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15화 (515/605)

폭풍전야

2024년 1월 19일 03:30 (러시아시각 18일 21:30),

러시아 모스크바 벙커 스테이트 R-13(상황실).

푸틴 대통령이 기대하던 나토군의 참전 건도 정상회의에서 부결되었다는 소식으로 침울해진 상황실은 한 차례 더 듣기 싫은 보고를 받고는 아연실색이 되고 말았다.

철컥!

수화기를 내려놓은 블라디미르 베샤스트니흐 대장이 천장을 올려다보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무슨 일입니까.”

오딜 아크메도프 상장이 조심스러운 말투로 물었다.

“크림반도가 한국군에게 넘어갔다는 보고네.”

“네?”

부참모장 오딜 아크메도프 상장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크림반도는 푸틴 대통령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의미가 담긴 영토였다.

“이거 참으로 큰일입니다.”

수년간 지켜보던 우크라이나의 두 개 주에 이어 크림반도마저 한국군에 넘어가게 되면서 푸틴 대통령의 정치적 입지는 상당히 줄어들게 되었다. 헌법개헌을 통해 계속해서 대통령직을 수행하려던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현재 상황을 보자면 크림반도 문제는 문젯거리도 아니었다. 이번 전쟁에서 패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모든 것이 끝장이었다.

잠시 후 상황실의 스크린에 영상 하나가 떴다.

대한민국 해병으로 보이는 장병 여러 명이 반쯤 무너진 크림반도 주도의 시청에 태극기를 계양하는 영상이었다.

“빌어먹을······.”

짧은 욕설을 내뱉은 블라디미르 베샤스트니흐 대장이 긴 한숨을 내쉬었다.

“총참모장님! 대통령께 보고를······.”

말끝을 흐리는 오딜 아크메도프 상장의 말에 블라디미르 베샤스트니흐 대장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늦게 보고해봐야 욕만 더 듣는다고 생각했는지 바로 보고하기 위해 상황실을 나섰다. 이에 오딜 아크메도프 상장도 뒤따랐다.

“자네는 여기에 있게, 욕먹으러 가는데 자네까지 갈 필요가 있나?”

“그래도······.”

“1시간 후 총참모부 전원 회의 소집하게. 전장에 있는 소장급 이상 모든 지휘관도 화상 통신으로 연결하게.”

“네, 알겠습니다.”

간단히 지시를 내린 블라디미르 베샤스트니흐 대장은 모자를 고쳐 쓰고는 바로 상황실을 빠져나갔다.

★ ★ ★

2024년 1월 19일 03:30 (러시아시각 18일 21:30),

러시아 모스크바 벙커 스테이트 R-13(대통령 집무실).

똑똑똑

노크 소리와 함께 집무실에 들어온 블라디미르 베샤스트니흐 대장이 절도있는 각도로 거수경례했다.

“무슨 일인가?”

푸틴 대통령 역시 EU 정상회의에서 나토군 참전이 불발되었다는 소식이 상심해 있던 차였다.

“크림반도가 한국군에 점령당했습니다.”

“후! 크림반도까지······.”

생각보다 푸틴 대통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불벼락이라도 받을 줄 알고 잔뜩 긴장했던 블라디미르 베샤스트니흐 대장은 의외의 반응에 허탈하기까지 했다.

“이렇게 된 이상, 이제 미국밖에 없군,”

이해 안 되는 푸틴 대통령의 말에 블라디미르 베샤스트니흐 대장은 좀 더 앞으로 다가가 물었다.

“대통령님, 미국밖에 없다는 말이 무슨 의미입니까?”

“말 그대로야. 이제부터는 대놓고 미국과 연합하여 한국을 눌러야 한단 말이네.”

“미국이 과연 우리의 뜻대로 하겠습니까?”

블라디미르 베샤스트니흐 대장이 조심스럽게 묻자, 푸틴 대통령은 피식 웃으며 의미심장한 말을 늘어놨다.

