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20화 (520/605)

폭풍전야

2024년 1월 20일 01:00,

일본 자바현 가쓰우라시 동단 120km 해상.

시베리아 북동풍을 동반한 폭설이 내리는 북서부전선과는 다르게 이곳 마리아나 해구가 지나가는 가쓰우라 동단 120km 태평양 해상에는 바람 한 점 없이 고요했다. 또한, 밝게 비치는 달빛에 반사된 물결들이 마치 은하수처럼 반짝반짝했다. 보기만 해도 입이 절로 벌어지고 감탄사가 끊이지 않을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이러한 멋진 광경을 한동안 태종대왕함(DDG-996) 함교 밖 난간에서 바라보던 김이원 제독은 태종대왕함(DDG-996)의 함장인 유명훈 대령의 목소리에 뒤돌아봤다.

“제독님! 잠시 후면 제7기동전단도 작전 해역에 진입한다고 보고입니다.”

이미 이곳 해상에는 제2함대 제2구축함전단 소속 구축함 6척, 제2호위함전단 소속 9척, 그리고 아직 해군에서 정식으로 취역하지 못한 2척의 호큘라 순양함인 차리석함(CG-1105)과 강우규함(CG-1106)이 멋진 자태를 뽐내며 대열 선두에서 항해 중이었다. 보기만 해도 믿음직해 보였다.

“그래? 딱 시간 맞춰 왔군”

왼손목에 찬 시계를 확인한 김이원 제독은 함교에 들어가기 전 마지막으로 바닷냄새를 맡고자 숨을 길게 들이마셨다.

“하하, 제독님 춥습니다. 어서 들어가시지요.”

“그러지”

함교에 들어온 김이원 제독은 중앙 상단에 설치된 스크린 화면을 통해 현재 제2함대가 대열을 이루고 있는 가운데 제7기동전단으로 표기된 전술기호가 다가오는 것을 확인했다.

“유 함장!"

"네, 제독님“

“안 제독에게 전대별로 각각 차리석함과 강우규함 뒤쪽으로 삼각대열로 전개하라고 전하게.”

“네, 알겠습니다.”

함장인 유명훈 대령의 대답과 동시에 함교에서 두 상관의 대화를 듣고 있던 통신담당 장교가 추가 지시가 없더라도 알아서 제7기동전단에 명령을 하달했다.

잠시 후 명령을 받은 제7기동전단의 호큘라 구축함 6척은 각각 3척씩 방향을 틀고 항해하는 모습이 스크린으로 보였다.

잠시 후, 함교 내 또 다른 스크린에 불이 켜지고 강직해 보이는 사내가 모습을 보였다.

제7기동전단 전단장인 안형균 제독이었다.

- 충성!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제독님!

“그래, 오랜만이군, 그래 잘 지냈는가?”

- 네, 별 탈 없이 잘 지내고 있었습니다. 제독님은 어떠셨습니까?

“나야 뭐 다를 게 있겠나? 자네가 러시아 해군 놈들과 싸운다고 고생하는 동안 난 편안하게 손가락 빨고 있었다네.”

“하하하”

김이원 제독의 농담에 함교는 일순간 웃음바다가 되었다. 제7기동전단 함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해군 제독 중 아재 개그나 각종 유행하는 개그를 서슴없이 말해 가장 유쾌한 제독으로 소문이 날 정도였다.

- 제독님 그럼 이번엔 제가 손가락 좀 빨면 안 되겠습니까?

농담에 농담으로 건네는 안형균 준장의 말에 김이원 제독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예끼 이 사람아, 손가락 빠는 건 내 전문이야. 미안하지만 이번에도 선두에서 고생 좀 해줘야겠어!”

- 네? 하하하, 알겠습니다. 제독님, 그럼 내일 오전 회의에서 뵙겠습니다.

“그래, 오느라 고생했으니 푹 쉬게나”

- 충성! 이만 들어가겠습니다.

거수경례를 마지막으로 안형균 준장의 모습이 사라지자 유명훈 대령이 다가와 말을 건넸다.

