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08화 (508/605)

완벽한 승전!

2024년 1월 17일 07:00 (신중국시각 06:00),

신중국 허베이성 랑팡시 남서단 25km 지점.

헉헉!

온갖 인상을 쓰며 거친 숨소리를 내는 왕징위 주석,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든 여러 경호대원에게 이끌려 눈밭 위를 달리고 있었다.

조금 전, 방어선이 뚫려 시위대가 몰려온다는 보고를 받자마자 왕징위 주석과 총참모부 지휘관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서쪽으로 도주했다.

“이렇게 얼마나 가야 하나?”

지친 나머지 잠시 발걸음을 멈춘 왕징위 주석은 하얀 입김을 내뿜으며 말했다. 이에 앞장서서 달리던 궈징페이 총참모장이 뒤돌아와 말했다.

“주석님! 계속 가야 합니다. 힘들더라도 힘내십시오.”

“도저히 힘들어서 못 가겠어!”

왕징위 주석은 급기야 눈밭에 철퍼덕 주저앉았다.

“주석님! 가까운 거리에 무장한 시위대가······.”

“그걸 누가 모르나? 그래도 힘들어서 못 가겠단 말이야.”

운동 부족도 있었지만, 100kg에 달하는 거구로 발목까지 빠지는 눈밭을 계속해서 달리는 건 무리였다.

현재 왕징위 주석과 고위관료, 그리고 총참모부 수뇌부를 경호하는 인원은 고작 100여 명, 나머지 무장 경호대는 시위대와 교전을 벌이고 있었다.

“그래도 조금만 더 힘을 내십시오. 저쪽 마을까지만이라도 말입니다.”

궈징페이 총참모장은 눈밭 넘어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나마 30여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있는 작은마을을 가리켰다.

“알, 알았네, 대신 5분만 쉬도록 하지!”

“네, 그렇게 하시지요.”

푸념하듯 대답한 궈징페이 총참모장은 가볍게 목례를 하고는 총참모부 참모진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저기 주석님!”

천웨이팅 부주석이 어느새 왕징위 주석에게 다가와 조용히 말을 건넸다.

“뭔가?”

“주석님! 현재 상황이 매우 암담합니다. 무장한 폭도들이 우리를 뒤쫓아 오고 있고, 총참모부는 예하 모든 부대와의 연락이 끊겨 지위불능 상태입”

“하고자 하는 말이 뭔가?”

질질 끌며 말하는 천웨이팅 부주석의 말에 살짝 짜증 난 왕징위 주석이 눈을 흘기며 딱 잘라 말했다.

“그게···”

천웨이팅 부주석은 슬쩍 주변을 살피고는 왕징위 주석의 귀에 대고 속삭이듯 말을 건넸다.

“한국에 항복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순간 한쪽 눈을 치켜뜬 왕징위 주석이 노려보며 되물었다.

“지금 항복이라고 했나?”

“네, 그렇습니다.”

곧바로 대답하는 천웨이팅 부주석, 아무래도 왕징위 주석을 제외하고 중앙당 고위관료들 사이에서는 조심스럽게 이러한 얘기가 이미 오갔고 결론적으로 한국에 항복하자는 의견으로 모인 듯했다.

“아니, 갑자기 항복이라니? 아직 우리 신중국군도 건재하고 이곳만 벗어나면 되는 것을 항복이라니? 자네 미친 건가?”

“주석님! 한국군이 문제가 아닙니다.”

“그럼 뭐가 문제라는 건가?”

“인민입니다. 주석님 말대로 한국군과는 어떻게든 끝까지 항쟁할 수 있으나 적으로 돌아선 인민이 문제입니다. 이곳을 안전하게 벗어났다 치더라도 다른 곳에서 폭도로 변한 시위대가 없겠습니까?”

“그렇다고 한국에 항복이라니? 그리고 폭동 역시 일시적 현상일 뿐이야.”

“주석님! 현실을 직시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지금부터라도 우리의 안전을 도모해야 합니다.”

언제 왔는지 전인대 샤오양 상무위원장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현실 직시? 우리의 안전?”

“네, 그렇습니다. 현재 시위대는 전장의 한복판인 이곳에서도 피난은커녕 도리어 무장한 각종 총기로 우리를 공격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시위대의 불만이 얼마나 크지를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또한, 일시적인 현상이라 치부하기엔 현재 전국적으로 일어난 시위 규모가 장난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스스로 한국에 항복해? 다들 전쟁 범죄자로 몰려 사형을 당하고 싶은 건가?”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이라도 한국에 적극적으로 항복 의사를 타진한다면 적어도 우리의 안전은 확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칫 시위대에게 붙잡히기라도 한다면 그때는······.”

샤오양 상무위원장이 말끝을 흐렸다. 그리고 무거운 침묵이 잠시간 흘렀다.

왕징위 주석 역시 샤오양 상무위원장이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 충분히 짐작했다. 이에 왕징위 주석도 잠시 생각할 시간을 가졌다.

“주석님! 이 건만이 우리가 살길입니다.”

