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18화 (518/605)

폭풍전야

2024년 1월 19일 13:00,

남주 서울특별시 용산구 B2 벙커(국군 합동지휘통제소 합참의장실).

조금 전, 작전회의실에서 북서부전선을 책임지고 있는 1군 사령관으로부터 전개 상황과 진공 일정 등에 대해서 브리핑을 받고 잠시 쉴 겸 의장실로 돌아온 신성용 합참의장은 무거운 몸을 소파에 묻히고는 보좌관이 가져온 따뜻한 커피를 한 모금 젖혔다.

하루에 서너 시간밖에 자지 못하는 상황이 2개월째 이어지자 몸은 몸대로 마음은 마음대로 지쳐있었다.

가족뿐 아니라 여러 지휘관도 건강을 생각해 충분한 휴식을 취하하고 권유를 하지만, 대한민국 국군을 책임지고 있는 군 최고 지휘관으로서 그러한 고충은 이겨내야만 했고, 앞서 제1차 동북아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던 현재는 국방부 장관을 역임하고 있는 강이식 전 합참의장만큼 잘하고 싶은 욕심에 밤낮을 가리지 않고 군 복무에 최선을 다해왔다.

“보좌관! 정보본부장 좀 호출해 주세요.”

- 네, 알겠습니다. 의장님!

커피잔을 탁자에 내려놓은 신성용 합참의장은 인터폰을 통해 보좌관에 지시를 내렸다.

잠시 후 노크 소리와 함께 합동참모본부 정보본부장인 오동권 중장이 들어왔다.

“충성!”

절도 있는 거수경례를 한 후 오동권 중장은 모자를 벗고는 맞은편 소파에 앉았다.

“불으셨습니까? 의장님!”

“미안하네. 자네도 이것저것 바쁠 텐데 불러서 말이야.”

“무슨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저보다 의장님께서 더 바쁘신데 말입니다.”

“하하, 그런가? 아무튼, 다른 게 아니고 저번에 알아보라고 한 건 어떻게 되었나?”

“아! 미국 정찰위성 말씀이십니까?”

“그래, 진전은 있나?”

지난 1일, 러시아 및 신중국 2개 국가와 현대 공중전에 있어서 역사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의 대규모 공중전을 벌인 대한민국은 생각 이상의 적잖은 피해를 보고 그 원인 미국의 정찰위성일 수 있다는 판단하에 미국 국방성에 공식적으로 러시아 상공에서의 정찰위성 임무를 철회해달라 요청했었다.

하지만, 예상했던 대로 미국 국방성은 정상적인 정찰활동이라며 단번에 거절했고 이에 신성용 합참의장은 군 정보부를 통해 미국 정찰위성에 대한 정보를 밝혀내라는 명령을 오동권 정보본부장에게 내린 바 있었다.

현재까지 밝혀진 정보로는 2023년 2월에 모델명 X-350 아틀라스 정찰위성이란 이름으로 개발되어 3월에 우주에 쏘아졌고 현재 총 12기가 저궤도 상에서 운용되고 있다는 것뿐이었다. 실질적으로 X-350 아틀라스 정찰위성이 어떠한 능력을 갖췄는지는 밝혀내지 못하고 있었다.

“송구스럽습니다. 며칠 전에 보고 드린 후 진척상황은 없습니다. 현재 정보사령부나 기무사령부 그리고 각 군 산하의 모든 정보부서의 전력을 총동원하여 알아보고 있으나, NASA에서 막힌 상태입니다.”

현재 NASA는 미국의 펜타곤이나 워싱턴의 백악관보다도 외부 해킹과 관련한 보안체계가 완벽하게 갖춰져 있었다. 지난 2015년 자신들의 위성 전산망을 통해 제51구역이 해킹당한 사건을 계기로 NASA는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부어 절대로 외부에서 해킹할 수 없는 보안시스템을 구축해놨다.

이로 인해 군 내에서 내로라하는 정보 관련 장교와 전산병들이 X-350 아틀라스 정찰위성의 정보를 획득하기 위해 NASA의 전산망을 해킹하려 했지만, 솔직히 씨도 박히지 않는 상황이었다.

