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09화 (509/605)

완벽한 승전!

2024년 1월 17일 09:00,

남주 서울특별시 용산구 B2 벙커(국군 합동지휘통제소 작전브리핑실).

모처럼 밝은 분위기 속에서 회의에 참석한 각 군의 장성들과 참모진들은 서로에게 축하의 인사를 건넸고 있었다.

30분 전, 신중국 중앙당으로부터 공식적인 항복 의사를 밝혀왔기 때문이었다. 이에 랑팡시로부터 남서단 30km 떨어진 작은 마을의 건물에서 양 국가의 대표가 만나 항복에 따른 협상 준비에 들어갔다.

대한민국 대표로는 추은희 대통령으로부터 위임을 받은 22기갑여단의 여단장이자 제6기계화보병사단(청성)의 임시 사단장직을 맡은 민원식 준장과 참모진이었고 신중국 대표로는 천웨이팅 부주석과 리바우둥 외교부장, 그리고 궈징페이 총참모장이 협상 테이블에 나오게 되었다.

처음 협상 장소와 시간이 정해진 후 대한민국 대표인 민원식 소장은 신중국 대표로 왕징위 주석을 협상 대표자로 지목하였으나, 현재 충격으로 인해 거동이 불편할 정도로 아프다는 핑계를 대며 부주석과 외교부장, 그리고 총참모장이 3인 공동 대표로 나오게 되었다.

이렇듯 기분 좋은 소식으로 인해 화기애애한 분위기임에도 불구하고 기다란 탁자의 정 중앙에 앉아있는 신성용 합참의장은 표정은 분위기와는 다르게 밝아 보이지 않았다.

신중국과의 이른 종전이 있다지만 아직 러시아와 여러 곳에서 치열한 교전이 벌어지고 있고 나토군의 불확실한 참전 여부,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일본 내각이 비밀리에 추진하고 있는 자주국가선포 건과 미 해군 태평양함대의 움직임 때문이었다.

대한민국 국군의 최고수장으로써 느껴지는 책임감과 무게 때문에 마냥 좋아할 수는 없는 듯했다.

“합참의장님! 이럴 땐 웃기도 하고 미소도 좀 지으시라요.”

다른 장성들과 돌아가며 악수를 하며 축하 분위기에 들떠 있던 윤기윤 합참차장이 다가와 농담을 건네자 어색한 표정으로 미소를 지은 합참의장이 대답했다.

“하하! 알겠습니다.”

이때 작전회의실의 스크린에 불이 켜지며 영관급 장교가 마이크에 대고 안내 멘트를 날렸다.

“잠시 후 항복 건과 관련한 협상회의가 시작됩니다. 모두 자리에 앉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서로 간 축하 인사말을 나누던 장성과 참모진들이 다급히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밝게 켜진 스크린 화면에는 기다란 탁자 사이로 양국의 대표들이 앉아있는 장면이 보였다.

★ ★ ★

2024년 1월 17일 09:15 (신중국시각 08:15),

신중국 허베이성 랑팡시 남서단 30km 지점의 어느 작은 마을.

마을 회관으로 보이는듯한 허름한 건물 1층 거실에는 기다란 탁자 사이로 양국의 대표들이 심각한 표정을 지은 채 마주 앉아있었다.

시종일관 눈에서 불꽃을 터뜨리는 민원식 준장과는 반대로 맞은편에 앉은 신중국의 천웨이팅 부주석과 리바우둥 외교부장은 죄인처럼 고개를 떨구고 있었고 궈징페이 총참모장만이 민원식 준장을 바라봤다.

“뭐, 시간 낭비할 거 없이 본론으로 넘어갑시다. 대한민국 정부는 신중국에 조건 없는 항복만을 원합니다.”

간단명료한 말에 궈징페이 총참모장이 한쪽 눈썹을 치켜뜨며 되물었다.

“네? 조건 없는 항복이라면?”

“뭐! 한 번도 아니고 경험 있는 분들이 왜 그러십니까?”

민원식 준장은 지난 1차 동북아 전쟁 당시 건을 꺼내 들며 비꼬듯 말했다.

“네? 그때는 중국이라는 국가였고······.”

“허허, 신중국이 그때의 중국을 계승한 국가 아닙니까? 그리고 왕징위 주석은 그때 중앙군구 총사령원이기도 하지 않았습니까?”

“그거야······.”

“뭐, 앞서 말했듯이 시간 낭비할 거 없으니 알려드리지요. 말 그대로 조건 없는 항복입니다. 대한민국 정부가 원하는 대로 모든 걸 수용할 의사가 있다면 이번 항복을 받아들이겠다는 말입니다.”

