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승전!
이윤연 국무총리의 말투는 부드러웠지만, 말 한 마디 한 마디에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들어있었다.
“또한, 지금이라도 러시아가 원한다면 얼마든지 대한민국은 평화적인 종전 의사가 있음을 밝히는 바입니다. 이상입니다.”
“총리님! 방금 하신 말씀 중에 미국의 입김으로 EU가 나토군을 움직여 대한민국을 견제하려고 한다는 것입니까?”
“그건 존슨 기자가 더 잘 알 듯한데요. 아닙니까? EU의 수상한 움직임은 저번 대표이사회 회의에서 미국 메인 존스 국무부 장관의 발언으로 시작된 것을 말입니다. 모르고 계셨습니까?”
“그, 그건······.”
저메인 존스 기자가 우물쭈물하며 대답을 못 하자 이윤연 국무총리는 강하게 더 밀어붙였다.
“허허, 적어도 미국 기자라면 자국의 정부가 어떤 방향으로 국제 정세를 이끌고 가는지는 알고 계셔야지 않겠습니까?”
“아무리 기자라 해도 자국의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일들을 일일이 알지 못합니다.”
어느새 기자회견장은 이윤연 국무총리와 저메인 존스 기자 간의 설전으로 바뀌었다.
“다른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을 정치부 기자인 존스 기자만 몰랐나 봅니다.”
급기야 저메인 존스 기장의 얼굴이 홍당무처럼 변했다. 사실 이윤연 국무총리는 화술의 대가였다. 언제나 말투는 차분했지만, 상대를 압박하는 뭔가의 힘이 있었다.
“아직 확실하게 정해진 건 아니니 더는 왈가불가 할 필요는 없을 거 같고, 아! 내일인가요? EU 정상회의가? 존스 기자! 내일 EU 정상회의에서 어떤 결정이 날지 함께 지켜볼까요?”
한 컷 여유로운 미소를 보이며 이윤국 국무총리는 말을 마쳤다.
대한민국에 대한 경제 제재와 나토군의 개입 여부 건이 대표이사회에서 정상회의로 이첩된 후 메인 존슨 장관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마리스 펠식스 의장은 어떻게든 정상회의 날짜를 일주일 안으로 잡으려 했다.
하지만, 안건 상정부터 반대해온 독일과 터키 등 친한 국가의 정상들이 국가 일정을 핑계로 늦춘 결과 메인 존슨 장관이 원하는 날짜보다 3일이 지난 라트비아 현지시각으로 18일 오후 4시에 개최일정이 잡혔다.
불리함 속에서도 3일을 늦출 수 있게 된 것에는 친한 국가 정상들의 도움도 있었지만, 그동안 외교부에서 물밑 외교전쟁을 벌인 결과이기도 했다.
또한, 3일을 늦춤으로써 대한민국에는 행운이었다. 바로 EU 정상회의가 개최되기 전에 한중전이 대한민국의 승리로 끝났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내일 있을 EU 정상회의에서 EU 회원국의 정상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매우 중대한 결과였다.
예상치 못하게 신중국이 손을 들어 이제 한러전에 집중할 수 있게 된 대한민국에 유리하게 돌아감으로써 그동안 미국 편에 서서 대한민국에 대한 경제 제재와 나토군 개입 건을 찬성하려던 EU 회원국의 정상들은 고민 아닌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로 인해 EU 정상회의에서 상정 안건이 기각될 확률이 커지게 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이윤연 국무총리는 EU 정상회의를 말하면서 미소를 보인 이유였다.
“미국이 EU와 나토군을 움직여 한국을 견제하려고 한다는 건 일방적인 주장이지 않습니까?”
저메인 존스 기자는 마지막 발악이라도 하듯 따지듯 물었다. 이에 마무리하려던 이윤연 국무총리의 표정이 진지하게 바뀌었다.
“일방적인 주장이라고 하셨나요? 여기 계신 대부분 기자분도 대표이사회에서 메인 존스 국무부 장관이 의사 발언에 대해서 다들 알고 있을 겁니다. 그것만 봐도 충분한 증거가 되지 않습니까?”
“아닙니다. 그것은 세계 질서를 주도하는 미국으로서 마땅히 유럽 안전을 위해 취하는 정상적인 정치 활동이라 보입니다.”
“유럽 안전을 위한 정치 활동이라······. 한가지 묻게 습니다. EU와 나토군이 러시아가 아닌 우리 대한민국을 견제하려는 게 유럽 안전을 위한 것입니까?”
질문자에서 답변자로 바뀐 저메인 존스 기자는 선뜻 대답하지 못하자 이윤연 국무총리는 빈틈을 파고들었다.
“어떻습니까? 기자님도 솔직히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지요?”