“음, NASA라······. 전혀 방법이 없는 건가?”

“50여 명이 달라붙어 해킹 시도를 하고 있지만, 아직은 뚫을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할 거까지 없고······. 국정원에도 지원 요청을 하게.”

“국정원에 말입니까?”

“그래, 국정원에도 실력 좋은 사람들이 많지 않나? 그중에 남궁 뭐라 했지?”

갑자기 이름이 떠오르지 않자 신성용 합참의장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의장님! 혹시 남궁원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래! 맞아 남궁원! 그 친구가 실력은 대한민국에서 최고라고 언뜻 들은 거 같은데 말이야.”

“저기, 의장님! 남궁원은 이제 국정원 소속이 아닙니다. 퇴사한 지 꽤 되었고 저번 톈진 VIP급 구출 작전 때 구출했던 인물 중 한 명이 바로 남궁원이었습니다.”

톈진 VIP급 구출 관련하여 국가정보원으로부터 상세한 정보를 받았지만, VIP급으로 지정된 구출할 인물에 관한 정보는 보안유지를 위해 상당히 제약된 정보만 받았기에 신성용 합참의장은 모르고 있었다.

“그게, 정말인가?”

“네, 그렇습니다. 사실 저 역시 NASA 건으로 국정원에 있는 사이버보안국 척혁준 국장과 잠시 얘기를 나누다가 알게 된 내용입니다.”

“음, 그렇군. 그런데 말이야. 퇴사한 지 오래되었는데 톈진에서 사고를 당한 건가?”

“국정원에서도 남궁원의 도움이 필요했었던 듯합니다. 그래서 임시로 복직하여 임무를 수행한 것으로 압니다.”

“아! 살신성인이군, 남궁원의 상태는 어떤지 알고 있나?”

“듣기로는 국립중앙의료센터에서 치료를 받다가 며칠 전에 퇴원했다고 합니다.”

“그래? 국정원장께는 내가 정식으로 요청할 때는 자네는 척혁준 국장과 함께 남궁원 그 친구 상황 확실히 파악하고 도와줄 수 있는지 확인해봐!”

“의장님, 얼마 전까지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 돌아온 남궁원 씨에게 또 부탁하는 것이······.”

이동권 중장이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말끝을 흐리자 신성용 합참의장이 그윽한 눈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지금은 전쟁 중이네. 그리고 며칠 후면 미 해군과 전면전에 가까운 해상전이 벌어질지 몰라. 자네의 마음 충분히 알지만, 우리 역시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거야. 남궁원 그 친구와 대면한 적은 없지만, 충분히 우리 부탁을 들어줄 인물이라 생각하네.”

“네, 알겠습니다.”

★ ★ ★

2024년 1월 19일 17:00,

남주 서울특별시 송파구 잠실본동 LF 아파트(1103호).

3일 전, 국립중앙의료센터에서 퇴원하고 집으로 돌아온 남궁원은 마치 백수처럼 때되면 밥먹고 나머지 시간은 잠과 TV시청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요새 TV에서는 재미난 예능 프로그램이나 드라마보다는 합병된 신중국의 후속 조치 내용과 한러전 전장 상황만이 주야장천 흘러나오고 있었다. 특히, 신중국의 모든 영토가 대한민국에 귀속되면서 부동산 투기현상이 불처럼 불고 있었다.

오늘도 TV 채널에서는 부동산 전문가랍시고 살이 두룩두룩 찐 남자가 나와 폐허로 변해버린 도시의 땅을 지금 사야만 후에 도시복구사업이 진행된 후 큰돈을 만질 수 있다니 없다니 하면서 떠들어대고 있었다.

“어휴! 심심해 죽겠네. 전쟁 통에 재미난 예능 프로는 고사하고 죄다 시민들 마음속에 헛바람만 불게 하는 저런 프로만 나오니 원!”

리모컨을 던진 남궁원은 소파에 벌러덩 누워 천장을 바라봤다. 어제부터는 아내인 이혜진이 자신을 대신해 회사에 출근한 상태라 집에는 덜렁 혼자 있었다.