“제독님, 내일 오전 회의가 끝나면 기함인 을지문덕함으로 가시지요?”

“왜? 내가 이곳에 있는 게 싫은가?”

“하하, 어찌 싫겠습니까? 연합함대를 지휘하시려면 우리 함보다는 최신 함이자 기함인 을지문덕함이 더 낫지 않겠습니까? 방어능력도 더 낫고 말입니다.”

제1차 동북아 전쟁이 끝난 후 낙후된 KD-1급 구축함 3척은 모두 퇴역시켰다. 대신 함명을 그대로 계승한 KD-4급인 호큘라 구축함을 추가로 3척을 건조하여 취역시켰다. 을지문덕함(DDG-1013) 역시 함명을 그대로 계승하여 제2함대 기함이자 제2구축함전단의 기함으로 2023년 2월에 취역했다.

KD-4급 을지문덕함(DDG-1013)은 초도함인 광해군함(DDG-1001)보다 성능적으로 여러 가지가 업그레이드된 버전의 호큘라 구축함이 되었다.

“자네는 이 함장 생각은 안 하나?”

김이원 제독이 말한 이 함장은 을지문덕함의 함장인 이덕경 대령을 말하는 것이었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요?”

“생각해보게 을지문덕함 함교에 나를 비롯해 3함대 참모진과 7전단장 그리고 참모진까지 우글우글 모여있으면 이 함장 심정이 어떻겠나?”

“아! 그거야······.”

“그리고 나는 이곳이 좋다네. 전쟁이 끝날 때까지 여기서 자네 부려먹으면서 있을 테니까 그렇게 알고 가라는 소리는 말게나. 허허허”

“하하하, 알겠습니다. 제독님”

“자! 그럼, 마지막으로 코쟁이들 위치나 확인해볼까?”

역시나 함교 내 장교들은 대화 내용만 듣고는 바로 스크린에 태평양 함대 위치를 투영시켰다.

“음, 신나게 오고 있구먼,”

제3함대를 비롯해 연합함대를 표기한 파란색 전술기호 방향으로 동쪽과 남쪽에서 붉은색 전술기호로 표기된 제3함대와 7함대가 예상 항로를 따라 항해하고 있었다. 제3함대는 980km, 제7함대는 880km였다.

“예상대로 내일 밤이면 예상 해상지점에서 합류할 듯합니다.”

유명훈 대령 역시 유심히 스크린을 보고는 말을 건넸다.

“그렇게 말이야. 오늘 밤까지는 평시체제로 유지해도 될 거 같군. 좋아! 난 이만 쉬러 가겠네, 당직체제로 전환하고 자네도 좀 쉬게”

“네, 푹 쉬십시오. 제독님!”

“함교에서 함대장님 이동하십니다.”

김이원 제독이 함교를 벗어나자 함 전체에 개방된 통신라인으로 함대장의 이동상황을 전달했다.

★ ★ ★

2024년 1월 20일 03:00 (라트비아시각 19일 19:00),

라트비아 리가 시내.

6시간 전, 박기웅 팀장 계획대로 카페에서 나온 둘은 택시 여러 대가 대기하고 있는 곳으로 자연스럽게 걸어간 후 급히 나눠 택시를 탔다. 그리고는 양쪽 갈래로 흩어졌다.

그러자 갓길에 세워져 있던 SUV 차량이 급발진하듯 출발했으나, 예상과는 다르게 2명을 남기고 강원일 주임이 탄 택시를 쫓아갔다. 하차한 2명은 서둘러 다른 택시를 타고 박기웅 팀장이 탄 택시를 쫓았다.

뒷좌석에 앉아 이를 확인한 박기웅 팀장은 찡긋 인상을 썼다.

‘아마추어들은 아니군.’

계획이 틀어진 박기웅 팀장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 팀장님! 이놈들 양 갈래로 나뉘었는데요?

강원일 주임 역시 이를 확인했는데 무음성 통신으로 알려왔다.

- 그러게 말이야. 일단 강 주임은 계획했던 대로 호텔로 가!

