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전야
2024년 1월 19일 12:00 (라트비아시각 05:00),
라트비아 리가 라디손 블루 리젠느 호텔 15층.
전날 주어진 특사 임무를 마치고 금일 새벽 CMV-100 스카이버스를 타고 영국 런던으로 넘어가기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든 김명환 2차관이 머무는 라디손 블루 리젠느 호텔 15층에는 조금 전부터 불길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현재 김명환 2차관이 머무는 1511호실 왼쪽 1512호실과 맞은편 1520호실에는 국가정보원 대외정보국에서 파견한 요원들과 김명환 2차관의 안전을 책임지는 외교부 소속 경호원들이 각각 숙소로 사용하고 있었고 오른편 1513호실은 스웨덴 노부부가 묵고 있었다.
이곳 호텔에 묵기 전, 외교부 경호원들은 1513호실 노부부를 다른 호실로 이동해줄 수 있는지를 호텔 프런트 데스크에 요청했지만, 노부부는 신혼으로 왔을 때 묵었던 특별한 의미가 담긴 호실이라 안 된다는 답변을 받고 어쩔 수 없는 투숙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외교부 경호원들이 묵고 있는 1520호실에는 호텔 전산망을 뚫고 연결된 각종 CCTV 영상부터 여러 가지 호텔 보안과 관련된 정보들이 담긴 장비들이 수두룩 설치되어 있었다.
띠잉!
고급스러운 인테리어로 만들어진 엘리베이터가 15층에서 서고는 문이 열렸다. 엘리베이터 안에는 건장한 남자와 모델 뺨칠만한 미모의 여자가 서로 안 한 몸이 되어 찐한 키스를 하고 있었다.
“아쭈 저것들 봐라! 아주 그냥 에로영화를 찍어라. 찍어! 크크크”
금일 경호 당직자 중 하나인 이민규 경호원이 모니터 화면에 보이는 장면을 보고는 실실 쪼개며 말했다.
“뭔데?”
선임인 나상현 경호원이 슬쩍 다가와 모니터를 봤다.
“하하, 죽이는구먼!”
“그죠? 와 저 여자 정말 이쁘죠? 서양 여자들은 하나같이 다 모델 같습니다.”
“그럼, 이왕 온 거 여기서 여자 한 명 챙겨봐라!”
“아! 그랬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지만, 나라의 녹을 먹고 사는 제가 나랏일 하면서 개인적 일탈을 할 수 있겠습니까?”
“염병!”
두 경호원이 시답지 않은 대화를 하는 동안 엘리베이터에서 나온 두 남녀는 비틀거리며 복도를 걸어갔고 어느덧 1513호실 앞에 섰다.
“어라? 저긴 노부부가 묵고 있는 호실인데?”
모니터 속의 두 남녀를 유심히 살피던 이민규 경호원이 고개를 절레거렸다.
“선배님! 1513호! 아직도 노부부가 묵고 있는 거 맞죠?”
“맞아! 어젯밤에 데이터 확인했을 때 내일모레까지 묵는 거로 나와 있었어!”
“그런데 이상합니다. 저것들 1513호로 들어가는데요?”
“뭐?”
모니터 화면 속에서는 두 남녀가 자연스럽게 1513호실 문을 열고 들어가고 있었다. 이를 확인한 나상현 경호원은 즉시 자신의 노트북 키보드를 두드렸다.
호텔 전산망과 연결된 파일에는 1513호실은 노부부가 투숙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대체 뭐지?”
수상함을 느낀 나상현 경호원은 호텔 전화기를 들고는 바로 프런트 데스크를 호출했다.
- 네, 무슨 일이십니까?
“1520호실인데요. 우리 맞은편 쪽 1513호실 노부부가 투숙하는 거 아닙니까?”
- 손님! 타 호실의 손님 정보는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아! 그게 아니라! 노부부께서 밖으로 나온 적이 없는데 방금 이상한 남녀가 들어가서 말입니다.”
- 죄송합니다. 손님! 그 부분은 설명해 드릴 수 없습니다.
프런트 데스크 직원은 알아보지도 않고 손님 정보라는 말 자체만으로 도움을 줄수 없다는 핑계를 계속되었다.
“제길! 뭔가 수상해!”
“뭐가 말입니다?”
“1급 비상이다. 팀장님이랑 다른 직원들 다 깨워!”
“네,”
선임의 지시에 이민규 경호원 각 방에서 자는 경호원들 깨우기 위해 헐레벌떡 뛰어갔다.
한편, 그 시각 1513호실,
1513호실로 들어온 남녀는 들어오자마자 눈빛이 달라졌다. 남자는 1512호실과 맞닿은 벽면 쪽으로 향했고 여자는 핸드백에서 소음기가 달린 조그마한 권총을 꺼내 들고는 가장 큰방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잠시 후, 큰 방문을 연 여자는 침대에서 자는 노부부를 향해 망설임 없이 권총 방아쇠를 연속으로 당겼다.