“그렇게 해야지, 우리에겐 히든카드가 있지 않나?”

“카드라면?”

“USSC”

“그, 그건,”

“이젠 이것뿐이야. 미국을 최대한 압박해 빌어먹을 한국을 지구 상에서 깡그리 지워버려야겠어!”

일갈하는 푸틴 대통령의 눈에서 분노의 불꽃이 이글거렸다.

“대통령님! 러시아군 수장으로써 대통령님께 진언을 드리고자 합니다.”

“무슨 말을 하려는가?”

대충 블라디미르 베샤스트니흐 대장이 하려고 하는 말을 짐작했는지 표정으로 일단 경계를 비췄다.

“저번에도 말씀드렸듯이 북서부전선을 포기하고 모든 전력을 남부 전선에 집중했으면 합니다.”

“또 그 얘기인가?”

“더는 늦었다가 모든 전선에서 패배할 수 있습니다. 대통령님!”

“자네 북서부전선에서 남부전선까지 거리가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나?”

“대략 5,300km입니다.”

“그럼, 현재 북서부전선 일대에 투입된 모든 부대가 남부전선으로 퇴각하는데 얼마나 걸릴 것으로 예상하나?”

“대략 10일입니다.”

“10일? 그렇다면 10일 동안 남부전선을 막아낼 수 있겠는가?”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인지 푸틴 대통령의 질문은 계속되었다.

“기존 남부군구에 이어 중부군구와 서부군구 모든 전력이 총동원된다면 충분하다고 봅니다.”

“흥! 그렇다면 북서부전선 전력은 그대로 두게.”

“네? 그대로 두라는 말씀은?”

어이없는 대답에 블라디미르 베샤스트니흐 대장은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반문했다.

“자네 말대로 서부군구와 중부군구 전력을 총동원하면 남부전선에서 10일은 버틴다고 하지 않았나?”

“그거야. 북서부전선 전력이 이곳으로 지원 온다는 전제이지 않습니까?”

“지원이 오든 안 오든 10일 정도 막아 낼 수 있다고 하지 않았나?”

“대통령님! 10일 이후는 어쩌시려는 겁니까? 제발 저의 진언을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간절한 표정으로 블라디미르 베샤스트니흐 대장은 푸틴 대통령을 설득하려 했다.

“걱정하지 말게. 다 방법이 있어!”

“미국입니까?”

“맞아!”

“미국을 믿다가 우리 러시아가······.”

“그만!”

듣기 싫다는 듯 푸틴 대통령은 손바닥을 펼쳐 보였다.

“자네도 알고 있지 않나? 미국의 태평양함대가 일본 행상으로 항해 중인걸”

“그건 어디까지 자국의 이익을 위해 예전처럼 일본을 지휘권 안에 두려는 것이 아닙니까?”

“누가 그걸 모르나? 하지만 미국은 일본은 물론 한반도에도 공격하게 될 거야. 말하지 않았나? USSC라는 히든카드 말이야. 후후후”

어디서 나오는 여유인지 푸틴 대통령은 여유롭게 시가렛을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그리고는 길게 빨아들이고는 허공에 연기를 내뿜었다.

그러한 모습을 지켜보는 블라디미르 베샤스트니흐 대장을 향해 푸틴 대통령이 한마디 했다.

“자네는 지금 당장 최소 10일간 남부전선을 방어할 대책을 세우게. 모든 전력을 총동원해서 말이야.”

말을 마친 푸틴 대통령을 의자를 돌렸다. 나가라는 뜻이었다.

“알겠습니다.”

블라디미르 베샤스트니흐 대장은 더는 방법이 없음을 직감하고는 뒤돌아 앉은 푸틴 대통령을 향해 거수경례하고는 집무실에서 나가려는 그때, 귀를 의심할만한 말이 들려왔다.