퇴원 당시 담당 의사는 적어도 10일 동안은 아무 생각 없이 푹 쉰 다음 일상생활을 하라는 당부를 했다. 이에 이혜진은 회사며 뭐며 아무것도 하지 말고 집에서 푹 쉬라며 명령 아닌 명령을 내린 상태였다. 아내에게 꼼짝 못 하는 남궁원으로서는 순종하듯 집에서 어슬렁거리는 좀비모드 중이었다.

“뭐할까. 게임이나 할까? 우리 사랑스러운 와이프 퇴근 시간도 다가오는데 저녁 찬거리나 사러 마트나 나갈까?”

천장을 보면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중,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

띠동! 띠동!

“뭐지? 택배인가? 택배 시킨 거 없는데?”

현관 모니터를 보니 척혁준 국장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군 정복을 입은 군인이 바로 뒤에 서 있었다.

“어라? 척 국장님이 무슨 일이지?”

남궁원은 하얀 티에 알록달록한 수면 바지를 입은 채로 현관으로 달려가 문을 열었다.

“몸은 괜찮은가?”

“아! 척 국장님! 어서 오세요. 하하, 몸은 이렇게 멀쩡합니다.”

양손을 벌리고 괜찮다는 몸짓을 한 남궁원은 현관문을 활짝 열었다.

“아! 이쪽은 합동참모본부 정보본부 소속의 김태석 대령일세!”

척혁준 국장이 뒤에 서 있는 군인을 소개했다.

“안녕하십니까? 김태석이라고 합니다.”

“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아차! 어서 들어오세요. 하하”

잠시 후 거실 소파에 척혁준 국장과 김태석 대령이 앉자 남궁원은 주방으로 달려고 아메리카노 커피 두 잔을 내왔다.

“커피 괜찮으시죠? 하하 가져오기 전에 물어보고 가져와야 했는데, 제가 너무 정신이 없습니다. 하하”

“아! 커피 좋아합니다. 괜찮습니다.”

커피잔을 받은 김태석 대령은 하얀 김이 피어오르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음, 향기도 좋고 맛도 일품이네요?”

“하하, 아내가 커피 마니아라······. 가나 커피만 씁니다.”

이렇게 어색한 대화가 이어지는 가운데 남궁원이 맞은편 소파에 앉자, 척혁준 국장은 집까지 직접 방문한 목적을 말했다.

“남궁 과장! 사전에 말없이 불쑥 찾아와서 미안하네.”

“아닙니다. 국장님! 심심하던 차였습니다.”

“다른 게 아니고, 합참에서 NASA 전산망을 뚫고 싶다는군”

“네? NASA요?”

“자세한 얘기는 여기 김태석 대령께서 해주실 거야.”

척혁준 국장이 토스를 하자 김태석 대령이 몇 가지 문서와 사진을 보이며 설명을 시작했다.

10분 후, 김태석 대령으로부터 설명을 들은 남궁원의 표정은 난감해했다.

“자네의 실력이라면 충분히 뚫을 수 있을 거 같은데 말이야. 도와줄 수 있겠나?”

초면인 김태석 대령을 대신해 척혁준 국장이 부탁했다. 이게 바로 척혁준 국장이 직접 방문한 목적이기도 했다. 지난번 장례식장에서는 안연우 국장을 앞세워 부탁해왔다. 남궁원에게는 이제 부탁의 날인으로 보였다.

“아! 그게 말입니다. 유치하게 들을 실수 있겠는데요. 와이프가 반대할 거 같아서 말입니다.”

“이 과장 말인가? 이 과장은 내가 설득해보겠네.”

“남궁원 씨! 저번에 목숨 잃을 정도로 위험한 임무를 수행했다는 거 잘 알고 있습니다. 그로 인해 아내분의 반대도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이번 임무는 정보사령부 내부에서 하는 안전한 임무입니다.”

김태석 대령이 차분한 어조로 부탁했다. 이에 머리를 걸쩍거리는 남궁원,

“일단, 와이프가 퇴근하면 얘기해보겠습니다. 바쁘신 대도 이렇게 직접 집까지 오셨는데 바로 대답을 못 드려 죄송합니다.”

“아, 아닙니다. 충분히 아내분과 상의하시고 대답해 주시기 바랍니다. 대신 금일 안으로 대답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시간이 별로 없어서 말입니다.”