퓨육! 퓨육! 퓨육! 퓨육! 퓨육! 퓨육!
정확히 머리, 가슴, 배에 각각 3발씩 쏜 여자는 뒤돌아서서 거실로 향했다. 그사이 남자는 양복 주머니에서 납작하고 네모나진 것을 벽에 붙이고는 뭔가를 작동시켰다.
10을 나타낸 붉은빛의 숫자는 이내 카운트다운이 되었다. 이에 남자와 여자는 다른 방 쪽으로 몸을 피했다.
숫자는 이내 0이 되자 엄청난 폭발을 일으키며 양 호실을 막고 있던 벽이 시원하게 뚫렸다. 희뿌연 연기가 가시기도 전에 남자와 여자는 양손에 권총을 쥐고는 1512호실 거실로 들어왔고 표적을 찾기 위해 각자 방으로 움직였다.
폭발음과 함께 마치 지진이라도 난 듯 작은 울림이 호텔 전체를 휩싸이며 지나갈 때쯤 폭발음에 잠에서 깨어 상체를 일으킨 김명환 2차관은 방문을 열고 들어온 낯선 남자와 시선이 마주 췄다.
퓨육! 퓨육! 퓨육! 퓨육! 퓨육! 퓨육! 퓨육! 퓨육!
공기 빠지는듯한 총성 여러 발이 울렸고 김명환 2차관의 상체는 힘없이 침대 위로 쓰러졌다.
한 번 사격으로 8연발 탄창을 비운 남자는 재차 탄창을 교환하고 확인사살을 위해 쓰러져 있는 김명환 2차관 쪽으로 걸어가려는 그때 문짝 떨어지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쿠앙!
고급스럽게만 보이던 출입문이 빠개자면서 거실 바닥에 떨어졌고 그 뒤로 무장한 외교부 경호원들이 사주경계를 하며 거실로 들이닥쳤다.
이에 다른 방을 확인하고 나온 여자가 먼저 권총 사격을 가했다.
퓨육! 퓨육! 퓨육!
크억!
왼쪽 어깨를 맞은 이민규 경호원이 짤막한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쓰러졌다. 아이러니하게도 이쁘다고 칭찬했던 여자가 쏜 권총에 맞는 웃지 못할 상황이었다.
쭈웅! 쭈웅! 쭈웅! 쭈웅! 쭈웅!
경호원들도 응사했다. 그리고 이민규 경호원의 선임인 나상현 경호원이 몸을 날려 여자가 엄폐한 벽면 반대쪽으로 다가간 후 길게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여자가 두 번째 사격을 가하기 위해 문 사이로 모습을 보이자 나상현 경호원은 옆으로 웅크려 누운 자세에서 벽을 박차더니 이내 거실 바닥을 미끄러지며 여자를 향해 여러 발의 레이저 빛줄기를 선물했다.
깜짝 놀란 여자는 급히 몸을 뒤로 빼 벽 뒤로 몸을 숨었지만, 여자가 움직이는 동선을 따라 날아간 레이저 빛줄기는 벽을 관통하고는 여자의 몸통에 명중했다.
근거리에서는 레이저 빛줄기는 웬만한 철벽이 아닌 이상 쉽게 관통시킬 수 있었다.
이렇게 여러 발의 레이저 빛줄기를 맞은 아름다운 미모의 여자는 눈도 감지 못한 채로 벽면에 검붉은 핏자국을 남기고는 스르륵 쓰러졌다.
한편 큰방에서 김명환 2차관을 확인 사살하려던 남자는 여자 동료가 죽자 생각을 바꿨는지 거실에 있는 경호원들을 향해 사격을 가했다.
퓨육! 퓨육! 퓨육! 퓨육! 퓨육! 퓨육!
쭈웅! 쭈웅! 쭈웅! 쭈웅! 쭈웅!
팟팟팟!
순식간에 거실은 아수라장이 되었고 총탄에 파편들이 비상했다.
바닥에 쓰러져 비명을 지르던 이민규 경호원은 어느 정도 고통이 가셨는지 슬금슬금 기어가 소파 밑으로 몸을 숨기고는 큰 방 거실에서 응사하는 남자를 향해 사격을 가했다.
그 서양 남자는 베테랑인지 여러 명의 경호원과 총격전을 벌이면서도 물러서지 않고 응사했다. 하지만, 2011호실에 있던 대외정보과 요원까지 합세하자 남자는 주머니에서 뭔가를 거실에 던지고는 그대로 큰방 창문을 향해 몸을 날렸다.
남자가 던진 조그마한 금속 통에서 하얀 가스가 뿜어져 나왔다. 연막탄 효과까지 있는 최신형 최루탄이었다.
갑작스러운 가스 출현에 당황한 경호원들이 입과 코를 막으며 기침을 하자 창문을 깨고 15층 높이에서 몸을 날린 남자는 떨어지면서도 안정된 자세로 왼쪽 손목에서 뭔가를 발사했다.