“총참모장! 무제한 전술핵 사용을 승인하네. 앞으로 세워지는 모든 작전에 적극적으로 전술핵을 사용하도록 하게나”

“대통령님! 그랬다가는 이곳 모스크바 역시 개미 새끼 한 마리 살 수 없는 곳으로 변할지 모릅니다.”

“그건 두고 봐야지! 미국놈들에게까지 손까지 벌리게 된 상황에서 뭘 두려워하겠는가? 그렇게 알고 나가보도록”

블라디미르 베샤스트니흐 대장은 대답 없이 집무실을 나가버렸다. 대신 입속에서 몇 마디를 중얼거렸다.

‘푸틴 저 인간은 미쳤어!’

★ ★ ★

2024년 1월 19일 04:00 (러시아시각 18일 22:00),

러시아 모스크바 벙커 스테이트 R-13(작전 회의실).

크림반도 마저 한국군에 넘어간 후 작전 회의실 분위기는 참으로 무거웠다. 한국군과 한 달 반 동안 치열한 교전을 벌이고 있는 북서부전선 역시 참모진 입에서 말은 안 하지만 사실 패배한 것으로 보고 있었다.

지상 최대의 전력이었던 북서부전선 일대의 러시아군은 지난 1월 3일부터 제7기동군단 소속의 제20기갑사단(결전)에게 측면 공격을 허용하면서 급격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정규군과 비정규군 합이 70만 명에 달했던 러시아군은 이제는 정규군 42만 명으로 확연히 줄어든 상태로 하루에 수십 킬로미터씩 자국의 영토 쪽으로 밀리고 있었다.

측면 돌파를 하려는 제7기동군단을 가장 먼저 상대했던 중부군구의 제2근위군은 모든 전력을 총동원하여 대응했지만, 8일 만에 괴멸에 가까운 피해를 보고 전력에서 제외되었다. 이에 중부군구의 또 다른 지원군인 제41군이 제2차 방어선을 구축하고 응전했지만 역부족이었다. 5일 만에 무려 40%에 달하는 전력 손실을 보고, 후방으로 퇴각하고 말았다.

하지만 제2근위군과 제41군이 괴멸에 가까운 피해를 보면서까지 제7기동군단의 진공 속도를 늦춰준 덕분에 주공 역할을 맡고 전선 일대에서 한국군과 치열한 교전을 펼쳤던 동부군구 제29군은 제36차량화보병사단, 제56차량화보병사단, 독립군단 소속의 제55차량화보병사단만이 괴멸 수준의 피해를 보았고 나머지 동부군구 직할부대인 붉은기갑군단과 독립군단 소속 제27기갑사단, 예하 제39차량화보병사단, 11기갑사단은 후방 248km까지 별다른 피해를 보지 않고 퇴각할 수 있었다.

만약 제2근위군과 제41군이 희생해가며 제7기동군단의 진공을 늦추지 못했다면 제29군 역시 무사하지 못했을 것이다.

어쨌든 후방으로 퇴각은 했지만, 전력의 60%를 보전한 상태로 다시금 제7기동군단을 포함한 한국군과의 전면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어떻게든 북서부전선에 투입한 모든 전력을 이동시켜 남부전선을 막아내려던 블라디미르 베샤스트니흐 대장은 뜻을 이루지 못하고 이제는 최소 10일간 서부군구와 중부군구, 그리고 남부군구만으로 파죽지세로 밀고 들어오는 피스부대와 해병부대를 막아야 하는 작전 안을 수립해야만 했다.