“그, 그건 유럽 근방에서 전쟁이 발발하니 EU는 방어적 차원에서 나토군을 움직여 유럽으로의 전쟁확산을 막으려는고 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한참 동안 머릿속을 짜내 만든 저메인 존스 기자의 대답이었다.
“현재 한러전이 벌어지고 있는 전장은 유럽 경계와는 무관한 곳입니다. 그런데도 혹시나 대한민국이 유럽을 공격할지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입니까? 백번 양보에서 그렇다면 나토군은 대한민국과 러시아 두 국가를 동시에 견제해야지요. 지금까지 정찰된 나토군의 움직임은 러시아 남부와 우크라이나 동부에 파병 간 우리 대한민국 국군에 대한 견제로 확인되고 있습니다. 아직 정상회의에서 상정 건이 결정되지도 않았는데 말입니다.”
“총리님 앞서 말했듯이 나토군은 방어적 차원이라 했습니다.”
“방어적 차원이라······. 기자님 말대로 방어적 차원이라면 나토군은 러시아와 국경선을 접하고 있는 핀란드,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벨로루시, 폴란드, 그리고 루마니아와 불가리아의 흑해 연안 지역에 방어적 준비를 하면 될 텐데, 최신정보에 의하면 나토군 일부 사단들이 흑해를 이용한 군사작전에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뭐, 지금은 나토군 소속의 미군만 움직이고는 있지만 말입니다.”
이윤연 국무총리는 최근에 파악한 군사정보까지 들먹이며 팩트 폭격을 가했다.
“저, 저는 군사전문 기자가 아닙니다.”
결국, 저메인 존스 기자는 이윤연 국무총리에게 압도되었는지 무릎을 꿇고 말았다.
“네, 알겠습니다. 그럼 정리하는 차원에서 한 말씀 드리고 끝내도록 하겠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세계대전으로 확전될 거라는 우려의 망상을 하는 국가들은 이번 한러전이 왜 발생했는지를 천천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후회할 결정을 안 했으면 하는 저의 바람입니다.
이윤연 국무총리의 방금 발언은 미국을 포함해 미국 편에 선 EU 회원국에 대한 경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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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월 17일 18:30 (러시아시각 12:30),
러시아 모스크바 벙커 스테이트 R-13(회의실).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푸틴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고위 관료와 총참모부 지휘관들은 숨죽인 채로 벽면에 설치된 대형 TV에 시선이 박혀 있었다.
현재 TV 화면에서는 천웨이팅 부주석이 침울한 표정으로 기자들을 반복적으로 쳐다보며 발표문을 읽어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천웨이팅 부주석이 대한민국에 항복을 공표한다는 부분에서 푸틴 대통령의 얼굴은 심하게 일그러졌고 급기야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역시나 도움이 하나 안되는 족속들이었어······.”
암울한 표정을 짓고 단상 뒤로 퇴장하는 모습을 본 푸틴 대통령은 더는 볼 필요 없다는 듯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
“꺼버리게.”
“네, 알겠습니다.”
비서관이 리모컨으로 TV를 끄자 회의실은 적막감이 돌 정도로 조용해졌다. 현재 푸틴 대통령의 심기 상태가 불편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자리에 참석한 고위 관료와 총참모부 지휘관들은 서로의 눈치만 볼뿐 누구 하나 선뜻 말문을 열지 못했다.
이때, 육중한 음성이 회의실을 울렸다. 블라디미르 베샤스트니흐 총참모장이었다.
“대통령님!”
“말하게.”
“외람된 말씀이나, 우리 러시아도 이제는 결정할 때가 된 듯합니다.”
“뭘 말인가?”
“신중국이 한국에 항복한 이상 이제 북서부전선 상황은 더욱 악화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 시점에 북서부전선을 포기하고 남부전선에 모든 전력을 쏟아부어야지 않겠습니까?”
“자네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나?”
“죄송합니다. 러시아군의 수장으로서 이런 말을 하게 돼서 말입니다. 하지만 현실을 직시할 상황입니다. 대통령님”
“안돼! 두 전선 모두 지켜내도록 하게, 한국놈들에게 우리 영토 한 톨이라도 빼앗겨서는 안 된단 말이야.”
“대통령님!”
블라디미르 베샤스트니흐 총참모장이 힘껏 목소리에 힘을 주어 불러봤지만, 푸틴 대통령은 눈길 하나 안주며 요지부동이었다.
“외교부 장관!”
“네, 대통령님! 지금 당장 EU 의장국에 연락하게.”
“어떤 내용으로 말입니까?”
“우리 영토로 나토군의 진출을 승인한다고 전하게”
“네? 아직 나토군과 관련해서는 EU 정상회의가 아직 개최······.”
