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14화 (514/605)

각자의 시선

정상회의가 시작되기까지 정확히 6시간 전,

전날 밤, 외교부 전용기를 타고 이곳 리트비아의 리가에 온 김명환 2차관은 추은희 대통령으로부터 특사 임명을 받고 이곳에 오게 되었다. 또한, 특사답게 그에게는 막중한 임무를 부여받았다.

대한민국 외교부에서는 일주일 전부터 EU(유럽연합) 정상회의를 위해 유럽 전역에서 리가로 날아온 정상 중 친미성향의 국가 정상들과 회담을 하고자 했지만, 미국의 시선을 의식했는지 비공식적인 회담 요청에도 불구하고 선뜻 회담 의사를 보내오지 않았다.

이에 외교부에서는 고육지책으로 정상 회담이 아닌 외교 관련 장관들과의 비밀면담으로 긴급 수정하여 요청했고 다행히 5개국으로부터의 장관급의 비밀회담 요청을 수용하겠다는 의사를 전해왔다.

수용 의사를 밝힌 국가는 이탈리아, 스페인, 오스트리아, 스웨덴, 핀란드였다. 또한, 6개국이 동시에 다국적 회담 형식에도 수용하여 현재 이곳 라디손 블루 리젠느 호텔의 비밀회담 장소에는 원형 탁자를 두고 5명의 외교 수장들이 조금은 껄끄러운 표정을 지으며 앉아있었다.

“이렇게 면담 요청에 대해 수락해 주시면 감사를 드립니다.”

김명환 2차관은 5명의 외교 수장에게 정중히 고개를 숙여 인사를 건넸다. 사실 원형 탁자를 두고 앉아있는 장관들과는 직책상 아래였지만, 대통령으로부터 특사 자격을 부여받았기에 정상과도 동급으로 대우받을 수 있는 자격이 있었다.

하지만 김명환 2차관은 겸손하게 5개국의 외교 수장들에게 예의를 보였다.

“다들 이렇게 어려운 발걸음을 내주신 여러분께 정말 감사들 드립니다. 오늘 이렇게 비공식적인 비밀면담을 요청한 이유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한 번 더 감사의 인사를 건넨 김명환 2차관은 바로 본론으로 넘어갔다. 또한, 방금까지의 온화한 표정은 온데간데없고 날카로운 눈빛을 발산했다.

“5시간 후, 정상회의에서 여러분들의 정상께서 어떤 결정을 하시기에 앞서 우리 대통령으로부터 몇 가지를 내용을 전해 드리려 합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어제 신중국은 우리 대한민국에 공식적인 항복과 더불어 합병으로 인해 영원히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저기! 김 차관님! 정상회의 때문에 시간이 별로 없습니다. 본론만 말씀해 주세요.”

이탈리아 델라 베도바 외교부 장관이 중간에 말을 끊었다. 불편한 심기를 그대로 드러냈다.

“아! 오해하셨군요. 이게 본론입니다.

“네?”

“이왕 오셨는데 들어보시지 않겠습니까?”

단호한 어조로 말한 김명환 2차관은 나머지 장관들 쪽으로 시선을 돌리고 말을 이어갔다.

“현재 흘러가고 있는 국제정황을 말씀드리는 겁니다. 현재 대한민국은 미국을 제치고 GNP 1위 국가입니다. 무려 32조 200억 달러입니다.”

대한민국은 2018년부터 초고속 성장세로 돌입하여 GDP 2조 6,900억 달러를 달성해 세계 6위에 오른 후 급기야 2022년에는 GDP 25조 5,050억 달러를 달성하여 미국을 제치고 1위에 올랐다. 그리고 현재 2023년 기준으로 GDP 32조 200억 달러로 부동의 1위 자리를 고수하고 있었다. 2018년 대비 11배에 달하는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엄청난 초고속 성장세였다.

경제 문제를 말하자 델라 베도바 외교부 장관의 표정은 더욱 일그러졌다.

이탈리아 같은 경우 2008년에 금융경제위기 발생함에 따라 침체 국면에 접어들었고 2009년에는 재정 상황마저 악화하여 지금까지 불황을 겪으며 꾸역꾸역 버티는 중이었다. 이면에 정치인들의 부정부패가 한몫 단단히 하고 있어서 대대적인 정치 개혁이 없는 이상 이탈리아의 경제 상황은 쉽사리 나아질 수 없는 상황이었다.

“잘사는 나라라며 자랑하려고 이 자리를 만드신 겁니까?”

다시 한번 언짢은 표정으로 말을 끊은 델라 베도바 외교부 장관의 말에 김명환 2차관은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를 보이며 양손을 벌렸다.

“그렇게 들리셨습니까? 뭐 어떻게 보면 그렇게 들릴 수도 있겠네요.”

마치 상대를 비꼬든 듯한 뉘앙스를 분위기는 어조로 대답한 김명환 2차관은 이왕 이렇게 된 거 이탈리아를 첫 번째 표적으로 삼겠다는 듯 델라 베도바 외교부 장관을 주시했다.