몇 분이 흐르고 처음 말을 꺼냈던 천웨이팅 부주석이 재촉하듯 말했다. 이에 생각을 정리했는지 왕징위 주석이 자신의 턱을 한번 쓰다듬고는 결정한 바를 얘기했다.

“그렇다고 한국에 스스로 항복할 순 없어! 또한, 폭도들쯤은 충분히 제압할 수 있고 말이야. 그러니 다신 이딴 소리 그만들 하게. 알았나?”

실망스러운 대답이었다.

두 고위관료는 더는 말해봤자 소용없다고 생각했는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고는 다른 관료들이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허허, 이러다가 다 죽게 생겼군요.”

뒤돌아 걸어가던 천웨이팅 부주석이 혀를 차며 탄식했다.

“기회를 봐서 다시 한번 설득해야지요.”

“그럴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때 멀리서 누군가가 헐떡거리며 달려왔다. 복장으로 봐서는 경호대 출신의 장교 같았다.

“어서! 피하십시오. 시위대가 근방까지 도달했습니다. 어서 피하십시오.”

이에 류하오란 경호대장이 달려오는 장교에게 물었다.

“얼마 거리인가?”

“1km도 안 됩니다. 어서 피하셔야 합니다.”

“이런 제길!”

무장한 시위대가 코앞까지 뒤쫓아 오고 있다는 얘기에 쉬고 있던 고위관료들과 총참모부 장성들은 본능적으로 동쪽으로 도망가듯 달렸고 왕징위 주석 역시 조금 전 지쳤을 때와는 딴판으로 번개같이 일어나더니 경호대의 호위를 받으며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한편, 랑팡시 동단 20km 지점에서 기동을 시작한 제6기계화보병사단(청성) 22기갑여단 중 1전차대대 5전차중대는 다른 예하부대와는 다르게 최대속도로 기동하며 랑팡시 위쪽으로 우회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남단으로 기수를 돌렸다.

★ ★ ★

2024년 1월 17일 07:30 (신중국시각 06:30),

신중국 허베이성 랑팡시 남서단 30km.

작은 구릉지 뒤편, 1전차대대 5중대 소속의 C-2A1 흑호 전차 30여 대가 횡대 대형을 갖추고 릴닝 기능으로 전방 차체를 최대한 낮춘 가운데 저 멀리 어둠 속 눈밭 위에서는 100여 명의 검은 인형이 하얀 입김을 내뿜으며 달려오고 있었다.

폭도라 불리는 인민 시위대에 쫓기는 왕징위 주석 일행이었다.

“이 짱게 새끼들 드디어 스스로 쥐덫에 들어오는구나!”

현시경을 통해 전방 상황을 확인하던 511호 전차장이자 소대장인 나태경 중위가 엷은 미소를 보이며 중얼거렸다.

“전사한 전우들 복수를 위해 딱 한방만이라도 날렸으면 좋겠습니다.”

고장난 조준경을 대신해 현시경으로 함께 보던 조종수 김기일 병장이 한마디 거들었다.

“나도 그렇단다. 하지만 어쩌냐? 위에서는 겁만 주라는데······. 쩝!”

“소대장님! 위협사격할 때 걍 모른 척하고 날려버릴까요?”

“남한산성 가고 싶냐?”

“하하, 농담입니다. 코앞에서 왕 뭐시기하는 주석 놈이 얼쩡거리니 자꾸만 그런 생각이 듭니다.”

- 삐익! 중대장이다. 현지시각 공여섯시 삼십오분! 현 시간부로 사전에 숙지한 대로 구역별 위협사격만 가한다. 괜히 복수심이니 뭐니 해서 제압사격 가하지 말도록! 명심하도록 이상!

중대장으로부터 위협사격 명령이 떨어지자 5전차중대 C-2A1 흑호 전차들은 일제히 차제를 상승시키고는 소대별로 약속한 지점에 120mm 플라즈마탄을 발사했다.

퍼엉! 퍼엉! 퍼엉!

동시다발적으로 천지를 흔드는 포성음을 울렸다.

콰앙! 콰아아앙!

눈과 흙이 뒤섞인 파편들이 하늘 높이 치솟으며 사방에서 붉은 폭풍이 휘몰아쳤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왕징위 주석 일행으로 추정되는 검은 인형들은 본능적으로 지면에 코를 박고는 엎드렸다.

“저놈들 봐라. 하하”

나태경 중위가 실소를 터뜨렸다.

★ ★ ★

2024년 1월 17일 07:00 (신중국시각 06:00),

신중국 허베이성 랑팡시 남서단 28km 지점.

콰앙! 쾅! 콰콰카앙!

사방에서 흙기둥이 치솟고 귀청을 찌를듯한 폭발음이 지면을 타고 울리는 가운데 본능적으로 눈밭에 엎드렸던 작전현황장 마커 상장이 머리를 감싼채 전방을 확인하며 소리를 질렀다.

“대체 어디서 공격하는 건가?”

“전방입니다. 전방에서 전차 다수 포착했다는 보고입니다.”