- 팀장님은요?

- 생각 좀 해보고······.

- 알겠습니다.

박기웅 팀장은 조수석 백미러로 쫓아오는 택시를 주시하며 좋은 방법을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이내 뭔가를 생각했는지 지갑에서 100유로 지폐 두 장을 꺼내고는 택시 기사에게 건넸다.

“뭐요? 아직 도착도 안 했는데?”

“그냥 먼저 드리는 겁니다. 시내 한 바퀴 시원하게 돌아주세요.”

“허허, 그럽시다.”

60살 정도 되어 보이는 택시 기사는 횡재했다는 표정을 짓고는 얼른 200유로를 받고는 털털한 웃음을 지으며 운전했다.

박기웅 팀장은 이곳저곳을 보고는 마땅한 곳을 찾았다. 그리고 500m 전방에 큰 사거리가 있었다.

“저기 기사님! 전방 500m 사거리에서 좌회전해주세요. 그리고 좌회전할 때 4차선으로 꺾어주세요.”

“그러다가 우회전하는 차량이 있으면 사고 납니다.”

“상황 봐서 해주세요.”

“뭐 그럽시다. 허허”

“그리고 음악 볼륨 좀 크게 해주시겠습니까?”

“아! 클래식을 좋아하시는군요?”

“네, 하하”

대충 대답한 박기웅 팀장은 멀리 보이는 신호등을 주시했다. 마침 좌회전으로 비켰다. 이에 택시는 자연스럽게 1차선으로 붙었고 뒤쫓아오는 택시 역시 1차선으로 진입했다.

그리고 어느덧 막 사거리까지 진입한 택시가 좌회전하면서 1차선으로 붙자, 박기웅 팀장은 왼쪽 손목에 장착한 컨트롤 X-K02 단말기 화면을 터치했다.

그러자 박기웅 팀장은 순식간에 투명해지면서 모습을 감췄고 좌회전하는 탓에 택시 오른쪽이 뒤쫓아오는 택시 시야로부터 사각이 만들어졌다.

순간, 박기웅 팀장은 TCS 모드 상태에서 그대로 택시 문을 열고 길가로 몸을 날리며 왼손으로 열린 택시 문을 쳐서 닫았다.

순식간이었다. 동물적인 몸놀림으로 도보 위로 몸을 날린 박기웅 팀장은 몇 바퀴를 구르고는 이내 중심을 잡았다.

눈 깜짝 사이에 벌어진 터라 택시 기사는 박기웅 팀장이 사라진 줄도 모르고 계속해서 운전했고 뒤쫓던 택시 역시 눈치채지 못했는지 그대로 따라갔다.

박기웅 팀장은 주변을 한번 살피고는 지나가는 사람들이 눈치채지 않게 TCS(투명은폐시스템)를 오프했다. 순식간에 모습을 보인 박기웅 팀장은 곧바로 지나가는 택시를 타고 자신을 뒤쫓던 택시를 역으로 따라갔다.

10여 분이 지났을 때쯤, 처음 박기웅 팀장을 태웠던 택시가 갓길에 세우고는 택시 기사는 귀신에 홀린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택시 주변을 왔다 갔다 하면 쳐다봤다. 이성적으로 생각했을 때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택시 기사가 이렇게 하늘을 보고 뭐라 뭐라 중얼거리고는 다시금 택시 안팎을 살피는 행동을 하자 뒤쫓아오던 택시가 섰다. 그리고는 육중한 체격의 백인 2명이 택시기사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이런 장면을 거리를 두고 택시 안에서 지켜본 박기웅 팀장은 자기도 모르게 피식 웃고 말았다.

이렇듯 대낮에 시내에서 난리 아닌 난리를 친 후 몇 시간이 지난 현재, 박기웅 팀장은 갓길에 세워둔 택시 안에서 호텔 현관을 지켜보고 있었다.

박기웅 팀장을 추적하다가 놓친 이들은 한동안 시내를 돌아다니다가 포기했는지 다시금 SUV 차량과 합류했다. 이들이 현재 지키고 있는 곳은 강원일 주임이 도착한 3성급 호텔이었다.