이때 눈치만 보던 리바우둥 외교부장이 고개를 들며 말했다.

“원하는 데로라면 어떤 걸 말씀하시는 건가요?”

“왜요? 조건 따라 항복할지 안 할지 결정하려는 겁니까?”

“적어도 어떤 조건인지는 알아야 저희가 감내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판단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외교부장답게 논리적으로 접근하려는 리바우둥 외교부장이었다.

“저기 외교부장이시라고 했죠?”

“네, 그렇습니다.”

“잘 들으세요. 현재 이 자리는 신중국이 항복 의사를 밝혀 만들어진 자리입니다. 또한, 말이 협상 자리이지 사실 우리 정부는 항복과 관련하여 신중국과 그 어떠한 조건을 따져가며 협상할 마음이 전혀 없습니다. 그러니 조건 같은 거 따질 거면 없던 일로 합시다.”

급기야 민원식 준장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하! 너무하시는 거 아닙니까? 아무리 우리가 패전국으로써 항복 테이블에 앉았다고 이리 무례 하,”

쿵!

“이보시오. 리바우둥 외교부장! 아직 현실 파악이 안 됩니까?”

양손으로 냅다 탁자를 내리친 민원식 준장은 부릅뜬 눈으로 리바우둥 외교부장을 쏘아보며 말했다.

“리바우둥 외교부장! 아직도 내 머릿속에는 피눈물을 흘리며 전사한 전우들의 모습이 생생하단 말이야. 이 개자식들아! 지금 당장에라도 얼굴 빼기 하나 내비치지 않은 돼지 새끼를 비롯해 너희들 모두를 전차 궤도로 확 다 깔아뭉개고 싶으니까 싫으면 당장 돌아가!”

AI 시스템이 탑재되어 감정까지 정확히 전달이 가능한 통역 로봇이 단어 하나 빼놓지 않고 정확히 중국어로 통역했다. 그러자 3명의 대표는 얼어붙은 듯 머라 대꾸도 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했다.

“알아들었으면, 당장 조건 없는 항복을 할 건지 아니면 그냥 꺼져!”

“이거 정말! 너무하는 거 아니요? 한 국가의 대표로 나왔으면 적어도 승전국으로써 예의는 보이셔야지 않겠습니까?”

궈징페이 총참모장이 더는 참지 못하겠는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민원식 준장과 눈싸움을 했다.

“어이 총참모장! 지금 예의라고 했나? 당신들이 그런 말을 하다니 너무 뻔뻔하군, 타 국가의 군사기술을 훔치기 위해 타 국가의 선량한 가족을 납치해 그것으로 협박하여 군사기술을 빼돌린 당신들이? 또한, 그 군사기술로 플라즈마 증폭탄을 만들어 대량살상한 당신들이? 염치가 없어도 너무 하는 거 아닌가? 궈징페이 총참모장?”

“그것은 어느 국가나 암암리에 행해지는 국가 간 공작행위가 아닙니까?”

궈징페이 총참모장 역시 속에서 치밀어오는 화를 누르며 물러서지 않고 대차게 받아쳤다.

“하하, 암암리에 행해지는 국가 간 공작행위? 이래서 너희들이 미개한 짱게라 불리는 이유야. 정상적인 국가고 이성적인 인간이라면 잘못한 부분에 대해 먼저 사과부터 하는 게 우선이지 않나? 그리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고 싶은가?”

“핑계가 아니라, 사실을 말하는 겁니다.”

“됐고 더는 당신들과 얘기해봤자 시간 낭비일 거 같군. 김 대령!”

서 있는 자세 그대로 고개를 돌린 민원식 준장은 옆에 앉아있는 사단 작전관인 김민욱 대령을 불렀다.

“네, 사단장님!”

“지금 당장! 포병부대에 연락하게. 10분 후 설정된 좌표에 가용한 모든 폭탄을 퍼부으라고 말이야!”

“네, 알겠습니다.”

대답과 동시에 김민욱 대령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왼쪽에 앉아있던 또 다른 준장 계급장의 장성이 입을 열었다. 괴멸에 가까운 피해를 보고 22기갑여단에 배속된 19기계화보병여단의 여단장 오동균 준장이었다.

“아까운 포탄을 쓸 필요가 있겠습니까? 포위망만 유지해놓으면 무장한 시위대가 깨끗이 해결할 듯한데 말입니다.”

“아! 제가 그 생각을 못 했군요. 좋은 생각 같습니다. 하하”

면전에 두고 자신들의 생사를 가지고 말장난하듯 말하는 두 장성의 대화에 신중국 대표들은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붉게 물들었다. 하지만 대놓고 치밀어오르는 분노를 표출할 수 없었다. 현재 이들이 직면한 현실이기 때문이었다.