“베도바 장관님! 2023년 기준 우리 대한민국에 수출한 금액이 60억 달러 정도 되지요? 반대로 대한민국에서 수입한 금액이 50억 달러이고요. 우리 대한민국으로서는 10억 달러 정도의 적자 교역을 하고 있군요.”

“하고 싶은 말이 대체 뭡니까?”

“네, 이탈리아와의 모든 교역을 중단하려 합니다.”

“뭐요?”

급기야 화나간 델라 베도바 외교부 장관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하지만 김명환 2차관은 신경 쓰지 않는 듯, 하고 싶은 말을 이어갔다.

“정상회의에서 우리 대한민국에 대한 경제제재 조치를 한다는 전제하에 말입니다. 이탈리아 외에도 EU 모든 국가와의 교역을 중단할 것입니다.”

조금은 과격한 발언에 그동안 듣고만 있던 나머지 장관들의 표정은 조금씩 변했다.

“장관님들, EU의 경제제재 조치가 과연 우리 대한민국만 피해를 보겠습니까? 당연히 EU 역시 크나큰 경제적 피해를 볼 것입니다. 그럼 어느 쪽이 더 큰 피해를 보겠습니까? 대한민국 대 EU라면 우리 대한민국이 조금 더 큰 피해를 본다는 데이터가 나왔습니다. 하지만, 우리 대한민국은 중화민국, 동방공화국, 동남아시아, 인도, 남미, 아프리카 등의 40여 개국과 경제동맹을 체결한 상태입니다. 이 모든 국가의 인구를 합치면 40억 명이 넘습니다. 세계 인구의 반입니다. 무슨 말씀인지 아시겠습니까?”

말을 마친 김명환 2차관은 다소 진중한 표정으로 여러 장관을 둘러봤다.

“김 차관께서 말하고자 하는 것이 경제동맹국을 이용해 역으로 우리 EU에 경제보복 조치를 하겠다는 겁니까?”

오스트리아의 하인즈 베르크 외교부 장관이 김명환 2차관이 말하고자 하는 부분을 정확히 정리했다.

“네, 정확히 맞추셨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과연 어느 쪽이 경제적으로 큰 피해를 보겠습니까? 아마도 1년 이내에 앞다퉈 EU에서 탈퇴하는 광경이 벌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즉, EU가 해체될 정도의 큰 피해를 본다는 것이지요.”

“그것뿐이겠습니까? 유럽 대부분 국가는 관광산업이 주요 수입사업 중 하나지요? 현재 대한민국 국민은 평균적으로 1인당 연 1.5회 이상일 정도로 해외여행을 가장 많이 다니는 국민이며 그중 여행지 1위가 유럽입니다. 또한, 여행 지출 역시 세계 1위입니다. 자! 1년간 유럽에 대한 여행 금지조치를 취하고 경제동맹국에도 이와 같은 협조공문을 보낸다면 어떻겠습니까?”

유럽 어느 국가나 관광사업은 국가 주요사업 중 하나였다. 경제보복 조치에 이어 관광사업마저 불황을 겪는다면 상상할 수 없는 사태로 이어지는 건 뻔한 일이었다.

“이젠 협박까지 하는 겁니까?”

자리에 앉지도 않고 부들거리며 서 있던 델라 베도바 외교부 장관이 노려보며 말하자 김명환 2차관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대답했다.

“설마, 협박이라뇨. 당치 않습니다. 저는 여러분께 선물을 드리려고 온 것입니다.”

“협박이 아니라 선물이라니요?”

신경질적으로 다시 한번 묻는 델라 베도바 외교부 장관!

“EU 정상회의에서 대한민국에 대해 경제제재를 하게 되면 향후 EU 모든 국가에 불어닥칠 악영향을 말씀드리는 거 말입니다.”

“지금 장난합니까?”

급기야 델라 베도바 외교부 장관은 탁자를 한번 내려치고는 그대로 출입문을 향해 걸어갔다.

“베도바 장관님! 붙잡지는 않겠습니다. 단, 러시아를 멸망시킨 후 이탈리아가 그다음 목표라는 것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뭐요? 지금 이탈리아와 전쟁을 하겠다는 겁니까?”

“허허, 이거 참, 저는 분명히 전제를 깔았습니다. EU가 정상회의에서 대한민국에 대해 경제제재를 할 경우라고 말입니다. 또한, 나토군 역시 한러전에 참전하겠지요? 러시아 편에서 서서 말입니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이탈리아와 전쟁이 벌어지는 게 아니겠습니까?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여기 계신 여러분의 국가들도 마찬가지고요.”

엄청난 발언을 이어가는 김명환 2차관의 말에 나머지 장관들의 눈빛도 심하게 흔들렸다.

“그거 너무 과격한 발언이 아닙니까?”

스웨덴 외교부 장관이 못 참겠다는 듯 대화의 중간에 끼어들었다.

“과격한 발언이라 생각되십니까? 몇 시간 후, 우리 대한민국을 상대로 경제제재와 나토군 참전을 결정을 앞두고 말입니다. 과연 어느 쪽이 지금 과격한 발언과 행동을 하는 것입니까?”