“대통령께선 양 전선 모두를 유지하고자 하네. 북서부전선은 현재 구축하고 있는 방선을 확실히 방어할 수 있도록 가용한 모든 전력을 총동원하는 작전 안을 수립하고 남부전선은 절대 고립되어 남부 전체가 한국군에 넘어가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으로 보네. 이에 로스토프스카야 오블래스트주는 한국군에게 넘겨주더라도 볼고그라드스카야 오블래스트주는 절대 사수해야 할 지역이야. 회의 시작하도록”

금일 시작하는 작전 안 회의에 앞서 몇 마디를 전한 블라디미르 베샤스트니흐 대장은 차마 전술핵 사용 건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다. 향후 명령 불복종으로 옷까지 벗을 수 있는 사안이었지만, 신중국이 전술핵과 비슷한 무기를 사용했다가 모든 대도시가 한국군의 공격을 받고 폐허가 되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러시아의 미래를 위해 설령 이번 전쟁에서 패전한다고 해도 전술핵만큼은 사용하고 싶지 않았다.

아마도 뭔 미래, 블라디미르 베샤스트니흐 대장의 이러한 용기 있는 판단에 러시아 국민은 감사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럼 먼저, 북서부전선의 방어작전 안부터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회의 진행을 맡은 오딜 아크메도프 상장이 첫 번째 작전 안 주제를 말하자 화상 통신으로 회의에 참석한 동부군구 총사령관인 스타니슬라프 체르체소프 대장이 직접 브리핑을 했다.

- 현재 동부군구와 중부군구 제41군은 오논강을 따라 방어선을 구축한 상태입니다. 특히 R431 도로를 따라 진공 하는 제7기동군단 소속의 제20기갑사단을 막기 위해 제29군 직할부대인 붉은기갑군단 전체 전력이 대기 중입니다.

“기갑사단 하나 때문에 너무 많은 전력을 한쪽에 집중시키는 게 아닌지 모르겠군,”

설명을 듣던 육군 총사령관인 마라트 비크마에프 대장이 한마디 던졌다.

“그렇게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만, 한국군 20기갑사단은 명실공히 한국군 내 전투서열 3위 안에 드는 전력을 보유한 기갑부대입니다. 더불어 제2근위군이 바로 20기갑사단에 전멸을 당했습니다.”

순간 작전 회의실이 술렁거렸다. 사실 제20기갑사단(결전)만으로 중부군구의 제2근위군을 격파한 것은 아니었다. 단지, 수도기갑사단(맹호)이나 제77기계화보병사단(극진)보다 선봉에서 활약했기에 마라트 비크마에프 대장이 조금은 과장해서 말한 것이었다.

“부족한 것보다는 낫지 않겠나? 계속하게.”

회의가 잠시 끊기자 블라디미르 베샤스트니흐 대장이 직접 회의를 속개시켰다.

“네, 총참모장님! 그럼 계속 설명하겠습니다. 앞서 말한 붉은기갑군단 기준 오논강 서단 아래쪽으로 중부군구 제41군 소속의 제32독립차량화소총사단, 제74독립차량화소총사단, 제84독립차량화소총사단, 동부군구 독립군단 소속의 제27기갑사단, 예하부대인 제39차량화보병사단, 제11기갑사단이 주축으로 하여 방어 전선을 책임질 것입니다. 이외에 5개 동원예비차량화사단이 지원부대로 투입된 상태입니다. 또한, 동부군구 본부와 6개의 동원예비보병사단이 후방 산악지대에서 대기 중입니다. 마지막으로 괴멸 수준에 이른 모든 부대를 통폐합한 제36차량화보병사단도 재정비를 마치고 2일 안에 전선에 투입될 예정이며 남부군구의 제37독립철도여단과 제39독립철도여단 역시 치타 외곽에서 화력 지원할 예정입니다. 이상입니다.

간단명료한 브리핑이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한국군의 진공 부대 규모는 어느 정도인가?”

이번에도 육군 총사령관인 마라트 비크마에프 대장이 질문하자, 마라트 비크마에프 대장이 바로 대답했다.

현재까지 확인한 적군의 진공 부대는 앞서 말한 제7기동군단 소속의 20기갑사단, 수도기갑사단, 77기계화보병사단, 그리고 아직 부대식별이 확실치 않은 5개의 기계화사단이 몽골 국경선 평야 지대를 따라 진공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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