“네, 그러죠. 오늘 밤에 얘기해서 주신 명함 번호로 연락드리겠습니다.”

남궁원은 김태석 대령으로부터 받은 명함을 보이며 방긋 웃었다.

“하하, 연락 기다리겠습니다.”

이들은 20여 분 더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돌아갔고 저녁 7시가 돼서야 온몸이 녹초가 된 이혜진이 집에 왔다.

“여보! 나왔어!”

현관문을 열고 집에 들어온 이혜진은 그대로 소파에 몸을 묻히고는 쓰러졌다. 하지만 집에 있어야 할 남궁원의 인기척은 들리지 않았다.

이에 상체를 일으킨 이혜진은 이리저리 살피며 소리쳤다.

“여보! 나왔다고~!”

하지만, 적막감만 흘렀다.

“남궁원! 원! 야! 어딨어?”

앙칼진 목소리는 바뀐 이혜진은 급기야 소파에서 일어나 씩씩거리며 불켜진 여러 방을 차례대로 살폈다. 그리고 가장 의심될만한 작은 방, 바로 남궁원이 각종 프로그램을 연구하고 개발하는 작업 방이었다.

벌컥!

힘차게 문을 열자! 메인 PC에서 뭔가를 신나게 뭔가를 작업하는 남궁원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야! 남궁원!”

이혜진이 버럭 소리를 지르자 그때까지 무아지경 상태에서 뭔가를 작업하던 남궁원이 깜짝 놀랐고 급기야 의자에서 넘어지며 엉덩방아를 쪘다.

“대체 뭐하는데 마눌님이 오셨는데 코빼기도 안 비쳐? 응? 남궁원!”

“앗! 여왕님 오셨어요? 죄송합니다. 뭔 좀 하느라······.”

“내가 당분간 컴퓨터 만지지 말고 푹 쉬기나 하라고 했지? 확 다 부숴버린다?”

이혜진의 오른손에는 조그마한 손 망치가 쥐여 있었다.

“여왕이시여. 부디 참아주소서.”

번개 같은 동작으로 무릎을 꿇은 남궁원은 양손을 합장하고 비는 시늉을 했다.

“비켜! 다 부숴버릴 거야!”

“안돼! 자기야! 이게 얼마짜리인데? 한 번만 봐줘!”

“비켜라!”

“안됩니다.”

“비켜!”

“안돼!

어느덧 한바탕 난리를 치고 식탁에 앉아 저녁을 먹은 남궁원과 이혜진은 언제 그랬냐는 듯 서로에게 사랑스러운 눈빛을 발산하며 식사를 했다.

이에 남궁원은 이때다 싶었는지 조심스럽게 척혁준 국장이 방문한 사실을 늘어놨다. 역시나 이혜진의 반응은 예상대로였다.

“안돼! 아주 예쁜 마누라를 과부로 만들 뻔했으면서 무슨 또 복귀야?”

“자기야. 이번엔 안전해! 해외 나가는 것도 아니고 정보사령부에서 잠깐 일하는 거야.”

“안돼! 자기 못 들었어? 의사 선생님 말씀? 퇴원 후 10일 동안은 아무것도 하지 말고 푹 쉬라고 했잖아! 퇴원한 지 3일밖에 안 됐어!”

이혜진은 크게 뜬 두 눈으로 노려보며 단호하게 말했다.

“자긴 몰라서 그래, 집에서 혼자 아무것도 안 하는 건 쉬는 게 아니라 산송장이 된 신세라고. 아마 10일 내내 이렇게 지내면 몸은 좋아질지 모르지만, 정신은 나가버릴걸? 장담해! 장담한다고.”

밥숟가락을 내려놓은 남궁원은 어린애처럼 팔짱을 끼고는 입을 삐죽거렸다.

“그 입 넣어! 애야?”

“몰라!”

“아! 갈수록 어린애가 돼가는구나!”

“몰라!”

“이러다가 애 하나가 아니라 둘을 키워야 하는지 모르겠네”

이혜진은 임신 8주차에 접어든 자신의 배를 쓰다듬으며 고개를 절레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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