가느다란 쇠줄로 연결된 송곳이 날아가 호텔 외벽에 박혔다. 그러자 남자는 떨어지는 속도에 맞게 늘어나는 쇠줄을 타고 지상으로 내려갔다.
이에 대외정보과 요원 중 한 명이 최루탄 가스를 뚫고 거실 창문을 열고는 쇠줄을 타고 내려가는 남자를 향해 권총을 쐈다. 대외정보1과 이자성 과장이었다.
남궁원과 함께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 돌아온 이자성 과장은 선천적으로 타고난 튼튼한 신체 덕분인지 입원한 지 5주일 만에 퇴원하고는 바로 직장에 복귀했다.
“시발!”
최루탄 가스 덕에 쏟아진 눈물이 시야를 가려 표적을 제대로 맞히지 못하자 욕설을 내뱉은 이자성 과장은 아직도 최루탄 가스에 죽으려고 하는 자신의 부하들에게 소리쳤다.
“뭐해 새끼들아! 최루탄 한두 번 맡아봐? 차관님 상태 확인해야 할 거 아냐?”
그제야 정신을 차린 외교부 경호원과 대외정보1과 요원들은 물을 젖힌 수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큰방으로 넘어가 침대 위에 쓰러져 있는 김명환 2차관의 상태를 살폈다.
- 과장님! 차관님 생명엔 문제없습니다.
휴대용 진단기로 김명환 2차관의 몸 상태를 살핀 양정석 대리가 무음성 통신으로 보고했다.
- 알았어! 차관님 다른 호실로 바로 옮겨!
- 네, 알았습니다.
- 박 팀장! 어디야?
이자성 과장은 곧바로 1팀장인 박기웅 팀장을 찾았다.
- 현재 1층 로비까지 내려왔습니다.
폭발음이 울린 후 이자성 과장과 몇몇 부하들이 1511호로 진입한 사이 박기웅 팀장은 만에 하나 암살자들의 퇴로를 막기 위해 무조건 1층으로 향했다.
- 뒤쪽이야! 그 자식 꼭 잡아야 돼!
- 걱정마십쇼. 제가 누굽니까?
- 알았,
빠악!
호텔 맞은편에 있는 빌딩 어디선가에서 묵직한 파공음을 울리며 날아온 대구경 총알이 이자성 과장의 오른쪽 어깨를 강타했다.
크악!
어깨가 빠져나갈 듯한 엄청난 충격과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한 아픔이 전해짐과 동시에 마치 중력이 끌어당기듯 이자성 과장은 거실까지 날아간 후 거실 바닥에서 몇 바퀴를 구른 후 벽에 부딪혔다.
일반적인 저격총은 아니었다. 아무리 현존 강력한 대구경 저격총이라 해도 이 정도의 충격을 받고 날아가는 경우는 없었다.
“과장님! 쿨럭! 괜찮습, 큭!”
1팀 막내인 윤길수 주임이 엉금엉금 기어가 의식을 잃은 이자성 과장을 살피려는 그때 또 한 번의 대구경 총알이 날아왔다.
피유우우웅
빠각!
다행히도 거실 전체에 피어오른 가스가 방해되었는지 대구경 저격 총알은 윤길수 주임 바로 위 벽을 뚫고 날아갔다.
만에 하나 얼굴에 맞기라도 했으면 상상도 하기 싫은 끔찍한 상황이 발생 될 수 있었다.
휴!
그 상황에서도 안도의 한숨을 짧게 내쉰 윤길수 주임은 다른 경호원의 도움을 받아 복도 쪽으로 이자성 과장을 끌고 나갔다.
잠시 후 최루탄 가스를 연기로 인식하면서 화재경보장치가 울렸고 이내 천장에 장착된 스프링클러가 작동했다. 시원한 물줄기가 뿌려지자 폐마저 태워버릴 듯한 고통을 준 최루탄 가스가 슬금슬금 사라졌다.
- 팀장님 어디 십니까?
김명환 2차관을 무사히 복도까지 데리고 나온 양정석 대리가 무음성 통신으로 박기웅 팀장을 찾았다.
- 호텔 뒤쪽이다.
- 팀장님! 제가 가겠습니다.
- 아냐! 올 필요 없어!
- 네?
- 잡았다. 그런데 아까 과장님이 말하다가 통신이 끊겼는데 무슨 일이야?
- 아 맞다. 팀장님 조심하세요. 맞은편 빌딩에 저격수 있습니다.
- 빨리도 말해준다. 자식아! 어쨌든 과장님은?
- 저격수한테 당하셨는데 좀, 심각합니다.
- 왜? 머리라도 맞으신 거야?
- 머리는 아니고 어깨인데 일반 저격총이 아닌 듯합니다.
- 기다려! 지금 올라간다.
- 네,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