가장 앞서서 달리던 경호대 소속의 장교가 엎드린 채로 보고했다.

“전차? 한국군 전차란 말인가? 제길! 한국군 전차가 전방에서 출현하는 동안 척후병 놈들은 뭐 한 거야? 개자식들!”

진작에 저세상 사람이 된 척후병들에게 욕설을 퍼붓는 마커 상장!

“총사령관님! 이쪽 길은 틀린 듯합니다. 다른 루트를 찾아보겠습니다.”

“당장 찾아!"

"네, 알겠습니다.“

경호대 장교는 주변에 있는 경호대원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그러자 여러 그룹으로 사방으로 뛰어갔다.

쿠앙!

얼마 지나지 않아 2시 방향으로 뛰어가던 경호대원들이 동시에 바닥에 엎드렸다. 전방 20m 지점에서 여러 개의 불기둥이 솟구쳤기 때문이었다.

다른 방향도 마찬가지였다. 새로운 퇴로를 찾기 위해 뛰어가던 경호대원들 전방에 어김없이 여러 발의 플라즈마탄이 날아와 흙폭풍을 만들었다.

현재 왕징위 주석 일행의 전방에는 1전차대대 5중대가 앞길을 막고 위협사격을 가하고 있었으며 9시 방향과 3시 방향에서 각각 6중대와 7중대가 기다란 횡대 대형을 갖추고 모든 길을 차단한 상태였다.

“큰, 큰일입니다. 완전히 포위된 듯합니다."

되돌아온 부하들로부터 보고를 받은 경호대 장교가 낙심한 표정을 지으며 마커 상장에게 말했다.

“포위? 망할······.”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마커 상장은 낮은 자세를 취하고 왕징위 주석과 함께 있는 궈징페이 총참모장에게 다가갔다.

“총참모장님! 아무래도 한국놈들에게 포위당한 듯합니다.”

“정말인가?”

“네, 다른 퇴로를 찾기 위해 부하들을 보냈으나 다들 되돌아오고 말았습니다.”

“하!”

절망적인 보고에 궈징페이 참모총장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뭐라고? 한국놈들에게 포위당했다고?”

경호대원들에게 둘러싸여 바닥에 납작 엎드려 있던 왕징위 주석이 작전현황장의 말을 듣고는 벌떡 일어나며 되물었다.

“아무래도······.”

궈징페이 총참모장이 말을 잇지 못하고 흘리자 왕징위 주석의 얼굴은 순식간에 공포심에 가득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그, 그럼 어떻게 한단 말인가?”

궈징페이 총참모장은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뒤에서는 무장한 폭도들이 쫓아오고 전방과 양쪽 측면에는 한국군 전차들이 막고 있으니 현실적으로 암담할 뿐이었다.

“총참모장! 무슨 말이라도 해보란 말이야! 여기서 꼼짝없이 죽을 순 없잖아!”

궈징페이 총참모장의 멱살을 잡아 흔든 왕징위 주석이 악에 받친 소리를 질렀다.

“죄송합니다.”

“죄송하다는 그딴 소리 말고 어디로든 연락해서 당장 이곳으로 지원군을 보내라고 하란 말이야.”

끊이지 않은 폭발음 사이로 왕징위 주석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에 사람들이 슬금슬금 모여들었다.

이때, 기회를 보고 있던 천웨이팅 부주석이 다가오더니 다른 사람들이 들리지 않을 정도의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주석님!”

“뭐야?”

“이렇게 된 이상! 아까 말씀드렸듯이 한국에게 항복하시는 게······.”

“또, 또 그딴 소리를······.”

현재 상황에 이성을 잃었는지 곧바로 천웨이팅 부주석의 멱살을 움켜잡고 얼굴을 들이밀며 일갈했다. 하지만 천웨이팅 부주석은 아랑곳하지 않고 굳은 표정으로 끝까지 말을 이었다.

“주석님! 더 늦기 전에 항복하셔야 합니다. 그래야 적어도 우리의 안전은 확보할 수 있습니다. 그냥 이곳에서 죽을 순 없지 않습니까? 무장한 폭도들에게 붙잡혀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 거 같습니까?”

“그, 그럼, 한국은 우리를 살려둘 거 같은가?”

“네, 그렇습니다. 우리가 지금이라도 항복을 한다면 말입니다.”

“장담할 수 있는가?”

“제가 책임지고 한국 정부와 협상을 하겠습니다.”

“제, 제길!”

진심 어린 천웨이팅 부주석의 말에 멱살을 푼 왕징위 주석은 자신을 보고 있는 장성과 관료들을 보며 물었다.

“자네들도 그렇게 생각하나?”

하지만 누구 하나 굳게 입을 닫은 채 대답하지 못했다. 궈징페이 총참모장 역시 두 눈을 슬쩍 감고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여기까지인가? 내 신세가 얼마나 비참한가?’

어두운 새벽, 알지도 모르는 눈 덮인 땅바닥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자신의 신세가 한탄스러운지 왕징위 주석은 별빛 하나 보이지 않은 하늘을 바라봤다.


0