김명환 2차관은 델라 베도바 장관을 비롯해 앉아있는 여러 장관을 노려보며 일갈했다. 이에 호텔 접견실 분위기는 냉기가 서릴 정도로 차가워졌고 잠시간 적막감이 흘렀다.

출입문 문고리를 잡았던 델라 베도바 장관 역시 차마 나가지 못하고 어정쩡한 자세로 서 있었다. 틀린 말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저기 김 차관님! 그렇다면 우리에게 원하는 게 뭐입니까?”

스페인 총리실의 외교 수석인 디비드 알바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다들 아시지 않습니까? 이번 정상회의에서 상정 건에 대해 반대표로 투표해주시면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돌아오는 이익은 무엇입니까?”

이런 상황에서도 자국에 돌아갈 이익을 챙기려는 디비드 알바 외교 수석, 외교관 직업이 천직인 듯했다.

“이익이라······. 첫째로 우리 대한민국과 적대 국가가 되지 않는다는 점이라 볼 수 있을 듯합니다. 둘째 경제적 지원을 약속드립니다. 특히 이탈리아 같은 경우 경제 중심이었던 경공업이 신흥 개발도상국의 추격으로 경제적 침체를 겪고 있지요?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도록 각 국가에 맞는 기술지원을 약속드립니다. 현재 대한민국은 세계 경제 흐름을 유지하고자 신기술을 개발하고도 세상에 내놓지 않은 무수히 많은 제품이 있습니다. 그것만 알아주셨으면 좋겠군요.”

“차관으로서 그런 약속을 할 수 있습니까?”

디비드 알바 외교 수석이 다시 한번 물었다.

“저는 차관이라는 직책을 갖고 있지만, 지금은 대통령을 대신한 특사 자격으로 여러분을 만나고 있는 것입니다. 즉 제가 하는 말은 대한민국 대통령께서 하는 말과 같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좋습니다. 구두 약속보다는 향후 문제 소지가 없도록 서류 적인 약속이 필요할 듯한데요.”

역시나 디비드 알바 외교 수석은 외교통에서는 잔뼈가 굵은 여우 중의 여우였다.

“당연합니다. 그래서 이미 준비해왔습니다.”

김명환 2차관은 자신이 가져온 서류가방에서 몇 장의 문서를 꺼내 각국의 외교 수장 앞에 놓았다. 이에 문 앞에서 서성거리던 델라 베도바 장관 역시 슬금슬금 다가와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천천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읽어보시면 만족할 것입니다.”

어느덧 부드러워진 김명환 2차관의 표정, 델라 베도바 장관에게도 환한 웃음을 보였다. 이에 델라 베도바 장관은 어색한 미소를 한번 보이고는 자신 앞에 놓인 문서를 읽어나갔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고 각국의 외교 수장들은 만족한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읽은 문서를 탁자 위에 내려놨다.

“어떻습니까?”

“음, 괜찮군요.”

“저는 만족합니다.”

“저 역시 만족합니다.”

“생각보다 준비를 잘하셨군요.”

하지만 델라 베도바 장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을 눈치 김명환 2차관이 슬쩍 말을 전했다.

“베도바 장관님은 썩 마음에 들지 않은 듯합니다.”

“아! 그건 아닙니다. 단지, 미, 미국으로부터 약속받은 것이 있어서 말······.”

다른 국가의 외교 수장을 의식했는지 델라 베도바 장관은 말끝을 흐렸다. 경제 상황이 매우 좋지 못한 이탈리아는 미국으로부터 수조 달러에 대한 경제 지원 약속을 받은 상태였다.

“음, 생각해보세요. 앞으로 세계 질서를 어느 국가가 책임지고 갈 것인지 말입니다. 참고로 대한민국은 군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이미 미국을 뛰어넘은 지 한참 되었습니다. 또한, 앞으로도 그럴 거고요. 잘 생각하셨으면 좋겠습니다.”

협박성에 가까운 발언이라 생각들 수 있겠지만 틀린 말이 아니기에 델라 베도바 장관은 아까처럼 성내며 반문하지는 않고 묵묵히 듣기만 했다.

“자, 그럼 마음에 드신다면 문서에 서명하시면 됩니다.”

김명환 2차관이 손바닥을 보인 양손으로 문서를 가리키자 각국의 외교 수장들은 저마다 만년필을 꺼내 들고는 각자의 서명란에 서명했다.

이처럼 이러한 일들이 비밀리에 진행되었기에 가장 친미성향을 보였던 이탈리아, 스페인, 오스트리아, 스웨덴, 핀란드 정상들은 외교 수장으로부터 이외 같은 보고를 받은 후 5시간 후에 있었던 EU 정상회의에서 반대표에 투표했고 이탈리아만이 기권표에 투표했다.

막대한 자금을 풀어 가결될 것이라 믿고 있었던 미국이 이처럼 부결이라는 뒤통수를 맞게 된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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