는데?”
“대략 10명”
“뭐? 10명? 야! 그 정도는 너 혼자 쓸어담을 수 있지 않냐?”
“네가 해볼래?”
“크크, 까칠하긴 자식!”
“가자! 이 과장님 다치게 한 놈들 때려잡으러”
“잠깐만”
- 본팀! 경계하고 양 대리 시작! 강 주임은 출발했나?
- 네, 알겠습니다.
- 지금 차 타고 열라게 가고 있습니다. CIA 놈들 제 꼬리 물고 잘 따라오고 있습니다.
- 알았다. 우리도 시작한다.
무음성 통신 후 2팀 오혁수 대리로부터 KS2 레이저 라이플을 건네받은 박기웅 팀장은 전지량을 확인하고는 이동하자는 손짓을 했다.
그러자 5명은 일제히 TCS(투명은폐시스템) 모드를 활성화하고는 지하주차장을 통해 진입에 들어갔다.
- 금방 끝내고 저녁 먹자! 배고프다.
윤태진 팀장은 뭐가 그리 신났는지 가장 앞장서서 진입했다.
뚜둣! 뚜둣!
인버터 모드 상태에서는 개인화기로 의심되는 물건을 착용하고 있는 상대는 붉은 인형으로 표기되었다.
- 복도 둘! 왼쪽 방 셋! 오른쪽 방 둘!
윤태진 팀장은 확인한 상대에 대한 위치 정보를 무음성 통신으로 알렸다.
- 동시 진압한다. 하나, 둘, 셋!
쭈웅! 쭈웅! 쭈웅! 쭈웅! 쭈웅!
먼저 복도에 있는 두 명을 요리한 윤태진 팀장과 박기웅 팀장은 양쪽 방으로 갈라졌다.
갑작스러운 총성에 방 안에 있던 CIA 요원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는 이내 각자의 무기를 들고 대응했다.
탕! 타타탕! 타타탕!
TCS(투평은폐시스템) 모드 상태로 안심하고 방안으로 들어왔던 윤태진 팀장은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총알 사례에 깜짝 놀라며 옆으로 굴렀다.
- 이 자식들 우리가 보이는가 봐! 다들 조심해!
반대편 방으로 들어갔던 박기웅 팀장 역시 정확히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총탄에 깜짝 놀라며 벽 뒤로 물러섰다.
순간 찰라로 본 CIA 요원들의 얼굴에는 마치 VR 드리프트 같은 것을 쓰고 있었다. 아무래도 그것으로 TCS 모드인 우리를 감지하는 듯 했다.
- 다들 TCS 모드만 믿지 말고 조심해!
타타탕! 타타탕! 타타타타타타타탕!
벽면 관통하고 날아오는 총탄에 무음성 통신을 하던 박기웅 팀장은 몸을 쑥이며 앞으로 굴렀다. 하지만, 반대편 방에서는 어떻게 아는지 착탄자국이 박기웅 팀장을 따라 벽면을 강타했다.
팟파팟팟!
‘요 자식들 봐라!’
예상치 못한 반격에 박기웅 팀장은 복도 끝까지 기어가 계단 아래쪽으로 몸을 숨겼다. TCS(투평은폐시스템)이 아무 쓸모가 없게 되어버렸다.
티잉!
복도 바닥을 따라 뭔가가 굴어오는 듯하더니 뭔가가 분리되는 소리와 함께 엄청난 폭발과 화염이 박기웅 팀장을 덮쳤다.
콰앙!
강력한 폭발위력에 그만, 박기웅 팀장은 계단을 따라 굴렀다.
파파팍팍!
“으윽!”
계단 모서리에 찌며 굴러떨어진 박기웅 팀장은 쑤셔대는 고통에 몸을 웅크렸다. 그러자 희뿌연 연기 사이로 인형 하나가 불쑥 튀어나오더니 총구를 정확히 가슴에 지향했다.
확실히 CIA 요원들이 얼굴에 쓰고 있는 저 장치로 투명화 상태인 대외정보과 요원들을 볼 수 있는 듯했다.
박기웅 팀장은 순간적으로 오른발을 휘둘러 자신을 향해 막 방아쇠를 당기려던 CIA 요원의 다리를 걸어 넘어드렸다. 그리고는 바로 뒤 허리춤에서 조그마한 칼을 꺼내 CIA 요원의 목을 그었다.
스윽!