‘이것들이 언제부터 우리 뒤를 밟았을까? 쉽게 볼 놈들이 아닌 건 확실하고, 언제까지 여기서 죽치고 있을 거야? 좀 움직여라. 자식들아.’

마음속으로 욕설을 내뱉고 있을 때 택시 기사가 고개를 돌려 쳐다보며 조금은 화난 어투로 말을 걸어왔다.

“헤이! 언제까지 타고 있을 거야? 중간 정산이라도 해줘야지? 너 때문에 나 하루 공쳤다고.”

“오케이, 오케이,”

영어가 아닌 라트비아어로 말해지만, 표정과 어투로 봐서 대충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 있었다. 이에 박기웅 팀장은 손가락으로 오케이 사인을 하고는 바로 지갑에서 가지고 있는 유로 지폐를 모두 꺼내 택시 기사 손에 쥐여줬다.

대충 800유로는 되는 듯했다. 순간 험악한 표정을 짓고 있던 택시 기사의 표정이 환하게 바뀌었다.

“됐지? 오늘 하루 대여한 값이야. 알았어?”

알아듣든 말든 영어로 말한 박기웅 팀장은 좋아하는 택시 기사를 뒤로하고 지루한 기다림을 이어갔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 때쯤, SUV 차량에서 2명이 내리고 호텔 로비로 갔다. 그리고 SUV 차량이 출발했다.

“헤이! 헤이! 저 차! 저 차! 쫓아!”

이상하게도 택시 기사는 알아들었다는 듯 잉크를 하고는 거칠게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부웅!

- 강 주임! 나 지금 우리 호텔에서 SUV 차량 쫓아간다. 현재 호텔에 2명이 내려서 로비로 걸어갔으니까 조심해! 그놈들 사진은 바로 보내줄게.

실드글라스로 SUV 차량에서 내린 자들을 찍은 박기웅 팀장은 즉시 연동된 컨트롤 X-K02 단말기를 통해 강원일 주임에게 전송했다.

“자! 이제 네놈들이 어떤 놈들인지 확인해볼까?”

한참을 시내 도로를 달린 SUV 차량은 조금은 한가해진 외곽으로 빠지고는 허름하고 낡아 보이는 건물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그렇지! 드디어 잡았다. 개자식들!’

“헤이! 스탑! 스탑!”

끼이익!

낡은 건물 앞에 택시가 멈추자 박기웅 팀장은 택시 기사에게 엄지 척을 하고는 바로 택시에서 내렸다. 그러자 택시 기사 역시 엄지 척을 하고는 바로 사라졌다.

길가에 가로등도 없어 주변 일대가 컴컴했지만, 박기웅 팀장은 실드글라스 비전 모드를 적외선 모드로 전환해 대낮처럼 볼 수 있었다.

몇 시간을 택시에서만 앉아있었던 터라 몸이 뻐근했던 박기웅 팀장은 간단한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고는 바로 조사에 들어갔다.

먼저 지하주차장으로 진입한 박기웅 팀장은 고급 SUV 차량 여러 대가 주차된 것을 보고는 제대로 찾았다는 직감을 했다.

조심스럽게 계단을 따라 위층으로 올라가자 영어로 말하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들렸다. 적어도 10명 이상으로 보였다. 생각보다 인원이 많다고 판단한 박기웅 팀장은 다시금 TCS(투명은폐시스템)을 활성화하고는 본격적인 조사에 들어갔다.

복도를 따라 조심스럽게 걸어가던 중 박기웅 팀장은 열린 문틈으로 빛이 새어 나오는 방 쪽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방안을 확인한 박기웅 팀장의 표정이 일순간 일그러졌다. 방안에는 CIA가 써진 방탄조끼를 입은 사내 여러 명이 화기를 점검하거나 아니면 기다란 탁자 위에 설치된 모니터들 주시하며 뭔가를 하고 있었다.

“CIA 개자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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