“개최되었든 안 되었든 연락해! 또한, 미국에도 연락해서 러시아 전 지역에 대한 미국 정찰위성의 정찰도 수용한다고 전해!”
며칠 전까지만 해도 푸틴 대통령은 모스크바 상공에 대한 미국 아틀라스 정찰위성의 궤도진입을 반대했었다. 하지만, 상황이 상황인 만큼 푸틴 대통령은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대한민국에 대한 군사적 대응에 들어가고자 한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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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월 18일 09:30,
남주 서울특별시 용산구 B2 벙커(국군 합동지휘통제소 상황실).
공식적으로 한중전이 끝나고 하루가 지난 아침, 합동참모본부의 상황실 2번 스크린에는 신중국 전체가 보이는 디지털 지도가 보였고 지도 곳곳에는 교전 지역을 나타내는 전술기호가 그려져 있었다.
아직 패전 사실을 모르는 신중국군 내의 일선 부대가 한국군과 교전을 벌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큰 교전은 아니었고 아니지만, 교전이 발생한 지역이 100여 곳이 넘고 있었다. 통신두절이 원인이었고 이러 인해 종전 후 수습 기간이 생각보다 길어질 수이었다.
대부분 지역에서는 신중국군이 자진 무장해제를 하고 항복절차에 투항하고 있었으나 산간지역이나 아직 통신복구를 못 한 일선 부대들이 한국군을 향해 공격을 가하는 실정이었다.
“하하, 이것 참, 예상치 못한 문제군요.”
김용현 함참차장이 쓸쓸한 미소를 보이며 2번 스크린을 바라봤다.
금일 오전 합동참모본부의 총사령은 윤기윤 합참의장이었으나 오전 10시 있을 미 해군 태평양함대 관련 대응 작전 안 점검 회의가 있던 탓에 이곳 상황실에는 김용현 합참차장을 비롯한 수많은 지휘관과 장성들이 출근하여 상황실에서 현재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말도 말라우. 새벽부터 곳곳에서 신중국 놈들이 공격해온다고 하면서 통신망이 불이 났어야.”
“이런, 그랬습니까? 그래서 뭐라고 하셨습니까?”
“알지 않네? 내 성격! 그냥 밟으라 했디. 전쟁이 끝난 상황에서 그걸 모르고 공격하면 지들 잘못이디 않네? 내래 그런 걸 내는 절대 봐주지 않디.”
“네, 그렇겠네요. 전투 중에 전재 끝났다고 말해줄 수도 없고 말입니다.”
“그러니끼니, 그 모냐? 저번에 평탄화 작전할 때 쓰던 전단지 살포 작전이라도 해야는 거 아닌디 모르갔어.”
“하하하, 그러게 말입니다. 의장님께 말씀드려보시지요.”
이런저런 농담 섞인 대화가 오가는 사이 상황실 출입문이 열리고 부관들과 함께 신성용 합참의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에 상황실 안에 있던 모든 군인이 부동자세를 취했고 최고선임인 윤기윤 합참차장이 대표로 거수경례했다.
“충성!”
“충성!”
“새벽부터 총사령 근무하느라 수고가 많습니다.”
“수고라 할 게 뭐가 있겠습네까? 거뜬합네다.”
회의를 앞두고 잠시 상황실에 들어와 현재 상황을 보려던 신성용 합참의장은 자신의 자리에 앉고는 20여 개의 각종 스크린을 쳐다보며 오전 총 사령 원이 윤기윤 합참차장에게 물었다.
“하하, 별다른 건 없었습니까?”
“딱히 보고드릴만한 내용은 없으나 새벽부터 산발적으로 신중국군과 여러 차례 교전이 있었습니다.”
윤기윤 합참차장은 구두 보고와 함께 근무 당시에 발생한 모든 일이 일목 정연하게 정리된 태블릿 PC를 건넸다.
“음, 교전으로 인한 피해는 미미하지만, 교전 지역이 많군요. 이거 참, 생각지 못한 봉착입니다.”
태블릿 PC 화면을 넘기며 고개를 갸우뚱하자 김용현 합참차장이 넌지시 말했다.
“조금 전, 윤 차장님과 우스갯소리로 말하긴 했지만, 교전이 발생한 지역이나 아직 항복 소식을 접하지 못한 신중국군 지역에 전단지라도 살포해야지 않겠습니까?”
“전단지 말입니까?”
“네, 그렇게라도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이런 불상사 같은 교전은 계속 일어날 듯합니다.”
“그렇게 합시다. 모든 방법을 다 마련해서 필요 없는 소모전은 피해야지요. 그 부분은 전략기획본부장에게 맡기고 일단 시간이 되었으니 회의실로 갑시다.”
자신의 손목시계를 슬쩍 신성용 합참의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