“저기! 민 준장님!”

그동안 가만히 듣기만 하던 천웨이팅 부주석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뭡니까? 더는 볼일이 없을 거 같은데, 쓸데없는 소리 할 거면 당장 돌아가세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천웨이팅 부주석의 말에 외교부장과 총참모장이 깜짝 놀란 눈으로 바라봤다.

“부주석님! 그건 안됩니다.”

“맞습니다. 주석께서도 받아드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만하게, 안된다고 하면 다른 방법이 있나? 아니면 그냥 돌아가서 개죽음을 당하자는 건가?”

무거운 일침에 외교부장과 총참모장은 입을 굳게 다물고 말았다.

“현 시간부로 신중국은 대한민국에 무조건 항복을 하겠습니다.”

“정말이오?”

“네, 그렇습니다. 단, 우리의 안전은 보장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 부분은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지금부터는 우리 대한민국 당신들의 안전을 보장하겠습니다. 자! 그럼 대한민국은 신중국 중앙당의 요청에 따라 무조건 항복을 받아들이겠습니다. 부관!”

“네, 사단장님!”

부관 한 명이 대답과 동시에 미리 준비한 문서 두 장을 탁자에 내려놨다.

“여기에 서명하시오.”

민원식 준장이 팔짱을 낀 채로 턱으로 문서를 가리켰다.

국제사회에 통용되는 공식 항복문서였다. 천웨이팅 부주석이 결정한 상황이라 리바우둥 외교부장과 궈징페이 총참모장 역시 묵묵히 항복문서에 서명했다. 이로써 신중국은 공식적으로 대한민국에 조건 없는 항복을 하게 되었다.

3년 사이 대한민국에 2번이나 전쟁에서 패배하며 조건 없는 항복을 한 중국과 신중국, 훗날 역사에 길이 남을 대사건이었다.

“자! 이것은 패전국이자 항복한 신중국에 대한 대한민국의 공식 요청사항입니다.”

부관이 건네받은 묵직한 문서를 민원식 준장이 살짝 흔들어 보였다. 문서 안에 어떤 내용이 들어있든 이제 신중국은 무조건 받아드려야만 하는 상황, 천웨이팅 부주석이 암담한 표정으로 받았다.

“그건 천천히 읽어보도록 하고 홍콩에서 항복에 따른 공표를 합시다.”

“네? 왜 홍콩입니까?”

문서를 읽어보려던 천웨이팅 부주석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장소가 중요합니까?”

“그건 아니지만, 신중국 내에서 하는 것이······.”

“허허, 공식 항복문서에 서명하지 않았습니까? 지금부터는 무조건 우리가 지시하는 대로 따르세요.”

민원식 준장은 귀찮다는 듯 말하고는 바로 뒤돌아 무장한 병사들에게 손짓으로 지시를 내렸다.

그러자 무장한 병사들이 신중국 대표들을 둘러쌌다.

“뭐하는 겁니까?”

궈징페이 총참모장이 기분이 나빴는지 따지듯 말했다.

“뭐긴 뭡니까? 신변보호지! 지금부터 우리 병사들이 안전하게 보호할 테니 준비한 장갑차를 타고 왕징위 주석을 데리고 오세요.”

“그렇다고 이렇게 죄인취급을 하십니까?”

“죄인취급이요? 취급이 아니라 죄인 아닙니까? 전범자! 아닙니까?”

“뭐요? 신변은 보장하기로 하지 않았습니까?”

“누가 뭐라 했습니까? 신변 보장은 할 테니 더는 토 달지 말고 지시에 따르세요. 피곤하니까. 이 중령! 이동해!”

“네, 알겠습니다.”

151기계화보병대대 대대장인 이형원 중령이 대답과 동시에 병사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그러자 신중국 대표들은 병사들에게 이끌려 대기 중인 장갑차 쪽으로 걸어갔다.

“하하, 사단장님! 그냥 전역하시고 배우로 전업하시지요.”

오동균 준장이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배우 전업이라니요? 무슨 말씀이십니까?”

“아까 화내는 연기 너무 실감 나서 말입니다. 하하”

“아! 하하, 사실 조금 화나 있었습니다. 뭐 반은 진심, 반은 연기일 수 있겠죠?”

“어쨌든 사단장님 명연기로 우리가 원하는 대로 진행되어 다행입니다.”

“그렇게 말입니다. 하지만 저들 역시 선택의 여지는 없었을 것입니다. 일단 자신들부터 살고 보자 생각하니까 말이죠.”

“네, 그런 듯합니다.”

멀어져가는 신중국 대표단을 보면서 두 장성은 여운이 담긴 대화를 이어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