그어진 목에서 시꺼먼 피가 폭포수 쏟아지듯 뿜어져 나왔다. 이에 얼굴과 몸에 피를 뒤집어쓴 박기웅 팀장은 CIA 요원이 얼굴에 쓰고 있는 VR 고글 같은 것을 벗겼다. 그리고 자신의 실드글라스를 벗고는 섰봤다.
역시나, 실드글라스보다는 표현되는 형상이 흐릿하긴 했어도 자신의 팔을 확인한 결과 붉은 색채로 뚜렷하게 보였다.
‘미국놈들 많이 발전했는데? 하기야 그동안 그렇게 당했으니 미국정보부도 대책은 마련해왔겠지······.’
이렇게 낡은 건물에서 CIA 요원과 박기웅 팀장을 비롯한 대외정보1과 2팀간에 치열한 교전이 벌어지는 가운데 양정석 대리 쪽에서 감시하며 따라붙던 CIA 요원들을 제압하는 데 성공했다.
일단 사람들이 없는 공원 쪽으로 유인한 양정석 대리와 파트너인 윤길수 주임은 TCS(투평은폐시스템) 모드로 갑자기 모습을 감추고 뒤돌아 뒤에서 공격한 탓에 쉽게 제압할 수 있었다.
한편, 이자성 과장이 입원한 병원에 있던 CIA 요원들은 자신들의 아지트가 습격을 받았다는 연락을 받고는 철수했다. 아마도 멀지 않은 장소였기에 아지트를 지원하기로 한듯했다.
더불어 각종 장비를 가지고 CIA 아지트로 향하던 강원일 주임은 중간 지점에서 쫓아오던 CIA 요원들에게 공격을 받았다. 이에 도로 한복판에서 총격전을 벌였다.
이들 역시 아지트가 습격을 받았다는 연락을 받은 상황에서 쫓고 있는 상대가 자신들의 아지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는 총격을 가한 것이었다.
이리저리 핸들을 돌리며 쏟아지는 총탄을 피하는 강원일 주임은 죽을 맛이었다. 가끔 운전석 시트를 뚫고 날아온 총탄을 맞고 밀려오는 고통에 인상을 썼지만, 나름 이쪽 계통에서 잔뼈가 굵은 강원일 주임은 좁다란 골목으로 방향을 돌렸다.
- 팀장님! 이놈들 눈치챘든 합니다. 제가 여기서 그냥 끝내겠습니다.
- 할수 있겠어?
- 2명쯤이야 누워서 떡 먹기 아닙니까?
- 알았다. 조심해!
- 옛 설!
10여 분 후, 끊이지 않을 거 같았던 총성이 멈췄다. 낡은 건물 곳곳에는 희뿌연 연기와 화약 냄새가 진동했다.
쉽게 생각했다가 된통 당한 박기웅 팀장과 윤태진 팀장은 하도 어이가 없었는지 서로의 담배에 불을 붙여주고는 실성하듯 낄낄거렸다.
‘야! 이거 그만둘 때가 된 거 같다.’
깊게 빨아들인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윤태진 팀장이 신세 한탄하듯 말하자 이에 박기웅 팀장은 아까 계단에서 구르며 타박상을 입을 몸을 여기저기 만지며 대답했다.
“우리 퇴사하고 닭집이나 차리자! 골병들겠다. 골병들겠어!”
“닭집? 그래 마! 지금까지 이런 맛은 없었다. 갈비인가? 통닭인가. 이 영화 안 봤냐?”
“아! 그 영화?”
이때 2팀! 오혁수 대리가 다가와 말을 건넸다.
“팀장님! 한 놈 살아있는데요? 어떻게 할까요?”
윤태진 팀장이 귀찮다는 듯 한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
“그냥 내버려 둬! 챙길 물건들만 챙기고 뜨자! 경찰 올 때 됐다.”
“네, 알겠습니다.”
“다른 데는 어떻게 되었냐?”
필터 부위까지 담배를 피운 윤태진 팀장이 창밖으로 꽁초를 던지며 물었다.
“거긴 우리가 한창일 때 벌써 끝났다.”
“강 주임 쪽도?”
“응!”
“자식들 빠른데?”
“대충 정리되었으면 우리도 가자!”
“오케이!”
아지트를 지원하기 위해 병원에서 급히 온 CIA 요원까지 확실히 제거한 박기웅 팀장과 윤태진 팀장 일행은 필요한 자료만 챙기고는 급히 낡은 건물에서 빠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